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에 해당되는 글 3902건

  1. 2017/12/29 “주인이 없으니 내가 주인” [800호]
  2. 2016/03/31 세브란스의 유산을 발전시키자 [761호]
  3. 2016/01/26 역사의 뜰 제중원에서 신년하례 [757호] (1)
  4. 2015/12/30 세브란스, 숨은 이야기들 [756호]
  5. 2015/12/16 세브란스병원 NCSI 5년 연속 1위 쾌거 [755호]
  6. 2015/11/12 선교 130년 출판기념회 [753호]
  7. 2015/10/27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752호]
  8. 2015/08/19 윤영노 회장, 제중원 힐링센터에 1억원 [748호]
  9. 2015/07/31 '나눔·봉사·선교' 제중원 정신, 세계 속에 실천하다 [747호]
  10. 2015/07/29 펜화로 돌아온 '제중원'… 김영택 '펜화 기행' 개인전 [746호]
  11. 2015/07/29 "제중원(펜화)은 세브란스에 대한 보은" [746호]
  12. 2015/07/29 알렌 박사 파송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 방문 [746호]
  13. 2015/07/27 곽정환 회장, 제중원힐링센터 등에 3억원 [746호]
  14. 2015/07/27 이무헌 회장, 의료원 발전기부금 등 1억여원 [746호]
  15. 2015/06/25 권상범 대표, 제중원 힐링센터에 5,000만원 [745호]
  16. 2015/05/27 세브란스 선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 [743호]
  17. 2015/05/26 엄영선 후원자, 제중원 힐링센터 등 2억원[743호]
  18. 2015/05/15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742호]
  19. 2015/05/07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741호]
  20. 2015/05/07 세브란스로 돌아온 애국 호소문 [741호]
  21. 2015/05/07 제중원 130주년 기념 단행본 출간 [741호]
  22. 2015/04/17 제중원 - 세브란스 130주년 행사 성료 [740호]
  23. 2015/04/17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740호]
  24. 2015/04/01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739호]
  25. 2015/03/30 6,186명이 전한 세브란스의 나눔 정신 [739호]
  26. 2015/03/09 제중원 130주년 섬기는 세브란스로 거듭난다 [738호]
  27. 2015/01/30 세브란스인과 함께 한 신년 하례 [736호]
  28. 2015/01/30 제중원 130주년 기념 달력 제작 [736호]
  29. 2015/01/30 세브란스 신용협동조합 제중원 힐링센터에 5,000만원 [736호]
  30. 2015/01/09 신 년 사[735호]

“주인이 없으니 내가 주인”
박진규 라포르시안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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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원고청탁을 받았다.연세의료원소식 800호를 맞아 특집호를 만드는 데 주제는‘세브란스의 loyalty, 자부심’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세브란스를옆에서 지켜보면서 세브란스 인들은 어떤 자부심이나 로열티가 있는것으로 보이는지 얘기해달라는 주문이었다.처음에는‘그것쯤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막막했다. 막연한 생각들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세브란스 동문에게 조언을 구하기로했다.
한 동문에게 물었다.‘세브란스인의 자부심은 무엇이냐?’고. 즉답이 돌아왔다. 그는“세브란스 인의자부심은‘the First and theBest’지”라고 했다. 그의 설명은이랬다.
“알렌이 만든 병원이 광혜원이고 제중원인데, 이름 속에 다들어 있어요. 처음부터 사람 중심의 의료를 펼쳤던 거지. 게다가 세브란스의 후원금과 기독교 신앙도한몫 했고요”세브란스는 국내 최초 수식어를많이 갖고 있다.
국내 최초의 서양식 의료관인 제중원을 모체로 하는 세브란스는 지난 132년 동안우리나라의 의학과 의료발전을 이끌어왔다. 국내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도 시작해 지금까지 1만 명이넘는 의사를 양성했다. 대한민국의사 수가 13만 명이라고 하는데,이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의사가 세브란스 출신인 셈이다.
또 다른 동문은 세브란스 출신선배 의사들의 발자국이 긍지라고했다. 그는“확실한 것은 세브란스모태인 제중원부터 최초의 의사를배출했다. 우리가 현대의학의 태동이라는 것이고, 선배들이 나라를위해 헌신했다는 것을 긍지로 삼는다.
무조건 최초라서가 아니라우리나라 최초의 면허 의사인 7인의 선배님들이 모두 독립운동에헌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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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환자안전 및 의료 질 부문 아시아병원경영협회상 수상(2009년)


2회 졸업생인 이태준선생은 독립운동가이면서 몽골의슈바이처로 칭송받고 있다.
이태준선생의 기념공원이 몽골의 수도울란바토르에 있을 정도다. 다시강조하지만, 세브란스 선배님들은나라를 위해 헌신해 왔고, 그것이우리의 자부심”이라는 것이다.자랑(?)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세브란스의 또 다른 자부심은‘주인 없는 기관’이라는 말에 녹아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사례로 새 세브란스병원(현 본관건물)을 완공한 것을 꼽았다 수 있었겠느냐. 그것 지을 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시 IMF 외환위기 때였는데, 안된다고 반대가 많았지만 우리는 해냈다”면서“새 세브란스병원을 지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독교 정신과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라고 강조했다.
제로 새 세브란스병원을 지을당시 모든 세브란스 구성원들은월급과 퇴직금을 덜어냈다. 동문도병원 수익금을 보탰다.
그렇게 십시일반으로 모인 돈이 새 세브란스의 주춧돌이 되고 기둥이 됐다.그러고 보니, 세브란스 구성원과동문은‘주인 없는 기관’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다른의료기관처럼 국가나 거대자본의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국내최고의 의료기관으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주인 없는 기관’인 것이다.
세브란스는 새 세브란스병원 건립을 발판으로 재도약을 이룰 수있었다. 국내 최고 의료기관이라는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큰 이유이며, 국내 의료기관 중 가장 활발하게 중국 등 외국으로 진출할 수있는 발판이 됐다.그러나 세브란스가 the Firstand the Best라는 자부심을 이어가려면 과제도 많다.‘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에 물결에 적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위한 병원 간 경쟁은 시작됐다.
첨단융복합의학센터를 만들고 인공지능 기반 암 치료를 도입한 곳도있다. 세브란스가 그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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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테라피 15,000회 달성 (2009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세브란스만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들의만족도가 중요하다. 종사자들의 애로사항을 수시로 확인하고 환경개선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야한다.
모든 세브란스 구성원들이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타 의료기관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오히려 그들을 뛰어넘는 성과를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우수한 역량을 갖춘 우수인력 영입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세브란스 일부에서 성장이 멈추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이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순혈주의’라는 폐쇄적이고경직된 인재 채용 방식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꼭 필요한 인재가 있다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인재를 채용해야한다.세브란스의 현재도 그리고 미



2017/12/29 11:22 2017/12/29 11:22
세브란스의 유산을 발전시키자





의료원이 올해부터 제중원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리고자 ‘제중원 바로 알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시작으로 올해 1월 4일 한 해의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신년하례 행사를 제중원에서 개최했다. 한국 근대의학이 시작된 제중원의 역사성을 되새기고, 그 발전에 헌신한 선각자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제중원 확장 및 역사관 설립
의료원은 제중원 바로 알기의 첫 번째 사업으로 심장혈관병원 뒤에 위치한 제중원의 확장 및 역사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사진 위> 이 사업을 통해 제중원 건물을 역사적으로 고증하고, 재해석해 확충하며, 제중원 박물관을 설립해 연세대학교의 정체성과 뿌리를 확고히 하고자 한다. 또한 백주년 기념관과 시설을 공유하고 통합 운영해 캠퍼스 간 융합 공간을 조성한다. 제중원의 확장 및 역사관 설립을 기부금으로 건립하고, 교직원 및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시설을 운영해 연세의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려 한다.

역사기록 펜화, 유화 제작
두 번째 사업으로 제중원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역사기록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자료가 없거나 부족한 의료원의 주요 역사적 건물과 사건(인물) 등을 역사기록화로 제작해 사료로서 보존하고, 전시 및 출판물에 활용한다. 역사기록화는 사진이나 영상보다 풍부한 감성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으며, 한 그림에 복수 이상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어 활용도가 높은 장점이 있다. 역사기록화 프로젝트는 역사적 ‘건물’과 ‘사건(인물)’ 두 분야에서 기록화 제작을 추진한다. 역사적 건물의 기록은 펜화가 김영택 화백이 맡는다. 김영택 화백은 펜을 이용한 세밀화 작품으로 활동하는 화백으로 국내외 유명명소, 사적지 등 작품화했다. 특히 김영택 화백은 작년 7월에 세브란스의 전신 제중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되살린 작품을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를 통해 공개했다. 김영택 화백은 당시 인터뷰<연세의료원소식 제746호 2면>를 통해 “선명하지 않은 사진이 전부였지만, 제중원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었다”며 “사진에 있는 백송도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싶어 헌법재판소에 가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제중원의 초기 모습을 담고 싶었던 김 화백은 당시 건축양식 등을 확인해가며 복원했다. 또한 전시회가 끝나고 세브란스에 제중원 펜화 작품을 기증했다.<사진 아래> 김영택 화백은 1904년 세브란스씨 기념병원, 남대문 앞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1960년대 신촌캠퍼스 전경, 현 신촌캠퍼스 전경 등의 작품을 준비 중이다. 역사적 사건의 기록은 화가 김건배 화백이 맡는다. 1995년 미국으로 건너 간 후, 수채화가로 전향해 큰 명성을 얻은 김건배 화백은 사진자료가 없는 주요 역사적 사건 및 정황을 역사기록화로 구현한다. 김건배 화백은 알렌 선생의 민영익 치료, 에비슨 박사와 그 가족의 조선 내한, 카네기홀에서 첫음 만나 에비슨 박사와 세브란스 씨, 일본군과 전투 중 부상당한 대한제국군을 치료하는 세브란스 의료진과 학생들, 3.1 독립선언문을 해부학 실습실에 숨기는 세브란스의전 학생과 직원들 등의 역사기록화를 준비 중이다. 역사기록화 프로젝트는 올해 10월말까지 작품화가 마무리된 후 의료원 달력 이미지 및 원내 전시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나아가 의료원 역사전시관에 두 분야의 작품을 영구 전시 보존해 세브란스의 역사성 및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 한편, 역사기록화 프로젝트의 의미 확산을 위해 김영택 화백의 제중원 펜화 한정판 100점이 제작되어 신청을 통해 소장할 수 있게 됐다. 신청은 의료원 발전기금 사무국(02-2228-1085~9)으로 하면된다.

매년 제중원 심포지엄 개최
마지막으로 제중원 학술 연구 프로젝트로, 제중원 역사 연구 기금을 조성하고, 제중원 연구 사업을 시행한다. 또한, 매년 개교기념일에 제중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올해 심포지엄은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학술대회로 4월 8일 오후 2시 의과대학 강당에서 열린다. 1부에서는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와 세브란스’를, 2부에서는 ‘한국 근대의학의 탄생 공간 제중원·세브란스’를 주제로 진행된다.



2016/03/31 13:54 2016/03/31 13:54
역사의 뜰 제중원에서 신년하례
300여명 참석해 선각자들의 정신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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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은 4일 오전 8시 131년 전 세브란스와 국내 서양의학의 역사를 활짝 꽃피웠던 제중원(광혜원)에서 한 해의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신년하례 행사를 개최했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신년 메시지를 통해 "연구, 교육, 진료, 봉사, 서비스, 선교 등 모든 면에서 세브란스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거듭나자"고 강조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새해인사를 통해 "의생명과학 분야의 융합 연구가 활성화 되고, 기존의 의료 문화를 뛰어 넘는 새로운 환자 문화를 창조하자"고 말했다.
한편, 신년하례식에는 정남식 의료원장을 비롯해 이수진 노동조합위원장, 각 병원장, 원내보직 교수, 의료진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하례식 후에는 루스채플로 자리를 옮겨 덕담 인사로 화합의 자리를 가졌다.


강남, 6일 신년 하례식 개최
강남세브란스병원도 6일 대강당에서 신년 하례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형중 병원장과 정남식 의료원장을 비롯한 교직원 200여명이 참석했다. 본 행사에 앞서 교직원들은 악수를 건네며 따뜻한 새해 덕담을 나누었고, '강남세브란스인의 신년 기도'를 함께 낭독했다.
김형중 병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공간문제 해결과 JCI 3차 인증을 위해 교직원 모두가 합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2016/01/26 15:02 2016/01/26 15:02
세브란스, 숨은 이야기들
의대 김충배 교수(외과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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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김충배 교수(외과학)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와 근대 역사에 관심을 갖고 모아두었던 자료 중 세브란스와 관련된 숨은 이야기들을 모아 '세브란스 숨은 이야기'를 출간했다. 김충배 교수는 "세브란스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면 아무 힘이 되지 못하는 죽은 역사"라며 책 출간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세브란스 숨은 이야기'는 제중원이 시작하게 된 계기인 알렌 선교사의 민영익 치료기록, 제중원에서 근무했던 하디 의사, 에바 휠드 여의사 이야기, 그리고 제중원에서 알렌과 헤론, 언더우드의 갈등, 세브란스병원을 건축한 고든, 세브란스병원의 1905년 이야기 등의 기록돼있다.
또 일제 강점기에 숨은 선배들의 삶 이야기 중 김필순 이야기, 그들의 가족 이야기,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세브란스인, 일본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세브란스의전 축구팀, 국내 오페라를 시작한 이인선 선생, 세브란스 출신 음악가들, 러들러 교수 이야기, 연희와 세브란스의 합동 이야기 등이 수록돼있다.
책은 다양한 역사적 문헌과 자료, 사실에 기반을 두고, 제중원에서 시작한 세브란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충배 교수는 "너무 알려진 이야기 보다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조사하면서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고, 그 기록과 빛바랜 사진을 통해 새로운 사실에 흥미롭고 즐거웠다"며 "새삼 세브란스의 거대한 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율성. 독립성. 연합정신이 130년 세브란스 역사를 지켜가는 우리의 자세이며, 의무라고 감히 생각한다" 며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브란스는 영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328쪽/연세대 대학출판문화원/19,000원]



2015/12/30 09:54 2015/12/30 09:54
세브란스병원 NCSI 5년 연속 1위 쾌거
환자중심의 배려와 안전 국가고객만족 최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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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이 국가고객만족도(NCSI) 5년 연속 1위를 달성하며 국민이 뽑은 한국 최고의 의료서비스 병원으로 자리를 지켰다.
한국생산성본부는 8일 세브란스병원이 NCSI 단독 1위(병원부문)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NCSI는 국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을 고객이 직접 평가한 만족수준의 정도를 측정하고 계량화한 지표다. 세브란스는 이번 조사에서 80점으로 2011년에 이어 5년 연속 1위(병원부문)를 달성했다. 또, 2013년부터 80점 이상을 받아 3년 연속 1등급을 획득했다.

