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를 만나다

 

아침의 울란바타르한 나라의 심장부이지만 아직은 낙후한 제도와 무관심으로 여기저기 버려진 쓰레기와 무분별하게 방치된 매연, 그리고 뿌연 먼지와 안개가 아침의 새로운 해를 무색하게 한다. 빛 바랜 햇살이나마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하여 조금씩 아침 기운을 돋아 올리고비로소 기지개를 피고 일을 찾아 나설 시간이 되었다.

거창한 호텔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그냥 그저 그런 아침을 대충 챙기고 잠시 시간이 난 틈을 타 로비에서 아직은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긴 날이 될 것이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몽골의 가족들과 오늘 하루 외곽의 어느 지역으로 (그들의 표현으로는) 간단한 소풍을 가기로 했고, 그 길은 이미 익히 경험한 바와 같이 무시무시한 오프로드 몇 백 킬로미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나라가 커서 그런지 아주 가깝다는 곳도 300-400km는 족히 넘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금방 도착한다는 개념도 거의 100km안팍을 일컫는다.

몽골에 도착한지 이틀이 되었고, 짧은 일정으로 많은 일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조급하지만, 나를 친 형제나 아들처럼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적어도 그런 후레자식은 아니니까.

하지만 오늘 하루를 그냥 외곽으로 나가서 그저 건배, 원샷을 외쳐대며 칭기즈칸 보드카에 절인 피클마냥 되어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넓지 않은 호텔 로비에 한 남자가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여름철이었음에도 가을이나 초겨울에 어울릴 것 같은 양가죽으로 만든 두툼한 재킷을 걸치고, 베레모를 나름 맵시 있게 차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남루함이 덕지덕지 묻어 났고, 며칠을 그대로 자란 듯 수염이 멋대로 난 그런 모습이었다.

사실, 난 그냥 길을 다닐 때나 어디엔가 앉아 있을 때도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 바로 뚫어져라 바라보는 게 실례이기도 하고, 그다지 남들에게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을 주목하게 된 것은 여기 저기 마치 무슨 볼일이 있거나 용무가 있는 사람을 찾는 듯이 보였던 그가 바로 내 앞에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던 때부터였다. 그는 비록 남루하나 눈빛이 밝고 아주 예리한 느낌을 주었다.

“Are… you from..?”

더듬거리는 영어로 그가 말을 건넸다.

일순 당황한 나는 되물었고,

“Me?”

“Yes, … Japan?”

“No, from Korea. Do you have something to do with me?”

“No… ah, yes…”

그러고는 나에게 잠시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보이더니 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종이꾸러미를 꺼냈다.

“Just.. yes, just wait…”

그리고는 볼펜을 그는 볼펜을 꺼내 들었다! – 들고 나를 살피면서 선을 휙휙 그으며 내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조금 당황스러운 느낌이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고, 그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거나 아니면 명확한 거절을 표하는 일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러는 짧은 순간 그는 내 얼굴을 능수능란하게 그려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완성을 했다. 잠시 이리저리 살피던 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림을 내게 내밀었다.

“Your name?”

“Chang”

그러자 그는 몽골어로 그림 한 켠에 내 이름을 썼고, 자신의 싸인도 반대편에다 휘갈겨 넣었다.

자랑스러워하는 그의 얼굴과 그의 희망이 내게 다가왔다. 그의 마음이 함께 전달되는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단지 우리 돈 2000원 정도의 가치라는 것이 또한 마음 아팠다. 그는 적어도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는 화가임이 분명하다. 지금 그가 어떤 상태에 있어서 이런 일을 하건, 자신이 단지 몇 분 동안에 그것도 볼펜을 이용해서 성의 없이 보이는 그림을 그렸건, 그는 적어도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레 남에게 권할 정도의 자긍심이 있는데, 겨우 2000원이라니 말이다.

사실 그의 그림은 내가 그린 것보다도 훨씬 못하다. 나는, 그 사람이 찬성할지는 모르나 내 스스로는 그보다 훨씬 더 잘 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에게 그가 생각하는 그 금액을 주었다. 더 많이 준다거나 흥정을 하여 그를 더 비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그 그림의 가치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 역시 사실이나 그의 자존심만은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 앞에서 그처럼 당당하게 누구를 그려 보거나 해본 적이 없다. 단지 끄적거림 정도에 불과 했지, 그처럼 강한 획으로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었다.

