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함께한 우리들
의과대학 50주년
윤방부 동창 (1967년 졸업)



사용자 삽입 이미지

25주년 재상봉 행사 당시 한 자리에 모인 동창 부부들. (왼쪽부터)김현중·김철화·윤방부· 최영용·문영명·박호길·이길영·맹근열 동창 부부.



우리에겐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졸업 25주년 재상봉이 기어코 닥쳐왔다. 잠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6년 3월 3일, 대망의 입학. 우리의 예과 시절은 역사의 격동 속에서 유기화학, 유전학, 물리화학 등 본과 진입의 복병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시기였다. 위 학번 필기의 달인들이 물려준 노트 복사본을 돌려보며 공부했다. 유전학 실험에서는 필자의 조에서 에테르를 쏟아 초파리들을 익사시키는 바람에 잠시 패닉이 되기도 했다. 그 땐 교련, 문무대 입소, 전방 입소가 있었다.

88년 3월 2일 공포의 본과 진입! 서울 올림픽이 열린 해였지만 우리 동기들에겐 먼 나라 얘기. 청바지와 운동화 착용이 금기시되던 의대 캠퍼스. 3월 둘째 주에 시작된 해부학 실습은 개인의 감상은 간데없고, 진도를 맞추기 위해 카데바 옆에서 자며 밤늦게까지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정신없는 시험의 연속 속에 우리의 애티튜드(?)는 차츰 길들여져 갔고 1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89년 봄은 학습량 많기로 소문난 기초학의 마지막 학기. 대충 5일에 두 번 꼴로 시험을 치르면서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래도 중추 신경계 약리를 강의하시던 H교수님의 유머에 하도 웃다 배꼽이 도망갔고, 예방의학 김명호 교수님의 명강의를 들으며 탄복하기도 했다.

그해 가을부터는 임상학과 시작. 평일 7교시, 주말 4교시에다, 매일 한 시간당 A4용지 30쪽 정도의 엄청난 양의 강의록이 뿌려졌다. 그날 수업한 것을 그날 다 복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분량인데다, 핵심 내용이 뭔지 개념이 없으니 대략 난감. 90년 봄까지 이어진 강의에서 우리 동기들은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답도 잘 하고, 적극 수업에 참여하여 칭찬을 들었다. 재학 시절 4.19 의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셨던 외과 고 민진식 교수님의 “여러분! 젊음을 즐기시오” 하신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암센터 과목 기말 시험때 김병수 교수님이 출제하신 의대 교정의 기념물, 동상들을 직접 그리고 설명하라는 주관식 문제들은 이 시절 우리가 받은 비범한 가르침의 백미중 하나다.

90년 6월 마이너 과목 임상실습 시작. 앞서 “임상에 있어서는 수술방 바퀴벌레도 여러분보다 선배다”라고 설파하신 외과 C교수님. 당시 수술방의 위생 상태가 나빴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고대했던 가운을 막상 입으니 왜 이리 어색한지. 실습 첫날, 의대에서 병동으로 올라가는 나선 경사로에 우리 학년 수십 명이 선뜻 병동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어색하게 서 있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실습은 몸은 피곤하지만 개인시간이 많아서 그나마 숨 좀 쉬고, 놀 수도 있는 나름 황금기였다.

91년 드디어 졸업반이 되었다. 내, 외, 산, 소 등 메이저 과목 실습이 1년 내내 계속되었다. 직접 환자분들에게 가서 병력 청취하고 진찰을 해 보는 이른바 ‘환자 파악’은 늘 진땀나고 조심스러웠다. 내과에선 전재윤, 노재경, 김성순 교수님과의 회진에서 쫄쫄 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아예 없었고, 학생들은 삐삐도 없던 시절, 어느 외과 치프 선생님은 “응급 수술이 뜨면 외과 시니어(4학년 실습생)는 본능적으로 알고 수술방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하셔서 우리를 긴장시켰고, 다른 파트에선 우락부락한 치프 선생님의 자상한(?) 지도 아래 발표력 부족, 말더듬, 회진 울렁증 등을 2주 만에 싹 고쳐주는 무료 프로그램이 한동안 시행되었다. 필자의 조는 노성훈 교수님의 수술에 2주나 참여했건만 마지막날 필자가 대정맥을 대동맥이라고 대답하는 통에 선생님을 적이 실망시켰다. 그 다음 과에 가선 엄한 치프 선생님의 슬리퍼짝을 피하기 위해 특정 질환을 전문의 시험 수준으로 맹렬히 공부해야 했다.

전국 의대 중에 가장 길었던 모교 임상실습의 에피소드를 다 쓰자면 책 한권은 족히 될듯 하다. 졸업시험, 의사국시 치르고 92년 2월 24일 눈발 날리던 날, 겨우 졸업.

지난 25년간 대략 스물 여덟 분의 은사들께서 유명을 달리 하셨다. 그 중엔 필자의 담임반 선생님이셨던 존경하옵는 미생물학 윤정구 교수님도 계시다. 이 무심한 제자는 선생님께서 2008년 6월말 파리에서 임종하신 사실을 8년이나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선생님, 이 못난 제자를 용서해주십시오.

