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감사함으로
케냐 의료봉사 후기 | 김유지 약사(강남세브란스병원 약제팀)





 누군가 올해 가장 뿌듯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의료비전트립을 꼽을 것이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그토록 보람찬 기쁨을 느껴본 적이 얼마 만이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몇 일이 지났건만 아프리카에서의 기억에 미소짓는 나를 보면 그곳에서 나는 많이 행복했었나 보다.


 진료봉사 나갔던 코어(Korr)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케냐 북부에 위치한 적도 인근 오지 마을이다. 거기에는 유목생활을 하는 ‘렌딜레’ 부족이 약 3만 명쯤 살고 있다.


 코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곳으로 사람이 살아가기에 힘든 곳이라 느껴졌다.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 나름대로 체력 단련 또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각종 물품과 약이 가득 들어있는 무거운 짐을 싣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코어까지 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의 사막은 예상보다 훨씬 가혹했다. ‘물은 곧 생명’이라는 말이 전에는 그저 여느 광고 카피로만 느껴졌었는데, 그 문구가 코어에서는 얼마나 피부로 와 닿았는지 모른다.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토록 절실하고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거기서 알았다.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코어에 있을 땐 물질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감사함으로.’라는 올 해 우리 팀의 슬로건은 정말이지 코어 의료봉사에 딱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의료봉사팀원들은 진료소에 도착하자마자 각자 일사 분란하게 맡은 일을 준비했다. 순식간에 진료 환경과 약국이 만들어졌다. 10개가 넘는 상자들 속에 약품을 가지런하게 채워 놓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으면 어느 틈에 환자 대여섯 명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 앞에 줄을 서 있곤 했다. 진료하는 내내 약국은 언제나 붐볐다. 그래서 마음이 급한 채로 일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기계처럼 일한 것 같아 그 점이 아쉽다. 바빠도 좀 더 환자를 보고 웃어 주고, 조금의 설명이라도 보태서 더 잘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에도 국내 의료봉사 및 교회 단기 선교를 다녀본 적이 있지만, 코어 사막에서의 경험만큼 봉사의 기쁨이 컸던 곳은 없었다. 가장 척박한 환경이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었겠지만 그 곳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과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해져 와서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고 준비해 간 약을 다 사용하지 않으면 안타깝기까지 했다. 약 뿐만 아니라, 약을 담아주는 비닐봉투와 고무줄 같은 비품들 또한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찡해 오기도 했다.


 3번째로 갔던 진료소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유독 생각난다. 가져 오신 처방전대로 이미 약을 드렸고 복약지도도 끝났는데 가시지 않고 계속 약국 주위를 서성이셔서 왜 그럴까 했는데, 알고 보니 비닐봉투를 한 장 얻었으면 했던 거였다. 그걸 드렸더니 어깨춤에 가까운 몸짓까지 하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 때 나는 살짝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내게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한 그 일회용 물품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다니, 아직도 그 할아버지의 환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코어를 떠나던 날 방문했던 ‘나무밑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이 옥수수와 강낭콩을 삶은 너무나도 조촐한 음식을 맛있게 먹던 광경도 오래오래 기억이 난다. 우리를 좋아해 주고 반겨 주고, 많이 고마워해 주던 그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 같았다. 봉사를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하고 자원해서 코어에 갔던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오히려 코어가 나를 선택해서 내려준 축복 같은 시간들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밤하늘의 크고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드렸던 저녁 예배의 감동, 오지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선교사님 가족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의료비전트립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후 약을 준비하는 과정이 촉박하고 급하게 이뤄져서 출발 전에는 내심 많이 걱정하고 불안했었는데, 끝나고 난 지금은 유독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정말로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넉넉히 채워 주시는 것은 물론, 내 기대보다 훨씬 큰 기쁨과 감동을 주시는 것으로 응답하셨다. 봉사기간 내내 함께 동고동락한 팀원들께 감사드린다.







2012/08/21 17:47 2012/08/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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