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서 활 교수(의학공학)
“받은 은혜 많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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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활 교수는 1971년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해 석사까지 마치고 1985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떠났다. 당시 미국에서 세포에서 유전자를 조작하는 유전자클로닝(gene cloning)을 접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귀국하니 서울대에서 그를 찾았다. ‘인공심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생체재료의 개발’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995년 모교인 연세대가 그를 찾았다. 서 활 교수의 표현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모교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연세대 의과대학에 ‘재생의학’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구체적으로 치료용 세포를 활용한 인공조직을 만드는 것이 그의 전공이었다. 대학 학부와 대학원에 재생의학을 전공필수과목으로 만든 것은 연세대 의대가 국내 최초이며 그의 큰 보람 중 하나다. 이어 2005년에는 연세대 대학원 Nano 과학기술협동과정을 만들었고, 연세대 특성화사업 초정밀세포역학연구단장도 맡았다. 2006년에는 의과대학과는 별도로 BK21 세포기반 Nano이식재 연구 지원도 받아 팀을 이끌었다. 작년부터는 국제의용생체공학회(IFMBE) 세포공학부문 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서 활 교수는 2005년과 2007년 재료과학분야에서 논문 이용 횟수 최상위 1%에 드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언론인터뷰에서 “평소 관심 있고 좋아하는 연구를 즐긴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연구에 집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혼자 하지는 않았다. 모든 연구비는 처음부터 개인의 이름이 아닌 팀으로 받았다. BK21 세포기반 Nano이식재 연구도 8개 교실이 함께 모여서 같이 진행했다. 팀 어프로치였다.
“almighty(전능한, 엄청난)는 없습니다. 나보다 훌륭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야 좋은 결과가 나오지요”
그는 100년 넘게 땅 위의 주인 없이 이렇게 발전한 기관은 역사상 없을 것이라며, 선배들이 모두 헌신적으로 일했고, 자기보다 기관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 활 교수는 퇴임 후 오는 9월부터 일본 교토 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활동을 펼친다. 그동안 학자로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이제는 목사의 직분으로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살피려 한다.
“아비보다 자식이 잘나야 하고, 선생보다 학생이, 선배보다 후배가 잘나야 발전합니다. 세브란스는 그래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가 많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2018/09/06 09:06 2018/09/0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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