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 역사 바로 알기
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강변하는 주장의 유일한 논리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동일한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립병원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요소들이 억측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강변하는 주장의 유일한 논리는 제중원이 국립병원이므로 동일한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국립병원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연결시키는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요소들이 억측과 아전인수식의 해석으로 점철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자 한다.

1. 제중원은 국립(National) 병원이었나?
제중원은 알렌의 요청에 의해 조선정부에서 설립한 병원이었으며, 내용상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와 조선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동안 제중원의 운영주체를 두고 다소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제중원의 운영이 어느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가 제중원을 바라볼 때 정부의 병원이자 선교병원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시 설립 주체에 관한 문제로 돌아와 제중원이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제중원을 지칭한 당시의 어떤 사료에서도 제중원을 '국립'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중원을 지칭할 때는 왕립(왕실), 공립, 혹은 정부의 병원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였으나 근대국가에 한해서 붙일 수 있는 '국립'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또 제중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설립 이전 우리나라 역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정부 기구나 기관을 지칭할 때에도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었다. 고려시대의 국자감이나 조선시대의 성균관이 나라에서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국립 국자감'이나 '국립 성균관'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국립이라는 호칭은 근대국가인 대한민국이 설립한 기관을 지칭할 때에나 적합한 말이지 왕조 시대의 국가가 세운 기관을 지칭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국립'은 원래 존재했던 용어가 아니라 'national'의 번역어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nation'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말한다. 때문에 서양에서는 근대 이전 왕정 시대에 세운 기관을 '왕립(royal)'기관이라 하지, 거기에 '국립(national)'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국립'은 근대국가가 설립한 기관에만 붙일 수 있는 용어이므로, 한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운 기관에 대해서만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이나 고려 등 전근대 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기관들에 '국립'이란 수식어를 무분별하게 붙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명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역사적인 용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중원을 굳이 국립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서울대학병원과 제중원을 연결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2.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는 누구인가?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국가'라고 답한다. 이 대답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정확하거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답은 당신 아버지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이라거나 '남자'라고 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의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 혹은 남자들 가운데 어떤 특정 개인이 당신의 아버지인가를 말해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리고 존재했던 많은 국가들 가운데 어떤 국가가 당신의 설립주체인가를 묻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특수한 개별 병원이지, 보편적 국립병원의 이데아가 아닌 다음에는 대한민국이 자신의 설립주체라고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병원은 이 질문에 대해 시종일관 자신의 설립주체는 국가라는 무의미한 대답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왜 이처럼 무의미한 답변을 고수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제중원을 국립병원으로 규정한 의도와 맞닿아 있다. 서울대병원의 설립주체를 대한민국이라는 특정 국가로 인정하는 순간, 제중원은 조선이라는 특정 나라의 병원이 되고, 서울대병원의 물리적·실질적 전신인 조선총독부의원의 설립주체는 일본제국임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과 자신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다 조선국-일본제국-대한민국을 연속적 주체로 인정해야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서울대병원은 제중원의 설립주체를 보통명사인 국가로 규정하고, 자신의 설립주체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인 국가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서울대병원이 고유명사로서의 국가와 일반명사로서의 국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의도적으로 범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났다.

