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일상 복귀를 목표로 달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아암을 앓았거나 견디고 있는 친구들을 향한 편견이나 소외가 아직도 존재하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와 교사, 학부모들을 병실에 초대해 소아암 환자와 어울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모두의 마음에 따듯한 구석이 있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 빨리 나아서 돌아와' 같은 영상 메시지를 만들거나 선물을 챙겨오는 경우도 많거든요. 결국 그걸 극복할 방법이나 기회를 마련하는 게 핵심입니다. 서로 알고 공감하면 편견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유철주 교수(소아혈액종양과)에게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있다. 생식세포종양을 앓던 열다섯살 소녀를 5년 넘게 치료하다 결국 잃어버렸던 기억이
다.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해도 신약과 신기술을 대할 때마다 아쉬움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중증질환을 다루는 의사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지만, 소아암 전문가는 어린 환자를 대하기에 그 안타까움과 아픔이 더 절절할 수밖에 없다. 20년 넘게 그 가혹한 심리적 소모를 경험해온 유 교수의 궁여지 책은 '최선'이다. 조금이라도 소홀했다간 어마어마한 회한이 찾아올게 뻔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의미가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수없이 안타까운 순간을 대하면서 어떻게 견뎌내느냐는 질문을 더러 받습니다. 뾰족한 수가 있거나 따로 상담을 받는 건 아니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성심을 다한다는 기본적인 직업윤리에 더해 나중에 찾아올 괴로움을 덜어보자는 뜻에서도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결정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와도 그나마 위안 삼을 구석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소아암 치료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가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100명이 암에 걸린다 치면 그 가운데 1명은 소아, 그러니까 18세 미만의 환자 입니다. 발생 빈도로 보자면 백혈병, 뇌종양, 악성림프종 순
서로 많이 생깁니다. 치료 성적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백혈병의 경우, 80-90%가 완치될 정도니까요. 그렇다고 흡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치료 방법과 약물은 선진국과 다르지 않지만, 기반시설이나 보험, 인력과 같은 주변 여건은 아직 부족한 면이 있어 꾸준히 개선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의 의료진과 함께 무서운 암을 잘 이겨나가고 있는 셈이군요.
같은 종류의 암이라면 어린이에서 완치율이 더 높은 건 사실입니다. 어린 친구들에서 생기는 암세포에 좋지 않은 성질이 상대적으로 적고, 치료에도 잘 반응
하는 까닭입니다. 항암제를 맞고 백혈구 수치가 심각하게 떨어져도 성인들과 달리 어린 친구들은 곧잘 이겨냅니다. 생명력이 그렇게 강하니 완치율도 자연히 올라가죠. 그런 보람이 있기에 앞서 이야기한 정서적 부담과 상실감을 잊고 다시 진료에 메달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환자가 어려서 보호자와 소통할 일이 많을 텐데, 특별히 신경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능하면 좋은 쪽, 긍정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 편입니다. 별을 따다 달라시면 따드리려 애써보겠다고 합니다. 원하시는대로 이뤄지도록 열심히 뛰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있죠. 소아암이라는게 언제든 나빠질 수 있는 질병이라 나중에 원망을 들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어린 환자를 둔 아빠 엄마에게 그런 희망이라도 없으면 험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그래서 기적을 믿어보자고 합니다. 의사마저 체념했던 환자의 경과가 좋아지는 경우도 드물게, 아주 드물게 있으니까요.


