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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22 에비슨 박사 업적 다룬 두 번째 자료집 발간 [826호]
  2. 2019/07/22 에비슨 박사 후손 방문 [826호]
  3. 2019/03/19 에비슨 박사 초상화 제막 [824호]
  4. 2018/05/08 의료선교의 새 모델 만든다 [807호]
  5. 2017/09/27 에비슨 박사 후손 가족 방문 [794호]
  6. 2017/08/07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3 [791호]
  7. 2017/07/12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2 [790호]
  8. 2017/06/28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1 [789호]
  9. 2017/05/19 ‘난치성 피부질환 정복’ 목표로 100년 시작한다 [786호]
  10. 2017/04/28 연세대 창립 132주년 기념행사개최 [785호]
  11. 2017/04/27 캐나다 온타리오주 장관 방문 [785호]
  12. 2016/12/28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778호]
  13. 2016/04/26 연세대학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763호]
  14. 2015/10/27 알렌 훈장 문화재 등록됐다 [752호]
  15. 2015/10/27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752호]
  16. 2015/06/11 한국 근대화 선각자 추모 [744호] (2)
  17. 2015/04/17 제중원 - 세브란스 130주년 행사 성료 [740호]
  18. 2015/04/01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739호]
  19. 2015/01/30 지선하 교수 에비슨 특훈교수 [736호]
  20. 2015/01/08 세브란스병원 이야기[735호]
  21. 2014/12/16 신홍임 간호대동창 에비슨 의료선교 교육기금 1,000만원[733호]
  22. 2013/11/29 연세의료원 소식지 709호
  23. 2013/11/29 김인식 선우회계사무소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에 3억원[709호]
  24. 2013/11/29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암병원 건축기부금 4억원[709호]
  25. 2013/11/29 세브란스, 한-러 의료 협력 상징되다 [709호]
  26. 2013/11/29 임상시험 네트워크 허브 구축ㅣ복지부 글로벌 선도센터 지정…산업 비지니스 모델 개발[709호]
  27. 2013/11/29 소아과학교실, 교실사 발간[709호]
  28. 2013/11/29 근거기반 간호연구 학술대회[709호]
  29. 2013/11/29 세브란스와 다양한‘크리스마스’즐기세요[709호]
  30. 2013/11/29 지발 병원장, 의료 서비스 특강[709호]

에비슨 박사 업적 다룬 두 번째 자료집 발간
의대 박형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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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 의학과 고등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올리버 R. 에비슨 박사의 일대기를 다룬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의대 박형우 교수(해부학)가 2015년 에비슨 자료집Ⅰ 이후 4년 만에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Ⅱ’을 발간했다.
자료집Ⅰ은 에비슨 박사가 태어나 한국에 오기 직전인 1860년부터 1892년까지 증조부모를 비롯해 형제자매와 친척 등 가족구성원과 초중등 기초교육에서부터 약학대학과 의과대학 등 고등교육 과정까지 망라해 다뤘다.
이번 자료집Ⅱ에서는 1893년 에비슨 박사가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가겠다는 선교사 지원편지부터 조선에 도착해 제중원 운영권을 이관받은 후 새로운 운영 시스템을 도입해 병원의 안정을 기하고 의학 교육의 토대를 다지던 1894년 말까지 담았다.
에비슨 박사는 1893년 2월 의료선교사 지원에 관한 편지를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보냈고, 2월 한국 의료선교사로 임명받았다.
그해 7월 부산에 도착한 에비슨 박사는 서울로 올라와 제중원을 맡게 됐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1894년 9월 제중원 운영권을 선교부로 이관받았다.
이후 에비슨 박사는 먼저 병원 운영 안정화와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의학을 가르치며 한국어 의학교과서 편찬에 앞장섰다.
자료집 Ⅱ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상세히 담겨있다. 책은 에비슨 박사가 미국 북장로교회로 보낸 편지와 함께 각종 추천서 등 에비슨 박사가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오기를 희망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책은 미국 장로교회 역사관과 한국 정부문서 등의 편지와 일기, 회의록을 통해 에비슨 박사가 의료선교사로 임명되면서 파송을 준비하는 과정, 한국에 도착해 제중원을 이끌고 운영권을 이관받을 때까지의 과정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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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9:12 2019/07/22 09:12

에비슨 박사 후손 방문
3·1운동 100주년 맞아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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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에 와 증조부의 꿈과 비전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게 돼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지난 4일 딸과 함께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올리버 R.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캐슬린 블랙 씨는 말로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감회를 밝혔다. 이번 방한은 특히 에비슨 박사의 또 다른 고향, 대한민국의 초청에 따른 것이라 한층 의미가 크다.
국가보훈처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국외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대거 초청했다. 블랙 씨가 딸 로레인 럼슨 씨와 함께 이 시기 한국을 찾은 것도 의료 발전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지원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대내외에 호소하면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힘썼던 증조부의 행보에서 비롯됐다.
2월 28일부터 공식 진행된 바쁜 방한 일정 가운데서도 블랙 씨 모녀는 이날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 증조부가 그토록 사랑했던 곳을 방문했다. 윤도흠 의료원장, 장양수 의대학장, 의대 박형우 교수(해부학), 인요한 국제진료센터 소장과 함께 환담을 나눈 뒤 본격적으로 세브란스병원을 둘러봤다.
우리라운지에 위치한 초상화 <사진>, 한국에 도착하는 에비슨 박사 가족의 모습이 담긴 역사화, 동은의학박물관, 야외 동상 등 에비슨 박사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마다 그들의 발길도 닿았다. 에비슨 박사가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겸임했던 만큼 세브란스병원 투어에 이어 블랙 씨 모녀는 연세대학교도 함께 돌아봤다.
유공자의 후손으로 한국을 찾은 만큼 병원 방문에 앞서 한국의 아픈 역사도 살폈다. 초청받은 다른 후손들과 함께 국립현충원, 서대문형무소,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블랙 씨는 세브란스병원이 자랑스러운 과거를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세브란스병원이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열정과 헌신을 이어 나가주시길, 100년 전 3·1운동의 정신을 기억하며 세브란스의 역사를 일궈 나가주시길 바란다”며 세브란스병원을 향한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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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9:06 2019/07/22 09:06

에비슨 박사 초상화 제막
종합관 4층 알렌기념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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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은 의학교육, 세브란스병원 설립 등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겸임하면서 사학 발전에 기여한 에비슨 박사를 기억하고 방문객들에게 알리고자 지난 10일 종합관 4층 알렌기념관 앞에서 ‘올리버 R. 에비슨 박사 초상화 제막식’을 개최했다.
제막식에는 에비슨 박사의 초상화를 담당한 김봉희 화백, 이성희 연세대 이사, 윤도흠 의료원장, 장양수 의대학장, 이태화 간호대학장,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 등 의료원 보직자와 교직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도흠 의료원장은 “연세대학교 신학관의 언더우드 초상화에 이어 의료원에도 김봉희 화백님의 정성이 들어간 에비슨 박사의 초상화를 전시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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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9 09:21 2019/03/19 09:21

의료선교의 새 모델 만든다
의료저혜택 국가 의대생 교육 프로그램 ‘프로젝트 에비슨 10×10’시작연간 10명씩 10년 동안 100명의 우수 의학자 배출 및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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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은 전 세계 의료저혜택국가(Medically Underserved Country)에 대한 의료 인적자원을 육성하기 위해 ‘프로젝트 에비슨 10×10’을 시작한다.
의료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의 의과대학생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양질의 의료인으로 길러냄으로써 해당 국가의 의료 수준을 높여간다는 계획이다.
‘프로젝트 에비슨 10×10’은 케냐와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네팔, 캄보디아, 몽골 등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 중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수준과 부족한 인프라로 의료분야 육성이 필요한 나라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 국가 의대생을 한국으로 데려와 양질의 교육을 통해 의대교수 요원으로 육성하여 본국의 의료기반 발전에 이바지하는 방식이다.
의료원은 한두 번의 단발성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총 20억 원의 예산을 바탕으로 1년에 10명씩 총 10년 동안 100명의 우수 의료 인력을 육성한다는 긴 호흡의 프로젝트 전략을 세웠다.

프로젝트에 에비슨 박사 정신 녹여
의료원은 개인적 영달을 버리고 병마에 고통받는 환자를 돕고자 먼 타국에서 자신의 열정을 다했던 에비슨 박사의 ‘박애정신’을 드높이고 ‘세브란스병원의학교 1회 졸업생 배출 110년’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기 위해 프로젝트 에비슨을 기획했다.
이처럼 프로젝트 에비슨에는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인 에비슨 박사의 정신이 녹아있다. 에비슨 박사는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 교수이자 의사로서 누릴 수 있었던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1893년 조선에 들어와 제중원을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시켰다. 또 한글 의학교과서를 편찬하고 국내 최초의 면허의사를 배출했고, 세브란스병원의학교와 연희전문대학의 교장직을 동시에 역임하면서 근대의학과 고등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선발된 학생, 교수요원으로 육성까지
의료원은 프로젝트 에비슨 선발 방식부터 운영까지 모든 교육 과정을 기존 연수교육과는 차별화 시켰다. 먼저 인원을 선발할 대상 국가는 지정하지만, 나라별 배정 인원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임상실습 경험이 6개월 이상인 의과대학 고학년 재학 지원자의 품성과 학업 성취도, 영어능력, 추천서를 종합 평가해 선발한다.
선발된 의대생은 교수 수준의 의학적 성취도를 보유할 때까지 모두 3차에 걸친 초청연수를 받는다. 의대 재학 중 1개월, 레지던트로 전공과목에 대해 3~6개월, 교수 요원으로 전공과목에 대한 1년간의 초청연수가 단계별로 진행된다.
더하여 해당 국가 파견 의료선교사나 현지 교수들과의 의료선교 네트워크를 형성해 각 회차별로 연수가 끝난 연수생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지속적 관리와 지도가 이뤄지도록 지원한다.
앞으로는 의대생뿐 아니라, 치과대학과 간호대학 학생까지 선발대상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윤도흠 의료원장은 “에비슨 박사가 한국인 의사 양성으로 우리나라 의학발전의 기초를 다진 것처럼 해당 국가에 귀하게 사용될 의료인을 양성해 나갈 것이다. 이는 의료저혜택국가의 국민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는 의료선교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8/05/08 10:52 2018/05/08 10:52

에비슨 박사 후손 가족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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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슨 박사의 후손인 낸시 리 블랙(외증손녀) 가족이 지난달 10일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는 낸시 리 블랙, 존 필립 패터슨(외증손서), 에버릿 에비슨 패터슨(외고손자) 등 5명과 가이드 1명이 함께해,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의 안내로 동은의학박물관을 둘러보고, 종합관 4층에 전시 중인 김건배 화백의 역사기록화 전시와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도 둘러봤다.