만족도 향상 원동력
'배려'와 '안전'

5년 연속 1위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은 '배려'와 '안전'을 꼽았다. 윤도흠 병원장은 "배려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기본적인 마음과 태도에서 시작한다. 환자는 물론이고 내부 교직원들간의 배려를 문화로 정착해 다른 사람이 진정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먼저 내가 행동하는 것"이라며 "최근 병원에서의 안전이 화두가 되고 있다. 세브란스는 이미 국내 최초 JCI인증을 통해 안전문제에 대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는 찾아가는 설명간호사 제도와 퇴원환자 배웅 서비스 등 병원을 찾은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을 나설 때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여기에 서비스의 시작인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친절비타민 쿠폰 발급, 우수교직원 해외 견학, 직원간 배려 캠페인, 옥외 근무자 커피제공 서비스 등 내부만족도도 높였다. 그리고 안전한 병원을 위한 지속적인 병원내 감염 예방활동 및 프로세스 개선활동은 국가적인 전염확산에서 그 가치가 증명됐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병원
세브란스는 올 초 세브란스 소속 6,186명이 참여해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 등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기쁨나눔 프로젝트로 제중원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고 기부와 나눔을 통해 성장한 의료원의 참모습을 실천했다. 그리고 북한의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통일 수액 프로젝트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운영하는 자선가게 '세움'을 통해 이웃과 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환자 중심' 모든 것을 바꾼다
윤 병원장은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도 환자들이 체험하지 못하면 서비스가 아니다"며 "병원을 예약해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전 과정에서 환자들은 불편을 느끼지 않아야 진정한 서비스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브란스는 차량이 통과하는 게이트를 확장하고, 각 병동별 환경 개선을 위해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내원객 휴게실 확보와 새로운 문화공간 창출을 위해 '우리 라운지' 조성, 어린이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도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환자 경험을 바탕으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를 위한 체감대기시간 단축활동과 다양한 문화시설은 환자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2015/12/16 09:32 2015/12/16 09:32
선교 130년 출판기념회
연세대는 심포지엄 열어 근대의학 기원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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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 원목실은 세브란스 본관 10주년을 맞아 '연세의료원 선교 130년 : 과거, 현재, 미래'를 출간하며 지난달 21일 세브란스병원 본관 예배실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책은 원목실이 지난 5월 제중원 1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연세의료원 선교의 과거, 현재, 미래'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심포지엄에는 최재건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와 임희국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교수, 의대 신규환, 여인석 교수(의사학과)가 의료원의 선교활동을 시대별로 소개했다. 또 정종훈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과 안신기 의료선교센터 소장이 의료원 선교활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이성희 연세대 이사(연동교회 담임목사)의 '예수님의 사역과 세브란스의 사역'을 주제로 한 설교에 이어 정남식 의료원장과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성악가 김영민의 축가 후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는 서평을 통해 "제중원은 한국 초기 의학뿐만 아니라 선교학적으로도 큰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며 "제중원의 의미를 잘 정리하고, 구체적인 선교 비전을 제시하며 출판하게 된 것에 대해 역사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3일 연세대 학술정보원 7층 장기원 국제회의실에서 '한국 근대의학의 기원과 연세'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갑영 총장은 개회사를 통해 "학술대회를 통해 제중원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연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1부에서는 제중원 건립시기 알렌과 언더우드의 역할과 개신교 의료 활동과 제중원·세브란스에 대해 조명했다.
2부에서 제중원의 의학교육과 서양의학의 토착화, 언더우드와 에비슨의 교육활동이 발표됐다.
이어 3부에서는 제중원의 의학 교재류 번역에 대한 국어사적 의미와 세브란스 출신의 독립운동, 연희와 세브란스 학생들의 교육, 사회운동이 다양한 시각에서 검증됐다.
4부에서는 제중원 한옥건축의 형식과 변용, 한국 건축사에서 건축가 고든과 세브란스기념병원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다뤄졌다. 또,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공간변화와 성격을 통해 제중원에서 이어진 세브란스병원의 공간적 계승이 발표됐다.



2015/11/12 15:09 2015/11/12 15:09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연세 치의학 100주년 특별기획


제중원 130주년, 광복 70주년인 올해는 우리나라에 서양 근대치의학이 도입된 지 1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치의학의 시작은 미국의 선교치과의사 쉐플리가 1915년 11월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한국 최초로 치과학교실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의료원소식은 치의학 도입 100주년을 맞아 3회에 걸쳐 우리나라 치의학의 시작인 연세 치의학의 역사와 미래를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연세 치의학의 태동과 해방
2. 해방 이후 치과대학 설립
3. 치과대학의 발전과 미래



1. 제중원에서 시작한 치과치료와 교육
갑신정변에서 자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Horace N. Allen)의 요청으로 1885년 4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이 설립되고 제중원 의학당(1886년)도 개교하였다. 제중원 1차년도 보고서에는 구강질환 처치에 관한 질병별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1894년 제중원 운영권이 미국 북장로회로 이관되면서 제중원 의학당에서는 최초의 치과의술 교육이 이루어졌다. 1901년 제중원의 '의료활동보고서'에는 의학생들이 에비슨(O. R. Avison)의 자문을 구해 직접 발치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것은 발치기술이 선교의사에 의해 의학생들에게 교육된 최초의 기록이다. 따라서 제중원을 근대치의학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전문적인 진료와 정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15년 쉐플리가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치과학교실을 개설하면서부터다.

2. 쉐플리의 세브란스 선교치과의사 부임
쉐플리(William Jeremiah scheifley)는 기독교 신앙 속에 성장하였다. 필라델피아 중앙고등학교(1906~1910) 시절 '학생자원운동'과 '면려청년회'에 참석했다. 미국의 학생자원운동은 1888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2만 500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였다. 해외선교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해외선교에 대한 소망을 키우던 쉐플리는 필라델피아 치과대학에 입학해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한 뒤 해리스버그에 개원했다. 개원한지 2주 만에 "장로회 선교본부가 중국에 파송할 치과의사를 찾는다"는 소식에 쉐플리는 장로회에 편지를 보냈다.
"현재 나는 약 1200달러 상당의 치과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교육과 장비구입으로 약 1200달러의 부채가 있습니다. 만일 선교치과 의사의 길을 열어주신다면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1913년 12월 23일)."
그러나 장로교는 중국지부 치과의사 파송요청을 취소했고, 마침 세브란스병원의 에비슨이 치과의사를 찾고 있어 연결해 보았지만 쉐플리의 부채와 어린 나이 때문에 유감스럽다고 답했다. 하지만 쉐플리는 1914년 9월 미국 장로회 해외선교본부에 정식 지원서와 6명의 추천서, 건강진단서를 보냈다.
1914년 12월 안식년을 맞은 에비슨 부부는 쉐플리의 치과와 약혼녀 루스 래플리 가정을 방문한 뒤 쉐플리의 치과진료장비를 인수할 것이며, 월급은 존 세브란스와 알렌 부인이 지원할 것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1915년 2월 쉐플리는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치과교수로, 래플리와 함께 한국선교회로 임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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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플리의 치과진료 모습


3. 세브란스 치과학교실 개설의 역사적 의의
쉐플리 부부는 1915년 8월 31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그해 11월 1일 세브란스연합의학교에 치과학교실과 치과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개설된 치과학교실이었고, 종합병원급에서는 최초로 독립적으로 운영된 치과진료실이었다. 동양에서 해외선교운동과 연결된 치과가 생긴 것도 처음이었다. 초대 과장인 쉐플리는 구강진료와 교육,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목표로 미국의 치의학문과 진료기술을 소개하고, 치과학을 강의하였다. 이와 비교해 조선총독부의원의 치과는 외과 산하로 부설되었다. 쉐플리는 일본인 치과의사나 입치사들의 도제식 훈련과는 차별화된 일반의학교육을 강화해 치과진료의 범위와 질을 높이고, 공중구강보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과학적 치의학'을 한국에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쉐플리는 미국 치과대학 부속진료소를 모델로 치과진료실을 정비하였다. 방사선 촬영(1916)을 하고, 전기엔진이 달린 4대의 철제치과유닛체어를 갖추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기 방사선 촬영은 구강농양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진단기구였다. 기공은 기공사에게 맡겼다. 총독부 치과보다 기자재면에서 우수했다. 시술은 간단한 보존과 발치에서 보철, 교정, 악안면수술까지 전범위로 확대하였다.
쉐플리는 한국인의 일상적인 식생활과 부정교합 발생, 영구치 맹출과 발육 통계에 관한 연구를 계획하였다. 올바른 양치법과 구강병에 관한 대중 교육책자도 발간하였다. 또, 선교본부에 방사선 촬영과 치료비를 보조할 집단구강보건관리 예산을 요청하였다.
총독부는 1913년 '조선치과의사규칙'과 '입치영업자 취체규칙'을 공포해 일본인 치과의사와 입치업자의 신분을 보장했지만, 조선 내 치의학교 설립이나 치과의사시험은 실시하지 않았다. 세브란스연합의학교의 치과학 강의도 경성의학전문학교와 마찬가지로 의대생에 국한해서 하도록 지시했다. 총독부는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억제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하지만 쉐플리는 선교본부에 치과의사와 교수 몇 명을 더 보강하도록 요청하고, 관계당국과 협의해 치과학교나 수련기관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1920년 11월 안식년을 맞은 쉐플리는 대학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5년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쉐플리가 한국인 치과의사 양성을 위해 세브란스에 독립적인 치의학 교실을 개설한 것은 한국치의학 교육의 100년을 여는 뜻 깊은 일이었다.

4. 부츠의 세브란스의전 치과센터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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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

2대 치과과장으로 부임한 부츠(J. L. Boots, 1921. 3 - 1939)는 구강외과를 담당하면서, 대국민 구강보건교육과 의료윤리를 강조하였다. 부츠는 부임 직후 압축공기시설을 장착한 체어를 들여왔고, 최신 장비를 갖춘 치과건물을 짓기로 했다.
1925년 부츠는 치과건물 신축을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부츠는 10달러짜리 '벽돌 만개 팔기'라는 구호를 내걸고 모금운동을 펼쳤다. 가족들과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고, 여러 지역 치과의사회를 방문하였다. 한국의 풍물과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을 소개하는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29년 미국치과의사협회에서 1만 달러의 기부금을 약속하며 "때가 되면 한국인들에게 신축건물의 운영을 인계하라"고 지시하였다.
1931년 10월 건평 397㎡(120평)의 3층짜리 미국식 치과종합병원 건물이 완공되었다. 건물 신축을 계기로 세브란스 치과는 최신 설비와 27명의 직원을 갖춘 치과종합병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 모금부터 완공까지 치과학교실이 독자적으로 진행하여 이후 치과 수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되면서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은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치의학 연구와 진료, 수련의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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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츠가 미국치과의사회 모금으로 신축한 최신식 치과진료소

5. 이유경, 정보라의 유학과 맥안리스 과장
같은 시기 맥안리스 선교사는 보존·보철분야를 담당하며, 치과의사와 기공사 교육에 힘썼다. 진료내용은 반간접법 인레이, 도재소부치아, 국부의치 원피스캐스팅, 교합기 사용, 근첨멸균밀봉 신경치료 후 포스트 장착 등 미국 치의학술 발달과 같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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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맥안리스 가족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에서는 경성치전 졸업생 23명에게 대학원 과정과 같은 임상수련과 스스로 연구해서 발표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 한국인 치과의사들은 최소 5~6년 이상씩 근무하면서 최신 미국식 치과의술을 익혔다. 부츠와 맥안리스는 한국인 수련의들은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고 신의가 깊다고 평가해 강의와 치과운영을 맡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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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경

이유경은 미국 피츠버그치과대학 3학년에 편입(1935~1937)했다. 'New Conception of Articulator와 보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로 한국 최초로 미국치과의사(D.D.S)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강사로 진급(1938. 10)하였다. 정보라는 유학 전부터 각종 신문에 '치아위생과 어머니의 지킬 일', '무지각제 발명', '의치발명', '치아와 열등감', '치아와 범죄' 등을 연재하며 활발히 활동하였다. 1937년에는 맥안리스가 나온 노스웨스턴 치과대학에 입학해 1년 만에 '조선인의 혈액형과 우치발생빈도에 관한 연구'로 미국치과의사(D.D.S)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유학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세계 치의학술의 발전상을 흡수해 치과계의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부츠의 사임 후 3대 치과과장이 된 맥안리스는 치과학교실을 2년 간 운영하였다. 1938년부터 일제가 미국선교사들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탄압하면서 1941년 맥안리스도 강제추방 당했다. 이유경이 4대 치과과장에 임명되면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치과학교실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세브란스전문학교 치과학 교실에는 교수에 박용덕, 조교수 박유신, 강사 김정규, 조수 이동섭, 부수 노성윤, 박응시가 각각 활동하였다. 미군정 시기 이유경과 정보라는 보건후생국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경성치전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합병되도록 했다. 안종서는 해방 직후부터 6차례에 걸쳐 대한치과의사협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경성치과대학 교수진 명단 중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에서 수련 받은 사람들은 병원장 이유경, 보철부 정보라, 김정규, 보존부 박유신, 김만수 등이 있다. 이와같이 일제강점기 세브란스 치과학교실은 한국인 치과의사들을 유능한 지도자로 양성함으로 이후 우리나라 치과계의 선구자들로 만들었다.



2015/10/27 10:08 2015/10/27 10:08
윤영노 회장, 제중원 힐링센터에 1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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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노 ㈜쟈뎅 회장이 지난달 23일 의료원 발전기부금(제중원 힐링센터)에 1억원을 기부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의 동생인 윤영노 회장은 윤영달 회장과 세브란스병원과의 인연을 알게됐고, 의료원이 현재 계획하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휴식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인 제중원 힐링센터 건축소식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기부를 결정했다.
한편, 윤영달 회장과 크라운해태제과는 소아뇌전증 지원사업을 위해 10억원을, 연세암병원 건축을 위해 4억원 등 연세의료원을 위해 총 23억원을 후원한 바 있다.