3. 국가중앙병원설은 왜 등장했는가?
최근 서울대학병원의 기원에 관해 이루어진 논의 가운데 조선정부에 의해 세워진 제중원이나 광제원이 대한민국이 설립주체가 되는 서울대병원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들의 법률적인 승계관계에 집착하기보다는 "근대의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발달하는 과정 속에서 각 시대의 국가중앙병원이 수행해 온 역할을 살펴보는 가운데 서울대병원의 역사적 모습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것은 "오늘의 서울대병원의 위상이라든가 성격, 지향하는 바 등과 관련해 과거 병원들의 성격과 모습 등을 파악함으로써 '정신의 계승' 차원에서 서울대병원의 기원 문제에 접근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소위 '국가중앙병원설'이다.
이는 서울대병원과 제중원을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으므로 이를 우회하기 위해 한 발을 빼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실 1978년 서울대병원이 법인화된 이후 서울대병원은 엄밀히 말해 더 이상 국립병원의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적 위치에서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정신적 차원의 계승을 말하게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국가중앙병원설이다.
먼저 여기서 살펴보아야할 점은 서울대학병원이 '국가중앙병원'이라고 했을 때 '국가중앙병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어상 그것은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들이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 보인다. 도대체 누가 그런 역할을 서울대병원에 부여했으며, 국가중앙병원의 정의를 내렸는가? 누구도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린 바 없는데, 서울대병원이 스스로를 '국가중앙병원'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은 다른 국공립병원이 지자체나 보건복지부에서 관리를 받는 것과는 달리 교육부 산하에 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옮기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다른 국공립병원의 네트워크와 동떨어져서 별개로 존재하는 병원이 무슨 근거로 국가중앙병원이라는 주장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4. 제중원은 조선시대 국가중앙병원이었나?
조선정부는 알렌의 제안에 의해 광혜원을 설치하며 그것이 이미 혁파된 혜민서(惠民署)와 활인서(活人署)의 정신과 역할을 이어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여기서 혜민서는 조선시대의 의료체계인 삼의사(三醫司) 체계에서 세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기관으로 주로 돈이 없어 의료헤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백성들의 질병 구료와 여기에 소요되는 약재의 관리를 맡던 기관이었다. 혜민서에서는 의학교육도 담당했으나 이는 전의감(典醫監)보다는 한단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활인서는 삼의사(三醫司)에 포함된 기관은 아니지만 혜민서 다음의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기관이었다. 활인서에서는 주로 도성 내의 가난한 병자들을 구료하였는데 특히 기근과 전염병이 돌 때 일반 백성의 구호를 담당하였다. 요컨대 혜민서와 활인서는 빈민구료를 위한 의료기관이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내의원(內醫院)은 왕을 비롯한 왕족의 치료를 담당하는 것이 본래 의무였으며 의서의 편찬과 같이 국가가 주관하는 주요한 의학학술활동도 내의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밖에 왕실용의 약재도 관리하는 등 내의원은 조선시대를 통해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의료기구였다. 다음으로 전의감은 내의원에 이어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하는 의료 기관으로 정부의 중앙관료와 종친의 진료를 맡고 있었고 그밖에 의학교육, 구료관 파견, 궁중용 약재의 공급과 하사 등의 일도 담당하였다. 특히 의학교육에 있어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조선시대에 정부에서 관장하던 의료기구 중 소위 서울대병원에서 생각하는 '국가중앙의료기관'에 해당하는 것은 내의원과 전의감이며, 같은 정부기관이기는 하지만 혜민서와 활인서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백성들의 치료를 주로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서울대병원의 관할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서울대병원은 그렇게 되면 다른 국공립병원처럼 대민진료에 치중하게 됨으로써 연구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이관을 강하게 거부했다. 즉 대민진료는 서울대병원의 입장에서 중요한 고유의 기능이 아닌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은 혜민서와 그를 이은 제중원이 아니라 내의원이 되고 싶어 하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런 서울대병원이 이제 와서 대민진료기관이었던 제중원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5. 서울대병원은 조선왕조의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하는가?
국가중앙병원설과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서울대병원이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가 서울대병원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제중원과의 직접적 연결을 주장할 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조선총독부의원이나 경성제대와의 연속성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사실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기원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제국대학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들의 존재이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의 우수성과 서울대병원과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은 연속성은 거론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대한의원이 이토 히로부미의 기획으로 설립된 병원임에도 대한제국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일제의 식민기관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한의원이 일제의 식민기관으로서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대 부속의원 등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서울대병원이 국립병원의 논리로 제중원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려면 일제강점기 총독부의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의원 등까지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대병원은 이를 의식해 실질적인 연속성이 아니라 제중원의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이라고 발을 빼기 위해 만든 것이 조선시대 공공의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민주국가의 국립병원이 '국왕의 시혜'라는 과거 왕조시대의 이념에 따라 세워진 병원과 자신을 정신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제중원이 백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료를 베푸는 궁극적 주체는 국왕이다. 왕조시대의 의료는 군주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는 가부장적 봉건 이데올로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의료는 국왕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이다. 서울대병원은 왕조국가 조선이 아니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세운 병원이다. 따라서 서울대병원이 가공의 기원 만들기를 통해 이미 시효가 지나버린 과거 왕조시대 시혜 이데올로기에서 자신의 정신적 기원을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2015/05/07 17:24 2015/05/07 17:24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제중원 제130주년 특별 기획연재


