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United Severance!
세브란스 동창의 밤 행사, 원주의대 1회 졸업생 7명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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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총동창회는 지난 16일 총장 공관에서 제9회 세브란스 동창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번 동창의 밤 행사에는 1984년 원주의대를 1회로 졸업한 동창 7명을 초청했고, 슬로건도 ‘함께 가자, United Severance!’로 정했다.

동창들의 단합과 자부심 고취를 위해 2년마다 열리는 동창의 밤 행사에는 한승경 총동창회장, 전철환 원주의대 동창회장, 김용학 총장, 윤도흠 의료원장, 이영희 원주의료원장, 송시영 의대학장, 이강현 원주의과대학장, 김병수, 김한중 전 총장, 홍영재 전 동창회장, 명예교수, 행정책임자, 교직원 등과 우상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대문(갑)),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그리고 동창과 가족, 내외빈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또한, 마종기(63년졸), 최병일(65년졸), 박창조(69년졸) 재미의대동창도 참석했다.

정강욱 총동창회 총무이사의 사회로 작고 동창에 대한 묵념과 정종훈 교목실장의 기도로 행사를 시작했다. 한승경 총동창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세브란스와 연희의 합동 60주년을 맞아 동창의 밤 행사가 총장 공관에서 개최돼 더욱 뜻 깊다”라며 “합동의 정신을 되돌아보며, 함께 할 미래를 그려보자”라고 말했다.

이어 김용학 총장, 우상호 국회의원,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윤도흠 의료원장의 축사와 내빈소개가 진행됐다.

만찬과 화합의 시간에는 김병수 전 총장이 대표 건배 제의를 하며 원주의과대학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역사를 소개했다.

동창의 밤 행사에서는 의료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제3세계의 촉망받는 의사에게 의료원에서 3개월간 연수를 받을 기회를 제공하고자 의대 동창회가 처음으로 제정한 ‘Severance Alumni International Fellowship’의 첫 수상자인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나봇 넵슨 마틴히라 박사에게 연수지원 증서를 전달했다. 마틴히라 박사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비과학(Rhinology) 분야 연수를 받는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원주의대 졸업생을 위한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원주의대 1회 졸업생인 이종혁 동창은 대표로 “앞으로도 함께 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더욱 발전하는 의대 총동창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 원주의과대학생 댄스 동아리 ‘야무’의 축하공연도 마련됐다.

이어 9월 초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은 마종기 재미의대동창의 수상을 축하하고자 민성희 동창(2002년졸)이 ‘꿈꾸는 당신’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열린 음악회에서는 표진인 동창(91년졸)과 밴드, 김창기 동창(89년졸), 송석근 동창(77년졸)과 밴드, 연세 동문 응원단 등의 공연이 열렸다.

1958년에 졸업한 임정익 원로동창과 의대와 원주의대 출신의 최연소 동창인 최기홍(2016년졸), 김원재, 김진현(2017년졸) 동창이 함께 연단에 올라 아카라카를 제창하며 동창의 밤 행사가 마무리됐다.


연수 강좌도 마련

동창의 밤 행사에 앞서 오후 3시부터 암병원 서암강당에서는 의대와 의대 총동창회의 주최로 ‘중추신경계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주제로 개원의 연수 강좌가 마련됐다.

의대 배선준 교수(마취통증의학)가 좌장을 맡은 강좌 1부에서는 ‘중추신경계작용 약물의 사용’을 주제로 강훈철 교수(소아과학)가 ‘소아 뇌전증 치료 약물의 사용’에 대해, 김신형 교수(마취통증의학)가 ‘통증의 진단과 치료 약물의 사용’에 대해 강연했다.

오병훈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강좌 2부에서는 ‘인지기능저하의 진단과 치료’를 주제로, 서울삼성병원 신경과 교수로 재직 중인 서상원 동창(97년졸)이 ‘인지기능저하를 호소하는 환자에서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홍창형 동창(96년졸)이 ‘인지기능저하에 동반되는 심리행동문제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대해 강의했다.