2015/08/19 11:34 2015/08/19 11:34
'나눔·봉사·선교' 제중원 정신, 세계 속에 실천하다



세브란스의 손길이 머무는 곳 카자흐스탄, 스리랑카 등 의료를 통한 나눔 실천
2015년 여름. 제중원의 나눔과 봉사, 선교 정신이 세계 곳곳에 전해진다.
의료원은 1일 세브란스 은명대강당에서 2015 하계의료선교 파송예배를 가졌다. 이번 의료선교는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에쎌, 우사모, 에클레시아 등 총 10개팀, 24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카자흐스탄과 캄보디아, 짐바브웨, 베트남, 스리랑카를 비롯해 강원도와 충남 등 국외 7개 지역과 국내 3개 지역에서 제중원의 정신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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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와 교육연계 후원금 전달하기도
강남세브란스병원 1% 나눔기금 의료선교팀(이하 의료선교팀) 30명은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카자흐스탄을 찾아 의료선교봉사활동을 펼쳤다.
의대 윤영원 교수(강남 심장내과)를 단장으로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치과와 함께 간호사, 약사,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의료선교팀은 현지 선교사 2명과 함께 카자흐스탄 국립대학인 알파라비 대학의 도움을 받아 알파라비 대학에 설립된 검진센터와 캅차가이 시립병원, 동카자흐스탄 지역 등에서 956명(1,413건)을 진료했다.
의료선교팀은 알파로비대학교 검진센터에서는 대학관계자들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료와 교육, 상담을 진행했다. 또 캅차가이 시립병원에서는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강남세브란스의 우수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했다. 환자들은 새벽부터 의료선교팀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료선교팀은 환자들을 위해 캅차가이 시립병원에 후원금 1,000달러도 전달했다. 동카자흐스탄의 울켄나름병원에서는 구소련 당시 핵실험을 했던 지역과 가까워 다른 지역과 달리 피부질환이나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군이 많았다. 의료선교팀은 울켄나름병원에서 진료한 어린이 선천성 심장질환 환자들을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카톤병원에서는 현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진료했다. 현지 의료진들은 강남세브란스 의료선교팀의 진료에 참관하며 질문하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날 우스트카메노고르스크(외스케멘 한국 전문대학교)에서는 고려인협회와 협력해 고려인과 현지인을 진료했다. 오후 진료만 계획했던 의료선교팀은 진료시간을 오전까지 확대해 환자들을 진료했다. 치과의 경우 낙후된 시설로 책상 위에 환자를 눕혀 진료하기도 했다.
성형외과로 구성된 우즈베키스탄 의료봉사단(이하 의료봉사단)은 5월 23일부터 29일까지 타슈켄트를 방문해 시술과 교육봉사를 진행했다. 의료봉사단은 김용욱 교수를 단장으로 40여명의 소아어린이 환자에게 선천성 구개열과 선천성 구순열, 반흔구축제거 및 피부이식 수술을 시행했다. 또 현지 수련의 6명을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했다.
치과대학 에쎌팀은 6일부터 12일까지 스리랑카 마타라를 방문해 치과 의료봉사 활동을 진행했다.
치대 백형선 교수(교정과학)를 단장으로 40명이 참가한 의료봉사에서 봉사팀은 40여개의 캐리어, 총 무게 1톤에 가까운 치과 장비를 동원, 중앙집중식 장비시스템을 설치해 5일간 954명(1084건)을 진료했다. 이번 봉사에 참여한 간호대 학생들이 접수를 받고 고혈압과 당뇨 등 전신질환자에 대한 예진을 담당했다. 예진 후 진단에 따라 보존과와 치주과, 구강악안면외과로 이동해 진료를 받았다. 발치와 신경치료 환자의 경우 X-ray 촬영 후 각 유닛체어에서 와이파이를 이용해 아이패드에서 결과를 확인, 그 자리에서 바로 치료가 이뤄졌다. 소아 환자를 위해 팔찌 만들기와 구강위생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대기하는 환자들을 위해 간증과 찬양시간도 가졌으며 모션테이핑도 시행됐다.
실론티를 많이 마시는 문화 때문인지 이번 봉사에서는 스케일링과 신경치료 환자가 많았다. 봉사팀을 통해 몇 십 년 만에 처음 스케일링을 받는 환자도 있었다.
해우회는 11일부터 18일까지 캄보디아 헤브론 선교병원에서 치과 진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스케일링과 충치치료, 발치 등을 비롯해 구강위생교육을 진행했다. 또 구강암과 구순구개열 환자의 경우 헤브론 선교병원 내 수술실에서 수술을 통해 제중원의 정신을 실천했다.


짐바브웨와 베트남 강원과 충청까지 나눔봉사 이어져
이들 팀 이외에도 6개팀이 국내외 봉사활동을 준비하며 제중원 정신을 실천한다.
우사모(WELL international)와 짐사모, 연세 Cleft team은 각각 캄보디아와 짐바브웨, 베트남을 찾아 나눔과 봉사정신을 실천한다.
치과대학 LUKE회는 강원도 원주 가톨릭 종합사회복지관에서 28일까지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소금회와 에클레시아는 충북과 충남 등에서 의료봉사에 나설 예정이다.




2015/07/31 09:33 2015/07/31 09:33
펜화로 돌아온 '제중원'… 김영택 '펜화 기행'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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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그린 130년전 제중원  펜화가 김영택 화백은 2일부터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에서 '펜화 기행'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제중원 당시 모습 살려 숭례문 등 20여점 전시

전시 후 제중원 등 10여점 세브란스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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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이 펜화로 돌아왔다. 무수한 철필이 지나간 흔적이 모여 세브란스의 전신 제중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되살린 작품으로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를 통해 공개됐다.
펜화로 사라져가는 건축물들을 되살리는 김영택 화백이 2일부터 한달간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에서 '펜화 기행'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김영택 화백은 국제상표센터가 전 세계 디자이너 54명에게 수여한 '디자인 앰배서더'에 국내 최초로 선정됐으며, 벨기에에서 열린 제1회 세계로고디자인 비엔날레에 초청되는 등 국내외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펜화기행'과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 '멋진 세계 문화유산' 등이 있으며 현재 한국펜화가 협회 초대회장이다.
김영택 화백은 서구에서도 맥이 끊긴 펜화의 전통을 한국적 미감으로 재창조한 '한국적 펜화'의 명인이다. 사라진 한국의 건축문화재를 치밀한 펜화로 되살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인간의 시각적 특성에 맞춘 '김영택 원근법'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전통 건축물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 넣는다.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회를 접한 김 작가는 세브란스를 찾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해 개인전을 준비하게 됐다.
특별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재동 제중원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전시해 남다른 의미를 더했다. 펜화는 제중원의 당시 모습을 김영택 작가의 특색 있는 해석과 관찰, 고증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되살렸다. 펜화는 당시 제중원의 모습을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현재 헌법재판소 앞에 있는 백송의 모습에도 시대상을 담아냈다.
전시회에는 제중원과 함께 숭례문(2007), 화성 방화수류정(2010) 등 우리나라 유적지의 유수한 건축물부터 로마의 콜로세움(2012) 등 세계 각지의 전통 건축물 펜화 2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김영택 화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잊혀져가는 세계 각지의 위대한 건축물의 본모습을 통해 환자들이 마음의 안식과 치유의 의지를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일 개인전 오프닝 세레모니에는 김영택 작가를 비롯해 정남식 의료원장과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 등이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김영택 화백이 정남식 의료원장,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 최진섭 의료원 사무처장에게 제중원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5/07/29 10:37 2015/07/29 10:37
"제중원(펜화)은 세브란스에 대한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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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세브란스에서 뇌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때 세브란스의 치료에 감복하게 됐죠. 이번 전시회는 잘 치료해 준 세브란스에 대한 보은입니다."
2일부터 세브란스 아트스페이스에서 '펜화기행'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영택 화백. 그는 3년 전 외상성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다. 이전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는 모두 좋았다. 김 작가의 부인 역시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그래서 세브란스에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는 김영택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갖고 세브란스를 찾았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위해 '제중원'을 그렸다. 선명하지 않은 사진 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제중원의 진짜 모습을 찾고 싶었다.
"사진에 있는 백송도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담고 싶어 헌법재판소에 가서 확인했습니다."
제중원의 초기 모습을 담고 싶었던 김 화백은 당시 건축양식 등을 확인해가며 복원했다. 그렇게 완성된 제중원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시대를 넘어선 생명력을 가지게 됐다.
이번 개인전을 위해 그린 제중원(원화)을 전시회가 끝나면 세브란스에 기증한다. 제중원과 함께 광화문과 창덕궁 존덕정, 숭례문 등 판화 10점도 기증할 계획이다.



2015/07/29 10:28 2015/07/29 10:28
알렌 박사 파송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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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의 효시인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 '제중원'을 설립한 호러스 N. 알렌 박사의 모교회인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 사절단이 지난달 17일 의료원을 방문했다.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는 남대문교회의 '첫 공식주일예배 1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가운데, 알렌 박사의 기도와 노력의 결실인 의료원을 찾게 됐다.
데보라 패터슨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 담임목사 내외와 장로 6명, 오르가니스트 1명 등은 정남식 의료원장과 조재국 연세대 교목실장, 정종훈 교목실장, 안신기 의료선교센터소장을 만나 알렌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역사와 선교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제일장로교회가 알렌 박사를 조선에 파송해 조선에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알렌은 제중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의료선교의 소명을 실천했다. 그는 서양의학을 통한 빈민구제와 의학교육에 앞장섰다. 특히 의료선교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데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한국 첫 의료선교사인 알렌 박사가 미국 북장로회 제1호 한국 선교사인 헤론 가족의 한국 입국을 환영하는 저녁식사 후 함께 드린 주일예배가 첫 공식주일예배다. 1885년 6월 21일 알렌이 쓴 일기장에는 '우리는 오늘 저녁 8시 우리의 첫 일요예배를 보았다. 첫 일요예배에는 헤론 박사 부처, 스크랜튼 의사의 어머니, 나와 그리고 내 아내 등이 참석했다'고 기록돼 있다.
남대문교회는 제중원에서 시작된 교회로, 알렌 박사가 헤론 선교사와 함께 드린 첫 공식주일예배가 남대문교회의 실질적인 교회창립일이다. 당시 독립신문은 기사를 통해 제중원이 단순히 병원이 아닌 교회와 병원, 학교가 공존하는 '조선 장로교회 제중원 병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날 사절단은 종합관 4층 로비에 마련된 세브란스 모형을 보며 세브란스가 걸어온 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우리나라 의학박물관의 효시인 동은의학박물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2015/07/29 10:25 2015/07/29 10:25
곽정환 회장, 제중원힐링센터 등에 3억원



곽정환 코웰이홀딩스 회장이 지난달 24일 의료원 발전기부금(제중원힐링센터)에 2억원, 의과대학 소화기병연구소 발전기부금에 1억원을 기부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온 곽 회장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자 이번 기부를 결정했으며, "연세대와 의료원이 세계를 향해 더욱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5/07/27 17:00 2015/07/27 17:00
이무헌 회장, 의료원 발전기부금 등 1억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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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헌 (주)TGL 회장이 지난달 12일 의료원 발전기부금(제중원힐링센터)에 1억원을, 정형외과학교실 발전기부금으로 100여만원을 기부했다.
5년 전 백혈병 선고를 받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제2의 삶을 찾게 된 배우자의 모습을 보며 감사의 뜻을 밝혀 온 이무헌 회장은 이진우 대외협력처장으로부터 환자와 가족을 위한 힐링공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조금이나마 환자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은 의료원을 위해 지금까지 1억 2,000여만원을 기부했다.


2015/07/27 16:58 2015/07/27 16:58
권상범 대표, 제중원 힐링센터에 5,000만원





권상범 리치몬드과자 대표가 11일 의료원 발전기부금(제중원 힐링센터)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다.
권상범 대표는 주치의 정남식 의료원장에게 그동안의 진료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질병으로부터 고통 받는 환자들의 사회복귀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을 계획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기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이번 기부를 포함해 지금까지 의료원 발전을 위해 6,500여만원을 후원했다.




2015/06/25 11:44 2015/06/25 11:44
세브란스 선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
원목실, 제중원 130주년 맞아 선교적 의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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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 원목실이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의료원의 선교활동을 다시금 조명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원목실은 14일 종합관 교수회의실에서 '연세의료원 선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은 의료원의 선교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1부 '연세의료원 선교의 과거'에서는 최재건 연세대 신학과 교수가 '알렌의 제중원 설립과 에비슨의 개혁 및 새 병원 건립'에 대해, 장신대 신학과 임희국 교수는 '세브란스의 발전과 비상'을 발표했다. 이어 의대 신규환 교수(의사학과)가 '전환기의 세브란스:한국인 리더십 하의 선교활동'을,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는 '연세합동과 의료원 체제 이후의 선교활동'에 대해 소개했다.
이어 진행된 2부 '연세의료원 선교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안신기 의료선교센터 소장이 '의료선교센터의 선교활동과 과제'를, 정종훈 교목실장이 '원목실의 선교활동과 연세의료원 선교의 미래와 과제'에 대해 발표하며 의료원의 향후 선교활동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정종훈 교목실장은 "선교사 알렌을 통해 생겨난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역사는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거쳐 오늘의 의료원으로 이어졌다"면서 "의료선교기관으로 의료원은 앞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되는 사명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15/05/27 13:10 2015/05/27 13:10
엄영선 후원자, 제중원 힐링센터 등 2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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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선 후원자가 7일 제중원 힐링센터 건축기금과 의료선교센터 의료선교후원금으로 각각 1억원을 기부했다.
의료원장실에서 진행된 전달식에는 정남식 의료원장과 이진우 대외협력처장, 안신기 의료선교센터소장이 참석했다.
엄영선 후원자는 배우자 김건철씨와 세브란스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했다며, "기독병원으로 인간의 총체적 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의료원이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앞서나가는 의료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배우자인 김건철 후원자는 지난해 12월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후원금으로 1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2015/05/26 17:12 2015/05/26 17:12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연속성
한국의학사 연구의 태두이자 서울의대 의사학교실을 창설하고 주임교수를 지낸 김두종 박사는 그의 대표저술이자 한국의학사의 고전인 <한국의학사>에서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연속성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서양의학은 왕립병원인 광혜원으로부터 시작되어 제중원을 거쳐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발상지로서 서양문화를 직접으로 가져오게 한 영예의 전통을 자랑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 전해 온 근세의학의 역사 중에 가장 광채 있는 페이지를 장식한 것도 세브란스병원이거니와, 우리 의학의 발전적 과정에 있어서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하게 된 것도 세브란스병원이다."
이처럼 한국의학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두종 박사가 학문적으로 인정한 사실을 그에 비해 역사적 식견이나 전문성이 훨씬 떨어지는 자교의 후배 교수들이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낸 것이 소위 '제중원 국립병원설'이고, 그에 기초한 뿌리 만들기이다. 세브란스가 제중원을 직접 계승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자료는 수없이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제중원이 세브란스로 이행되는 과정을 간략히 서술하고, 그에 이어서 세브란스가 곧 제중원임을 말해주는 각종 자료들을 제시하고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1. 초기 제중원의 이중성