후손들은 지난달 11일부터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행사에 참여해 6박 7일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기념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비무장지대 등을 방문했고, 남산 한옥마을 및 태권도 공연, 경복궁, 비밥 공연 등을 관람했다.

또한, 지난달 11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열린 헐버트 박사 서거 68주기 추모식과 지난달 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도 참석했다.

2017/09/27 14:50 2017/09/27 14:50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3-김건배 화백 유화작품 13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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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단발하는 에비슨 박사 (1895)
1895년 내려진 단발령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배재학당 학생으로 여의사 조지아나 E. 화이팅의 한국어 선생이었던 이승만은 에비슨과 함께 조선과 서양의 차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발령이 내려지고 얼마 후 이승만은 에비슨의 집에 찾아와 상투를 잘라달라고 요청했다.이승만의 요청을 받은 에비슨은 이승만의 상투를 자르고 남은 머리를 다듬어주었다. 이승만은 잘린 상투를 거즈에 싸서 들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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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문을 숨기는 세브란스의전 학생들(1919)
1919년 3월 1일, 일제 지배의 부당성에 항거하는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세브란스의 교수, 학생, 직원들도 모두 적극 참여해 독립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세브란스병원의 약국에서 근무하던 이갑성은 최연소자로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3·1 운동과 관련해 세브란스 학생들은 세브란스병원 외래 진료소 4층에 있는 암실에서 독립선언문을 찍었다. 일본 경찰이 병원을 수색하자 학생들은 독립선언서와 관련 증거들을 해부학 실습실에 숨겼다. 이때 찍어낸 독립선언서는 지방에도 전해져 만세운동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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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귀환 동포를 구호하는 세브란스 학도대(1945)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국내외에서 징용, 징병 됐던 수많은 동포가 귀환했다.
학교가 서울역 앞에 위치해 귀환하는 동포들을 자주 보게 된 세브란스 학생들은 너무나 많은 동포들이 굶주리고 헐벗은 상태에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이에 학생들은 서울역에 세브란스 역전 구호소를 설치하고 귀환동포를 위한 음식제공, 진료, 서울역 주변의 청소와 질서 확립 등의 활동을 벌였다. 급한 질병을 치료하고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한 귀환동포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울역 당국과 협의해 무료승차권도 발급해줬다. 또 건국준비위원회와 서울시청을 방문해 전재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머무를 동안 제공할 식량과 옷가지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세브란스 학생들의 이러한 활동은 세브란스의 봉사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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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민주의거에 나선 연세의대생들 (1960)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의 부패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시작됐다.
특히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시위에 앞장섰다. 정부의 무력진압은 더 큰 반발을 불러왔고, 의과대학 학생들도 거리에 나서 독재정권 퇴진을 외쳤다. 시위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의예과 2학년 최정규 학생이 경찰의 총탄에 희생됐다. 최정규 학생에게는 이후 명예 의학사 졸업장이 주어졌다. 또한, 시위 현장에서 부상당한 많은 학생이 서울역 앞 세브란스병원으로 몰려들어 이내 병원은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그래서 학생은 물론이고 기초의학 교수들까지 모두 나와 밤을 새워가며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2017/08/07 13:49 2017/08/07 13:49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2-김건배 화백 유화작품 13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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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슨과 박성춘ㆍ서양 父子 만남(1900. 8)
에비슨이 치료한 환자 중에는 백정 출신의 박성춘이 있었다. 박성춘의 부탁으로 에비슨은 아들 박서양에게 의학을 가르쳤다. 결국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면허의사가 되었다. 그는 모교에 남아 교육과 진료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는 자신의 신분에 대해 문제를 삼은 학생들에게“ 내 속에 있는 오백년 묵은 백정의 피를 보지 말고, 과학의 피를 보고 배우라!”라고 하였다. 그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학교를 사직하고 북간도로 이주해‘ 구세병원’을 개업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는 조선 동포를 진료하는 한편 독립운동단체 대한국민회의 군의(軍醫)로 활동하였다. 박서양은 조선 사회의 가장 낮은 신분 출신이었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워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세브란스가 배출한 큰 의사(大醫)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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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의학교과서 편찬(1905~1910)
1894년 9월 제중원을 넘겨받은 에비슨은 1895년 여름 콜레라가 유행하자 방역국장으로서 활동했다. 콜레라 유행이 끝난 후 에비슨은 학생을 모아 제중원에서 의학 교육을 다시 시작했다. 의학 교육을 위해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한글로 된 의학교재였다. 이를 위해 에비슨은 먼저 그레이의 해부학 교과서를 조금씩 번역해 교재로 활용했다.1904년 제시 W. 허스트가 합류하자 에비슨은 교육에 집중하였으며, 그 결과 1905년 약물학 교과서를 펴낸 이후 해부학, 생리학을 비롯하여 산과, 외과 등 의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교과서를 출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가 한글 교과서 사용을 금지하여 에비슨의 노력이 지속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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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의 구한국 군인 치료 (1907)
1907년 8월 통감부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구한국 군인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부상당한 한국 군인 50여명은 일본 병원에서의 치료를 거부하고 세브란스로 가기를 요청하였다. 에비슨은 적십자대를 조직하여 부상당한 군인들을 병원으로 이송하여 치료에 전념했다. 갑자기 몰려든 부상병들을 돌볼 인력이 부족해 의학생은 물론이고 병원 가족들까지 참여하였다. 이전까지는 남녀유별 관습에 따라 간호학생이 남자 환자를 돌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한국군 부상병들이 몰려들자 이러한 인습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간호학생들은 밤 새워 부상병들을 간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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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한 세브란스 씨 (1907)
1904년 9월 23일 세브란스 씨의 기부로 조선 최초의 현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문을 열었다. 세브란스 씨는 개원 후 3년이 지난 1907년 9월 주치의사인 러들로 박사와 함께 새 병원을 찾았다. 이 방문은 아시아 지역의 장로회 선교부를 돌아보는 여행의 일환이었다. 서울을 방문해 자신의 기부로 건축된 병원을 직접 본 세브란스 씨는 크게 만족해했다. 그러나 병원에 의학생의 교육을 위한 공간이 없는 것을 보고 3만 달러를 추가 기부하였고,  1913년 학교 교사 겸 외래진료소가 세워졌다. 1913년 세브란스 씨가 타계한 이후에는 아들 존과 딸 엘리자베스가 대를 이어 세브란스를 후원하였고 그 지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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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모교에 남겠다는 7박사 (1908)
엄격한 교육과 지도를 받고 첫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에비슨은 졸업 후의 계획을 물었다. 이에 학생들은 모교에 남아 후학들을 가르치겠다고 대답했고, 에비슨은 “나는 일곱 사람의 의사를 양성한 줄로 생각하였더니 의사뿐 아니라 참다운 인격자를 양성하였구나!”하고 감탄했다. 이들에게는 의술개업인장 제1~제7번까지 부여,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가 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7명의 의사에 그치지 않고, 모교에 남아 후학을 양성함으로써 서양의학이 한국인에 의해 토착화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7/07/12 09:09 2017/07/12 09:09

130여 년 세브란스의 역사를 만나다
1- 김건배 화백 유화작품 13점 소개



의료원은 연세대 창립 132주년, 합동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세브란스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역사기록화로 구현해 종합관 4층 로비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역사기록화 작품은 총 13점으로, 김건배 화백은 철저한 고증 속에 국내 근대의학을 개척한 세브란스 130여 년 역사를 유화 작품으로 그려냈습니다. 또한,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 인요한 국제진료소장이 고증과 주석 작성 등의 도움을 주었습니다. 연세의료원소식에서는 모교를 방문하기 어려운 국내 및 외국의 의, 치, 간호대 동창을 위해 총 3회에 걸쳐 작품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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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 N. 알렌 박사의 민영익 刺傷 치료 (1884. 12. 4)
우정국 개원식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으로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은 심한 자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민영익은 치료를 위해 외교고문이던 묄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를 치료하러 온 여러 명의 어의(한의사)들은 칼에 찔리고 베인 상처를 치료할 수 없었다. 이에 묄렌도르프는 미국 공사관 소속의 의료선교사 알렌을 급히 불러 치료하게 했다. 민영익은 알렌의 지혈과 봉합 치료 등 서양 외과술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왕실의 신임을 얻은 알렌은 근대식 병원 설립 안을 올렸다. 이 제안이 수용되어 이듬해인 1885년 4월 10일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濟衆院)이 개원한다. 제중원에서 시작된 한국의 근대의학은 세브란스병원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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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스 G. 언더우드의 토론토 강연과 올리버 R. 에비슨 (1892. 9)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와 온타리오 약학교의 교수이자 토론토 시장의 주치의였던 에비슨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일본으로 파송된 선교사의 소식을 통해 선교사로서 막연한 소명의식이 있었다. 에비슨은 마침 1892년 9월 토론토를 방문한 언더우드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조선의 실상과 의료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언더우드의 강연에 큰 감명을 받은 에비슨은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갈 것을 결심했다. 에비슨은 자신이 소속된 캐나다 감리교회에 파송을 요청했으나 재정상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에비슨은 미국 북장로회 선교본부에 지원하였고, 마침 언더우드도 그를 조선에 파송할 적임자로 추천했다. 이에 따라 에비슨은 의료 선교사로 조선 땅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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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슨의 한국 도착 (1893. 6. 16)
에비슨이 한국으로 출발할 즈음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고, 마침 셋째 아들이 심한 폐렴과 중이염으로 매우 위중한 상태에 있었다. 당시 에비슨은“ 아이가 죽는다 해도 병 치료를 위해 출발을 늦출 수 없다. 아이가 밴쿠버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으면 조선으로 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조선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출발을 강행한다. 에비슨은 토론토에서 캐나다를 가로질러 밴쿠버에 도착한 후, 태평양을 건너는 여객선으로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1893년 6월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하고 일주일 후에 넷째 더글라스가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소아과 의사가 되어 세브란스에서 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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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의 에비슨과 루이스 H. 세브란스 (1900. 4. 30)
1899년 3월 안식년으로 귀국한 에비슨은 이듬해 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만국선교대회에서 조선의 선교에 대해 발표하였다. 에비슨은“ 조선의 낙후된 의료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은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선교의사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더 큰 규모의 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연설을 듣고 감동을 한 세브란스 씨는 병원 건축기금 1만 달러를 기부했다. 에비슨이 감사를 표하자 세브란스 씨는“ 받는 당신보다 주는 저의 기쁨이 더욱 크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씨의 기부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되었다.