2017/10/10 09:53 2017/10/10 09:53
영조와 수경원, 그리고 세브란스 - 수경원 복원에 부치는 글
기 고 | 최병일 의대동창(6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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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가장 훌륭하고 준비된 임금이 정조라면 그의 할아버지인 영조야말로 1776년 정조의 등극을 가능케 한 인물이다. 사실 영조의 출생과 성장과정이 파란만장했듯 그의 일생도 여러 편의 드라마가 펼쳐질 만큼 다양했다. 장희빈같은 막강한 세력과 숙종의 사랑을 두고 다투어야 했던 무수리 출신인 그의 모친 숙빈 최씨(일명 동이)의 이야기는 이미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다. 허드레 물일을 많이 하여 거칠어진 어머니 손에 익숙했던 영조는 출신이 비슷한 영빈 이씨를 중전 왕후보다 편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후 태어난 사도세자의 어머니도 대하기 편했던 영빈 이씨였다. 비명에 간 아들 사도세자의 주검을 애도하며 삭이고 살다가 남편보다 일찍 1764년 영조 40년에 생을 마감한 것을 궁에서 애석히 여겨 보다 가까이 모신 의열묘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있던 수경원이다. 사실 수경원이라는 이름은 고종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대한제국을 건설하면서 후기 이씨 조선의 중심인물이었던 정조를 재조명하고 그의 할머니의 묘를 미화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왜 원래의 이름이 의열묘였는가를 살펴보면 복잡다난했던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영빈 이씨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사도세자의 기행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어린 시절 학교 교육이 전무이셨던 1905년생이신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뒤주대감의 이야기가 사실 더욱 드라마틱하였지만.. 민간인 사이에 구술로 전해진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많이 미화 되어있고 노론과 남인 간의 정쟁의 희생양처럼 되어있다. 존속살해를 둘러싼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제이고 아직도 과학적 토대로 연구가 미비한 단계에서 사도세자와 영조와의 관계를 조선 실록에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도세자와 그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사도세자 처형을 둘러싼 행동과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별로 애도의 감정이 나타나 있지 않는 사실을 고려하면 조선실록의 기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을 목격한 정조의 효심으로 미화되고 사후 장조로 추대된 사도세자는 사실 살인도 여러 번 저지른 범죄자이며 정신병 환자였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던 혜경궁 홍씨가 그의 남편 사도세자를 변호하지 않은 사실이나 칼을 들고 아버지 영조를 죽일 듯이 날뛰던 아들 사도세자의 기행을 목격한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이실직고 한 사실을 보면 노론의 정치적 당쟁의 희생양이었다는 기록의 진실성을 다시 한번 생각케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오이디푸스 증후군 현상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갈등으로 해석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고 믿는다. 이러한 비극의 중심에서 아들의 기행을 목격하고 변호해야 했으나 결국 영조의 결정을 따라야 했던 영빈 이씨의 고민… 아들이 아버지의 결정으로 뒤주 속에 갇혀 폭염 속에서 탈수와 굶주림으로 살해된 후 남편 영조의 뜻을 따라야만 했던 이조 중기의 조선 여성의 비극적 생애… 그녀의 죽음을 의열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했던 영조의 고민이 고스란히 묻혀있던 곳이 수경원이다.