알렌의 제안에 의해 설립된 제중원은 형식적으로는 조선정부의 기관이었으나 내용적으로는 미북장로교 선교부와,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미국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정부가 제중원을 국내 업무를 관장하던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 소속으로 두지 않고 외교와 통상 업무를 관장하던 외아문(外衙門) 소속으로 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조선정부가 서양 의술을 펴는 사업을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외국의 문화를 수입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중원의 설립이 조선정부와 알렌 개인의 관계 속에서 비롯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조선정부와 미국의 외교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사로서 알렌의 입지도 다소 특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동문학(同文學)이나 육영공원(育英公院)의 경우는 조선정부가 주체가 되어 교사를 채용한 만큼 적절한 지위와 보수를 보장하고 그에 상응하는 의무규정을 부과하였다. 그에 비해 제중원 의사들에게는 이 같은 의무 규정이 없었다. 그 이유는 조선정부가 알렌을 비롯한 미국인 의사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피고용인이 아니었으므로 의사에 대한 별도의 보수 규정도 없었다. 조선정부는 병원 건물과 운영경비를 지원했고, 선교부는 의료 인력을 파견해 실질적인 병원의 운영을 담당했다. 이처럼 제중원은 설립 초기부터 조선정부와 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의료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시기 제중원의 운영방식을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병원의 소유권은 조선정부가 갖고 있었으나 운영권은 선교부에 위탁한 위탁경영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보다 비근한 예를 든다면 현재 서울시 소유의 시립 보라매병원을 서울대병원이 위탁경영하고 있는 형태에 정확히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울대병원이 시립 병원에 의료진을 파견해 운영하는 것은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제중원이 운영된 방식과 동일하다. 이런 이중성을 말해주는 또 다른 증거는 제중원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조선정부의 방식이다. 조선정부는 제중원과 관련된 일을, 특히 제중원에서 진료하는 선교의사들에 관련된 일은 미 공사관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통해 처리했다. 만약 조선정부가 단독으로 제중원을 운영하였다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2. 제중원의 선교부 이관
헤론의 사후 부임한 빈튼(C. C. Vinton)이 부임 직후부터 병원 재정의 자유로운 지출 등 제중원 운영과 관련되어 조선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결국 조선정부와의 갈등으로 빈튼이 교체되고 후임으로 에비슨이 1893년 7월 도착하면서 제중원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런데 1894년 4월 에비슨이 지방에 며칠 왕진을 갔다 온 사이에 수술실로 만들려고 준비해둔 방을 주사들이 마음대로 일본인 의사에게 세를 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주사들의 전횡이 계속되는 동안은 병원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에비슨은 1894년 5월 10일자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일할 수 없으므로 사직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와 함께 만약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전적으로 선교부에 넘긴다면 정부의 지원 없이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당시 갑오개혁을 추진하며 재정부족으로 곤란을 겪던 조선정부는 9월 27일 에비슨의 요구를 수락하였다. 그리고 운영권을 넘기는 마당에 조선관리들을 파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히고, 향후 제중원 부지를 반환할 경우에는 건물의 신개축에 들어간 비용을 청산하기로 하였다.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완전히 미국 선교부에 넘기는 데 동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1894년 9월말 이후 제중원은 에비슨의 전관 하에 미국 북장로회의 병원으로 운영되었다. 제중원이 설립된 지 9년만에 병원의 운영 주체와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전의 제중원이 조선정부와 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병원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데 반하여, 이제부터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민간병원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운영권이 선교부로 넘어온 1894년 이후부터 제중원은 명실상부한 선교병원으로 성격이 변환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제중원은 조선정부의 조직기구에서도 빠지게 된다. 병원으로 사용하는 건물과 대지는 조선정부의 소유이지만 제중원이란 병원 조직은 조선정부와는 무관해진 것이다. 특히 1904년 남대문밖에 새롭게 제중원, 즉 세브란스 병원을 짓고, 이듬해인 1905년에 과거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대지를 조선정부에 반납함으로써 모든 관계는 정리된다.


3. 연속의 증거
세브란스병원이 제중원을 계승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자료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세브란스 내부의 자료이다. 이는 세브란스의 내부 구성원들이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자료이다. 다음으로는 외부의 자료이다. 이는 세브란스의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를 말해주는 자료이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사료를 종합해보면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연속성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가) 내부 사료
세브란스 병원이 제중원을 이었음을 증언하는 내부의 자료는 무수히 많다. 여기서 그 자료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중요한 몇 가지 자료들만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세브란스 병원 정초식 초청장을 들 수 있다. 1902년 11월 27일 남대문 밖 복숭아골에서 새로 짓는 제중원인 세브란스병원의 정초석을 놓는 식이 열렸다. 이 정초식에 당시 조선에 있던 각국의 외교사절들과 정부의 인사들이 초청되었다. 초청장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본 월 이십칠 일 오후 세 시에 남대문 밖 새로 짓는 제중원(세브란스기념병원) 기초의 모퉁이돌을 놓겠사오니 오셔서 참예하심을 바라옵니다. 제중원 백." 이는 즉 세브란스병원의 설립 당시부터 세브란스병원과 제중원의 연속성이 전제가 되고 내부적으로도 인정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이 명백한 증거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 의사들이 서양식 병원으로서의 제중원의 브랜드 가치를 선교의사들이 이용하기 위해 전임 근무지인 제중원을 병기한 경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중원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내외에 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거기에 일한 선교의사들이지 제중원의 행정주사나 김윤식과 같이 서양의학을 전혀 모르는 조선의 관료가 아니었다. 서울대병원은 마치 제중원의 브랜드 가치를 만든 사람이 따로 있고, 그것을 선교의사들이 이용하려고 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1900년대 에비슨은 국문 의학교과서를 여러 종류 발간했다. 이들 교과서의 표지에는 발행처가 황성 제중원으로 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후 세브란스에서 발간되는 요람을 비롯한 각종 학교 발행물, 또 선교보고서 등에도 공히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적 기원을 서술할 때는 반드시 제중원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의 사실은 세브란스의 내부 구성원들이 세브란스병원의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연속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반면 서울대병원은 적어도 1980년대까지 제중원을 서울대병원과 연결시키는 언급 자체가 외부적인 언급은커녕 내부적인 언급 자체도 부재한다. 총독부의원의 연혁이나 그것을 답습한 서울대병원의 연혁은 적어도 1980년대 이전에는 광제원을 자신들의 기원으로 기록했다.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뿌리라는 주장은 1980년대부터 스스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 외부 사료
먼저 조선정부가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으로 인식하고 그렇게 부르는 사료가 있다. 1906년 6월 4일자 <구한국관보>의 기사로 여기에 제중원 찬성금 3,000원을 지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부가 제중원, 즉 세브란스병원에 찬성금을 지출하는 이유는 이전에 올린 내부문서에 다음과 같이 잘 기술되어 있다. "제중원의 설치가 이미 수십년이 지났는데 백성의 생명을 구제하는 데 열심이어서, 京都 민생의 병이 있으나 의지할 데가 없는 자와 치료를 하여도 효과가 없는 자가 제중원에 부축되어 이르면 정성을 다해 치료한다. 죽다가 살아나고 위험한 지경에서 목숨을 부지하게 된 자를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인데 아직 한마디 치하하는 말이 없고 한 푼 도와주는 돈이 없으니 이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제중원을 돕는 돈을 보내자는 의견이 이미 정부의 방침인 바 결코 보류할 수 없어 이에 송부하니 잘 검토한 다음 찬성금 3,000원을 예산 외에서 지출하여 제중원에 보내서 그 널리 시술하는 아름다운 뜻을 길이 장려함이 필요하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조선정부가 '제중원 찬성금 3,000원'을 지출하기로 결의한 것은 1906년으로 이는 1904년 세브란스병원이 설립되고, 1905년 과거 병원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대지의 반환이 이루어진 이후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즉 조선정부가 세브란스병원이 세워지고 난 이후에도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이라 지칭하고 있는 것은 조선정부가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의 연속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가장 공식적인 정부문서인 관보에 기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료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찬성금을 주자고 발의한 사람들은 친일관료들일 것이라며, 엉뚱하게 찬성금 문제와 친일문제를 연결시켜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친일관료인지 분명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추측을 남발하는 서울대병원식의 역사서술은 여기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친일문제로 말하면 서울대병원은 할 말이 없다.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병원이기 때문이다. 대한의원 개원기념사진첩의 첫 장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중심으로 이완용 등 을사오적의 사진이 실려 있다. 이는 단적으로 대한의원의 성격을 말해준다. 대한의원은 친일병원 정도가 아니라 일제의 병원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신문자료가 있다. 신문자료는 당대 사회의 일반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따라서 신문에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기사화되는가를 보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우선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된 직후인 1900년대의 <황성신문>에는 세브란스 병원을 제중원으로 지칭하는 기사들이 여럿 나온다. 그뿐 아니다. 이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1920년대에도 여전히 신문에서는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으로 표기했다. 대표적으로 1922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제중원 입원료 각동이 모다 내려"이다. 기사의 내용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남대문밖 제중원은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 공헌이 많은 병원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인데..." 여기서 세브란스병원이 세워진 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신문에서는 여전히 세브란스 병원을 제중원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음을 말해주는 안팎의 사료들은 산재해 있다. 반면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의 관계, 혹은 연속성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증거 사료의 부재를 서울대병원은 오로지 국립병원설이라는 허술한 논리의 주장 하나로 대신하고자 한다. 역사는 사료를 토대로 하는 것이지, 자신의 바람을 추측과 가정에 담아 전개하는 말장난이 아니다. 또 선교사들의 활동을 폄훼한다고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기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상식에 부합하는 역사인식을 바라는 바이다.




2015/05/15 10:51 2015/05/15 10:51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강변하는 주장의 유일한 논리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동일한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립병원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요소들이 억측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강변하는 주장의 유일한 논리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동일한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립병원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요소들이 억측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 제중원은 국립(National) 병원이었나?
제중원은 알렌의 요청에 의해 조선정부에서 설립한 병원이었으며, 내용상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와 조선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동안 제중원의 운영주체를 두고 다소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중원의 운영이 어느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제중원을 바라볼 때 정부의 병원이자 선교병원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설립 주체에 관한 문제로 돌아와 제중원이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제중원을 지칭한 당시의 어떤 사료에서도 제중원을 '국립'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중원을 지칭할 때는 왕립(왕실), 공립, 혹은 정부의 병원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였으나 근대국가에 한해서 붙일 수 있는 '국립'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또 제중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설립 이전 우리나라 역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정부 기구나 기관을 지칭할 때에도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이나 조선시대의 성균관이 나라에서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 국자감'이나 '국립 성균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국립이라는 호칭은 근대국가인 대한민국이 설립한 기관을 지칭할 때에나 적합한 말이지 왕조 시대의 국가가 세운 기관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국립'은 원래 존재했던 용어가 아니라 'national'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nation'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말한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근대 이전 왕정 시대에 세운 기관을 '왕립(royal)'기관이라 하지, 거기에 '국립(national)'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국립'은 근대국가가 설립한 기관에만 붙일 수 있는 용어이므로,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운 기관에 대해서만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이나 고려 등 전근대 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기관들에 '국립'이란 수식어를 무분별하게 붙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명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역사적인 용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중원을 굳이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서울대학병원과 제중원을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는 누구인가?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국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답은 당신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이라거나 '남자'라고 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의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혹은 남자들 가운데 어떤 특정 개인이 당신의 아버지인가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많은 국가들 가운데 어떤 국가가 당신의 설립주체인가를 묻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특수한 개별 병원이지, 보편적 국립병원의 이데아가 아닌 다음에는 대한민국이 자신의 설립주체라고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은 이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의 설립주체는 국가라는 무의미한 대답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왜 이처럼 무의미한 답변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제중원을 국립병원으로 규정한 의도와 맞닿아 있다.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를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제중원은 조선이라는 특정 나라의 병원이 되고, 서울대병원의 물리적·실질적 전신인 조선총독부의원의 설립주체는 일본제국임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과 자신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다 조선국-일본제국-대한민국을 연속적 주체로 인정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의 설립주체를 보통명사인 국가로 규정하고, 자신의 설립주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국가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서울대병원이 고유명사로서의 국가와 일반명사로서의 국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의도적으로 범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

3. 국가중앙병원설은 왜 등장했는가?
최근 서울대학병원의 기원에 관해 이루어진 논의 가운데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진 제중원이나 광제원이 대한민국이 설립주체가 되는 서울대병원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들의 법률적인 승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근대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각 시대의 국가중앙병원이 수행해 온 역할을 살펴보는 가운데 서울대병원의 역사적 모습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것은 "오늘의 서울대병원의 위상이라든가 성격, 지향하는 바 등과 관련해 과거 병원들의 성격과 모습 등을 파악함으로써 '정신의 계승' 차원에서 서울대병원의 기원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소위 '국가중앙병원설'이다.
이는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을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으므로 이를 우회하기 위해 한 발을 빼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1978년 서울대병원이 법인화된 이후 서울대병원은 엄밀히 말해 더 이상 국립병원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적 위치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정신적 차원의 계승을 말하게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국가중앙병원설이다.
먼저 여기서 살펴보아야할 점은 서울대학병원이 '국가중앙병원'이라고 했을 때 '국가중앙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어상 그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들이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 보인다. 도대체 누가 그런 역할을 서울대병원에 부여했으며, 국가중앙병원의 정의를 내렸는가? 누구도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린 바 없는데, 서울대병원이 스스로를 '국가중앙병원'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은 다른 국공립병원이 지자체나 보건복지부에서 관리를 받는 것과는 달리 교육부 산하에 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옮기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다른 국공립병원의 네트워크와 동떨어져서 별개로 존재하는 병원이 무슨 근거로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주장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4. 제중원은 조선시대 국가중앙병원이었나?
조선정부는 알렌의 제안에 의해 광혜원을 설치하며 그것이 이미 혁파된 혜민서(惠民署)와 활인서(活人署)의 정신과 역할을 이어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서 혜민서는 조선시대의 의료체계인 삼의사(三醫司) 체계에서 세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기관으로 주로 돈이 없어 의료헤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백성들의 질병 구료와 여기에 소요되는 약재의 관리를 맡던 기관이었다. 혜민서에서는 의학교육도 담당했으나 이는 전의감(典醫監)보다는 한단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활인서는 삼의사(三醫司)에 포함된 기관은 아니지만 혜민서 다음의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기관이었다. 활인서에서는 주로 도성 내의 가난한 병자들을 구료하였는데 특히 기근과 전염병이 돌 때 일반 백성의 구호를 담당하였다. 요컨대 혜민서와 활인서는 빈민구료를 위한 의료기관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내의원(內醫院)은 왕을 비롯한 왕족의 치료를 담당하는 것이 본래 의무였으며 의서의 편찬과 같이 국가가 주관하는 주요한 의학학술활동도 내의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밖에 왕실용의 약재도 관리하는 등 내의원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의료기구였다. 다음으로 전의감은 내의원에 이어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 기관으로 정부의 중앙관료와 종친의 진료를 맡고 있었고 그밖에 의학교육, 구료관 파견, 궁중용 약재의 공급과 하사 등의 일도 담당하였다. 특히 의학교육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시대에 정부에서 관장하던 의료기구 중 소위 서울대병원에서 생각하는 '국가중앙의료기관'에 해당하는 것은 내의원과 전의감이며, 같은 정부기관이기는 하지만 혜민서와 활인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그렇게 되면 다른 국공립병원처럼 대민진료에 치중하게 됨으로써 연구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관을 강하게 거부했다. 즉 대민진료는 서울대병원의 입장에서 중요한 고유의 기능이 아닌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은 혜민서와 그를 이은 제중원이 아니라 내의원이 되고 싶어 하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런 서울대병원이 이제 와서 대민진료기관이었던 제중원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5. 서울대병원은 조선왕조의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하는가?
국가중앙병원설과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서울대병원이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서울대병원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제중원과의 직접적 연결을 주장할 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조선총독부의원이나 경성제대와의 연속성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사실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기원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제국대학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들의 존재이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의 우수성과 서울대병원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은 연속성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이 이토 히로부미의 기획으로 설립된 병원임에도 대한제국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일제의 식민기관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한의원이 일제의 식민기관으로서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대 부속의원 등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서울대병원이 국립병원의 논리로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면 일제강점기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등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대병원은 이를 의식해 실질적인 연속성이 아니라 제중원의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이라고 발을 빼기 위해 만든 것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의 국립병원이 '국왕의 시혜'라는 과거 왕조시대의 이념에 따라 세워진 병원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제중원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를 베푸는 궁극적 주체는 국왕이다. 왕조시대의 의료는 군주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가부장적 봉건 이데올로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의료는 국왕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다. 서울대병원은 왕조국가 조선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세운 병원이다. 따라서 서울대병원이 가공의 기원 만들기를 통해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과거 왕조시대 시혜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의 정신적 기원을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2015/05/07 17:24 2015/05/07 17:24
세브란스로 돌아온 애국 호소문