2017/06/28 13:24 2017/06/28 13:24

'난치성 피부질환 정복' 목표로 100년 시작한다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 100주년



국내 첫 피부과 전문 진료와 교육이 시작된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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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오긍선 선생의 외래환자 진료


외국선교사가 아닌 한국인 의사에 의해 창설
세브란스연합의전 교장이던 에비슨 박사에 의해 1910년부터 피부질환 진료와 교육이 이뤄졌으나, 국내 첫 피부과로서의 전문 진료와 교육은 '해관 오긍선' 선생이 1917년 5월 14일 세브란스연합의전 피부생식비뇨기과 주임교수로 임명됨으로써 시작됐다.
1907년 미국 루이빌 의대를 졸업하고 루이빌 시립병원 피부과에서 수련을 받은 오긍선 선생은 1913년 세브란스연합의전 해부학과 병리학 담당 조교수로 임용됐다. 1916년에는 일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서 1년간 피부비뇨기과에서 연수를 마친 터였다. 오긍선 선생에 의한 한국 피부과 창설은 그때까지 국내 대부분의 임상과가 해외 의료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것에 비해 한국인 의사에 의해 창설된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오긍선 선생은 다양한 피부질환의 전문진료는 물론 당시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였던 매독 등 성병질환의 진료와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공창 폐지를 통한 매독 퇴치 사회운동에도 적극 나서기도 했다. 또한, 한국인 최초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에 선임돼 의학교육 발전에 노력했으며 국내 최초의 고아원을 설립한 사회사업가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후 1957년 세브란스의대와 연희대가 합동함에 따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비뇨기과학교실로 재편됐다. 1960년 비뇨기분야가 정식 임상과로 독립함에 따라 피부과학교실로 정식 출범했다.

피부과학 선도적 연구
피부과학교실은 창립 직후부터 희귀난치성 피부질환의 연구와 치료법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교실 교수진이 국내 최초로 일궈온 대표적인 연구 및 치료성과는 다음과 같다.

베체트병
1983년 이성낙, 방동식 교수가 국내 최초로 베체트병클리닉을 개소해 전문적인 진료를 시작했다.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통해 국내 베체트병 전문가를 양성하는 큰 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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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민걸 교수 매독 연수교육


매독

오긍선 선생 때부터 퇴치에 주력했던 매독은 1984년 이정복, 이민걸 교수팀이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19S(IgM)-FTA 검사법'을 도입해 조기진단을 통한 효과적인 질병 치료를 가능케 했다.

건선 및 백반증
박윤기 교수는 1984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자외선치료기를 통해 건선과 백반증 환자에 대한' 광(光)선' 치료법을 개척했다.

피부장벽학 도입
이승헌 교수는 국내 최초로' 피부장벽학' 개념을 도입해 피부 각질층에 대한 새로운 치료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신체의 최외곽 방어기전으로서 피부 각질층의 손상과 회복에 관한 연구와 이에 따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난치성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첫 면역치료
집먼지진드기에 의해 발생한 난치성 아토피 피부염환자에 대한 근본적인 면역치료를 1995년 이광훈 교수가 국내 처음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800여 명의 환자들에게 시행했다.

천포창
전신 피부에 수포가 생기며 심한 피부손상을 주는 희귀질환' 천포창'에 대해 연구하고 치료하는 국내 유일의 천포창 클리닉을 김수찬 교수가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과에 개설했다. 리툭시맵(rituximab)을 이용한 치료를 처음 시행해 큰 치료 효과를 거뒀다. 또한, 미국 연수 중 1990년에 종양연관성 천포창의 자가항원 및 항체를 분석해 종양연관성 천포창은 기존 천포창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수포성질환임을 규명하고 이를' NewEngland Journal ofMedicine' 지에 발표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피부암
정기양 교수는 피부암 절제술인' 모즈미세도식 수술' 분야를 개척해 올해 4월 현재 단일 병원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2,000례를 돌파하는 수술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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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민걸 교수 매독 연수교육



난치성 흉터질환
각종 외상과 수술로 인해 생긴 난치성 흉터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성형외과와 협진하는' 흉터성형레이저센터'를 2015년 이주희 교수가 개소해 흉터질환의 전문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이처럼 피부과학교실은 환자의 미용적 치료는 물론 희귀난치성 피부질환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대학병원 피부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국내 최고의 진료실적
일반 질환은 물론 희귀난치성 피부질환을 선도하고 있는 피부과학교실의 연간 진료실적은 국내 대학병원 중 가장 많다. 작년 외래환자 진료 실적을 기준으로 세브란스병원은 10만 3,000여 명을, 강남세브란스병원은 4만 8,000여 명을 각각 진료했다.
일반 질환은 물론 희귀난치성 피부질환을 선도하고 있는 피부과학교실의 연간 진료실적은 국내 대학병원 중 가장 많다. 작년 외래환자 진료 실적을 기준으로 세브란스병원은 10만 3,000여 명을, 강남세브란스병원은 4만 8,000여 명을 각각 진료했다. 작년 기준으로 다빈도 진료 질환을 살펴보면' 아토피 피부염' 환자가 가장 많았고 뒤이어 백반증, 습진 피부염, 베체트병, 바이러스성 사마귀, 건선, 흉터, 알레르기성 접촉 피부염, 두드러기, 피부암, 원형 탈모증 등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이중 난치성 아토피염, 베체트질환, 건선, 백반증 등 치료가 까다롭고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난치성 질환이 상위 다빈도질환에 있어 피부과학교실의 앞선 진료수준을 반증하고 있다. 아울러 노령화 심화에 따라 증가추세인 피부암 환자는 작년 한 해에만 600건이 넘는 수술실적을 기록했다.

연구와 교육
지난 한 세기 피부과학교실을 통해 배출된 피부과 전문의는
194명에 이른다. 이들은 국내 주요대학에 교수로 남거나 개원가로 진출해 한국 피부과학의 확장과 성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지난 1983년 창립된 피부과학교실 동문모임인' 세미회(世美會)'는 현재 305명이 가입해 동문간 학술교류 활동은 물론 피부과학교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큰 역할을 다하고 있다.최근에는 해외 동문들의 수가 늘고 있다. 미국과 몽골, 캐나다, 중국 등 7개국의 피부과 의사가 피부과학교실에서 장단기 연수과정을 통해 앞선 진료 술기를 배워간 바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최근까지 호주와 미국, 싱가포르, 영국 등 11개국 38명의 의대생이 서브 인턴쉽(Sub-Internship) 프로그램에 참여해 세브란스병원 피부과를 찾아 앞선 진료와 한국 피부과학의 실제를 경험했다.

새로운 100년 난치성 피부질환 정복
한국 최초의 피부과학의 요람으로서, 최고의 피부과학 연구
와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해온 피부과학교실은 새로운 100년을 맞아' 첨단 의과학 연구를 통한 글로벌 세브란스 피부과'를 지향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이광훈 교수가 이끄는 세브란스병원 감염면역 연구팀이 연구중심병원 과제 총 50억 원의 연구비를 수주하고 세부 과제로서 알레르겐에 대한 신기술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모든 피부과 교수진들이 국가연구비를 수주하는 등 최근 들어 활발한 대외연구비 수주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더욱 키우기 위해 피부과학교실은 인접한 임상과와의 협력연구는 물론 타 유관학문과의 융합연구를 통한 글로벌 연구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예정이다. 100년 역사의 전환점을 맞은 피부과학교실은 향후 100년간' 난치성 피부질환 정복'을 목표로 삼아 해당 피부질환의 원인 규명을 통한 치료제 및 치료법 개발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기초와 임상연구 분야도 병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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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민걸 교수 매독 연수교육











2017/05/19 16:27 2017/05/19 16:27

연세대 창립 132주년 기념행사개최
학술발표, 전시, 기념식, 부조동판 제막 등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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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는 지난 8일 토요일 금호아트홀에서 창립 132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동안 창립 기념행사는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진행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이 통합된 지 60주년을 맞아 제중원 개원일이 있는 4월 둘째 주 토요일에 창립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기념식에 앞서 오전 9시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세브란스의학교 2회 졸업생인 이태준 동창의 연세 정신을 빛낸 인물 선정 기념 학술발표회가 열렸다.<사진1>
학술발표회에는 박창일 재단 이사, 김용학 총장, 윤도흠 의료원장, 부총장단, 김병수 전 총장, 한승경 의대 총동창회장, 의·치·간호대학장, 교직원과 사단법인 이태준 선생 기념사업회의 차채용 이사장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박윤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의 사회로,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이 ‘한국 근대 의학교육과 대암 이태준’에 대해,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애국지사 이태준의 삶과 몽골에서의 혁명적 독립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박형우 관장은 “이태준 동창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소의, 중의의 역할을 넘어, 빼앗긴 나라를 구하는 대의의 길을 과감하게 택했다”고 말했다.
반병률 교수는 “몽골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세친선병원 후배 의사들보다 80년 앞서 의술을 베풀었던 역사적 인물로, 후배 의사들에게 한없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전 10시에는 백주년기념관 전시실에서 통합 60주년 기념 전시회가 열렸다.<사진2> 이번 전시회는 동은의학박물관과 연세대 박물관이 공동으로 개최한 전시로, 두 박물관이 보존해온 대표적인 학교의 사진 자료와 문헌 자료가 전시됐다. 이번 전시는 5월 27일까지 계속되며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10시 30분에 열린 기념식에는 허동수 재단 이사장, 박삼구 연세대 총동문회장, 원한석 이사, 김우식·정창영 전 총장, 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등과 식전 행사에 참석했던 내외빈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사진3>
또한, 에비슨 박사의 후손들인 증손자 Douglas Avison Black, 증손자 Peter Lee Black, 고손자 Ralph Crewe도 방한해 참석했다.
김용학 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길목에서 우리는 연과 세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만 한다”라며 상호 간의 긴밀한 연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삼구 총동문회장은 “연세 발전의 동력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했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미래를 향한 연세의 힘찬 발걸음에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한승경 의대 총동창회장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화학적 융합을 넘어 22개의 단과대학이 하나의 핵이 되어 서로 부딪치고 껴안는 핵융합을 이뤄 다가올 연세의 100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근속상, 사회봉사상, 창업대상, 의학대상, 학술상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고, ‘연세 정신을 빛낸 인물, 이태준’ 동영상을 함께 시청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곧바로 백양누리 동문광장에서 ‘연세 정신을 빛낸 인물 부조동판 제막식’이 이어졌다.<사진4> 지난해 제1회 인물로 선정된 윤동주 시인과 함께 올해 선정된 이태준 동창의 부조가 같이 제막됐다. 제막식에는 이태준 동창의 외증손자인 이희승 씨를 비롯해 후손 9명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 참석했다.