나는 사실 수경원의 존재를 어린 시절부터 보며 자랐다. 1906년생이신 선친께서 현 망원정 근처에 사시다가 1925년 을축년 물난리로 18세 학생의 신분으로 아홉 식구의 가장이 되어 '능안'이라 불리던 현재 북아현동으로 집을 옮기셨다. 집 옆에는 어린 시절 사망한 사도세자의 형인 효장세자의 묘 의령원, 일명 애기능이 있었고 집안에 옹달샘이 있는 큰 기와집이었다고 한다. 너무 한적하고 밤에는 누이들이 무서워하여 인근 굴레방다리 근처로 옮기셨지만… 벽제의 선산을 마다하고 조부의 묘를 연희대학 뒷산에 모시게 된 것과 성묘길에 수경원을 본 것도 연희대학 캠퍼스와 백양로에 반하여 연세대를 선택한 것도 모두 이러한 인연이다. 지금도 '애오개'란 이름이 있는 것은 영조의 장자이며 어린 시절 사망한 효장세자의 '애기능'에서 유래했고 '아현'이라는 이름도 '애오개'의 한자표현이다. 사실 죄인인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난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임금으로 등극하게 된다. 1947년경 정조의 양부가 된 덕으로 진종으로 추대된 효장세자의 애기능이 서오능으로 이장되었지만… 지금은 애기무덤 자리에 추계대학이 들어섰고 내가 어린 시절 능에서 놀다가 불경죄로 능지기에게 호통을 당하던 것도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다행히 수경원의 편린이나마 볼 수 있어 고향과 모교에 올 때마다 찾아보곤 하지만… 현재 심혈관센터 일층 대합실에서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잔디밭과 광혜원이 보이는 곳이 수경원 터이다. 1960년대 본인의 의예과 시절에는 아직도 묘가 건재하였다. 가끔 따뜻한 봄날 그곳을 산책할 때 둥글게 둘러앉아 까르르 웃어대던 상급생 누나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1968년 수경원이 서오능으로 이장되었고 묘 자리에 대학교회가 지어졌으며 그 앞에 광혜원이 재생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된다. 이번 50년 재상봉 시 의료원장의 수경원 재건사업계획을 듣고 이번이야말로 그동안 잊혔던 역사와 남아있는 유물들이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살아나도록 복원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연세대 캠퍼스는 조선건국 시 도읍지로 하륜이 천거한 명당자리이다. 뒤에는 말안장 같이 생겼다하여 안산이라 불리는 무악산이 있고 좌우로 내려오는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는 산세 사이 골짜기에 대학과 병원이 있다. 이곳에 옛날 연희궁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신라 말기 도선대사가 태고종의 사원으로 지어진 봉원사도 이곳에 있었다고 믿어진다. 임진왜란 시 타버린 봉원사가 광혜원 건립 시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이 근처에 있었다고 추정하지만…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 영조가 봉원사를 지금의 위치에 복원한 이유도 사실 그의 탄생 후 있었던 정신적 어려움과 아들을 처형해야 했던 인간적 고민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봉원사가 새 절이라는 이름으로 6.25사변 이전에도 불렸던 것을 기억하면 한국전쟁 중에 타버린 이후 재건되어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그리고 보면 그의 장손 효장세자와 부인 영빈 이씨의 무덤이 현재 이화대학 기숙사가 지어지고 있는 산등성이 하나를 두고 지척 간에 있는 곳에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하여 새 절을 재건하였을 것이라는 이론이 타당할 수도 있다. 봉원사의 대웅전은 6.25사변 후 서울탈환 시 가장 격렬했던 연희고지 전투 중 모두 전소 하였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대웅전 앞에 옛날 모습 그대로 건재한 칠성각의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라 믿어지고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1960년대에는 수경원 입구에 지금도 서있는 묘각 위에 의열묘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있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비각만 남아있지만 서오능으로 옮겨진 묘비에 쓰인 내용을 검토 한 후 모든 사실을 수경원 복원에 참고하였으면 한다.
풍부한 역사가 있는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수경원 복원 사업에서는 영조와 영빈 이씨, 효장세자와 사도세자,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조 후기에 실학사상을 도입하여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큰 꿈을 가졌던 영민한 정조의 큰 뜻이 세브란스병원 내에 재건된 광혜원과 함께 재현되었으면 한다. 요사이 역사왜곡의 무리수를 쓰며 정조 등극 후 경모궁으로 불린 사도세자의 사당 수은묘를 부수고 지어진 일본침략의 상징물인 총독부병원마저 자기들의 전신이라 선전하고 있는 모 국립대학의 무지와 대조되는 사업이 될 것으로 믿는다. 복원된 수경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주고 지나간 시절의 아픔을 희망과 충성으로 승화시킨 영빈 이씨의 의열사상을 품어주는 아름다운 삶의 장소가 된다면… 이곳을 찾는 상처받은 많은 영혼들도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2015/06/11 11:32 2015/06/11 11:32
'환희의 송가'를 부르고 싶다…
Ode an die Freude…