10일 제중원 130주년 기념식을 맞아 의료원을 방문한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쉴라 호린은 에비슨 박사의 안경과 함께 당시 역사를 담은 다양한 문서도 함께 기증했다. 문서 중에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한국교회의 기독교대표자들이 일제의 탄압과 그로 인한 피해상황을 전 세계의 기독교계에 알리는 호소문도 포함됐다. 동은의학박물관은 호소문을 문화재청에 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2015/05/07 17:17 2015/05/07 17:17
제중원 130주년 기념 단행본 출간
세브란스로 이어지는 제중원 설립의의 집중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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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시아 역사 속의 의사들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엮음)

의학사연구소가 5년여 동안 한국, 중국, 일본 등 각국의 의학사 권위자와 함께 발표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아시아의 의사직의 전통은 근대서양과 같이 전문직업적 의료시술의 전통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효라는 유교적 전통과 비직업적 의료시술에 바탕한 것이었다. 이 책은 '주례'의 의사로부터 동아시아 근현대의 의사와 한의사에 이르기까지 의사를 둘러싼 제도, 면허, 인물, 사회적 지위 등 동아시아 의사들의 존재상을 밝혔다. 동아시아 역사 속의 의사상을 다룬 전문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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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아시아 역사 속의 선교병원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엮음)

제중원 126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제심포지엄 내용을 근간으로 구성한 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선교의학과 선교병원이 어떻게 도입·발전됐으며, 제국주의와 (반)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선교병원이 국가권력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관립병원과는 어떠한 차별성을 가졌는지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했다. 국제세션에서는 한국의 제중원, 해주요양원, 중국의 시병원, 일본의 성누가의원 등에 관한 논의가 실렸고, 국내세션에서는 미국 북장로회의 제중원, 캐나다장로회의 용정 제창병원, 호주장로교회의 배돈병원, 미국 감리교의 원주 서미감병원, 재림교회의 위생병원, 그리고 연세의료원의 의료선교 사역 등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속 선교병원의 활동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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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중원 뿌리논쟁
(여인석·신규환 지음)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주장을 시작하게 된 배경, 경과과정, 논점 등을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사료와 미해결과제 등을 제시했다. 책은 제중원 창립 70주년을 축하하는 서울의대의 축하광고와 사실을 왜곡하는 엉터리 사료의 진실, 서울대병원이 모태로 추숭하는 대한의원의 본질 등을 드러낸다. 저자들은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논리찾기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국가중앙병원이라는 것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식민지의료기관인 광제원과 대한의원을 계속해서 기념할 것인지, 조선총독부의원과 경성제대 의학부 부속의원의 계승문제 등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부터 대답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서 제중원 뿌리논쟁의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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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중원·세브란스 이야기
(신규환·박윤재 지음)

의대 신규환, 박윤재 교수가 월간 '세브란스병원'에 4년 동안 연재한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제1부는 갑신정변 이후 제중원의 탄생부터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성립을 전후한 시기까지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뤘으며, 제2부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부터 1970~1980년대까지 활약했던 인물 중에서 한국의료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뤘다. 책을 통해 격랑의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세브란스병원이 제중원 창립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하기까지 어떠한 굴곡을 거쳤는지,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사람들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다양한 경험들을 확인할 수 있다.




2015/05/07 16:24 2015/05/07 16:24
제중원 - 세브란스 130주년 행사 성료
심포지엄, 기념음악회, 미디어파사드 등 행사 다양…마크 리퍼트 미국대사 축하메세지 보내와
알렌, 에비슨 등 선교사 후손 유물 기증…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국민의 병원으로 성장한 세브란스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더욱 높이는 시간이 마련됐다.
의료원은 10일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학술심포지엄, 음악회와 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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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태극훈장
에비슨 안경 세브란스로 돌아와

제중원 130주년 기념식이 오전 10시 세브란스병원 6층 은명대강당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특별초청을 받은 알렌과 에비슨 박사, 그리고 세브란스씨의 후손들이 미국에서 참석해 제중원의 창립정신을 더욱 빛냈다.
김춘진 국회보건복지위원장, 박상근 대한병원협회장,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과 김석수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박삼구 연세대학교 총동문회장, 홍영재 연세의대 총동창회장, 미8군 관계자 등 국내외 인사도 축하의 자리에 참석했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제중원과 세브란스를 설립한 위대한 선각자들의 정신을 계승해 가치를 나누는 의료기관, 대한민국 의료를 책임질 의사를 배출하는 의학 교육기관, 의학 연구를 선도하는 세계적 의학연구기관이 되어 인류건강 증진에 기여 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세브란스에서 치료 받은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는 영상메세지를 통해 "지난 130년간 미국, 그리고 미8군과 긴밀한 협력을 갖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이 세계 최고의 의료기관으로 자리 잡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축하했다.
또, 김춘진 국회보건복지위원장과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도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기여한 세브란스병원의 공로를 언급하며 글로벌 의료기관으로 더욱 성장하기를 당부했다. 특히 기념식에서는 알렌 박사의 고손녀 캐서린 하만이 할아버지의 태극훈장과 도관(차 주전자)을, 그리고 에비슨 박사의 증손녀 쉴라 호린이 에비슨 박사의 안경을 기증했다.


'제중원이 곧 세브란스' 확인
130주년 기념 서적 출간

130년의 흐름을 살피는 학술 심포지엄도 준비됐다. 오후 2시부터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의대 강당에서는 '제중원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다.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가 좌장을 맡는 1부 에서는 ▲제중원 설립과 선교사들의 역할(연세대 신학과 최재건 교수) ▲제중원과 에비슨(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에 대한 주제발표 진행됐다.
유승흠 명예교수가 좌장을 담당한 2부에서는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와 쟁점(연세의대 의사학과 신규환 교수) ▲'국립병원'계승론의 허상(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 ▲제중원과 민간사회의 국민 만들기(중앙대 역사학과 장규식 교수) 주제의 일반발표가 이어졌다.
마지막 3부는 발표자 전원이 모두 참여하는 패널토의 시간으로 꾸며졌다.
심포지엄은 의료선교사들의 역할과 눈부신 활동상과 함께 제중원과 지금의 세브란스를 하나로 이어 '제중원이 곧 세브란스'임을 학술적 자료로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의사학과와 의학사연구소는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관련된 4권의 단행본을 출간해 학술적 관심도를 높였다.


음악회 미디어파사드 문화행사
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제중원 130주년을 축하하는 문화행사도 마련됐다. 연세대 백양아트홀에서 진행된 기념음악회는 연세대 음악대학 김관동 학장의 총괄지휘 아래, 이택주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연세신포니에타와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 테너 강무림, 피아니스트 한영란 등 국내 정상급 음악가들이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 청산에 살리라 등을 들려줬다.
기념행사의 대미는 미디어파사드(Media Fasade)가 장식했다. 미디어파사드는 입체영상을 건물외부 벽을 스크린 삼아 투사해 건축물을 시각적 아름다움 뿐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물로 사용하는 예술이다.
연세대 백주년 기념관에서 복원된 광혜원 건물벽으로 LED영상을 송출해 130여년의 제중원과 세브란스 역사를 보여준 미디어파사드는 해당분야 거장으로 손꼽히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김형수 원장이 프로그램 총괄연출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 의학전문박물관의 효시로 불리는 '동은의학박물관'도 제중원 130주년에 맞춰 재개관했다. 박물관은 휴지기간 동안 관내 정리와 전시품 재배치를 통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향상시켰으며, 전체 전시품의 30%를 새로운 유물로 교체해 새로운 의학역사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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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의학박물관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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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개원130주년기념학술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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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사드




130주년 역사를 기억하며
세브란스 가치 정립


의료원은 10일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학술심포지엄, 음악회와 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와 뿌리를 재조명했다. 제중원의 창립정신을 되새긴 이번 130주년 행사에서는 특히 알렌과 에비슨, 세브란스의 후손들이 초기 선교사들의 유물을 기증해 역사적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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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주년 기념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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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7 10:36 2015/04/17 10:36
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역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이 취하는 전략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처음 제중원이 정부의 기관으로 시작된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최초의 국립병원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근거로 서울대병원과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소위 국립병원설로 부를 수 있는 이 논리는 서울대병원의 핵심적 주장이다. 이 주장의 허구성에 대해서는 다음 회의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중원에서 알렌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색깔을 지우려는 시도이다. 이 작업은 집요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를 위해 다시 두 가지 논리가 동원된다. 하나는 조선정부가 원래 서양식병원을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으므로 알렌이 없었어도 어차피 병원이 설립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제중원 설립 과정에서 알렌의 역할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알렌은 조선정부가 고용한 고용의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따라서 제중원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조선정부라는 논리이다.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1. 제중원의 설립 과정
갑신정변의 와중에 심한 자상으로 생명이 위태롭게 된 민영익을 치료함으로써 왕실의 신임을 얻게 된 알렌은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우선 의사로서 국왕인 고종과 민비의 시의로 임명되었다. 또한 왕의 어머니인 조대비를 치료하기 위해 그 거처 안까지 들어간 것 역시 외국인, 그것도 남자 의사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조정의 신임을 얻고 자신에 대해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알렌은 자신감을 얻고 해외 선교에 나섰던 자신의 뜻을 펼칠 방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85년 1월 22일 미국 공사관 대리공사인 폴크를 통해 서양식 병원의 설립을 다음과 같이 조선정부에 건의하였다.


"조선정부가 만약 병원을 건설한다면, 저는 마땅히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다할 것이며, 귀 정부가 제공하는 급여는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단지 몇 가지 요구되는 일이 있습니다. 첫째, 서울에 공기 좋고 청결한 가옥 한 채. 둘째, 병원 운용에 필요한 등촉 및 연료, 보조원, 간호사, 하인 등의 월급, 가난한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음식 등. 셋째, 각종 약재비 삼백원 정도 등. 조선정부가 이것들에 대해 허락할 뜻이 있다면, 저는 또한 의사 1명을 자비로 초청하겠으며, 6개월 후에는 이 병원에 근무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그 의사는 조선정부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겠습니다. 급여를 받지 않는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는 백성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병원사(病院社, benevolent society)라는 조직이 있는데, 저와 그 의사는 그 조직에서 급여를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병원은 청나라의 베이징, 톈진, 상하이, 광둥 등과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 두 개의 병원은 리훙장 자신이 스스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병원을 건설하는 것이므로 이 병원은 조선정부의 병원이며, 백성들은 병이 생기면 삼가 몸을 살필 수 있으니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조선의 대군주께서 만약 동의해주신다면 흔쾌히 처리될 거라 생각합니다."(알렌의 「조선정부 경중건설병원절론」 중에서)




알렌은 이 건의문에서 조선정부가 병원 건물과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하면, 자신은 미국의 자선단체에서 급여와 생활비를 지원 받으며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알렌의 병원설립계획은 당시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묄렌도르프의 방해를 받았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고종의 계속적인 호의와 지지에 힘입어 병원설립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알렌 스스로도 병원설립안이 예상보다 훨씬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서양식 병원을 원했던 조선정부는 병원설립안의 협의를 위해 1월 27일 관리 두 사람을 알렌에게 보냈다. 그리고 2월 16일에 병원설립을 담당할 조선 측 대표로 김윤식을 임명하였다. 2월 18일 김윤식은 미국공사관을 방문하여 병원 건물로 현재의 헌법재판소 구내 북서쪽 부분인 재동 35번지에 해당하는 홍영식의 집이 선정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이어서 1885년 4월 3일 외아문에서는 새로운 병원의 개원 사실을 공포했다. 포고문은 북부 재동에 미국인 의사가 진료하는 병원을 개설하였고, 진료비에 해당하는 약값이 무료이니 누구나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알렌은 미국 선교부에 필요한 약품과 의료 기구를 주문했고 4월 9일부터 환자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은 특별한 개원 의식 없이 4월 10일 개원했다. 고종은 1885년 4월 12일 병원의 명칭을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으로 '광혜원(廣惠院, House of Extended Grace)이라 붙였다. 하지만 4월 26일 '사람을 구하는 집'이란 의미의 '제중원(濟衆院, House of Universal Helpfulness)'으로 개칭하였다.




