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의료 블로그 운영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수현 교수]
권위적인 의사들에 짜증 나 직접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어
환자들과 소통하고 싶어 시작… 그들의 슬픈사연으로 가득
"친절한 의사가 곧 명의죠"

'30대 초반의 부부. 행복한 연애, 결혼, 첫 아이 임신. 기쁨으로 시간이 충만한 임신 7개월째 어느 날. 뱃속엔 아이만 있는 게 아니라 종양도 같이 자라고 있는걸 알았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종양내과 이수현(40) 교수가 지난 4월 6일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글은 이렇게 이어졌다.

'태아의 폐가 성숙되길 기다려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을 받았다. (중략) 남편을 면담했다. 아이 백일잔치를 예정된 백일에 딱 맞추지 말고, 당겨서 하라고 했다. 아이가 건강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백일에서 며칠 모자란 어느 날 백일잔치를 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노래도 부르고 행복해했다. 그렇게 좋아했던 그녀가 어제 소천했다.어젠 실제 아이가 백일 되는 날이었다. 남편은 울면서 백일 떡을 우리에게 줬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목이 메어 우리는 아무도 백일 떡을 먹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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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후 신촌 세브란스 병원 종양내과 사무실에서 이수현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학회를 가는 날만 제외하고 매일 이곳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느낀 소회, 의사로서의 성찰이 담긴 글 1∼2편을 쓴다. 지금까지 1년 9개월 동안 약 720편의 글을 썼다. /이명원 기자


 교수는 작년 2월 블로그를 개설했다. 어려서 잔병치레를 많이 해 병원에 다녀보니, 권위적이고 쓰는 말도 어려운 의사들이 짜증 나 직접 의사가 됐다고 했다. 블로그 제목은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 그가 많이 맡아온 유방암 환자들이 한쪽 가슴으로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지었다. 한때 물리학도(이대)와 사회학도(서울대 대학원)를 꿈꾸다가 2000년 의대(연대)에 편입해 의사가 된 그의 블로그엔 그동안 23만명이 다녀갔고, 요즘도 하루 평균 1300명씩 찾는다. 블로그엔 의사로서의 자성(自省)과 아쉬움, 아픈 환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이 녹아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슬기 엄마이고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2011년 2월 25일 그가 쓴 첫 글 내용이다. 그는 "대학병원은 규모가 크고 의사 한 명이 봐야 하는 환자 수도 너무 많다"면서 "내가 주로 맡는 유방암 환자들은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환자들인데 이 환자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 (블로그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 6월 2일엔 엄마의 병을 처음 알게 된 아들의 얘기를 적었다. "환자는 항상 혼자 병원에 다녔다. (중략) 이 정도의 간 상태를 보이면 가족에게 앞으로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음을 설명해야 한다. 처음으로 아들을 만났다.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른다. 나는 만약 황달 수치가 계속 오르면 몇 주 안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했다. 아들은 순간 말을 잃는다. '엄마가 집에 가서 괜찮으실까요? 제가 엄마한테 평소에 해 드린 게 아무것도 없어서요. 아버지도 안 계시고 자식도 한명인데. 엄마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가 해 드린 게 아무것도 없어서요' 아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나에게 등을 돌리고 간다. 그 등에 위로의 손길로 다독여 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난 10월 6일에 쓴 '어린 보호자 면담'에선 아버지를 잃고 암으로 어머니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남매 얘기를 적었다. "고 2, 중 2 남매의 엄마가 내 환자다. 환자는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 안에 돌아가실 것 같다. 엄마는 자신의 상태가 악화되는 걸 알지만, 애들에게 얘기 말라고 한다. 하지만 환자 의견을 존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남매를 오라고 했다. '엄마 돌아가실 거야. 알고 있지? 엄마 몰래 부른 거야. 내 명함 챙겨놓고, 친척들하고 말 잘 안 되고 세상에 내 편 하나도 없는 거 같으면 전화해. 엄마 한테는 내 명함 받았다고 말하지 마. 그냥 우리끼리 보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딸이 명함을 챙긴다."

작년 2월 27일 '아직도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는 멀다'에서 쓴 글도 인기다.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이 점점 어려워진다. 제대로 설명하려면 나도 잘 알아야 하고, 이를 환자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최신 정보를 뽑아낸다 하더라도 환자는 아직 눈앞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고 그의 한마디에 울고 있는 존재다."

이 교수가 생각하는 "명의가 뭐냐"고 물었더니, 답은 명료했다.

"의사가 생각하는 최고는 첨단 논문과 이론을 체득하고 수술도 잘하는 의사예요. 그런데 환자들은 '그런 지식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알게 뭐냐. 친절한 의사가 좋은 의사지'라고 생각하지요. 이 차이를 줄이는 게 명의입니다."




2012/12/01 10:44 2012/12/0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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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같이 쓴 두 저자는 모두 세브란스병원 의사다. 의사가 쓴 유방암에 대한 책이라면 이 책이 그리 주목받을 이유는 딱히 없다.유방암 환자들에게 필요한 지식들이 나열되어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박경희, 이수현 두 저자에 대한 소개를 좀 유심히읽어본 사람이라면, 서둘러 본문으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세브란스병원에 몸담고 있는 의사지만, 한 사람은 유방암 환자로또 한 사람은 그녀를 치료하는 의사로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두 저자의 이력은 이 책의 출생과 맞물려 있다. 스물여섯의 박경희는 내과전공의로 일하던 중 3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환자가 된 그녀는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지금은다시 세브란스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이수현의이력은 좀 특별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다음 연세의대에편입해 의사가 되었다. 현재는 세브란스병원종양내과 임상조교수로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의사 둘이 쓴 유방암이야기가 아니라, 책 표지 부제에 나온 것처럼환자와 의사가 함께 쓴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다.이 책은 의사 박경희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환자박경희가 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의사에서 환자로위치 이동한 박경희의 시선은 모든 상황에서한번은 의사로, 한번은 환자로 반응한다. 진단에서 수술과 치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박경희는유방암 환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무릎을칠 만한 ‘공감’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기록한다.

예를 들어, 유방암을 진단 받은 후 그녀는 의대생시절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가 주관식으로 흔히 나오는 문제라 열심히암기했지만, “막상 내가 암환자가 되고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해보니…그 죽음의 5단계는 거짓이었다. 죽음의 위협은 그렇게 5가지 순서를 맞춰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환자의 심정을 가감없이 토로한다. 유방암 환자로 살게 된 1년 동안 박경희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유방암환자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 진단에 대한 설명,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증상들, 나아가 정신건강 문제까지 모조리. 각 장은 환자 박경희가 환자로서느끼고 겪은 감정, 증상, 과정을 말하면, 이어서 의사 이수현이 그 부분에 대해환자들이 알아야 할 유방암 의학 지식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어떤 약을 왜 먹는지, 어떤 작용과 부작용이 있는지,왜 그런 검사를 하고 이런 치료를 하는지 꼼꼼하게설명한다. 마치 환자가 궁금한 것을 털어놓으면의사가 친절하게 답변하는 것 같은 형식이다. 그들은환자와 의사로서 ‘유방암’에 대해 알아야 하고 말해야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낸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이“유방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쓴이 책의 목적은 충분히 성취된 셈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나, 그런 환자를 지인으로두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할 것이다. 환자에게 선물해주는 것도 아주 괜찮다. 유방암에관한 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아주 쉬운 것부터희귀하고 복잡한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기때문이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볼 필요없이 형광펜하나 준비해서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궁금했던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속시원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경희, 이수현 지음 | 청년의사 펴냄 | 13,000원
2012/11/07 09:25 2012/11/0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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