 



 
2017/04/28 15:54 2017/04/28 15:54

캐나다 온타리오주 장관 방문
세브란스병원과 연구 협력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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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자 모리디 캐나다 온타리오주 연구혁신과학부 장관이 지난 16일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하고 연구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세브란스병원과 토론토 대학 써니브룩 연구소(Sunnybrook institute)는 난치성 신경질환의 새로운 치료법을 위한 줄기세포 치료 연구에 대해 협력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모리디 장관이 방한 중 발표한 4개 공동연구 협력 프로젝트 중 하나다.

연구 협력 방안 논의에 앞서 모리디 장관 등 14명의 대표단은 송시영 의대학장, 하 윤 교수(신경외과학)와 함께 세브란스병원의 주요 시설을 돌아봤다. 암병원과 본관 연결 통로 히스토리 월에서 의료원의 역사에 대해 들은 후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로 이동해 동물실험시설도 방문했다.<사진>

토론토 의대 교수 출신인 에비슨 박사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역사기록화를 함께 관람하며 의료원과 캐나다의 오랜 인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어 종합관 6층 교수회의실에서 정재호 연구부학장,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현영민 교수(해부학)도 동석한 가운데 연구 협력 방안 논의가 이어졌다. 논의 후에는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의 안내로 박물관 투어도 진행됐다.


 



 
2017/04/27 13:44 2017/04/27 13:44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유승흠 명예교수(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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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은 우리나라 최초 기독교 기관이자 의료 기관이며 고등교육 기관이다. 알렌 선교사는 고종 황제에게 병원 설립과 아울러 의학과 위생학 교육을 제안했다. 위생학은 요즘 개념의 보건학이다.
에비슨 교장 역시 공중보건을 강조했다. 졸업생 김창세는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25년에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국내 최초로 위생학교실(Dept of Public Health)을 설립했다. 에비슨 교장의 아들인 소아과 교수 더글라스 에비슨도 1926년에 보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교장훈사(1929)에서 에비슨은 ‘So Public Health is the most important end of medical study and effort’라고 강조했다. 그 뜻을 헤아려 이영춘은 전라북도 옥구에 개정농촌위생연구원을 설립 운영했고, 김경식, 소진탁, 윤덕진, 윤석우, 이근태 등 여러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졸업생들의 설립정신 실천

우리 기관의 설립정신은 기독교 정신, 개화개혁 정신 그리고 협동 정신이다. 우리 선배들을 가르치고, 키워 준 선교사들은 이런 정신으로 마음과 목숨, 그리고 힘과 뜻을 다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몸소 실천했다. 스코필드 교수를 중심으로 3.1 운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일했다. 아픈 이웃을 위해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봉직했으며, 만주와 몽골 등에서도 활약했다.
기독교인은 아니더라도 기독정신은 몸에 배었다. 광복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 6.25전쟁 구호, 나환자 진료 등 여러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일했다. 양재모 교수는 가족계획사업을 펼쳐서 세계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오형석 연세대학교 보건소장은 1967년 보건학을 필수과목으로 개설, 4학년 학생들에게는 성교육을 포함해 독보적인 보건 교육을 실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진료와 보건사업을 뭉뚱그린 지역사회보건사업에 앞장을 섰다. 1967년에는 대학원 보건학과, 1977년에는 보건대학원 설립을 인가 받아 보건전문인을 양성하기 시작하여 내년 봄이면 각각 설립 50주년, 40주년이 된다.  

졸업생들의 다양한 사회공헌
그 뿐만 아니라 사재를 출연해 장애인을 위한 재활재단을 설립 운영한 문병기 이사장, 해외에서 헌신한 전의철, 강원희, 김영훈 등 의료선교사, 자비로 국내, 해외에서 장미회 활동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는 박종철, 홀트재단 조병국 선생 등 모두가 자랑스러운 동문들이다.
보건의료 이외에 여러 영역에서도 사회공헌을 했다. 오페라를 도입, 정착시킨 이인선, 예술계와 체육계를 이끌어 온 유한철, 사진예술의 최고봉 이순흥, 등잔박물관을 설립한 사진작가 김동휘, 설악산 무의지역 순회진료 산악인 이기섭, 수필문학가이며 고적 답사가 최신해, 시인 마종기 등 이들은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사회공헌을 한 졸업생들이다. 졸업생들의 사회공헌은 올해 7월에 출판한 책 ‘제중원 세브란스인의 사회공헌-연세의대 졸업생을 중심으로’를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의 사명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 기관의 설립 철학과 목표를 확인하고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과 책무를 챙겨서 실천할 뿐 아니라, 졸업생의 활동도 염두에 두어야 할 터이다.
둘째 사료, 자료, 기록 등을 정성껏 보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셋째 우리 기관과 졸업생들의 사회공헌을 널리 알리고, 전달하고, 이를 후진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기관 설립의 목표와 철학이 확산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좋은 기관에 종사하는데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갖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무겁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조직, 일은 무엇일까? 누가 나의 이웃일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이웃이 아닐까?
평소에는 생활을 할 수 있으나, 아파서 일을 못 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픈 이웃에게 본인 부담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한국의료지원재단에 매달 1~2만원을 후원하는 것은 어떨까? 성경 마태복음 10장에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마음과 목숨, 힘과 뜻을 다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의 역할, 우리 기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 마음 속 깊이 생각, 또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기관의 설립철학과 설립정신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일 터이니까.

 


2016/12/28 13:22 2016/12/28 13:22
연세대학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의대 박형우 교수 (해부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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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는 누가 설립했는가? 연세대학교의 명칭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세브란스(Severance) 병원의 명칭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라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대 박형우 교수(해부학)는 책 ‘연세대학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라는 책을 통해 이러한 의문에 대해 국내외의 방대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정확한 답을 제공한다.
연세대학교는 공식적으로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합동하여 탄생했다. ‘연희’와 ‘세브란스’ 두 대학은 130여 년 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 개신교의 여러 교파가 구한말부터 한국전쟁까지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 교육과 의료 선교로 일구어낸 결실이다. 그런데 두 대학의 초기 역사와 합동 과정이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었고, 혼란과 불필요한 분쟁이 야기되기도 했었다. 이에 박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선교본부 문헌실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을 이용해 미국 선교본부들의 지원으로 설립된 두 대학의 설립 정신과 합동 과정을 명확하게 밝혔다.
이 책은 6개의 장을 통해 세브란스의 시작, 여러 교파에 의한 교육의 시작, 연희의 시작, 합동 논의와 실현, 마지막으로 옛 세브란스 대지의 활용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뤘다. 박 교수는 “연세대학교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나라 서구식 고등교육기관과 의학의 출발점인 연세대학교이기 때문에 근현대사나 교육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편, 박형우 교수는 1996년에 신설된 의대 의사학과의 초대학과장을 겸임하고, 동은의학박물관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의 서양 의학 도입사를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한국 초기 의료 선교 역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올리버 R. 에비슨 자료집’과 ‘언더우드 내한 관련 자료집’등을 출간한 바 있다.

[384쪽/공존출판사/20,000원]


2016/04/26 14:06 2016/04/26 14:06
알렌 훈장 문화재 등록됐다
기독교계 일제 만행 호소문은 등록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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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을 설립한 미국인 의료선교사 알렌이 고종으로부터 받은 훈장이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13일 알렌의 유가족이 지난 4월 의료원의 제중원 130주년 기념식에서 기증한 '알렌 수증 훈공일등 태극대수장'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훈장은 정장(정식 훈장이나 문장), 부장(끈 없는 메달), 대수(정장에 달기 위해 어깨에 걸치는 띠)로 구성돼 있다. 정장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꽃 문양에, 뒷면에는 훈공일등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부장은 태극장 형태로 정장과 함께 대수 위에 꽂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알렌이 받은 훈장은 외교관계 문건으로 수여 시기와 대상이 확실하고 대한제국 태극장 가운데 정장과 부장, 대수가 모두 남아 있는 보기 드문 예로 역사성과 희소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쉴라 호린이 제중원 130주년 기념식에서 의료원에 기증한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도 문화재로 등록 예고 됐다.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은 1919년 5월 1일 손정도 목사 등 한국 기독교계 대표 11명이 '만국 예수 교우에게'라는 제목의 한글 편지를 작성한 후 영문으로 번역한 호소문이다.
이 호소문은 기독교 대표들이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고 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 되고 있다.
대한국야소교회 대표자 호소문은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을 거쳐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문화재로 등록될 예정이다.



2015/10/27 14:32 2015/10/27 14:32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연세 치의학 100주년 특별기획


제중원 130주년, 광복 70주년인 올해는 우리나라에 서양 근대치의학이 도입된 지 1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치의학의 시작은 미국의 선교치과의사 쉐플리가 1915년 11월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한국 최초로 치과학교실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의료원소식은 치의학 도입 100주년을 맞아 3회에 걸쳐 우리나라 치의학의 시작인 연세 치의학의 역사와 미래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2. 해방 이후 치과대학 설립
3. 치과대학의 발전과 미래



1. 제중원에서 시작한 치과치료와 교육
갑신정변에서 자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Horace N. Allen)의 요청으로 1885년 4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이 설립되고 제중원 의학당(1886년)도 개교하였다.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에는 구강질환 처치에 관한 질병별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1894년 제중원 운영권이 미국 북장로회로 이관되면서 제중원 의학당에서는 최초의 치과의술 교육이 이루어졌다. 1901년 제중원의 '의료활동보고서'에는 의학생들이 에비슨(O. R. Avison)의 자문을 구해 직접 발치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것은 발치기술이 선교의사에 의해 의학생들에게 교육된 최초의 기록이다. 따라서 제중원을 근대치의학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전문적인 진료와 정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15년 쉐플리가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치과학교실을 개설하면서부터다.