2. 조선정부는 병원을 설립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가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병원설립의 과정은 알렌이 주도했다. 알렌은 조선정부에 보낸 제안서에서 병원으로 사용할 건물 하나와 약간의 운영비만 지원한다면 자신은 무료로 그 병원에서 봉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알렌의 제안을 조선정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개항 이후 조선정부는 서양의 문물을 도입할 의사를 갖고 있었다. 서양의학의 도입도 그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재원이었다. 의학을 비롯한 서양문물의 도입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된 부분은 많지 않았다. 특히 서양의학을 도입하려면 외국에서 의사를 초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를 부담해야 하지만 조선정부는 돈이 없었다.
조선의 상황은 개항 후 일본의 서양문물 도입 과정과 여러 모로 비교가 된다. 19세기 후반 이미 조선에 비해 월등한 경제력을 갖고 있었던 일본은 개항과 함께 각 분야의 전문가를 외국에서 초빙했고, 초빙된 외국인들이 놀랄 정도로 후한 보수를 지불했다. 의학의 경우만 하더라도 동경대 의대를 세울 때 독일로부터 두 명의 의학박사를 초빙했다. 이들의 흉상은 지금도 동경대 의대 캠퍼스 내에 있다.
아쉽게도 조선은 일본과 달리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의학의 경우도 서양의학 도입의 필요성은 논의되었지만 그것을 조선정부가 일본처럼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재정의 부족 때문이었다. 서양의학 도입의 의사는 있으되 그 의사를 실현할 재원이 없는 상태, 그것이 바로 알렌의 제안 당시 조선정부가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차에 알렌의 제안은 정말 매력적인 것이었다. 초빙을 하지도 않은 서양의사가 제 발로 조선에 찾아와서 건물과 운영비만 지원하면 무료도 진료를 하겠다니 조선정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알렌의 제안 이후 병원 설립이 알렌도 놀랄 정도로 빨리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3. 서울대병원의 역사인식이 가지는 문제점
제중원 설립 과정에서 알렌의 제안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은 알렌이 없었더라도 언젠가 병원은 설립되었을 것이므로 제중원 설립과정에서 알렌의 역할을 별것이 아니고 무시해도 좋다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주장은 학문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다.
우선 이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정을 근거로 실제로 이루어진 사실의 의미를 폄훼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역사는 실제로 이루어진 사실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학문이지 이루어지지 않은 가정을 토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소설이 아니다. 지금도 일제의 지배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쓴 가상소설이 있었다. 이처럼 실현되지 않은 가정 아래 쓰여진 글을 소설이라고 하지 역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에 관한 역사가 아니라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서울대병원식의 이러한 역사인식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점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가 아니어도 어차피 어떤 사건은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사건에서 그의 역할은 무시해도 좋다는 것이 서울대병원의 역사관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했던 행위의 내용과 그 의미를 묻고 평가하는 학문이다. 현실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을 누군지도 모를 가상의 익명의 인물로 대체하여 역사적 인물에 대해 자의적 평가를 일삼는 행위는 역사가 아니다. 만약 그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완용이 아니어도 어차피 일본은 조선을 합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가 이완용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일합방에서 이완용의 역할은 무시해도 좋다는 몰역사적 결론에 이른다.



4. 알렌은 조선정부의 고용의사였나
알렌을 제중원의 역사에서 지우거나 최소한 그 의미를 축소시키기 위해 서울대병원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주장은 알렌을 비롯한 선교의사들이 조선정부에 의해 고용된 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일반적으로 갑과 을의 고용관계에서는 계약서가 필요하고, 계약서에는 계약기간, 보수, 계약조건 등이 제시되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조선정부는 1899년 학부에서 설립한 의학교 교관으로 일본인을 고용한 적이 있는데, 그 계약서에는 위와 같은 계약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중원 의사들에게서 이러한 계약서와 계약내용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더군다나 병원설립을 직접 제안한 알렌에게 고종이나 조선정부가 계약관계를 요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조선정부가 제중원에서 일하는 선교사와의 관계에서 뭔가 불만스런 내용이 있을 경우, 그것을 해당 선교사에게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 공사관을 통해 전달하였다. 만약 서울대병원의 주장처럼 알렌이 조선정부의 고용의사에 불과했다면 본인에게 직접 말하거나 통보하면 되지 미국 공사관을 통해 조선정부의 의사를 전달하는 복잡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제중원이 사실상 온전한 조선정부의 병원이 아니라 미국과의 외교 관계 속에서 실제로 의료를 담당했던 미 북장로교 선교부와의 동거 속에서 운영되었던 일종의 합자병원이었음을 말해준다.



5. 알렌은 조선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았나
서울대병원에서는 알렌이 조선정부로부터 신수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알렌이 조선정부의 고용의사였다는 주장을 편다. 신수(薪水)란 땔감과 음료를 지칭하는 것으로 신수비란 월급, 생활비, 보조금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알렌은 1887년 1월부터 13개월 동안 매달 50원의 신수비를 받은 전례가 있다. 1886년 근대교육을 위해 설립한 육영공원의 교사 월급이 160원이었던 것에 비해 1/3에도 미치는 못하는 액수였다. 만약 알렌이 받은 돈이 제중원에서 일한 것에 대한 월급이라면 왜 의사의 월급이 교사 월급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아직까지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50원도 당시 조선의 형편에서는 많은 돈이었다는 정도의 설명만을 내어놓는 형편이다.
먼저 알렌이 받은 신수비의 액수를 볼 때 이 돈은 제중원 근무에 대한 월급이라기보다는 조선정부가 알렌의 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급하는 일종의 사례금의 성격을 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알렌은 자신이 받은 신수비의 성격을 밝힌 바 있다. 알렌은 귀국 후 출판한 책 Thing Korean(1908)에서 자신이 조선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국왕의 어의로서 일한 것에 대한 사례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의는 상근직이 아니어서 궁궐에서 요청이 있을 때만 들어갔다. 알렌은 이 책에서 어의로 일하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주로 밤에 불려가는 일이 많아서 밤에도 정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 또 왕자가 아프다고 해서 갔는데 잠들어버려서 기다려야 했던 어려움 등을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어의로서의 활동에 대한 대가로 사무실과 사례금, 각종 선물들이 주어졌다. 제중원 근무는 본인이 자청한 것이라 보수를 받지 않았지만, 어의로서의 이러한 번잡한 일들을 그가 무료로 수행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보수를 받았을 것이다.
알렌은 영국 공사관, 청국 공사관의 의사로도 일했는데 이 역시 상근직은 아니고 요청이 있을 때만 가서 진료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들 공사관 의사로 일하는 대가도 월 50원 정도로 알렌이 정부에서 받은 신수비와 거의 같다. 이를 통해 당시 어떤 기관의 비상근 자문의가 받는 적정 보수가 월 50원 정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알렌뿐 아니라 헤론과 에비슨이 신수비를 받은 것도 어의로서의 수고에 대한 보수였고, 비상근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적은 50원을 받았을 것이다. 알렌은 처음 그의 제안대로 제중원에서는 무료로 봉사를 했다. 따라서 어의로서의 수고에 대한 대가를 제중원 근무에 대한 월급으로 간주하고, 이를 근거로 알렌이 정부의 고용의사에 불과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2015/04/17 10:11 2015/04/17 10:11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제중원 제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뿌리논쟁이란

제중원 뿌리논쟁은 1980년대 초 한국의 근대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에 즈음하여 그간 누구나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여기던 제중원을 그것이 한때 조선정부 소속 기관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서울대학 측이 자신들의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서울의대 측이 일제가 설립한 제국대학을 직접적인 전신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취약하게 남아 있던 역사적인 정통성을 만들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제중원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부담스러운 과거인 제국대학의 역사를 건너뛰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은 기관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제대나 총독부의원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제중원 뿌리논쟁을 제중원이라는 제3의 대상을 두고 연세대와 서울대가 서로 자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기술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오해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서울대학 측이며 세브란스는 불가피하게 이 논쟁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된 이 논쟁은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제중원 뿌리논쟁이 진행되어온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이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기관의 기원인 제중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5. 관립병원의 기원 만들기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는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과 전문학교들을 미군정청이 통폐합하여 만들어진 대학이다. 서울대학은 이들 학교들의 대지와 건물 등의 물적 토대는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일제가 설립한 학교들의 연속이 아닌 새로 출발하는 대학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총독부와는 단절된 정부임과 마찬가지이다. 서울의대는 설립 이후 약 30년 동안 자신들 학교의 역사와 관련해 제중원을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1954년 5월 15일자 <세브란쓰>지이다. 여기에는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각계의 축하광고가 실렸는데, 서울의대도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광고를 실었다. 이는 당시의 서울의대가 제중원을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던 서울의대와 병원은 8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1946년 서울대학 개교 이래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30년이 지난 어느 날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부터 제중원 뿌리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논쟁이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과정은 다음과 같이 대략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 (1978-1997)
제1기는 1978년 서울의대가 '서울大學校 醫科大學史(1885-1978)'란 책에서 제중원이 자신들의 뿌리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本 大學附屬病院의 始初는 이보다 14年 앞선 1885年 3月에 齊洞에 設立된 王立病院인 廣惠院이라 하겠다. 財政難으로 한때 官制가 폐지되어 私立醫療機關으로 하여금 運營케 하였으나 國立인 지금의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附屬病院은 廣惠院에 비롯된다."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다는 사학계의 오랜 정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더욱이 서울대 사회학과의 신용하 교수가 규장각 자료 운운하면서 합세하여 대단한 학문적 근거가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82년부터 몇 년 동안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 되지 않았으며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가 1905년에 환수하여 이를 서울의대가 자신들의 전신이라고 내세우는 광제원의 확장에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제중원은 연세의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이 서울대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러는 사이 연세대학교가 창립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의학계 원로 정구충 박사가 대학의학협회지 1984년 10월호에 기고한 "한국의학 100년"이란 원고가 서울의대측 편집위원에 의해 변조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그동안 기자회견만을 했던 신용하 교수가 1995년에 들어 "광혜원과 근대의료의 출발"이란 글로서 자신의 정식 견해를 밝혔다. 신 교수는 이 글에서 1905년 4월 10일의 '제중원 반환', 1906년 5월 29일의 '제중원 찬성금' 및 '광제원 확장비'와 관련된 자료가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광제원 확장비"가 환수된 제중원의 모든 시설을 인수했다는 문제를 푸는 "보배 같은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편승해 서울의대 출신인 주근원은 자신의 책에서 "이런 경위를 세브란스 病院側에서 그 由來와 傳統을 이어받은 것으로 즉 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고 '醫學百年'이라는 冊子에서 밝히고 있어 서울大學校病院과 뿌리의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쓰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서울의대 및 신용하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제중원은 국립병원이었다.
2)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
3) 1905년 환수하여 광제원 확장에 사용하였다.
한편 연세의대는 1996년 2월 1일 의사학과를 신설하고 이러한 서울의대의 억지 주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자료를 수집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신용하 교수가 주장한 사실의 확인을 위해 규장각에 있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이때 몇몇 자료들을 발굴했는데 그 내역을 상세히 연구한 결과 신용하 교수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 주장임이 밝혀졌다. 모든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일부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첫째, 제중원 설립에 조선정부가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국립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사용된 적도 없고 적절한 표현도 아니다. 국립 서울대병원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왕립이 국립으로 돌변한 것이다. 둘째, 에비슨이 1894년부터 1905년까지 제중원을 위탁경영했다는 것인데, 위탁경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단지 사료상으로는 에비슨이 병원의 전권(전관판리, entire charge)을 행사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셋째, 신교수는 제중원이 광제원으로 통합·확장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제중원이 세브란스로 이전한 후, 구리개 제중원은 병원도 아닌 외교 고문관 스티븐스의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8년 3월 명백한 사료가 언론에 발표되자 신용하 교수는 더 이상 논쟁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였고, 제중원의 위탁경영 혹은 환수 등 서울의대 측의 억지 주장은 학문적으로 근거가 없음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제2기 (1998- 2007)
이러는 사이 서울의대측은 집요하게 또 다른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병원이며, 그 위상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1997년 10월 1일자 서울대학교병원보에 실린 '병원 연혁에 관한 좌담회'에서 근대의학 도입, 발전 과정서 국가중앙병원의 역할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서울대학교 병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3명의 사학자를 고용하여 2005년 '병원사연구팀'을 구성하고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주년 기념 사업추진단'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에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식과 함께 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대한의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서울대학병원측이 대한의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서울대학교 병원사」에 실린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한 서술에 잘 나타난다. 거기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명실상부한 大韓民(帝)國의 중추적 의학교육, 연구, 진료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기록하여, 일제가 광제원, 적십자병원, 의학교를 강제로 통합해 대한의원을 만든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를 위해 대단한 공헌이자 발전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서술태도는 대한의원 설립의 실질적인 주체나 설립의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내지는 간과하고 외형적인 현상만으로 이를 '발전'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이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식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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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한의원은 어떤 기관이었나? 대한의원의 설립은 통감 이또오 히로부미의 구상으로 그는 대한제국에 의해 나름대로 운영되고 있던 광제원, 의학교, 적십자병원을 하나로 통폐합하여 식민지적 의료 체계에 적합한 기관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1906년 7월 일본 육군 군의총감 사또(佐藤 進)를 위원장으로 하고 의학교 교관 고다께(小竹武次), 대한적십자병원 주임 요시모토(吉本潤亮) 등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大韓醫院創立委員會'를 조직하고 여기서 대한의원의 설립을 결정하게 하였다. 즉 대한의원은 이미 실질적인 주권을 상실한 우리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그 건립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기관은 "명칭은 대한의원이지만 통감부에 의해 운영되는 의료와 교육, 그리고 위생업무를 담당하는 보건기구로 외관으로는 한국민을 위한 발전된 최신식 의료시설로 선전되어 전시효과에는 큰 몫을 하였으나, 실은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 관리 및 그 가족, 그리고 일본인 거류민의 보건을 위한 의료시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의 언론은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의학교, 광제원, 적십자 병원을 세워 자주적인 의료체계의 확립을 기도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1905년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면서 좌절되고, 이들 기관들이 대한의원이라는 식민지 의료기관으로 전환됨으로써 단절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한의원은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식민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 통감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병원이다. 그런데 이처럼 일제가 설립한 병원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립의료기관이라 자칭하는 서울대학병원에서 13억원이란 거액의 국고를 들여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 측은 대한의원 기념행사를 홍보하며 처음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설립의 책임자뿐 아니라 건립위원회의 구성원들 전원이 일본인들이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설립의 전 과정이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감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대한의원 설립이 대한제국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고종의 형식적 재가와 순종의 개원칙어 등만을 강조하며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애써 감추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제중원 122주년도 함께 연결시켰다. 이는 혹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이 지적되더라도 대한의원을 제중원과 연결시킴으로써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희석시켜보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대한의원 100주년만을 기념한다면 서울대 측이 이제 제중원을 포기하는 듯한 인상도 줄 수 있으므로 다소 어색하더라도 제중원 122주년을 덧붙여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필자는 이 행사를 비판하는 '서울대학병원 1백주년, 기념할만한 일인가?'란 제목의 글을 교수신문에 기고했다. 그 내용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병원을 왜 서울대병원이 기념하느냐는 것이었다. 대한의원 기념사업에 대한 논란은 「신동아」에 기사화되었다. 기사 말미에는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전우용 팀장이 대한의원은 한국 의료계 전체가 반성적으로 공유할 경험적 자산이라며, 기념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실렸다. 이후 이 논쟁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사화되었고, 당사자들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졌다.
한편 2006년 10월 26일 열린 2006년도 국정감사 교육위원회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었다. 국회의원들은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14억원이란 거액을 투입하는 것을 지적하고 기념행사는 정당한 역사적 조명이 될 수 있는 학술행사로 제한하고 음악회와 한마음축제 등의 기념행사는 이사회에서 재논의하라고 촉구하였다.
한편 서울대 측은 대한의원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결국 기념우표는 발행되었다. 2007년에 들어 서울대병원장은 신년사에서 '2007년은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년이 되는 우리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해'임을 언급하였다.
3월 15일의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년 행사가 가까워지며 이 행사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제기되었으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울대 병원 측은 일제 식민지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회피성 발언만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기념사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월8일 발표한 "국립 경북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은 100주년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 사업은 해방과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짓고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성명서는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됨으로써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를 계기로 서울대병원이 당초 의도했던 제중원과의 연결고리 보다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월 말이 되면서 기자들의 취재가 계속되자 논리가 궁색한 서울대병원 측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급기야는 그간 해온 주장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기념행사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당화했다."도둑질을 한 아버지라도 제사는 지내야 한다. 다만 축하 개념의 기념이 아닌 단순한 기억 의미의 기념일 뿐이다."

