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더 살더라도, 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 안대휘를 기리며
기고 | 이해경 재미의대동창(94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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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위암 말기인데, 이때까지 돈 버느라 하나님 위해서 한 것이 너무 없어”
22년의 공백을 깨고 한 너의 첫 마디. 기어이 넌 우간다까지 가서 수많은 영혼, 시력을 찾아주고 갔구나. 고맙다, 친구야. 너의 죽음을 통해 오히려 잘 사는 게 뭔지 손수 보여줘서 이제 우리가 이어서 네 몫까지 할게. 천국서 보자.
우리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 판자촌 달동네에서 여덟 식구가 다 함께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 생활을 안과 레지던트가 되도록 하면서도 늘 웃으며 주변을 편하게 해주는 그 깊은 목소리에 우린 그가 그토록 가난한지도 잘 몰랐다.
의대 6년간 고등학교 물보라 합창단 후배들을 위해 거의 매주 지휘와 편곡을 돕느라 캠퍼스에서 여느 대학생들처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고, 입학 당시 연필마다 이름을 새겨 다녔던 그의 모습을 우린 그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다.
제중학사 시절 머리 자를 돈이 없어 머리띠를 두르고 공부를 할지언정 그는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노래할 때 첫 음 잡는 피치 파이프가 없었어도 전자시계의 비퍼음으로 대신 원음을 기억했다가 노래를 시작하는 재능 많은 음악인이었고, 외국 한번 나가본 일 없이도 유난히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의대 4학년 때는 세란가요제에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불라다로 데뷔를 해 마지막 사은회에선 박신규, 박영수 동기와 선사한 아카펠라는 우리 94졸업생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노래였다.
세브란스 암병동 인턴 시절, 다들 피곤에 녹아 야밤이면 무시당하는 콜이 태반일 때도 지체 없이 달려와 필요한 처방을 놔주고 본인의 피로도 잊은 채 생명이 다해가는 환자의 손을 잠들 때까지 잡아주던 그는 온 간호사의 선망이었다.
가장 친절한 인턴상을 받은 그가 아무것도 없던 레지던트 시절 나이 삼십에 가족의 10억 원 빚을 감당하기 시작한 것도 우리는 이제야 알았다. 본인의 주장을 강하게 해서 분위기를 힘들게 한 적 한번 없고, 화낸 걸 본 적도 없는 우리는 이제 와서야 그의 삶의 무게가 느껴져 새삼 마음이 먹먹하다.
그럼에도 양평에 개업한 후에는 독거노인들을 찾아 장인어른이 모는 봉고차에 간호사 이수진 아내와 함께 2년 넘게 걸쳐 500명의 시력을 되찾아주었다. 그와 가난과의 사이, 역전승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시궁창 같던 가난, 깊은 수렁이었던 10억 빚을 벗어날 때 즈음 그에게 홀연히 찾아온 위암은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나락이었다.
위장 절제 수술 직후 비장 동맥이 터져 사경을 헤매고,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폐색전증으로 죽음과 삶을 오갈 때 오히려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지금 안 하면 안 돼.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그를 말리는 미국 의사들을 향해서도 당당했습니다.
“I choose meaningful life. I know I don’t have much time. I choose to use it for God and my family. I choose to praise my Jesus until my last breathe”
“너 같은 의사는 꼭 살아야 해. 나의 나라 우간다도 꼭 가줘. 그래서 눈을 열어줘”
그 후 꼬박 삼 년, 6번의 선교여행을 통해 그는 말기 암 환자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눈을 뜨게 했다. <사진, 오른쪽 두번째> 아파서 몸을 추슬러야할 때도 찬양을 통해 여러 이민 교회에 봉사했다.
“내가 못 다한 것, 같이 다 해줘”. 그가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오직 성령이 안대휘에게 임하시면 안대휘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 아내의 마지막 작별 인사다.
“아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자에게는 예수님이 상급을 주신다고 했던 말씀, 이제 제가 기억할께요”. 곧 대학을 가는 자녀 세린이, 혜린이가 아빠 대신 케냐로 다시 가고픈 이유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3절을 온 가족이 부르던 중 그는 마지막 숨을 조용히 거두었다.
미국 이민 교회에서 있었던 그의 장례식에는 그와 함께 봉사와 찬양을 한 많은 이들이 대휘가 작사 작곡한 찬양을 엄숙히 부르며 의대에 시신기증을 한 그를 그리워했다.
어떻게 그는 이 짧은 시간에 성치 않은 몸으로 외국 생활을 하며,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터치하고 갔는지, 장례를 목도한 나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졌다. 막연했던 슬픔이 감격으로 변하고 삶의 재도전을 받는 시간이었다.
“말기암환자, 왜 이 고생이냐 그거 아닙니다. 암은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숨겨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난 삼 년 동안 그이는 미국에서도 끝까지 잘 싸운 그리스도의 용사였고, 저와 아이들의 찬양 속에서 예수님과 천국으로 간 행복한 가장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케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안대휘는 우리에게 이런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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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14:34 2019/03/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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