의대 여인석 교수(의사학과, 동은의학박물관장)

제중원 뿌리논쟁이란

제중원 뿌리논쟁은 1980년대 초 한국의 근대의학 100주년 기념사업에 즈음하여 그간 누구나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여기던 제중원을 그것이 한때 조선정부 소속 기관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서울대학 측이 자신들의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서울의대 측이 일제가 설립한 제국대학을 직접적인 전신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그동안 취약하게 남아 있던 역사적인 정통성을 만들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제중원을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부담스러운 과거인 제국대학의 역사를 건너뛰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대와 서울대병원은 기관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제대나 총독부의원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제중원 뿌리논쟁을 제중원이라는 제3의 대상을 두고 연세대와 서울대가 서로 자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기술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오해이다.
이러한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당사자는 서울대학 측이며 세브란스는 불가피하게 이 논쟁에 끌려들어간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처음 시작된 이 논쟁은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본 연재에서는 그간 제중원 뿌리논쟁이 진행되어온 과정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이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기관의 기원인 제중원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제중원 뿌리논쟁 바로 알기

글 싣는 순서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2. 제중원 설립과 알렌의 역할
3. 제중원 국립병원설의 허구
4. 제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연속성
5. 관립병원의 기원 만들기


1. 제중원 뿌리논쟁의 경과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는 일제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과 전문학교들을 미군정청이 통폐합하여 만들어진 대학이다. 서울대학은 이들 학교들의 대지와 건물 등의 물적 토대는 그대로 활용하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일제가 설립한 학교들의 연속이 아닌 새로 출발하는 대학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총독부와는 단절된 정부임과 마찬가지이다. 서울의대는 설립 이후 약 30년 동안 자신들 학교의 역사와 관련해 제중원을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1954년 5월 15일자 <세브란쓰>지이다. 여기에는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각계의 축하광고가 실렸는데, 서울의대도 세브란스 의대 70주년을 축하하는 광고를 실었다. 이는 당시의 서울의대가 제중원을 세브란스의 기원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던 서울의대와 병원은 80년대에 들어서 갑자기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1946년 서울대학 개교 이래 자기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30년이 지난 어느 날 제중원이 자신들의 조상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부터 제중원 뿌리논쟁이 시작되었다. 이 논쟁이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과정은 다음과 같이 대략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 (1978-1997)
제1기는 1978년 서울의대가 '서울大學校 醫科大學史(1885-1978)'란 책에서 제중원이 자신들의 뿌리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本 大學附屬病院의 始初는 이보다 14年 앞선 1885年 3月에 齊洞에 設立된 王立病院인 廣惠院이라 하겠다. 財政難으로 한때 官制가 폐지되어 私立醫療機關으로 하여금 運營케 하였으나 國立인 지금의 서울大學校 醫科大學 附屬病院은 廣惠院에 비롯된다."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다는 사학계의 오랜 정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이었다. 더욱이 서울대 사회학과의 신용하 교수가 규장각 자료 운운하면서 합세하여 대단한 학문적 근거가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신 교수는 1982년부터 몇 년 동안 수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 되지 않았으며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가 1905년에 환수하여 이를 서울의대가 자신들의 전신이라고 내세우는 광제원의 확장에 사용했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제중원은 연세의대와 아무런 관계가 없이 서울대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이러는 사이 연세대학교가 창립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가운데 의학계 원로 정구충 박사가 대학의학협회지 1984년 10월호에 기고한 "한국의학 100년"이란 원고가 서울의대측 편집위원에 의해 변조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그동안 기자회견만을 했던 신용하 교수가 1995년에 들어 "광혜원과 근대의료의 출발"이란 글로서 자신의 정식 견해를 밝혔다. 신 교수는 이 글에서 1905년 4월 10일의 '제중원 반환', 1906년 5월 29일의 '제중원 찬성금' 및 '광제원 확장비'와 관련된 자료가 제중원은 결코 사립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광제원 확장비"가 환수된 제중원의 모든 시설을 인수했다는 문제를 푸는 "보배 같은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편승해 서울의대 출신인 주근원은 자신의 책에서 "이런 경위를 세브란스 病院側에서 그 由來와 傳統을 이어받은 것으로 즉 我田引水格으로 해석하고 '醫學百年'이라는 冊子에서 밝히고 있어 서울大學校病院과 뿌리의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쓰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서울의대 및 신용하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제중원은 국립병원이었다.