모교에서 배운 귀한 가르침들은 매일 매일 우리의 모든 활동에 규준이 된다. 필자 주위의 모교 선후배들이 돈벌이된다는 진료나, 의학적 근거가 미약한 치료에 하나같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유행을 가벼이 좇지 않으니 돈은 못 벌어도 환자와 동료에게 떳떳하다. 나이 들수록 학창 시절이 그리워지고, 당시 배웠던 태도와 가졌던 마음가짐이 새록새록 새로운 것은 우리가 오래 누리는 복이다. 중한 환자가 생겨도 여러 병원, 거의 모든 과에 믿을만한 동기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안심만만이다.

동기들이여 모두 건강하시라!

세브란스여 영원하라!


 



 
2017/05/22 11:35 2017/05/22 11:35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유승흠 명예교수(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세의료원은 우리나라 최초 기독교 기관이자 의료 기관이며 고등교육 기관이다. 알렌 선교사는 고종 황제에게 병원 설립과 아울러 의학과 위생학 교육을 제안했다. 위생학은 요즘 개념의 보건학이다.
에비슨 교장 역시 공중보건을 강조했다. 졸업생 김창세는 지금으로부터 91년 전인 1925년에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국내 최초로 위생학교실(Dept of Public Health)을 설립했다. 에비슨 교장의 아들인 소아과 교수 더글라스 에비슨도 1926년에 보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교장훈사(1929)에서 에비슨은 ‘So Public Health is the most important end of medical study and effort’라고 강조했다. 그 뜻을 헤아려 이영춘은 전라북도 옥구에 개정농촌위생연구원을 설립 운영했고, 김경식, 소진탁, 윤덕진, 윤석우, 이근태 등 여러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졸업생들의 설립정신 실천

우리 기관의 설립정신은 기독교 정신, 개화개혁 정신 그리고 협동 정신이다. 우리 선배들을 가르치고, 키워 준 선교사들은 이런 정신으로 마음과 목숨, 그리고 힘과 뜻을 다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몸소 실천했다. 스코필드 교수를 중심으로 3.1 운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빈곤과 질병 퇴치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심히 일했다. 아픈 이웃을 위해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봉직했으며, 만주와 몽골 등에서도 활약했다.
기독교인은 아니더라도 기독정신은 몸에 배었다. 광복 후 신탁통치 반대운동, 6.25전쟁 구호, 나환자 진료 등 여러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일했다. 양재모 교수는 가족계획사업을 펼쳐서 세계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오형석 연세대학교 보건소장은 1967년 보건학을 필수과목으로 개설, 4학년 학생들에게는 성교육을 포함해 독보적인 보건 교육을 실시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진료와 보건사업을 뭉뚱그린 지역사회보건사업에 앞장을 섰다. 1967년에는 대학원 보건학과, 1977년에는 보건대학원 설립을 인가 받아 보건전문인을 양성하기 시작하여 내년 봄이면 각각 설립 50주년, 40주년이 된다.  

졸업생들의 다양한 사회공헌
그 뿐만 아니라 사재를 출연해 장애인을 위한 재활재단을 설립 운영한 문병기 이사장, 해외에서 헌신한 전의철, 강원희, 김영훈 등 의료선교사, 자비로 국내, 해외에서 장미회 활동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는 박종철, 홀트재단 조병국 선생 등 모두가 자랑스러운 동문들이다.
보건의료 이외에 여러 영역에서도 사회공헌을 했다. 오페라를 도입, 정착시킨 이인선, 예술계와 체육계를 이끌어 온 유한철, 사진예술의 최고봉 이순흥, 등잔박물관을 설립한 사진작가 김동휘, 설악산 무의지역 순회진료 산악인 이기섭, 수필문학가이며 고적 답사가 최신해, 시인 마종기 등 이들은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사회공헌을 한 졸업생들이다. 졸업생들의 사회공헌은 올해 7월에 출판한 책 ‘제중원 세브란스인의 사회공헌-연세의대 졸업생을 중심으로’를 참조하기 바란다.  

우리의 사명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사명과 실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 기관의 설립 철학과 목표를 확인하고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과 책무를 챙겨서 실천할 뿐 아니라, 졸업생의 활동도 염두에 두어야 할 터이다.
둘째 사료, 자료, 기록 등을 정성껏 보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셋째 우리 기관과 졸업생들의 사회공헌을 널리 알리고, 전달하고, 이를 후진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기관 설립의 목표와 철학이 확산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좋은 기관에 종사하는데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갖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무겁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조직, 일은 무엇일까? 누가 나의 이웃일까?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이웃이 아닐까?
평소에는 생활을 할 수 있으나, 아파서 일을 못 하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픈 이웃에게 본인 부담 의료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한국의료지원재단에 매달 1~2만원을 후원하는 것은 어떨까? 성경 마태복음 10장에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마음과 목숨, 힘과 뜻을 다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의 역할, 우리 기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 마음 속 깊이 생각, 또 생각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우리 기관의 설립철학과 설립정신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일 터이니까.

 


2016/12/28 13:22 2016/12/28 13:22

카테고리

전체 (10174)
연세의료원 소식 호수별 보기 (229)
연세의료원 Top News (236)
의료원 NEWS (5573)
포토 NEWS (169)
기부 및 기증 (1467)
동창소식 (142)
인물동정 (1364)
글마당 (456)
안내 (206)
특집기사 (27)
지난호 보기 (1)
갤러리 (6)
환자편지 (10)
인터뷰 (100)
신간소개 (66)
기고 (97)
기획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