완치 선언을 받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겠군요. 완벽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잖아요.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다 나았거나 완치를 기다리는 친구들에겐 아직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습니다. 소아암이 유전된다는 식의 선입견은 대부분 사라졌지
만, '더불어 지내고 서로 배려하는'면에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언젠가 간호대학에서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10명 정도의 환자들을 골라 치료 후 학교생활을 추적한 적이 있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전학이나 중퇴를 선택했습니다. 학교와 학원, 방과 후 활동을 비롯해 또래들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해 무리에 섞이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소아암 환자 치료와 돌봄은 철저하게 팀이 함께합니다. 의료진은 물론이고 사회복지사, 약사, 완화의료팀과 원목실 식구까지 한 팀으로 환자를 봅니다. 일주일에 두 번, 환자 하나하나를 두고 치료부터 지원까지 포괄적인 의견을 나눕니다. 팀으로 협력하지 않으면 소아암 환자나 가족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려우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교수님이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이라 더 안타까우시겠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소아암 병동에 공간을 얻어서 병원하교를 세웠습니다. 2005년부터 건강장애아동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 충분치는 않지
만 예산 지원도 이루어지고 수업일수를 인정받을 길도 열렸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한 학년 아래 동생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게 죽기보다 싫은 일인데, 병원학교 덕분에 입원 기간이 길어져도 유급 당할 걱정이 없어진거죠. 중고등학생은 자원봉사 교사를 모셔다 개별수업도 진행합니다. 전국에 35개 정도의 병원학교가 있지만 세브란스가 단연 앞서간다고 자부합니다.


어린 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일상 복귀 프로그램이겠군요.
별도의 학교 복귀 프로그램도 마련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록수캠프'는 초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을 위한 일종의 학교 체험입니다. 아빠 엄마와 함께
등교해서 어린이들은 선생님과 시간을 갖고, 부모님들은 교사나 지난해의 경험자들과 함께 학교생활 전반을 챙겨주어야 할 점을 공부하고 상의합니다. '친구야, 사랑해'는 학급 배정은 받았지만 출석하지 못하는 탓에 얼굴도, 사정도 모르는 같은 반 친구들을 선생님과 함께 병원에 초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렇게 반나절 어울리다 보면 서로 마음이 오가고 사정도 알게 돼서 나중에 교실에 돌아가도 별 탈 없이 적응하게 됩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묻고 싶군요. 너무 과도한 부담을 지시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치료에 집중했지만 주위를 돌아보면서 병실 너머에도 필요한 일이 많고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선 거죠. 다른 영역을 침범하
는 게 아닌가, 너무 과욕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고민이 깊던 시절도 있었지만 워낙 긴요한 데다 보람도 커서 그냥 하고 있습니다. 분주한 건 사실이지만 돕는 손길이 많아서 짐을 저 혼자 다 지는 것도 아니고요. 처음에는 자조모임 중심으로 움직이다가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소아암 NGO한빛'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거든요.


한마디로 치료는 혼자 하지만 뒷일은 여럿이 힘 모아 해낸다는 말씀이군요.
아니예요. 치료도 함께합니다. 소아청소년암센터는 철저하게 팀으로 돌아가거든요.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물론이고 사회복지사, 약사, 완화의료
팀과 원목실 식구까지 한 팀이 돼서 환자를 봅니다. 일주일에 두 번, 환자 하나하나를 두고 치료부터 지원까지 포괄적인 의견을 나눕니다. 의견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환자를 살리고 보호자를 뒷받침한다는 지향점이 같으므로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합니다. 이제는 돌발적인 상황이 닥쳐도 치료 과정만큼은 유기적으로 돌아갈 정도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나니, 태생적으로 성품이 따듯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엔 성격이 너무 급하고 지나치게 꼼꼼한 데다 시야가 좁고 극도로 내성적이어서 주위에 계신 분들이 많이 힘들었을 겁니
다. 20년 전쯤, 지금은 은퇴하신 선생님이 성격 진단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면서 자신을 평가해보라고도 도전을 주셨던 게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렇게 제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간대학원을 다니면서 제 성격을 헤아리고 대처하며, 자신과 다른 이와 소통하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치료만하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병원학교나 자조모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쯤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세브란스병원 웹진
http://blog.iseverance.com/sev/2563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9/09/16 14:29 2019/09/16 14:2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1  ... 2 3 4 5 6 7 8 9 10  ... 1770 

카테고리

연세암병원 (1770)
연세암병원 소개 (980)
건강자료- 질병 (244)
건강자료-치료 (41)
환자수기,글,작품 등 (1)
질환 및 치료,기타정보 (354)
영양 (118)
운동 (23)

공지사항

달력

«   2019/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