2) 1894년 에비슨에게 위탁경영을 시켰다.
3) 1905년 환수하여 광제원 확장에 사용하였다.
한편 연세의대는 1996년 2월 1일 의사학과를 신설하고 이러한 서울의대의 억지 주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자료를 수집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신용하 교수가 주장한 사실의 확인을 위해 규장각에 있는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였다. 이때 몇몇 자료들을 발굴했는데 그 내역을 상세히 연구한 결과 신용하 교수의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거짓 주장임이 밝혀졌다. 모든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일부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첫째, 제중원 설립에 조선정부가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국립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사용된 적도 없고 적절한 표현도 아니다. 국립 서울대병원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왕립이 국립으로 돌변한 것이다. 둘째, 에비슨이 1894년부터 1905년까지 제중원을 위탁경영했다는 것인데, 위탁경영이라는 표현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며, 단지 사료상으로는 에비슨이 병원의 전권(전관판리, entire charge)을 행사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셋째, 신교수는 제중원이 광제원으로 통합·확장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제중원이 세브란스로 이전한 후, 구리개 제중원은 병원도 아닌 외교 고문관 스티븐스의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1998년 3월 명백한 사료가 언론에 발표되자 신용하 교수는 더 이상 논쟁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였고, 제중원의 위탁경영 혹은 환수 등 서울의대 측의 억지 주장은 학문적으로 근거가 없음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제2기 (1998- 2007)
이러는 사이 서울의대측은 집요하게 또 다른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국가중앙병원이며, 그 위상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1997년 10월 1일자 서울대학교병원보에 실린 '병원 연혁에 관한 좌담회'에서 근대의학 도입, 발전 과정서 국가중앙병원의 역할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서울대학교 병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3명의 사학자를 고용하여 2005년 '병원사연구팀'을 구성하고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주년 기념 사업추진단'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에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식과 함께 제중원 122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대한의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서울대학병원측이 대한의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서울대학교 병원사」에 실린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한 서술에 잘 나타난다. 거기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명실상부한 大韓民(帝)國의 중추적 의학교육, 연구, 진료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고 기록하여, 일제가 광제원, 적십자병원, 의학교를 강제로 통합해 대한의원을 만든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를 위해 대단한 공헌이자 발전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서술태도는 대한의원 설립의 실질적인 주체나 설립의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내지는 간과하고 외형적인 현상만으로 이를 '발전'이라고 단정한 것으로, 이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식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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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한의원은 어떤 기관이었나? 대한의원의 설립은 통감 이또오 히로부미의 구상으로 그는 대한제국에 의해 나름대로 운영되고 있던 광제원, 의학교, 적십자병원을 하나로 통폐합하여 식민지적 의료 체계에 적합한 기관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1906년 7월 일본 육군 군의총감 사또(佐藤 進)를 위원장으로 하고 의학교 교관 고다께(小竹武次), 대한적십자병원 주임 요시모토(吉本潤亮) 등 일본인만으로 구성된 '大韓醫院創立委員會'를 조직하고 여기서 대한의원의 설립을 결정하게 하였다. 