그는 그날 아침 아무도 없는 호텔로비에서 내게 적지 않은 울림을 전해 주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허위허위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그의 지난 시간에 대해 길고도 긴 한편의 이야기를 구성해 보기도 했다. 그는 그 작은 돈으로 어딘가 싸구려 보드카를 파는 집으로 갈 것이 분명했다. 하루를 연명할 spirit(: 증류주도 역시 spirit이라 불린다.)을 그는 구할 것이다. 그의 내일은 어딜지 모르나 그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이유를 얻었다

 

나는 비로소 오늘 할 일을 하나 생각해 내었다.

작년 방문 때 하지 못했던 일.

바탕갈씨의 아들 발톨가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아버지가 희망 없이 한국에 와서 험한 수술을 받고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 여기던 그 당시, 9살에 불과하던 이 아이는 내게 우정, 그리고 생일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냈었다. 뛰어난 솜씨를 지닌 신동인 이 아이는 이미 개인전을 두 번이나 열었을 정도로 전도가 유망한 (이미) 화가이다.

작년에는 너무 일정이 빡빡해서 그와 야외 스케치를 하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오늘 아침 낭인 화가가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한 가족은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오면 화구를 챙겨 데려 오겠노라고 했다. 나도 늘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북을 챙겼다. 나는 사실 그림을 그릴 여유가 통 없음에도 가방에는 연필이며 스케치북을 넣어 다닌다. 아마 미련이나 아니면 아련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한 부적같은 것이 아닐까

 

아이가 왔을 때쯤 바탕갈씨 아버지의 어마어마한 내공에 의해 거의 반쯤은 마취된 상태에 이른 나는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섰다. 사실 더 있으면 죽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거든나를 큰 아들로 생각하는 바탕갈의 부친은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내가 술을 잘 (많이) 먹는 것이 그날의 최종 목표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초원은 오후의 바람이 불고, 저 멀리 천공에 기운 햇살이 있었음에도 차가운 기운이 옷섶을 파고들었다. 초원의 향기로운 풀내음과 적절한 냉기로 약간 감각이 돌아온 나는 적당한 자리에 주저 앉아 발톨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천재 소년은 화구 풀셋트를 벌여 놓고 한 작품할 기세였으나 나는 겨우 A4용지 만한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앉았다.

점점 바람이 불고 시간이 지나면서 향기롭던 초원의 환경이 그저 장난은 아니란 것을 깨달을 때까지의 아주 짧은 시간, 약간 과장하면 손이 곱아지는 느낌이 올 즈음 나는 이미 3장 정도를 완성했다. 완성그걸 완성이라 할 수 있을까 만은, 그래도 더 그릴 생각이 없었으니 그게 완성이랄 밖에. 아이는 아직도 몰두해 있었지만, 얼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오후가 되니 그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반팔차림이 밖에서 견디기엔 가혹한 정도였다.) 데리러 온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지 않았으면 난 좀더 고초를 겪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방에 들어오자 다들 관심 있어 하며 내 그림이며 이미 유명한 발톨가의 그림을 살펴 보았다. 아무래도 아이는 아인지라 아직은 선의 세련됨이나 구조적인 파악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역시 명불허전. 아이는 역시 출중한 재원이었다. 내 그림은손님이니 당연히 찬사를 받았지만, 그냥 그런 찬사지 진심은 아니었을 것을 잘 안다. 나는 늘 데생력이 부족했고, 그걸 색감으로 넘어서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시간약간 취하고 향기로운 바람과 저녁 초원의 냉기에 의존해서 그린 그 그림은 성의 없어 보여도 또 다른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느낌이 드는 날이다.

하루에 두 명의 화가를 만났다. 하나는 푸르른 미래를 머리 위에 둔 창창한 미래의 천재 화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알 수 없는 운명을 등에 진, 하루하루 삶의 가혹한 버거움이 그를 내모는 쇠락한 화가다.

그들의 길은 만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누구인지도 모를 것이다. 앞으로 영원히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을 모두 오늘 하루라는 짧은 시공간에서 만났다. 그들의 길은 나를 거쳐 어디론가 또 흐를 것이다. 나는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인연이었을까?

왜 이렇게 멀고도 먼 땅에서 화가 두 명을 만나 그림을 나누고 이런 상념을 가지게 되었을까?

 

 

시간이 지났다... 몽골을 다녀온 지도 두주가 훌쩍 지났다.

오늘 우연히 다시 꺼내본 그날의 내 그림은…. 놀랍게도 초원의 향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아침에 만났던 남루한 늙은 화가의 인상을 그대로 담았다. 내 얼굴을 그리던 그의 필치를 나도 모르게 내 그림에 담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허위허위 사라지며 보이던 쓸쓸한 등자락바로 그 느낌이 이 그림에 남았다.