의과대학 50주년 최병일 동창 (1965년 졸업)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환갑, 진갑 다 겪어 보았지만 며칠 후 있을 재상봉의 기쁨처럼 매일 가슴이 설레 본적은 없다. 공자님이 방랑생활을 마치고 곡부로 돌아오셨던 때와 비슷한 나이에 고향과 모교에 돌아오는 기쁨은 학이시습편의 모든 즐거움을 합한 것보다 더 상승되어 느껴진다. '사실 나의 일생이 이 날을 준비하며 산 것이 아닐까?', '과연 내가 그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을까?', '그리고 56년 전 처음 만나 일생을 같이 살아온 친구들 앞에 반듯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언제나 나를 가르쳐 주고 잘못을 여과 없이 지적해준 친구들, 어떤 때는 침묵으로 혹은 빛의 속도만큼 빠른 지적으로 나의 삶을 바로잡아준 사랑, 형님처럼 격려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 학우들의 우정, 이런 것들이 없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또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실현시켜준 은사님들과 후배님들의 무한한 애정을 베풀어준 나의 모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 불러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는 개교 이후 마지막으로 본과 진학을 서울역 앞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한 학급이다. 지금은 LG 빌딩이 있는 터에 있었던 에비슨관에서 1학년 기초학을 배웠고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서있는 부지를 운동장으로 농구, 배구, 축구까지 한 학급이다. 2 학기가 끝나기 전 추운 겨울에 난방시설이 완성된 신축 의과대학으로 옮겨왔을 때는 장안의 모든 것이 부럽지 않았다. 록펠러 재단의 중국지부가 공산화 된 중국보다는 우리학교 건물을 무상으로 지어주었다. 미8군도 인천상륙 후 가장 큰 전투가 있었던 연희능선에 당시 500병상규모의 최신 흉곽외과 병원을 지어주었다. 이쯤 되면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명문의과대학이 우리 연세이다. 새로운 캠퍼스로 옮겨 희망과 긍지로 한국의학을 이끄셨던 우리 은사님들도 미국에서 손수 배워오신 실력으로 최선을 다하셨다. 나도 의학교육의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지금 우리가 받았던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학교육이라 자부한다. 연세대학 의과대학 학위 하나만으로 미국의과대학에서 진료 연구 교육을 담당하는 긍지는 모두 모교의 덕이다.
애석하게도 함께 재상봉에 참여 못하는 친구들이 아쉽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 영원히 가슴에 묻힌 친구들도 있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효시가 되었던 4.19 혁명 당시 순수한 마음으로 시위에 참석하였다가 애석하게 사라진 최정규군. 이미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그를 기리는 사업이 백양로 보수와 함께 진행된다니 반드시 지켜볼 것을 다짐해 본다. 천수를 다해가며 모교에 큰 공헌을 한 강진경 형도 기억하고 싶다. 출석 번호 일번으로 항상 바지런히 앞줄에 앉아 열심히 강의를 듣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입학 시 일등으로 합격한 염무남 형. 작고 다부진 몸매로 오랫동안 살 것으로 기대했건만 2년전 미국에서 타계하였다. 동기들 중에서 제일 먼저 미국에서 병리학교수가 되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던 이수옥 동창. 한손에 대퇴골 표본을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그레이 해부학 책장을 넘기며 열심히 공부하던 모습. 다행이 남편 이성환 형이 참석할 수 있어 위로가 된다. 항상 해맑은 미소와 위트로 좌중을 주름잡던 김철영 형, 스포츠 만능 배구선수로 명 슛을 날리던 김성도 형,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태산이 무너져도 안전할 것으로 생각됐던 문용화 형, 아브라함 링컨의 얼굴모습과 큰 키로 항상 친절히 맞아주던 영원한 신사 최헌식 형, 재상봉을 몇 달 앞두고 산부인과 명예교수 양영호 형이 알려준 한지숙 형의 타계소식. 모교에 올때마다 형님처럼 나를 맞아주던 이웅구 형, 캘리포니아 의대 교수인 이호일 형과 함께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며 한국심장학회를 이끌었던 큰 대들보였건만… 모두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일생 동안 기다렸던 50주년 재상봉, 개인적으로는 우리 모두 성공한 삶의 성취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제2의 삶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너무 여유없이 인색하게 살아온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보다는 이웃을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제2의 인생을 계획해 봄이 어떠할까? 밤하늘에 빛나는 저 별 뒤에 있는 존재를 의식하며 세상과 백만 인을 품어 줄 수 있는 큰 사랑과 평화를 노래한 독일 시인 쉴러의 '자유의 찬가'와 베토벤 의 '환희의 송가'를 소리 높여 읊어보고 불러보고 싶다.
우리에게 높은 가치관과 열정, 진리를 탐구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이성,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질병에서 자유롭게 해방 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준 우리의 모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영구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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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콜레라 예방사업 당시 사진