즉 대한의원은 이미 실질적인 주권을 상실한 우리 정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제에 의해 강제로 그 건립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기관은 "명칭은 대한의원이지만 통감부에 의해 운영되는 의료와 교육, 그리고 위생업무를 담당하는 보건기구로 외관으로는 한국민을 위한 발전된 최신식 의료시설로 선전되어 전시효과에는 큰 몫을 하였으나, 실은 한국에 와 있는 일본인 관리 및 그 가족, 그리고 일본인 거류민의 보건을 위한 의료시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대한의원의 설립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의 언론은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의학교, 광제원, 적십자 병원을 세워 자주적인 의료체계의 확립을 기도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은 1905년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면서 좌절되고, 이들 기관들이 대한의원이라는 식민지 의료기관으로 전환됨으로써 단절되었던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한의원은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식민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일제 통감부의 주도로 만들어진 병원이다. 그런데 이처럼 일제가 설립한 병원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립의료기관이라 자칭하는 서울대학병원에서 13억원이란 거액의 국고를 들여 기념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실 서울대병원 측은 대한의원 기념행사를 홍보하며 처음에는 대한의원의 설립이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설립의 책임자뿐 아니라 건립위원회의 구성원들 전원이 일본인들이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설립의 전 과정이 조선정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감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대한의원 설립이 대한제국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과 고종의 형식적 재가와 순종의 개원칙어 등만을 강조하며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애써 감추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제중원 122주년도 함께 연결시켰다. 이는 혹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이 지적되더라도 대한의원을 제중원과 연결시킴으로써 대한의원의 식민지적 성격을 희석시켜보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대한의원 100주년만을 기념한다면 서울대 측이 이제 제중원을 포기하는 듯한 인상도 줄 수 있으므로 다소 어색하더라도 제중원 122주년을 덧붙여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필자는 이 행사를 비판하는 '서울대학병원 1백주년, 기념할만한 일인가?'란 제목의 글을 교수신문에 기고했다. 그 내용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만든 병원을 왜 서울대병원이 기념하느냐는 것이었다. 대한의원 기념사업에 대한 논란은 「신동아」에 기사화되었다. 기사 말미에는 서울대병원 병원사연구실 전우용 팀장이 대한의원은 한국 의료계 전체가 반성적으로 공유할 경험적 자산이라며, 기념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실렸다. 이후 이 논쟁은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사화되었고, 당사자들의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졌다.
한편 2006년 10월 26일 열린 2006년도 국정감사 교육위원회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되었다. 국회의원들은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사업에 14억원이란 거액을 투입하는 것을 지적하고 기념행사는 정당한 역사적 조명이 될 수 있는 학술행사로 제한하고 음악회와 한마음축제 등의 기념행사는 이사회에서 재논의하라고 촉구하였다.
한편 서울대 측은 대한의원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신청하였다. 이에 대해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결국 기념우표는 발행되었다. 2007년에 들어 서울대병원장은 신년사에서 '2007년은 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년이 되는 우리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해'임을 언급하였다.
3월 15일의 대한의원 100주년, 제중원 122년 행사가 가까워지며 이 행사에 대한 여러 비판들이 제기되었으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서울대 병원 측은 일제 식민지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회피성 발언만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서울대병원의 대한의원 기념사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월8일 발표한 "국립 경북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은 100주년 기념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 사업은 해방과 독립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짓고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성명서는 많은 매체를 통해 보도됨으로써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또한 이를 계기로 서울대병원이 당초 의도했던 제중원과의 연결고리 보다는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2월 말이 되면서 기자들의 취재가 계속되자 논리가 궁색한 서울대병원 측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급기야는 그간 해온 주장을 번복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기념행사를 다음과 같은 말로 정당화했다."도둑질을 한 아버지라도 제사는 지내야 한다. 다만 축하 개념의 기념이 아닌 단순한 기억 의미의 기념일 뿐이다."

제3기 (2007- 현재)
대한의원 기념사업의 강행으로 홍역을 치른 서울대병원은 이후에는 대한의원과 관련된 언급이나 주장을 더 이상 하지는 않는다. 대신 제중원에 대한 책자들을 잇달아 발간하며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시작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점에 대해서는 이후 차례로 논의하겠다.

 




2015/04/01 16:19 2015/04/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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