제3기 (2007- 현재)
대한의원 기념사업의 강행으로 홍역을 치른 서울대병원은 이후에는 대한의원과 관련된 언급이나 주장을 더 이상 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중원에 대한 책자들을 잇달아 발간하며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시작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점에 대해서는 이후 차례로 논의하겠다.

 




2015/04/01 16:19 2015/04/01 16:19
6,186명이 전한 세브란스의 나눔 정신
제중원 130주년 기념 전 직원 참여한 5만원 나눔 봉사…
소외된 이웃부터 국경 넘어 전한 사랑



3일 오전 8시 30분. 세브란스병원 청소담당 협력업체 직원 4명과 전기설비 담당 보안팀 직원 1명이 세브란스병원 사무팀, 사무처 시설관리팀과 함께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허름한 판잣집을 찾았다.
전세 3,000만원의 30㎡ 남짓 자그마한 공간. 갈라진 벽 사이로 물이 차올라 곳곳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단열이 되지 않아 겨울에는 찬바람이 고스란히 방으로 들어왔다. 이 집에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이모(12)군과 할머니가 단 둘이 살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일용직을 전전해 이군은 태어나면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가 노인일자리와 파지수거를 통해 벌어온 얼마 되지 않은 돈이 세 가족 생활비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난해 6월 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생활은 더욱 팍팍해졌다.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일을 시작했다. 간간히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온 할머니는 심해진 허리통증으로 그 마저 힘들게 됐다.
또래 아이들보다 왜소하고 뇌전증까지 앓고 있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군의 꿈은 과학자다. 하지만 이 집에는 이군이 제대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창고로 쓰는 쪽방과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비워 둔 방 한 칸, 할머니와 함께 하는 공간이 이 집의 전부였다.
세브란스는 이군을 위해 엄마의 온기가 담긴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우선 곰팡이 슨 벽지를 뜯어내고 바닥을 드러낸 장판을 교체했다. 한기를 막아주는 단열재도 시공했다. 가재도구를 드러낸 공간을 정리해 이군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과 컴퓨터를 선물했다.
이군의 할머니는 "세브란스가 우리 아이를 도와준다"며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1인당 5만원…종잣돈이 만든 기적
세브란스는 제중원 130주년을 기념해 6,186명을 대상으로 1인당 5만원씩 총 3억 93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쁨나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아픈 환자를 돌보는 제중원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고 기부와 나눔을 통해 성장한 세브란스의 참모습을 실천하며 "우리 이웃을 돌아보자"며 기획한 행사였다. 프로젝트에는 의료진과 사무직원뿐만 아니라 병원 청소·보안·주차 업무를 책임지는 협력업체까지 137개 전부서가 참여했다. 세브란스가 설립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5만원은 나눔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어디에든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젝트는 작게는 6명이 한팀을, 많게는 6개 부서가 모여 나눔 봉사에 사용했다.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은 "모두가 참여해 함께 고민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우리 기관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들은 나눔을 실천하며 부족한 부분은 재능기부로 채우고, 넘치는 부분은 더 나눴다.


삼삼오오 이웃 찾아 도움 손길 전해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뜻맞는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다양한 나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세브란스병원 사무팀과 협력업체, 입원원무팀, 적정진료관리팀, 사무처 시설관리팀, 홍보팀 등은 뜻을 모아 서대문구 보건소와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찾았다. 우리가 소홀할 수 있는 힘든 이웃을 돕자는 취지였다.
방문간호사와 센터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60여 가정에 세탁기와 TV, 냉장고, 컴퓨터를 선물했다. 그 중에는 김군과 같이 도배와 장판 등 생활환경 개선 작업도 이뤄졌다.
남편과 이혼한 후 어렵게 아들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자 노력하는 베트남 엄만 얀의 고장난 세탁기와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소원과 부모의 이혼으로 태어난지 100일만에 사촌 할머니에게 맡겨진 김모(9)양의 자전거를 갖고 싶다는 소원도 들어있었다.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ADHD 진단을 받고 수많은 자해와 자살 시도 끝에 뮤지컬 배우가 꿈인 서모(11)양에게는 뮤지컬 티켓을 선물했다. 좁은 집에 옷을 걸어 둘 행거가 필요하다는 유모(19)군에게는 행거와 함께 전선이 다 벗겨진 전기밥솥을 바꿔줬다.
신경계 중환자실도 서대문구 신촌동과 홍제동의 차상위계층을 방문해 방한복과 쌀 20Kg, 라면을 전달했다. 핵의학과는 인천시 쪽방촌을 찾아 연탄 300장과 생필품을 전달하고 공터 화단 조성을 위한 잡석 제거 봉사활동을 펼쳤다. 외래원무팀 역시 영등포 노숙자와 증산동 독거노인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했다.
연세암병원 외래간호팀은 마포구 보사노인 복지관과 고양원당사회복지관을 방문해 쌀과 보일러용 기름, 영양제 등을 후원했다. 외래간호팀은 단순히 물품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찾아 건강강좌와 체육활동 등 자원봉사활동도 진행했다.
약무팀은 서대문구 천연동 주민센터 행정복지팀의 도움을 받아 저소득층 장애우와 독거노인 60가구를 방문해 쌀 600Kg과 구급함세트를 선물했다. 101명이 참여한 영상의학과의 경우 고양시와 강화군, 용인시, 부천시 등 4개 지역의 조손가정과 저소득층, 양로원, 지적장애인 시설, 미취업 외국인 노동자 쉼터를 방문해 생필품과 의류, 학용품 등을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시설보수에도 직접 나섰다.
이밖에도 간호고충관리파트를 비롯해 PA파트, 입원간호 1, 2팀과 수술간호팀, 심혈관간호팀, 연세암병원 입원간호팀, 안이비인후과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외래원무팀, 국제진료소 등이 다양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나눔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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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무팀이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해 쌀과 구급함세트를 전달했다.
   
 


색다른 아이디어로 나눔 실천에 앞장

세브란스 간호국 입원간호 2팀은 이태원 우사단 마을을 찾아 특별한 전시회를 가졌다. 재개발 예정지로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독거노인들과 수십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도깨비시장 상인들,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문화가정이 공존하는 곳이다. 입원간호 2팀은 임수민 사진작가와 함께 '동네 사람들'을 주제로 주민들의 다양한 삶과 표정을 담아 이태원 도깨비시장 엘로퀸스 스페이스에서 10일간 사진전시회를 가졌다. 하루 30~40명이 전시회장을 찾아 자신과 이웃들의 모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우사단 마을을 확인했다.
입원간호 2팀은 "우사단 마을 주민들이 전시회의 주인공이자 관객으로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새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 모델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입원간호 2팀은 전시회와 함께 총 254명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도 진행했다. 특히 의료봉사 기간동안 일일빵가게도 열어 주민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했다. 또 우사단 마을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우사단 마을 도깨비 시장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봉투도 제작해 배포했다.
간호담당부원장실과 간호교육개발팀은 교육분야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선교훈련원을 찾아 심폐소생술 훈련을 위한 Little Anne과 Baby Anne, AED trainer를 기증했다.
선교지도자 양성 훈련공동체인 한국선교훈련원은 선교사를 위해 심폐소생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에 필요한 Anne(교육용 마네킹)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유아 Anne이 없어 막대기를 이용해 교육하고 있었다. 간호담당부원장실과 간호교육개발팀은 Anne 등 교육기자재 지원을 통해 해외 선교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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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담당부원장실과 간호교육개발팀은 한국선교훈련원에 심폐소생술 교육을 위한 교육용 마네킹 Anne을 선물했다.


길 잃은 아이들의 특별한 기념식
어린이병원 NICU와 신생아실은 보호시설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기념식을 마련했다. 이들은 구세군 후생원을 찾아 백일과 돌잔치를 치러줬다. 최근 도입된 Baby Box로 후생원에 등록되는 신생아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백일이나 돌잔치를 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NICU와 신생아실은 100일 된 신생아 3명과 돌을 맞은 아기 3명, 후생원 원생 90명을 위한 잔치를 열었다. 100일과 돌을 맞은 아이들에게 옷도 선물했다.
내과계 중환자실 B구역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곳을 찾았다. 이들은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 기저귀 4,600개와 기저귀 가방 65개 등을 지원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매년 500여명의 아동이 입양될 때까지 돌보는 미혼모가정에 양육물품을 지원, 안정적인 성장과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연세암병원 기획경영팀도 미혼모 보호시설인 아름뜰을 찾아 운동화와 아기용품을 전달했다. 아이들의 체격이나 나이, 성별이 달라 기획경영팀이 아기용품점을 찾아 다녔다. 기획경영팀은 "이번 프로젝트로 직접 아름뜰을 방문해보니 정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사회복지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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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과 신생아실은 구세군 서울후생원의 어린 고아들을 위해 백일과 돌찬지를 열었다. 손잡을 곳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 맞이한 특별한 기념일이었다.


치과장비부터 T셔츠에 염소까지
국경을 넘어 세브란스의 정신 실천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는 국경을 넘어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시리아 등에까지 이어졌다.
응급진료센터는 신생아 살리기 일환으로 아프리카에 뜻밖의 선물을 전달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협력해 아프리카의 5세미만의 영유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손수 짠 모자와 구호키트를 전달했다. 특히 구호키트의 경우 지속적인 후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 간호팀으로 세이브더칠드런에 정식 등록했다.
여기에 신생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후원할 수 있도록 염소를 보냈다. 염소가 성장하고 새끼를 낳아 번식하면 거기에서 마련된 돈으로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지원하는 방법이다.
응급진료센터는 "한번의 후원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래간호팀 역시 해외 의료선교와 신생아 보호기관, 인도네시아 무슬림 빈민 사역 후원, 감염인들의 쉼터인 새빛 공동체 후원활동을 펼쳤다.
우선 비뇨기과 외래간호사로 근무 후 2013년 여수제일교회의 파송을 받아 방글라데시 찔마리군에서 사역하고 있는 임경래 선교사를 통해 찔마리병원에 치과용 장비와 진료 기구를 후원했다. 후원을 받은 찔마리병원은 지난달 16일부터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또 지역 초등학생들을 위해 컵과 모기약,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찔마리에 있는 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이 컵 2개로 돌아가면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물품을 전달받은 학생들은 한글로 손편지를 써서 감사의 뜻을 보내왔다.
또 인도네시아 무슬림 빈민 사역 중인 금대현 선교사를 통해 현지에 자동혈압계와 혈당측정기, 구충제, 학용품 등의 물품을 보냈다.
어린이병원 소아심리실은 전세계 기후난민 어린이들을 위해 전국재난구호협회에서 주최하는 희망 T캠페인에 참여했다. 어린이들의 영양결핍 치료식을 후원하는 희망T그리기 키트를 구입해 소아심리실 후원자들과 직접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고 희망의 엽서를 써서 희망브리지사업단에 전달했다.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은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에게 의료기기 등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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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병원 외래간호팀은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을 위해 의료장비를 후원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이 '네와쩨에 딜레 아논디또 보로(받는 것보다 주는 일에 즐거움이 큽니다)'라는 뱅갈어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병원에서 찾은 또 다른 기회

재활병원은 연세장애인스포츠동아리에 물품을 전달했다. 1992년부터 연세의대재활병원장애인후원회를 통해 후원 중인 연세휠체어테니스팀과 연세슬레지아이스하키팀, 연세휠체어농구팀 등에 경기복과 운동기구를 선물했다. 재활병원은 스포츠 재활을 통한 가정과 사회로의 복귀를 돕기 위해 각 팀을 후원하고 있다.
그동안 후원회를 통해 운영비나 국제경기참가비, 경기장 대여비 등을 지원했지만 선수들의 경기복이나 선수용 장비까지 지원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재활병원은 이번 기쁨나눔 프로젝트와 함께 외부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선수들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용품을 지원했다.
심장혈관병원 간호팀과 경영지원팀, 사회사업실은 사회로 첫 걸음을 딛는 환자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마련해 줬다.
심장이식을 받고 건강을 되찾아 사회생활을 앞둔 한 환자에게 맞춤정장을 선물했다. 이 환자는 심장질환 이외에도 희귀난치성질환인 마르팡증후군으로 키가 194cm에 신발사이즈는 500mm나 된다. 하지만 몸무게는 50kg밖에 나가지 않아 일반 기성복을 입기 힘들어 면접에 입고갈 제대로 된 양복을 구하기 힘들었다.
심장혈관병원은 "환자의 건강과 함께 미래를 위한 희망을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장혈관병원팀은 또 화가를 꿈꾸는 한 환자의 바람도 이뤄줬다. 두차례의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건강을 되찾았지만 아버지가 간암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심장질환으로 학업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술을 접하게 되고 화가의 꿈을 갖게 됐다. 심장혈관병원팀은 미술학원을 찾아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6개월간 수강할 수 있는 학원비를 지원했다. 미술학원도 환자의 사정을 듣고 수강료의 일부를 지원했다.
창의센터와 기획예산팀, 병원장실은 환자 대기실을 찾았다.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중인 환자와 보호자들을 찾아가 함게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선물을 준비하고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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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 재활병원은 연세휠체어테니스팀과 연세슬레지아이스하키팀, 연세휠체어농구팀에 경기복과 운동기구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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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혈관병원팀이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사회로의 첫 걸음을 준비하는 환자에게 맞춤형 양복을 선물했다.