2. 쉐플리의 세브란스 선교치과의사 부임
쉐플리(William Jeremiah scheifley)는 기독교 신앙 속에 성장하였다. 필라델피아 중앙고등학교(1906~1910) 시절 '학생자원운동'과 '면려청년회'에 참석했다. 미국의 학생자원운동은 1888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2만 500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였다. 해외선교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해외선교에 대한 소망을 키우던 쉐플리는 필라델피아 치과대학에 입학해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한 뒤 해리스버그에 개원했다. 개원한지 2주 만에 "장로회 선교본부가 중국에 파송할 치과의사를 찾는다"는 소식에 쉐플리는 장로회에 편지를 보냈다.
"현재 나는 약 1200달러 상당의 치과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교육과 장비구입으로 약 1200달러의 부채가 있습니다. 만일 선교치과 의사의 길을 열어주신다면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1913년 12월 23일)."
그러나 장로교는 중국지부 치과의사 파송요청을 취소했고, 마침 세브란스병원의 에비슨이 치과의사를 찾고 있어 연결해 보았지만 쉐플리의 부채와 어린 나이 때문에 유감스럽다고 답했다. 하지만 쉐플리는 1914년 9월 미국 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정식 지원서와 6명의 추천서, 건강진단서를 보냈다.
1914년 12월 안식년을 맞은 에비슨 부부는 쉐플리의 치과와 약혼녀 루스 래플리 가정을 방문한 뒤 쉐플리의 치과진료장비를 인수할 것이며, 월급은 존 세브란스와 알렌 부인이 지원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1915년 2월 쉐플리는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치과교수로, 래플리와 함께 한국선교회로 임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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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플리의 치과진료 모습


3. 세브란스 치과학교실 개설의 역사적 의의
쉐플리 부부는 1915년 8월 31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해 11월 1일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치과학교실과 치과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개설된 치과학교실이었고, 종합병원급에서는 최초로 독립적으로 운영된 치과진료실이었다. 동양에서 해외선교운동과 연결된 치과가 생긴 것도 처음이었다. 초대 과장인 쉐플리는 구강진료와 교육,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목표로 미국의 치의학문과 진료기술을 소개하고, 치과학을 강의하였다. 이와 비교해 조선총독부의원의 치과는 외과 산하로 부설되었다. 쉐플리는 일본인 치과의사나 입치사들의 도제식 훈련과는 차별화된 일반의학교육을 강화해 치과진료의 범위와 질을 높이고, 공중구강보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과학적 치의학'을 한국에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쉐플리는 미국 치과대학 부속진료소를 모델로 치과진료실을 정비하였다. 방사선 촬영(1916)을 하고, 전기엔진이 달린 4대의 철제치과유닛체어를 갖추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기 방사선 촬영은 구강농양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진단기구였다. 기공은 기공사에게 맡겼다. 총독부 치과보다 기자재면에서 우수했다. 시술은 간단한 보존과 발치에서 보철, 교정, 악안면수술까지 전범위로 확대하였다.
쉐플리는 한국인의 일상적인 식생활과 부정교합 발생, 영구치 맹출과 발육 통계에 관한 연구를 계획하였다. 올바른 양치법과 구강병에 관한 대중 교육책자도 발간하였다. 또, 선교본부에 방사선 촬영과 치료비를 보조할 집단구강보건관리 예산을 요청하였다.
총독부는 1913년 '조선치과의사규칙'과 '입치영업자 취체규칙'을 공포해 일본인 치과의사와 입치업자의 신분을 보장했지만, 조선 내 치의학교 설립이나 치과의사시험은 실시하지 않았다.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치과학 강의도 경성의학전문학교와 마찬가지로 의대생에 국한해서 하도록 지시했다. 총독부는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억제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하지만 쉐플리는 선교본부에 치과의사와 교수 몇 명을 더 보강하도록 요청하고, 관계당국과 협의해 치과학교나 수련기관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1920년 11월 안식년을 맞은 쉐플리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5년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쉐플리가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위해 세브란스에 독립적인 치의학 교실을 개설한 것은 한국치의학 교육의 100년을 여는 뜻 깊은 일이었다.

4. 부츠의 세브란스의전 치과센터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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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

2대 치과과장으로 부임한 부츠(J. L. Boots, 1921. 3 - 1939)는 구강외과를 담당하면서, 대국민 구강보건교육과 의료윤리를 강조하였다. 부츠는 부임 직후 압축공기시설을 장착한 체어를 들여왔고, 최신 장비를 갖춘 치과건물을 짓기로 했다.
1925년 부츠는 치과건물 신축을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부츠는 10달러짜리 '벽돌 만개 팔기'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금운동을 펼쳤다. 가족들과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지역 치과의사회를 방문하였다. 한국의 풍물과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을 소개하는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29년 미국치과의사협회에서 1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속하며 "때가 되면 한국인들에게 신축건물의 운영을 인계하라"고 지시하였다.
1931년 10월 건평 397㎡(120평)의 3층짜리 미국식 치과종합병원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물 신축을 계기로 세브란스 치과는 최신 설비와 27명의 직원을 갖춘 치과종합병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모금부터 완공까지 치과학교실이 독자적으로 진행하여 이후 치과 수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되면서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은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치의학 연구와 진료, 수련의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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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가 미국치과의사회 모금으로 신축한 최신식 치과진료소

5. 이유경, 정보라의 유학과 맥안리스 과장
같은 시기 맥안리스 선교사는 보존·보철분야를 담당하며, 치과의사와 기공사 교육에 힘썼다. 진료내용은 반간접법 인레이, 도재소부치아, 국부의치 원피스캐스팅, 교합기 사용, 근첨멸균밀봉 신경치료 후 포스트 장착 등 미국 치의학술 발달과 같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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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맥안리스 가족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에서는 경성치전 졸업생 23명에게 대학원 과정과 같은 임상수련과 스스로 연구해서 발표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 한국인 치과의사들은 최소 5~6년 이상씩 근무하면서 최신 미국식 치과의술을 익혔다. 부츠와 맥안리스는 한국인 수련의들은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신의가 깊다고 평가해 강의와 치과운영을 맡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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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이유경은 미국 피츠버그치과대학 3학년에 편입(1935~1937)했다. 'New Conception of Articulator와 보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한국 최초로 미국치과의사(D.D.S)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강사로 진급(1938. 10)하였다. 정보라는 유학 전부터 각종 신문에 '치아위생과 어머니의 지킬 일', '무지각제 발명', '의치발명', '치아와 열등감', '치아와 범죄' 등을 연재하며 활발히 활동하였다. 1937년에는 맥안리스가 나온 노스웨스턴 치과대학에 입학해 1년 만에 '조선인의 혈액형과 우치발생빈도에 관한 연구'로 미국치과의사(D.D.S)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유학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세계 치의학술의 발전상을 흡수해 치과계의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부츠의 사임 후 3대 치과과장이 된 맥안리스는 치과학교실을 2년 간 운영하였다. 1938년부터 일제가 미국선교사들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탄압하면서 1941년 맥안리스도 강제추방 당했다. 이유경이 4대 치과과장에 임명되면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세브란스전문학교 치과학 교실에는 교수에 박용덕, 조교수 박유신, 강사 김정규, 조수 이동섭, 부수 노성윤, 박응시가 각각 활동하였다. 미군정 시기 이유경과 정보라는 보건후생국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치전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합병되도록 했다. 안종서는 해방 직후부터 6차례에 걸쳐 대한치과의사협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경성치과대학 교수진 명단 중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에서 수련 받은 사람들은 병원장 이유경, 보철부 정보라, 김정규, 보존부 박유신, 김만수 등이 있다. 이와같이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을 유능한 지도자로 양성함으로 이후 우리나라 치과계의 선구자들로 만들었다.



2015/10/27 10:08 2015/10/27 10:08
한국 근대화 선각자 추모
국가보훈처·미8군과 양화진 묘원 방문



에비슨·헤론·허스트 등
세브란스 선각자 묘소 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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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식 의료원장(왼쪽)이 에비슨 박사의 전시물 앞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가운데)과 정갑영 총장(오른쪽)에게 에비슨 박사의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의료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근대화를 위해 희생한 외국인 선교사들과 6·25 참전 미군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은 구한말과 일제 강정기 한국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이 안장된 곳이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학교 설립 등 근대화뿐만 아니라 신분제와 남존여비 관습 철폐와 같은 사회제도 개선에도 한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제중원 2대 병원장인 헤론이 소천하며 서울시 마포구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조성됐다.
추모식은 국가보훈처가 미 현충일(Memorial Day)을 맞아 미8군사령부와 한미친선연회와 합동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사람들'의 희생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했다.
추모식에는 정남식 의료원장과 정갑영 총장, 원한석 법인 이사와 함께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과 버나드 샴포우 미8군사령관 및 장병을 비롯해 배화여대, 배화여중, 이화여고, 배제중, 숭실대 등에서 참석했다.
의대에서는 학생 대표로 김희연 학생(의학전문대학원 3학년)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양화진묘원 예배당에서 추모식을 가진 후 미군묘역으로 이동해 추모기도와 헌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언더우드 일가 묘역 등에 헌화시간을 가졌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양화진묘역에 안장된 세브란스 선각자들을 별도로 방문해 헌화의 시간을 가졌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김희연 학생과 에비슨 가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묘역을 둘러봤다. 정 의료원장은 김희연 학생에게 세브란스의 선각자로서 에비슨에 대해 소개했다.
에비슨 가 묘역에는 에비슨의 4남인 더글라스 에비슨 부부가 안장돼 있다. 1893년 부산에서 태어난 더글라스 에비슨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1920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해 세브란스 의전 소아과 교수와 7대 병원장으로 헌신하다 일제말 강제귀국당했다. 1952년 캐나다서 소천한 더글라스 에비슨은 한국에 묻히길 유언해 1953년 8월 4일 양화진 묘역에 안장됐다. 이어 언더우드 가 묘역에서 참배를 마친 후 헤론과 허스트 묘역을 찾아 헌화했다. 묘역에서는 원한석 이사도 참석했다.
양화진에 최초로 안장된 헤론은 테네시대학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 모교 교수직을 마다하고 북장로회 선교사로 1885년 조선에 들어왔다. 그는 알렌과 언더우드와 함께 제중원에서 일하다 이질에 걸려 사망했다. 헤론은 아내에게 계속 조선에 남아 선교를 하길 부탁했다.
허스트는 1920년대 세브란스병원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의료기술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의료선교사로 1899년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894년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는 1934년 선교사를 은퇴한 후 귀국해 지내다가 1952년 플로리다에서 사망했다.
양화진묘원에는 허스트와 부인 새디 허스트가 함께 묻혀 있다. 새디 허스트는 1907년 허스트와 결혼 후 세브란스병원 간호학교에서 교사로 헌신했다. 1928년 사망한 그는 4살에 죽어 양화진에 묻힌 딸 케롤 곁에 안장됐다.





