최소현 간호사 (강남세브란스병원 61병동)
 
환자에 대한선입관 버리게 해준 고마운 ‘윤희’


윤희를 처음 만난 때는 제가 신규 간호사로 병동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을 때였다. 환자가 어떻게 다치게 되었는지,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도 잘 파악하지 못했던 어수룩한 저에게, 윤희는 그저 담당하기에 겁이 나는 환자였다. 의식은 없었고, 기관절개술(tracheostomy), 경피내시경위조루술튜브(PEG) 삽입을 하고 있는 신경외과 준중환자실 환자이면서, 또한 부모님의 치료 관심과 열정이 높아, 초보 간호사에게는 여기저기서 꾸중 들을까 더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환자였다. 물론, 지금도 윤희의 부모님은 변함없이 치료에 많은 열성을 보이시고 계신다.

‘과연, 이런 환자는 나중에 어떻게 되는걸까?’,‘ 퇴원은 할 수 있을까?’뇌실 복막단락(V-P shunt) 수술 후 감염으로 의식도 없는데, 잦은 수술과 고열에 시달리는 윤희를 보면서 생각했던 말들로 그 당시 긍정적인 질문과 대답은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윤희 부모님이 침상에 적어 두신 글귀 중에 윤희가 모두 듣고 있으니 말과 행동을 조심히 해달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의식을 없다는 것은 과학적인 반응들을 통해 이루어진 진단이지만, 과학을 벗어난 인격체로서의 윤희는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머리에 담아 두고 있지 않을까, 그러한 것이 몸에 영향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 긍정적인 메시지를 자연스레 넘겨주면 윤희의 치료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윤희를 간호할 때 마다 반응은 없지만, 어색하게나마 말을 걸고 농담을 건네기 시작하였고 점차 익숙해졌다. 윤희는 점차 이러한 긍정적인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엔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예전의 부정적인 저의 생각이 부끄러워질 만큼 윤희는 회복하고 살아나고 있었다.

윤희는 꾸미는 것 좋아하고, 인형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아가씨 모습 그대로였다.
다치기 전에는 무척이나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물론 오른쪽은 편마비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장운동도 활발하지 못해 늘 변비로 고생하고, 말할 수 있는 단어도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재활치료해서 제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겠다고 말하는 윤희는, 더 이상 단순한 환자가 아닌 영혼의 교감으로 얻어진 동생이었다.

지금은 퇴원 후 다른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윤희와는 가끔 미니홈피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윤희가 쓴 글을 읽다 보면 무표정에 더듬으면서 말하는 짧은 말들 뒤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엔 이런 사실이 제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환자들을 보는 것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구나 하는 생각에 그 동안 파킨슨병이나 마비로 발음이 더딘 환자들을 내가 성급하게 판단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의식을 통한 말과 행동으로써 상대방에게로부터 많은 것을 얻고 알게 되지만, 그것에 의존한 나머지 말을 제외한 환자가 보내는 다양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윤희는 제가 그저 알게 된 많은 의사, 간호사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윤희는 제게 간호사로써 많은 것을 느끼게 한 환자로 기억된다.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의식 없는 환자들을 포기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해주고 그 느낌을 놓지 않도록 해주는 환자로 말이다.

윤희가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인 것은 저와의 좋은 추억만 있기 때문이 아니라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변화를 주는 선생님이자 환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의료원소식 613호
2009/07/13 16:44 2009/07/1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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