찾아 실천하는 나눔
세브란스가 된 6,000여명
"나눔에 대해 고민한 시간"

기쁨나눔 프로젝트는 병원에서부터 우리의 이웃들에게, 멀리는 국경을 넘어 전해졌다.
기부와 나눔, 봉사를 통해 성장한 세브란스지만 막상 나눔을 실천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 직원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행사, 도움이 필요한 곳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1, 2월 두 달간 진행된 기쁨나눔 프로젝트는 세브란스의 나눔정신을 다시 되돌아보고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인천시 부평구 지역사회에 있는 다양한 보육원과 아동센터를 찾아 책가방을 후원한 어린이병원 간호팀은 "이번 프로젝트로 도움과 봉사의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쌀을 지원하는 원천교회를 찾아 '사랑의 쌀독'에 20Kg 쌀 60포대를 기부한 내과계 중환자실 A구역팀은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 기쁨나눔을 통해 가장 큰 것을 배웠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눔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등의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들의 사회재활과 자립을 위한 복지관을 찾은 연세암병원 입원간호팀은 "기부문화의 이미지는 세브란스의 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많은 부서들이 이번에 실천한 나눔 행사가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윤도흠 세브란스병원장은 "나눔으로 성장한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정신을 모두 확인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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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병원 수술간호팀은 사단법인 좋은 친구들에서 운영하는 평화교회에서 사랑의 쿠키만들기에 참여하고 기부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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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 특수간호팀 응급진료2파트는 아프리카의 5세미만 영유아들을 위해 모자뜨기에 참여했다.





2015/03/30 17:06 2015/03/30 17:06
제중원 130주년 섬기는 세브란스로 거듭난다
캐치프레이즈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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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의료원이 '제중원 130주년, 섬기는 세브란스(Chejungwon 130 years, Severance Hospital)'를 캐치프레이즈로 선정했다.
의료원은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인 가운데 제중원의 정신을 대표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를 공모했다.
의료원 전교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공모전은 '사랑과 인술 130년, 기쁨 주는 세브란스', '세브란스, 세상을 섬기는 병원' 등 35명, 43개의 캐치프레이즈가 접수됐으며, 연세창립130주년 기념사업 의료원 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쳐 최우수상에 조성연 치위생사(치과대학병원 치주과)가, 우수상에는 김성동 사무원(안이비인후과병원 경영지원팀)과 의대 김우정 교수(정신과학)가 최종 확정됐다.
캐치프레이즈는 한국 서양의학의 역사인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창립정신인 개화와 기독교, 협동정신을 대표한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세브란스의 미션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캐치프레이즈는 알렌 박사를 기념하는 해로 정하고 알렌 박사의 사진을 담았다. 제중원은 1885년 미국 선교의사 알렌에 의해 세워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료기관인 광혜원으로 출발해 제중원, 세브란스병원을 거쳐 지금의 의료원으로 성장했다.
의료원은 한국 의료계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창립 이래 국민 건강을 지켜왔으며, 우리나라 의료선교의 역사이자 의학교육 및 연구 등 근대의학의 근간이다. 의료원은 이번 캐치프레이즈 선정에 따라 제중원 130주년을 기념해 세브란스의 정신을 알리며 정체성을 재확립할 계획이다.
또한, 창립 130주년 기념 의료원 관련 행사와 파워포인트 템플릿, 스크린세이버 제작 및 배너, 기념품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2015/03/09 17:32 2015/03/09 17:32
세브란스인과 함께 한 신년 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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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이 전임 주요기관장과 명예교수와 함께 2015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신년하례를 가졌다.
의료원은 16일 프라자호텔에서 전임 주요기관장들을 초청해 신년하례식을 진행했다. 이날 정남식 의료원장 등 의료원 주요 보직자들을 비롯해 김병수·김한중 전 총장과 전 의료원장, 전 의과대학장, 전 세브란스병원장, 전 강남세브란스병원장 등 총 20여명이 참석했다.
신년하례에서 정남식 의료원장은 “의료원은 제중원 힐링센터 건립 등 환자를 위한 병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며 전임 주요 기관장들의 관심과 조언을 당부했다.
이어 장준 기획조정실장이 올해 의료원의 중점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 지난해 의료원의 주요 실적을 영상으로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23일에는 의·치·간호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신년하례를 가졌다. 명예교수 신년하례에는 정남식 의료원장 등 주요 보직자와 명예교수 70여명이 참석했다.
의료원은 이에 앞서 2일 은명대강당에서 교직원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하례식을 열었다.
이날 정남식 의료원장은 Beyond Hospital 의료문화 창조와 세브란스 인으로서의 자부심, 대를 이어 찾는 의료기관,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새로운 연세 창립 등 의료원의 2015년 계획을 발표하며 헌신하고 발전하는 아름다운 세브란스인이 되자고 당부했다.
강남세브란스 역시 7일 대강당에서 김형중 병원장을 비롯해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신년 하례식을 가졌다.
김형중 병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이룬 성과는 전 직원의 노고와 헌신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여 큰 도약을 함께 이루어가자”고 말했다.



2015/01/30 18:21 2015/01/30 18:21
제중원 130주년 기념 달력 제작
근대 서양의학 발자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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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이 올해 제중원 130주년을 맞아 한국 서양의학의 130년 역사를 담은 달력을 제작했다.
가로 30cm 세로 19.5cm 크기의 탁상용으로 제작된 역사달력은 표지에 제중원-세브란스의 의학을 대표할 수 있는 에비슨의 수술사진과 함께 제중원과 세브란스에서 의술활동을 벌였던 초기 선교사 알렌과 헤론, 에비슨의 인물사진을 담았다.
달력의 각 장 뒤편에는 의료선교사로부터 시작된 한국최초의 서양식병원 제중원의 서양의학교육과 세브란스의 기부로 새로 지은 세브란스,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 배출과 우리나라 선교병원에 대한 설명 등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넣었다. 또 (관립)의학교, 을사늑약 후의 대한의원 설립, 그리고 일제하의 도립병원에 대한 설명도 부가돼 있다.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은 “세브란스가 어떻게 130년간 이어져 왔는지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핵심적인 자료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동은의학박물관은 이번 역사 달력을 총 5,000부 제작해 대한의사협회와 협력교회, 협력병원 등에 배포했다.




2015/01/30 16:35 2015/01/30 16:35
세브란스 신용협동조합 제중원 힐링센터에 5,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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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신용협동조합에서 13일 제중원 힐링센터 건축을 위한 의료원 발전기부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날 기부금 전달식에는 정남식 의료원장과 이유미 발전기금사무국장, 이민걸 신협이사장이 참석했다. 이민걸 이사장은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정남식 의료원장의 사명실천에 동참하고, 암환자와 직원들을 위한 소통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 신용협동조합은 의료원을 위해 지금까지 5억 5,000여만원을 기부했다.


2015/01/30 15:47 2015/01/30 15:47

신 년 사
정남식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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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美人이 됩시다”
서로 헌신하고 발전하는 아름다운(美) 세브란스인(人)

사랑하는 의료원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연세 창립, 제중원 130주년이란 뜻 깊은 한 해를 맞아서 그런지 더 설렙니다. 양(羊)의 해를 맞아, 소망으로 가득한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참 좋고 든든합니다.

지난 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헌신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작년 4월 개원한 연세암병원은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 대표 암병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연세암병원은 국내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고 암 병원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연세암병원의 상징물인 ‘노아의 방주’와 ‘빛의 기둥’ 곳곳에 배인 여러분의 정성과 환자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중국 칭다오에 1,000병상 규모의 병원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함으로써 세브란스 브랜드의 세계 확산에 의미 있는 성과를 냈습니다.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은 치과병원의 칭다오-연세국제치과병원과 연계하면, 한국 의료 외국 진출의 좋은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세브란스는 4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에 올랐습니다. 환자와 가족중심이라는 정신 아래 4년 연속으로 최고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4월에 발족한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은 세브란스의 사회적 소명을 실현하고, 우리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30년사’를 발간하고, ‘장기발전 로드맵’을 따라 한걸음씩 전진했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로 카자흐스탄과 대규모 메디클러스터 설립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현지에 검진센터를 설립하여 중앙아시아 진출의 선구자로 나섰습니다.
용인세브란스는 용인지역의 최일선에서 1일 외래환자 1,000명을 진료하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병원’으로서 역할을 키워가고 있으며, 강남세브란스와 긴밀한 진료협력을 통해 지역의료전달체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은 전국 의대 중에서 ‘연구비 수주 1위’를 기록함으로써, 연구 경쟁력을 확실히 입증하였습니다. 또한 제중·법현학사 기공식을 통해 오랜 숙원 사업을 해결했습니다.
치과대학은 치의학교육의 글로벌화를 위하여 CODA 인증을 성실히 준비하여 새해에는 무난히 인증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간호대학은 방글라데시 간호전문대학원 설립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하여 국제적으로 그 위상을 높였습니다.
보건대학원은 아태보건대학원협의회와 협력을 강화하는 등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축하할만한 일들입니다.

의료원 가족 여러분,
올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국가간 환율 전쟁과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올 한 해 ‘성장’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대기업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의료에서도 영상의학 수가 인하, 점진적인 선택진료비 폐지, 초음파 급여화 등 정부의 저수가 정책은 올해도 계속돼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인건비와 관리운영비 등 고정적인 의료원의 지출 요인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재정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의료원 가족 여러분께서 원가 절감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 분투 노력해준 덕분에 성장세를 이어왔습니다.
다만, 가팔랐던 성장 곡선이 저성장기조로 점점 완만해지고 있는 점은 걱정입니다. 성장세가 둔화되다가 자칫하면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이에 대비한 의료원 교직원 여러분의 노력이 더 한층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Beyond Hospital의료문화 창조
저는 오늘 몇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Beyond Hospital 의료문화 창조가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성과로 가시화될 수 있도록 우리 교직원 여러분이 함께 나아가자는 부탁을 드립니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의료원 시스템을 개혁하고, 우리의 생각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지난해 NCSI에서 1등을 하기까지 의료원 가족 여러분이 애를 참 많이 쓰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1등에 안주할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Beyond NCSI’입니다. NCSI는 의미있는 조사입니다만, 국가(National)란 단어가 말해주듯이 ‘한국에서의 평가’이지, 글로벌 평가는 아닙니다. 세계 초일류를 지향해온 세브란스는 NCSI 1등이란 내셔널 타이틀에 안주할 수가 없습니다.

Mayo Clinic을 방문해본 분들도 있고, 책으로 간접 경험해본 분들도 많은 줄 압니다만, 저의 경험으로 보면 Mayo의 경쟁력의 원천은 ‘먼저 다가가서 손 내미는 자세’입니다.
우리도 환자나 그 가족의 문의에 대해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은 잘 합니다. 그렇지만 궁금하거나 불편한 환자와 가족을 우리가 먼저 발견해 그들이 이야기하기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준이라고 자부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와 가족을 직접 상대하는 부서 담당자들뿐 아니라 의료원 전 교직원이 환자와 가족 중심의 태도를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세브란스 인(人)으로서 자부심
둘째, 모두 연세의료원 인(人)으로서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 말씀을 드립니다. 
경쟁력은 교직원의 자긍심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겸손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잊기 쉽습니다만, 연세의료원은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만한 의료기관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료원장으로서 여러분이 연세의료원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언제 어디서든지 자랑할 수 있도록 좋은 근무 여건을 만들겠습니다.

셋째, 연세의료원은 온 가족이 대를 이어 찾는 병원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연세의료원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손자 손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치료받으러 다니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연세의료원의 존재 이유는 환자와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자는 만족스러워 했으나 가족들이 서운하게 생각한 탓에 가족들이 병원에 발길을 끊은 사례는 혹시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가 치료를 잘하더라도 어느 한 순간 환자와 가족들이 상처받거나 소외감을 느낀다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를 이어 찾는 의료기관으로
올해는 연세 창립, 제중원 130주년의 매우 뜻 깊은 한 해입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연세의료원 규모의 의료기관이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은 드뭅니다.
연세의료원은 알렌, 에비슨, 세브란스 등 수많은 선각자와 선배들의 피땀으로 이룩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선배들, 현봉학 선생님을 비롯한 6.25 전쟁 시에 민족을 위해 희생한 동문들, 김명선·백낙준 선생님과 같이 연세의 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분들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든든한 뿌리입니다.
올해 계획 중인 제중원 복원과 정신 계승, 힐링캠프 건립은 우리의 뿌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정체성(Identity)을 확고히 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대부분을 기부금으로 추진하게 될 힐링캠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를 하는 병원이 아니라 아픔과 고통을 다 내려놓고,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Beyond Hospital 의료문화의 참 모습을 체험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 공간은 내부 교직원의 조직문화를 승화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도 사용됨으로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연세 창립 제중원 130주년
그 외에도 환자와 가족을 배려하는 공간 확충이 절실합니다. 이를 위해 종합관과 본관 사이에 약 800평 규모의 Patient Atrium, 그리고 어린이병원에 새로운 약 315평 규모의 어린이병원 로비 Atrium이 마련될 계획입니다.
‘새로운 연세 창립, 제중원 130주년’을 위해서는 경영 합리화, 지속 성장을 위한 재원 확충, 세계 선도 의료기관으로서 콘텐트 확충 등은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앞으로 이를 더 잘 해내기 위해 암, 중증-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실력을 갖추고, 로봇 수술, 이식, 줄기세포 등을 이용한 재생치료 등 첨단 의학기술도 끊임없이 축적해야 합니다.
양성자, 중입자 치료기 등 최첨단 장비도 도입을 고려해야 합니다. 암 환자들에게 최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세브란스와 연세암병원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연구중심병원, 의생명과학 콤플렉스, 의료원과 대학 캠퍼스를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산학협력 실용화 등도 적극 추진하고, 국내외 다른 대학과 연계한 다학제 협력도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세브란스의 해외 진출은 단지 외국에 나가 병원 건물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료진에 대한 교육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 아카데미는 세브란스 정신의 확산 뿐 아니라, 새로운 의료산업 모델이 될 것입니다.

용인동백세브란스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저는 용인동백세브란스병원을 연세의 미션과 국가 사회 발전, 사회 가치 실현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우리의 공감대를 지혜롭게 모아 풀어나갈 것입니다.

의료원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우리는 13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풍랑과 암초를 지나왔습니다. 때로는 좌절도 했고, 힘겨운 위기도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힘을 합쳐서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해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세계선도 세브란스 목표로
동양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의미인 ‘美’는 원래 큰 양(大羊)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양(羊)은 희생, 헌신, 순종을 의미하는 동물로서 구약성경에는 가장 큰 양(大羊)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큰 희생, 큰 헌신, 큰 순종을 표현했습니다. 동양의 아름다움-미(美)는 이렇듯 희생, 헌신, 순종을 표현합니다. 이제 양의 해를 맞아 우리 서로가 함께 헌신하고 격려함으로써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아름다움(美)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美人’이 되는 새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의 해를 맞아 성경 말씀 한 구절로 덕담을 대신합니다. 히브리서 13장 20절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의 뜻 가운데서 의료원 발전을 이루고, 아울러 의료원 가족 모두가 행복한 한 해로 만듭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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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9 08:53 2015/01/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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