2015/06/11 17:10 2015/06/11 17:10
제중원 - 세브란스 130주년 행사 성료
심포지엄, 기념음악회, 미디어파사드 등 행사 다양…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축하메세지 보내와
알렌, 에비슨 등 선교사 후손 유물 기증…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병원으로 성장한 세브란스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더욱 높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의료원은 10일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학술심포지엄, 음악회와 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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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태극훈장
에비슨 안경 세브란스로 돌아와

제중원 130주년 기념식이 오전 10시 세브란스병원 6층 은명대강당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특별초청을 받은 알렌과 에비슨 박사, 그리고 세브란스씨의 후손들이 미국에서 참석해 제중원의 창립정신을 더욱 빛냈다.
김춘진 국회보건복지위원장, 박상근 대한병원협회장,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과 김석수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박삼구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 홍영재 연세의대 총동창회장, 미8군 관계자 등 국내외 인사도 축하의 자리에 참석했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제중원과 세브란스를 설립한 위대한 선각자들의 정신을 계승해 가치를 나누는 의료기관,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질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 교육기관, 의학 연구를 선도하는 세계적 의학연구기관이 되어 인류건강 증진에 기여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세브란스에서 치료 받은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는 영상메세지를 통해 "지난 130년간 미국, 그리고 미8군과 긴밀한 협력을 갖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이 세계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자리 잡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축하했다.
또, 김춘진 국회보건복지위원장과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도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기여한 세브란스병원의 공로를 언급하며 글로벌 의료기관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당부했다. 특히 기념식에서는 알렌 박사의 고손녀 캐서린 하만이 할아버지의 태극훈장과 도관(차 주전자)을, 그리고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쉴라 호린이 에비슨 박사의 안경을 기증했다.


'제중원이 곧 세브란스' 확인
130주년 기념 서적 출간

130년의 흐름을 살피는 학술 심포지엄도 준비됐다. 오후 2시부터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대 강당에서는 '제중원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가 좌장을 맡는 1부 에서는 ▲제중원 설립과 선교사들의 역할(연세대 신학과 최재건 교수) ▲제중원과 에비슨(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에 대한 주제발표 진행됐다.
유승흠 명예교수가 좌장을 담당한 2부에서는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와 쟁점(연세의대 의사학과 신규환 교수) ▲'국립병원'계승론의 허상(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 ▲제중원과 민간사회의 국민 만들기(중앙대 역사학과 장규식 교수) 주제의 일반발표가 이어졌다.
마지막 3부는 발표자 전원이 모두 참여하는 패널토의 시간으로 꾸며졌다.
심포지엄은 의료선교사들의 역할과 눈부신 활동상과 함께 제중원과 지금의 세브란스를 하나로 이어 '제중원이 곧 세브란스'임을 학술적 자료로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의사학과와 의학사연구소는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관련된 4권의 단행본을 출간해 학술적 관심도를 높였다.


음악회 미디어파사드 문화행사
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제중원 130주년을 축하하는 문화행사도 마련됐다. 연세대 백양아트홀에서 진행된 기념음악회는 연세대 음악대학 김관동 학장의 총괄지휘 아래, 이택주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연세신포니에타와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 테너 강무림, 피아니스트 한영란 등 국내 정상급 음악가들이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청산에 살리라 등을 들려줬다.
기념행사의 대미는 미디어파사드(Media Fasade)가 장식했다. 미디어파사드는 입체영상을 건물외부 벽을 스크린 삼아 투사해 건축물을 시각적 아름다움 뿐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물로 사용하는 예술이다.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복원된 광혜원 건물벽으로 LED영상을 송출해 130여년의 제중원과 세브란스 역사를 보여준 미디어파사드는 해당분야 거장으로 손꼽히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김형수 원장이 프로그램 총괄연출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 의학전문박물관의 효시로 불리는 '동은의학박물관'도 제중원 130주년에 맞춰 재개관했다. 박물관은 휴지기간 동안 관내 정리와 전시품 재배치를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향상시켰으며, 전체 전시품의 30%를 새로운 유물로 교체해 새로운 의학역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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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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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개원130주년기념학술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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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사드




130주년 역사를 기억하며
세브란스 가치 정립


의료원은 10일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학술심포지엄, 음악회와 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와 뿌리를 재조명했다. 제중원의 창립정신을 되새긴 이번 130주년 행사에서는 특히 알렌과 에비슨, 세브란스의 후손들이 초기 선교사들의 유물을 기증해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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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주년 기념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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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7 10:36 2015/04/17 10:36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제중원 제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뿌리논쟁이란

제중원 뿌리논쟁은 1980년대 초 한국의 근대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에 즈음하여 그간 누구나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여기던 제중원을 그것이 한때 조선정부 소속 기관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서울대학 측이 자신들의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서울의대 측이 일제가 설립한 제국대학을 직접적인 전신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취약하게 남아 있던 역사적인 정통성을 만들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제중원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부담스러운 과거인 제국대학의 역사를 건너뛰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은 기관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제대나 총독부의원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제중원 뿌리논쟁을 제중원이라는 제3의 대상을 두고 연세대와 서울대가 서로 자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기술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오해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서울대학 측이며 세브란스는 불가피하게 이 논쟁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된 이 논쟁은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제중원 뿌리논쟁이 진행되어온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이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기관의 기원인 제중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5. 관립병원의 기원 만들기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는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과 전문학교들을 미군정청이 통폐합하여 만들어진 대학이다. 서울대학은 이들 학교들의 대지와 건물 등의 물적 토대는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일제가 설립한 학교들의 연속이 아닌 새로 출발하는 대학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총독부와는 단절된 정부임과 마찬가지이다. 서울의대는 설립 이후 약 30년 동안 자신들 학교의 역사와 관련해 제중원을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1954년 5월 15일자 <세브란쓰>지이다. 여기에는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각계의 축하광고가 실렸는데, 서울의대도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광고를 실었다. 이는 당시의 서울의대가 제중원을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던 서울의대와 병원은 8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1946년 서울대학 개교 이래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30년이 지난 어느 날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부터 제중원 뿌리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논쟁이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과정은 다음과 같이 대략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 (1978-1997)
제1기는 1978년 서울의대가 '서울大學校 醫科大學史(1885-1978)'란 책에서 제중원이 자신들의 뿌리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本 大學附屬病院의 始初는 이보다 14年 앞선 1885年 3月에 齊洞에 設立된 王立病院인 廣惠院이라 하겠다. 財政難으로 한때 官制가 폐지되어 私立醫療機關으로 하여금 運營케 하였으나 國立인 지금의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附屬病院은 廣惠院에 비롯된다."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다는 사학계의 오랜 정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더욱이 서울대 사회학과의 신용하 교수가 규장각 자료 운운하면서 합세하여 대단한 학문적 근거가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82년부터 몇 년 동안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 되지 않았으며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가 1905년에 환수하여 이를 서울의대가 자신들의 전신이라고 내세우는 광제원의 확장에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제중원은 연세의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이 서울대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러는 사이 연세대학교가 창립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의학계 원로 정구충 박사가 대학의학협회지 1984년 10월호에 기고한 "한국의학 100년"이란 원고가 서울의대측 편집위원에 의해 변조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그동안 기자회견만을 했던 신용하 교수가 1995년에 들어 "광혜원과 근대의료의 출발"이란 글로서 자신의 정식 견해를 밝혔다. 신 교수는 이 글에서 1905년 4월 10일의 '제중원 반환', 1906년 5월 29일의 '제중원 찬성금' 및 '광제원 확장비'와 관련된 자료가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광제원 확장비"가 환수된 제중원의 모든 시설을 인수했다는 문제를 푸는 "보배 같은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편승해 서울의대 출신인 주근원은 자신의 책에서 "이런 경위를 세브란스 病院側에서 그 由來와 傳統을 이어받은 것으로 즉 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고 '醫學百年'이라는 冊子에서 밝히고 있어 서울大學校病院과 뿌리의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쓰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서울의대 및 신용하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제중원은 국립병원이었다.
2)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
3) 1905년 환수하여 광제원 확장에 사용하였다.
한편 연세의대는 1996년 2월 1일 의사학과를 신설하고 이러한 서울의대의 억지 주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자료를 수집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신용하 교수가 주장한 사실의 확인을 위해 규장각에 있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이때 몇몇 자료들을 발굴했는데 그 내역을 상세히 연구한 결과 신용하 교수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 주장임이 밝혀졌다. 모든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일부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첫째, 제중원 설립에 조선정부가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국립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사용된 적도 없고 적절한 표현도 아니다. 국립 서울대병원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왕립이 국립으로 돌변한 것이다. 둘째, 에비슨이 1894년부터 1905년까지 제중원을 위탁경영했다는 것인데, 위탁경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단지 사료상으로는 에비슨이 병원의 전권(전관판리, entire charge)을 행사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셋째, 신교수는 제중원이 광제원으로 통합·확장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제중원이 세브란스로 이전한 후, 구리개 제중원은 병원도 아닌 외교 고문관 스티븐스의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8년 3월 명백한 사료가 언론에 발표되자 신용하 교수는 더 이상 논쟁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였고, 제중원의 위탁경영 혹은 환수 등 서울의대 측의 억지 주장은 학문적으로 근거가 없음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제2기 (1998- 2007)
이러는 사이 서울의대측은 집요하게 또 다른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병원이며, 그 위상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1997년 10월 1일자 서울대학교병원보에 실린 '병원 연혁에 관한 좌담회'에서 근대의학 도입, 발전 과정서 국가중앙병원의 역할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서울대학교 병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3명의 사학자를 고용하여 2005년 '병원사연구팀'을 구성하고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주년 기념 사업추진단'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에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식과 함께 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대한의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서울대학병원측이 대한의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서울대학교 병원사」에 실린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한 서술에 잘 나타난다. 거기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명실상부한 大韓民(帝)國의 중추적 의학교육, 연구, 진료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기록하여, 일제가 광제원, 적십자병원, 의학교를 강제로 통합해 대한의원을 만든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를 위해 대단한 공헌이자 발전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서술태도는 대한의원 설립의 실질적인 주체나 설립의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내지는 간과하고 외형적인 현상만으로 이를 '발전'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이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식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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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원초대원장사토스스무

