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선도 연구 많이 나오길
치대 한동후 교수(보철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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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많은 사람이 도와줬기에 가능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동후 교수는 가장 먼저 치의학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 그의 스승 이호용 교수를 가장 고마워했다. 그 다음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었다. “환자들이 저한테 컴플레인을 못해도 직원들한테는 하는데, 그것을 다 받아주고 잘 처리해주었습니다”
한동후 교수는 국내에 임플란트를 보급하기 위해 1989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 교환교수로 다녀왔다. 사실 임플란트 시술은 1960~70년대에도 존재했다. 문제는 성공률. 5년 성공률이 50% 정도여서,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인정을 해주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세계적으로 소개된 새로운 소재와 개념의 임플란트는 발표 당시 성공률이 거의 90%를 상회했고, 결손된 치아를 회복하는 정식 치료 술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이호용 교수도 한 교수에게 임플란트가 굉장히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적극 권유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미국행을 택했다.
그리고 1991년 국내 최초로 치과대학병원 내 임플란트 클리닉을 개설하고 협진 체계를 기반으로 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했다. 또한, 전공의를 위한 임플란트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나아가 보철과학교실 주최로 임플란트 교육 연수회를, 개원의를 위한 임플란트 연수회를 처음 개최했다. 1997년부터 5년간 매년 임플란트 클리닉 Mini Residency 프로그램을 개최해 임플란트를 활성화 시키는데도 이바지했다.
대외적으로도 2015년 대한치과보철학회 회장으로 재임 시 International College of Prosthodontics 32차 국제학술대회를 우리나라에 유치해 서울에서 성공리에 개최했다.
1984년부터 전임강사로 시작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년간 청와대 대통령 의료자문의원으로 임명돼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의 치과 진료를 담당한 것도 그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동후 교수는 연구비 수주의 환경이 예전이 비해 많이 개선됐다며, 쉽지는 않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연구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이 좀 더 사명감을 갖고 조금 더 희생하고 헌신해 학교 발전을 이끌어 나가길 바랬다. 또한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 환자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도 충고했다.
35년 넘게 연세와 함께한 한동후 교수. 이제는 퇴임 후 후배가 운영하는 치과에서 함께 진료를 계속 이어나가며, 보철학과 임플란트학 발전을 위해서도 계속 매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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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6:09 2019/03/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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