2015/05/14 16:48 2015/05/14 16:48

스승의 날 과  팽목항에서 만난  어느 잠수부
최병일 의대동창 65년졸, 미국 위스콘신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

몇 년 전부터 매년 한국에 들릴 때마다 학교의 배려로 후배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올 5월에도 의예과 학생들을 상대로 ‘의사를 위한 인문학’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월호 침몰로 온 나라가 비통에 빠져 있고 위기에 대처할 사회 안전망의 허술함으로 초래된 국민적 죄책감으로 형이상학적인 강의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미 희생자들의 구조작업은 늦었지만 무엇이던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전남의대 범희승 교수의 도움으로 팽목항에 소재한 제1 진료소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더욱이 4학년 학생 다섯 명이 자발적으로 동행하게 되는 기쁨도 갖게 되었다.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오전 9시 신촌 알렌관을 출발하여 목포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유달산이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진도군 팽목항에 도착하였다.
팽목항에 있는 제1 진료소에는 이미 이곳에 와 있는 의료진이 환자 보다 더 많은 비대칭 구조였다. 우리가 할일이 별로 많지 않아 제2 진료소에도 들려 심장내과 문제를 도와주기로 하고, 진료소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것 보다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일단 잠수부들이 대기하는 천막에 들렸다. 그곳에는 한 60세 되어 보이는 잠수부 한분이 탈진 상태로 누워있었다. 다행이 신경계통이나 심혈관에 질환은 없었으나 잠수복이 피부에 닿는 목과 가슴 부위에 부종을 동반한 발진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더욱 애처로운 것은 다시 잠수를 독촉 받고 있는 괴로움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잠수 장비도 산소공급에 필요한 튜브가 달린 지난세기에나 쓰였던 낡은 구조였다. 튜브 교체없이 오래 재사용하면서 날렵하게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는 잠수복이 아닌 것 같이 보였다. 일단 휴식 후 제일 진료소로 오도록 안내하였다.
오후에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진료하도록 안내를 받았다. 이미 많은 희생자 가족들은 떠났고 띄엄띄엄 앉아있는 가족들은 심신이 탈진되어 위로의 말을 전하기조차 민망스러웠다. 이곳도 환자보다 의료진이 더 많은 상태였다. 이곳에 파견된 우리학교 동문인 복지부 보험정책과 백진주 사무관에 의하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이 잠수부의 건강문제라고 했다. 사실 목숨을 담보로 구조작업을 시행하고 있는 잠수부를 위한 충분한 안전장치는 되어 있을까? 벌써 두 명의 잠수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팽목항에서 만났던 피곤에 지친 잠수부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수심이 50m인 곳에서 작업하려면 5기압 이상이 되는 압력을 받으며 작업해야 한다. 따라서 급히 부상하는 경우 채액에 녹아있는 공기가 탄산수나 맥주의 거품처럼 생긴 공기방울이 뭉쳐 혈관을 막게 된다. 뇌혈관이나 심폐혈관을 막으면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러한 잠수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작업을 하는 잠수부들을 위한 감압실도 작업장 근처 바지선에 비치하는 것이 필수다. 국적을 불문하고 이미 감압실이 있는 해군의 배를 이용하는 것도 제도적 어려움을 떠나 주선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수준보다 높은 첨단장비를 갖춘 잠수부도 다국적 차원에서 모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개인의 이해관계나 체면유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울러 우리 의학교육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중생리학의 연구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제주해녀의 수중 생리연구로 시작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셨고 열정적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셨던 고 홍석기 선생님이 스승의 날을 맞아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급조된 간이 욕조에 들어가 숨을 멈추고 산소분압을 측정했던 실험도  생생히 생각난다. 반세기전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선생님들은 열정과 사랑으로 우리를 지도해 주셨다. 이러한 학문적 열정이 계승되어 수중 생리학이 보편화 되었다면 타인의 생명을 구조하다가 오히려 사망하는 그런 애처로운 일은 없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동행했던 학생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을 찾았다. 어려웠던 유배생활에서도 저술과 후학양성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았던 다산 정약용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담양에 있는 소쇄원에 들려 기묘사화 이후 정치보다는 후학 양성과 남도의 사림문화를 이끈 양산보 선생의 일생을 음미해 본 것도 나나 우리학생들에게 귀중한 체험이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를 깨우쳐 주신 스승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나를 선생이라 불러준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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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자원봉사자에 나선 최병일 동창(오른쪽 세번째)과 의과대학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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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15:18 2014/07/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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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배 대표이사 의대 송당암연구센터 연구기부금 2억원
김수희 의대동창, 의대 장학기부금 10만 달러
도무조 대표이사, 암병원 발전기부금 1억원
최병일 의대동창 제중학사에 4만 달러
충정교회, 세브란스 사회사업후원금 4,000만원
치과대학 학부모회 발전기부금 3,600만원
이경률 의대동창, 강남 연구동 건립발전기부금 3,000만원
신양식 교수 마취통증의학연구소 2,000만원
청파교회, 선한사마리아인 기금 1,000만원
고순태 후원자 암병원에 1,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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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교수, KOICA-USAID 모자보건포럼 기조연설
이승종 교수, 자연치아아끼기운동본부 대표
양규현 교수, 차기 대한골대사학회장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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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넓은 의사로서의 사회인
"정명현 명예교수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 "
2012학년도 후학기 무렵 정년퇴임이 얼마남지 않아 그동안 전념하던 진료업무를 점차 정리를 해 나가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좀 생겼다.