그럼 대한의원은 어떤 기관이었나? 대한의원의 설립은 통감 이또오 히로부미의 구상으로 그는 대한제국에 의해 나름대로 운영되고 있던 광제원, 의학교, 적십자병원을 하나로 통폐합하여 식민지적 의료 체계에 적합한 기관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1906년 7월 일본 육군 군의총감 사또(佐藤 進)를 위원장으로 하고 의학교 교관 고다께(小竹武次), 대한적십자병원 주임 요시모토(吉本潤亮) 등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大韓醫院創立委員會'를 조직하고 여기서 대한의원의 설립을 결정하게 하였다. 즉 대한의원은 이미 실질적인 주권을 상실한 우리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그 건립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기관은 "명칭은 대한의원이지만 통감부에 의해 운영되는 의료와 교육, 그리고 위생업무를 담당하는 보건기구로 외관으로는 한국민을 위한 발전된 최신식 의료시설로 선전되어 전시효과에는 큰 몫을 하였으나, 실은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 관리 및 그 가족, 그리고 일본인 거류민의 보건을 위한 의료시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의 언론은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의학교, 광제원, 적십자 병원을 세워 자주적인 의료체계의 확립을 기도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1905년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면서 좌절되고, 이들 기관들이 대한의원이라는 식민지 의료기관으로 전환됨으로써 단절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한의원은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식민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 통감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병원이다. 그런데 이처럼 일제가 설립한 병원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립의료기관이라 자칭하는 서울대학병원에서 13억원이란 거액의 국고를 들여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 측은 대한의원 기념행사를 홍보하며 처음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설립의 책임자뿐 아니라 건립위원회의 구성원들 전원이 일본인들이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설립의 전 과정이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감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대한의원 설립이 대한제국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고종의 형식적 재가와 순종의 개원칙어 등만을 강조하며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애써 감추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제중원 122주년도 함께 연결시켰다. 이는 혹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이 지적되더라도 대한의원을 제중원과 연결시킴으로써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희석시켜보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대한의원 100주년만을 기념한다면 서울대 측이 이제 제중원을 포기하는 듯한 인상도 줄 수 있으므로 다소 어색하더라도 제중원 122주년을 덧붙여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필자는 이 행사를 비판하는 '서울대학병원 1백주년, 기념할만한 일인가?'란 제목의 글을 교수신문에 기고했다. 그 내용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병원을 왜 서울대병원이 기념하느냐는 것이었다. 대한의원 기념사업에 대한 논란은 「신동아」에 기사화되었다. 기사 말미에는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전우용 팀장이 대한의원은 한국 의료계 전체가 반성적으로 공유할 경험적 자산이라며, 기념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실렸다. 이후 이 논쟁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사화되었고, 당사자들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졌다.
한편 2006년 10월 26일 열린 2006년도 국정감사 교육위원회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었다. 국회의원들은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14억원이란 거액을 투입하는 것을 지적하고 기념행사는 정당한 역사적 조명이 될 수 있는 학술행사로 제한하고 음악회와 한마음축제 등의 기념행사는 이사회에서 재논의하라고 촉구하였다.
한편 서울대 측은 대한의원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결국 기념우표는 발행되었다. 2007년에 들어 서울대병원장은 신년사에서 '2007년은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년이 되는 우리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해'임을 언급하였다.
3월 15일의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년 행사가 가까워지며 이 행사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제기되었으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울대 병원 측은 일제 식민지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회피성 발언만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기념사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월8일 발표한 "국립 경북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은 100주년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 사업은 해방과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짓고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성명서는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됨으로써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를 계기로 서울대병원이 당초 의도했던 제중원과의 연결고리 보다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월 말이 되면서 기자들의 취재가 계속되자 논리가 궁색한 서울대병원 측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급기야는 그간 해온 주장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기념행사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당화했다."도둑질을 한 아버지라도 제사는 지내야 한다. 다만 축하 개념의 기념이 아닌 단순한 기억 의미의 기념일 뿐이다."

제3기 (2007- 현재)
대한의원 기념사업의 강행으로 홍역을 치른 서울대병원은 이후에는 대한의원과 관련된 언급이나 주장을 더 이상 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중원에 대한 책자들을 잇달아 발간하며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시작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점에 대해서는 이후 차례로 논의하겠다.

 




2015/04/01 16:19 2015/04/01 16:19
지선하 교수 에비슨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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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역학건강증진학과, 국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지난달 28일 연세대가 부여하는 ‘에비슨 특훈교수’로 임명됐다.
에비슨 특훈교수는 세계적 수준의 탁월한 교육·연구를 통해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학자에게 연세대가 부여하는 지위다. 특훈교수는 이 명칭에 상응하는 명예와 3년간 각종 인센티브, 교원 책임강의시간 학기별 3학점 감면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지선하 교수는 인구집단 역학연구를 통해 질병발생의 원인을 밝혀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에 기여했다. 비만과 당뇨병이 암 발생의 원인이라는 사실과 악성림프종발생 예측인자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발견을 역학적으로 규명했다. 또 흡연의 건강폐해 연구결과 발표로 흡연 관련 질환 예방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등 남다른 연구업적을 쌓았다.
지 교수는 NEJM, JAMA, Lancet, Nature Genetics를 포함해 SCI급 논문 총 180편을 발표했으며, BRIC의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에 7건의 역학논문이 소개돼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7년에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2011년에는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된바 있다.
한편, 임명장 수여식은 오는 28일 연세대 교직원수양회에서 열린다.



2015/01/30 16:41 2015/01/30 16:41

세브란스병원 이야기
민혜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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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R. 에비슨과 세브란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가 민혜숙이 세브란스병원과 에비슨 박사의 일대기를 흥미진진한 소설로 풀어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돼 더욱 큰 감동과 함께 민혜숙의 특징인 섬세함이 살아 있는 책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에비슨 박사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에비슨 박사의 유년기부터 부인이자 삶의 동반자인 제니를 만나고 토론토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낯선 나라 조선에 선교사로 오게 된 배경과 1893년 한국에 도착한 이후 제중원 원장으로 부임해 서양 의술을 전파하며 천연두나 발진티푸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치료법과 예방법 확산에 힘쓴 이야기도 담담히 풀어나간다.
민혜숙은 에비슨 박사의 의학으로의 빈민구제뿐만 아니라 조선의 서양의학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10여년간 교육에 노력해 일곱명의 의사를 배출한 에비슨의 교육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에비슨은 의료봉사와 교육 이외에도 거액의 기부금을 흔쾌히 기부한 미국인 사업가 루이스 H. 세브란스의 도움을 받아 제중원을 현대식 건물로 신축해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한다. 민혜숙은 불가능했던 모든 일들이 하나씩 실현되는 순간을 특유의 감각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한 사람의 업적이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을 해낸 에비슨 박사는 민혜숙의 손을 통해 다시금 되살아났다.
기독교 선교사의 일대기를 다룬 이 소설에는 기독교정신이 전체적으로 스며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가르침만을 우선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종교의 공통인 사랑.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봉사. 이런 진심이 전해지기에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사업에 선정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54쪽/케포이북스/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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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8 11:55 2015/01/08 11:55

신홍임 간호대동창
에비슨 의료선교 교육기금 1,000만원

신홍임 간호대동창(77년졸)이 지난달 27일 의과대학 에비슨의료선교교육기금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신홍임 동창은 에비슨 의료선교 모금 소위원회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에비슨의료선교 교육기금에 3,100여만원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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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11:10 2014/12/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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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암병원 건축기부금 4억원
김인식 선우회계사무소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에 3억원
최진민 귀뚜라미그룹 명예회장-심장혈관병원 사회사업후원금 3,000만원
(주)KT그룹 희망나눔재단ㅣ사회사업후원금 2,000만원
선우장학회-간호대 장학금 1,600만원
이민걸 교수-제중학사 재건축기부금 1,500만원
이종훈 의국동문-외과학교실 발전기부금 1,000만원
박홍준·이승철·이호기 원장 1,000만원
김상협 치대동문-세브란스 사회사업후원금 1,000만원
박재현 의대동창-정형외과학교실 발전기부금 1,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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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웅 전 연세대 치과대학 학장 별세
물리치료학 선구자 구애련 선교사 별세
이배웅 재미의대동창, UHS 이사
신양식·김신형 교수팀, 최우수학술상
김희순 교수-아동간호학회 우수논문상
송동호 교수-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공로상
김근수·박정윤 교수팀, 임 언 학술상
이진우 교수, 최우수 논문상
장혁재 교수-우수논문상 수상
조성래 교수-대한재활의학회 우수연제상
박유석 교수-응급의료유공자 복지부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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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일에 5,000만원 기부
“유언 따라 어머니의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김태형 후원자가 7일 부친 김상원 후원자 <사진 오른쪽> 와 함께 발전기금사무국을 찾아 암병원 건축기부금으로 5,000만원을 약정하고 3,000만원을 기부했다...

김광문 명예교수(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병원장)ㅣ연세의료원은 외부와 소통하여야 한다

김정은 에비슨교직원선교사ㅣ아프리카에 꽃피는 의료원 미션

이승혜보험심사팀장ㅣMedical No.1 세브란스의 시작

 
임상시험 네트워크 허브 구축
복지부 글로벌 선도센터 지정…산업 비지니스 모델 개발
초기 임상시험 유치 기대 의료산업화 새 모델 제시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 등 연구분야 육성 성과'”

의료원 임상시험센터가 최근 보건복지부 국가임상시험사업단이 공모한 임상시험 글로벌 선도센터에 최종 선정됐다.이번 선정에 따라 임상시험센터는

세브란스, 한-러 의료 협력 상징되다
 

                                     정부간 보건의료협력 MOU 체결 의료원에서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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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이 한국과 러시아 양국간 보건의료협력의 상징이 됐다. 보건복지부와 러시아 보건부는 13일 세브란스에서 보건의료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이날 이영찬 복지부차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수행차 방문한...


연구비 수혜 ‘727억원’ 전국 의대 중 최고’
세브란스병원, 우수 협력병원·의사 초청행사 열어
강남, 보편적 의료서비스 구현 세미나 l 의학과 ICT융합의 미래 활용방안 논의
강남 교수 핫라인, 복지부장관 표창
의대, 명예교수 간담회 가져
지발 병원장, 의료 서비스 특강
세브란스 브랜드, 새로운 HI로 완성됐다
구강종양연구소, 스리랑카 구강암연구센터 지원
치과생체재료공학교실-미 드렉셀대학과 공동연구 협약
정신건강병원 마음소리캠페인 열어
임상시험센터, PPD와 MOU
세브란스와 다양한‘크리스마스’즐기세요
치대, 원내생 임상증례 발표회
어린이병원, 애란원 의료봉사
치대병원-무궁화어린이집 구강검진
암연구소, 국제 심포지엄 열어
외과학교실-직장암 근치 수술 워크숍
간호대,방글라데시초청연수ㅣ보건정책관련 고위관리자 25명 참여
유방암 심포지엄 열려
사무처, 소방안전 교육
아름다웠던 학창시절의 기억ㅣ제중학사 마지막 홈커밍데이
근거기반 간호연구 학술대회
추수감사절 사과로 나눠요!
의료선교의 달 행사 이어져
세브란스-영산조용기재단, 홈커밍데이
치대, 학생 축제 ‘연아제’ 열려
치대, 가을낙엽 밟기 행사
강남, 당뇨·갑상선 건강강좌
치의학교육원, 20주년 심포지엄
용인, 개원 30주년 건강강좌
소아과학교실, 교실사발간
빼빼로 데이 환아들과 추억만들어요
심장혈관병원 교직원 워크숍
치과대학병원-공개 건강강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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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6:08 2013/11/29 16:08

김인식 선우회계사무소 대표
강남세브란스병원에 3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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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선우회계 사무소 대표가 13일 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동건립발전기부금 3억원을 전달했다. 전달식에는 이병석 강남세브란스병원장과 김형중 부원장, 한승한 강남 발전기금 부국장, 의대 박효진 교수(강남 내과)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1975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며 세브란스와 인연을 맺게 된 김인식 대표는 꾸준히 강남세브란스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김 대표는 “건강의 소중함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며 “강남세브란스병원이 환자들을 위해 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치료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발전기금은 연구동 건축재원으로 사용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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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49 2013/11/29 14:49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암병원 건축기부금 4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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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사진>이 7일 암병원 건축기부금으로 4억원을 기부했다.

윤영달 회장은 “새로 건립될 암병원이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며 “많은 암환자들이 더 나은 치료와 암 정복에 대한 꿈을 가지고 힘겨운 싸움을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크라운해태제과는 지금까지 총 11여 억원을 후원했고 올 초 의료원과 환자치료, 진료공간 개선, 교육·연구지원 등 소아뇌전증 사업지원을 위해 10억원의 기부협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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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46 2013/11/29 14:46

세브란스, 한-러 의료 협력 상징되다
정부간 보건의료협력 MOU 체결 의료원에서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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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이 한국과 러시아 양국간 보건의료협력의 상징이 됐다.

보건복지부와 러시아 보건부는 13일 세브란스에서 보건의료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날 이영찬 복지부차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수행차 방문한 베로니카 스크보르초바 러시아 보건부장관은 양국의 의료정보기술(IT), 질병, 의약품·의료상품 규제 등에 대한 협력을 확대하고 전문가와 학술회의, 의료교육 교류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협약식에 이어 이 철 의료원장과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 등 주요 보직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스크보르초바 장관은 이자리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유헬스센터 운영 및 러시아 극동연방대학 등 의료기관들과의 교류 협력 활동과 극동러시아지역 중증환자 치료 등 세브란스의 기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스크보르초바 장관은 “한국의 대표 의료기관인 세브란스에서 양국간 보건의료협력 서명식을 가져 더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스크보르초바 장관은 이후 VIP 병동 등 세브란스의 최첨단 의료시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복지부는 “러시아 보건부장관 및 관계자에게 국내 보건의료 IT기술과 병원 운영시스템을 소개하기 위해 세브란스에서 서명식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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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41 2013/11/29 14:41

임상시험 네트워크 허브 구축
복지부 글로벌 선도센터 지정…산업 비지니스 모델 개발

초기 임상시험 유치 기대
의료산업화 새 모델 제시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 등 연구분야 육성 성과'”


의료원 임상시험센터가 최근 보건복지부 국가임상시험사업단이 공모한 임상시험 글로벌 선도센터에 최종 선정됐다.

이번 선정에 따라 임상시험센터는 서울성모병원, 인하대병원과 함께 글로벌선도센터 컨소시엄 주관기관으로 임상시험산업의 글로벌 역량 강화와 글로벌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나선다.

글로벌선도센터는 9월 서면평가를 거쳐 구두 및 현장평가를 가진 후 수도권 1개 센터, 비수도권 1개 센터가 선정됐다.

센터는 이달부터 2018년 3월까지 5년간 최대 90억 원을 지원받아 고부가가치 초기 임상시험을 중심으로 임상시험 유치와 임상시험 네트워크 허브로서 국내 임상시험 기관의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주요사업 내용으로는 ▲컨소시엄 자원통합 운영시스템 구축 ▲임상시험 공동심사 시스템 운영 ▲임상시험 전문 인력 교육, QM(Quality Management) 및 RA(Regulatory Affairs) 강화 ▲환자대상 초기임상 클러스터 구축 ▲수요자 맞춤형 개발 지원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 운영 등을 수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고부가가치인 글로벌 초기임상시험 유치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오픈 플랫폼 네트워크를 통한 성장 기회를 창출하고 국내 제약기업의 글로벌 임상개발 지원업무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따른 의료산업화의 새로운 모델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박민수 임상시험센터 소장은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 국내 대학병원 최다 특허출원수 등 의료산업화와 신성장 동력으로서 연구분야를 육성한 성과”라며 “우리나라의 임상연구 수준을 높이고, 임상시험의 허브기관으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 임상시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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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38 2013/11/29 14:38

소아과학교실, 교실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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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소아과학교실이 최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학교실사 - 소아청소년과 진료 128년, 소아과학교실 창립 100년’이라는 교실사(史)를 발간했다.

이 책은 총 439페이지에 교실의 역사, 교실 주요 활동, 봉사활동, 세아회(소아과학교실 동문회) 소개, 후원자 명단, 화보 및 100주년 기념행사 사진이 실려 있다.

교실사 발간에는 의대 강훈철 교수(소아과학)를 편집위원장으로 편집위원회와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 등이 참여했다.

김규언 주임교수는 “연세의대 소아과학교실의 역사는 한국 소아과학의 역사와 궤적을 함께 하며 지난 100년간 꿈과 도전 정신으로 많은 소아과 선생님들이 교육, 연구, 진료에 매진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며 “지나간 과거로부터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교실사를 발간했다”고 말했다.

한편, 연세의대 소아과학교실은 1913년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3학년 정규 교육과정에 ‘Children's Diseases’라는 교과목으로 소아 질환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고, 맥라렌이 강의를 담당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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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28 2013/11/29 14:28

근거기반 간호연구 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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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간호국과 간호대학 주최의 간호국 학술대회가 20일 은명대강당에서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이날 김영아 후헬스케어 CTO(의료정보실)가 ‘Healthcare's big data challenge’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고 이어 간호대와 산학협동으로 근거기반의 간호실무 향상 연구를 진행한 특수간호팀 등 5개 간호팀의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김소선 간호담당부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근거기반의 간호연구가 실제 임상적으로 활용돼 더 많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아 간호대학장은 “학술적인 연구데이터를 실제 임상에 적용함으로써 임상간호의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학술대회를 평가하며 “앞으로 간호는 연구를 중심으로 한 임상간호의 역할이 중요해 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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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28 2013/11/29 14:28

세브란스와 다양한 ‘크리스마스’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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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가 13일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이 철 의료원장과 이근우 치과대학장, 김선아 간호대학장, 정남식 세브란스병원장, 노성훈 암센터 원장, 유경종 심장혈관병원장, 김동수 어린이병원장, 이진우 미디어홍보실장, 신동천 사무처장, 김소선 간호담당부원장, 이수진 노조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세브란스는 그린 세브란스 취지에 맞춰 종이와 천 등 친환경소재를 이용해 세브란스의 따뜻하고 소박한 느낌을 살린 트리를 마련했다.

트리는 팝업북 형태로 3개의 공간마다 다른 콘셉트를 줘 다양성을 살렸다. 산타의 집으로 꾸며진 공간은 ‘행복한 순간’을 나타내고, 루돌프와 트리 등으로 구성된 공간은 병원 이용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또 소원카드를 루돌프와 산타로 만든 케이스에 넣어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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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27 2013/11/29 14:27

지발 병원장, 의료 서비스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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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팜 지발(Anupam Sibal) 인도 아폴로병원 그룹 병원장이 14일 의료원을 방문해 인도 보건의료산업의 변화 속에서 아폴로병원의 역할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강연에는 정남식 세브란스 병원장, 신동천 사무처장, 이준수 진료협력센터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지발 병원장은 인도의 보건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아폴로병원에 대해 소개했다. 또 아폴로병원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비결로 계열 병원간 인터넷 기반의 지속적인 의사소통과 Mayo Clinic 및 Cleveland Clinic 등 세계적인 병원들을 배우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인도 최초의 법인병원인 아폴로병원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병원으로 인도를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총 54개의 체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8개의 병원이 JCI 인증을 받았다. 아폴로 병원 그룹은 IT 기술을 활용한 원격의료 및 근거중심 치료를 강조하며 매년 1,000명의 의료인을 육성하고 있다. 특히 전체 환자 중 외국인 환자가 30%를 차지하는 글로벌 병원이다.

한편, 지발 병원장은 인도 병원 최초로 성공적인 간이식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최초로 JCI 인증을 추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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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9 14:21 2013/11/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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