고무신과 내리사랑

 
한국 국제의료사업 ‘세브란스’가 이끈다
복지부 창단 민관합동 TF서 의료기관 외국진출 지원 등
보건복지부가 최근 창단한 ‘국제의료사업 민관합동 TF’에 세브란스 의료진이 각 분야별로 포진해 정부의 국제의료사업을 이끌게 됐다. 복지부는 지난달 28일 일산 킨텍스에서 ‘2014 바이오 메디컬 코리아’ 행사에 앞서 국제의료사업 민관합동 TF 창단식 및 제1차 포럼을 개최하고...

세브란스-아시아나항공 MOU
 

해외환자 유치 날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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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원과 아시아나항공이 사회공헌과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협력한다. 의료원과 아시아나항공은 5일 종합관 교수회의실에서 업무제휴를 위한 협약식을 갖고 공익목적과 비즈니스목적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업무제휴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치과대학병원, 디지털 병원 선포
세브란스 해외 연수의, 외국인환자 유치의 새로운 동반자
세브란스, 급성기 뇌졸중 요양급여 적정성 평가 1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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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석 강사 최우수 젊은 연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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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외과부 발전보고회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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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보건청 의장단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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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R 기록 우수부서 전공의 시상
강남, 대장암 공개강좌
연세 대장암 국제심포지엄
“건강한 치아 평생 유지하세요”
ISSLS, 세계요추연구학회, 정기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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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빈 동창, 미 남부뉴저지주 26대 한인회장 선출
인터뷰-암병원에 그림 기증한 필리핀 인 토마스 헤달린
 

월드컵과 함께하는 세브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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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6:44 2014/06/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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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 의대동창 제중학사에 4만 달러

최병일 의대동창(65년졸)이 10일 의과대학 제중학사 기공식 소식을 듣고 건축후원금으로 4만 달러를 보내왔다.
최 동창은 “모교 후배들이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희망에서 모든 가족의 이름으로 후원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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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1:08 2014/06/2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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