미래의 어느 날, 이 기억이 떠오른다면그건 아마 내가 가진 강렬한 인상, 새로이 피어나는 젊은 천재의 희망과, 조락해가는 의지를 그저 한잔의 보드카에 걸 수 밖에 없던 그 늙은 화가에 대한 느낌일 것이다.

 

 

아래 그림은 이름 모를 몽골 화가가 본 '나', 그리고 그런 내가 초원의 한자락에서 그린 '나의 느낌'이다.

그날 따라 난 왜 하필이면 좋아하던 연필이 아니라 artpen을 집어 들었을까... 지금도 그게 의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4/07/07 14:47 2014/07/07 14:47
진료일지(41) 6월24일

 

 

60대 초반 남자환자 :

 

외래 초진  63세 남자 환자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 갑상선암으로 왔습니다"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허스키하다. 갑상선 결절이 있고 목소리가 허스키하면 암이 진행하여 성대신경까지 침범한 것을 의미한다. 갑상상선 결절이 있을 때 목소리가 변해 있으면 이 결절이 암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소견이지....

의과대학 학생들의 족보중의 족보다.

그외 갑상선 결절이 있을 때 암일 가능성이 높은 소견으로는

(1) 결절이 딱딱하다,(2) 결절의 표면이 울퉁불퉁 불규칙적이다, (3) 결절이 주위장기에 고착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4) 결절이외에 림프절이 만져 진다(이는 림프절로 전이 된 것을 의미한다) (5) 숨이차거나 삼킬때 목에 무엇이 거리는 느낌이 있다 등등이 있다.

 

환자에게 물어 본다.

"어,  목소리가  쉬셨네요. 언제부터 그려 셨나요?"

"아, 목소리 변한 거요? 좀 오래 되었는데요"

목을 진찰해보니 아이구야, 딱딱한 혹이 왼쪽 갑상선부위에 4~5cm 크기로 아주 고착되어 만져 진다.

'햐~~, 이거 강적이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타 병원에서 보낸 세침검사결과를 보니 갑상선 유두암으로 되어 있다.

 

가지고 온 초음파와 CT스캔을 보니 암덩어리가 왼쪽 갑상선 전체를 점령하고 있고 일부는 기도의 좌측벽과 식도까지

침범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 경부의 림프절 전이도 의심된다.

'아~~, 이 환자, 문제가 큰데.....'

기도와 식도가 침범 당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수술이 엄청 어렵고 수술후 회복과정도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아, 일이 좀 심각한데요...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암이 기도와 식도를 침범한 것이 확실한지, 침범했다면 어느정도

침범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를 절제할 것인지, 절제하지 않고 면도식으로 깍아 낼 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럴려면 MRI사진을 꼭 찍어 보아야하고 , 폐에 전이가 있는지도 알아 봐야 하겠습니다"

하고 환자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환자의 표정을 보니 허~~, 너무 담담한 얼굴로 표정의 변화가 없는 기라.

 

보통 이정도 심각하게 설명하면 환자는 초긴장을 하는 데 이 환자는 너무 늠늠 하다.

괜히 필자만 긴장하는 것 같다.

무슨 질문이라도 해주면 부연 설명을 해줄텐데......

환자는 수술 받껬다는 의사 표시도 없이  진찰실을 나선다.

'그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너무 걱정을 안 한단 말이야....'

 

오전 환자를 다 보고 늦은 점심을 외래 간호사들과 오 코디네이터와 같이 하면서 오전 환자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환자 얘기를 오코디가 하는 기라.

"교수님, 아까 그 환자 말이예요, 좀 이상해요. 자기는 수술은 절대로 안 받고 검사만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뭐 무슨 음식으로 치료하고 있는데, 지금은 목소리도 좀 좋아지고, 자기 생각으로는 암이 없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 목소리 좋아지는 것은 한쪽 마비가 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편 성대가 일을 더 해서 좋아지는 것 처럼

느낄 수는 있지...."

"그 환자는 음식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던데요...."

"그래?  차라리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그 환자, 수술해도 완치시키기는 이미 늦었는 것 갔던데.....

에휴.....21세기 대명천지에 아직도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요즘 TV 프로에 무슨 무슨 음식으로 암을 치료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니까 이런 환자들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소위 공영 방송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엉터리 사례들을 방영하여 일반 대중들을 호도하고 있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기라.

방송들이 갈수록 저질화 되어 가고 있으니 이거 원~~~~

그나저나 어떻게 그 환자를 설득하지..... 이 시간까지 계속 찜찜하네....

2014/07/07 14:43 2014/07/07 14:43
진료일지 (40) 6월 23일

 

 

 60세 남자환자 :  건강 검진에서 오른쪽 강상선날개와 왼쪽 날개에 0.5cm와 0.95cm결절로 내원한 환자다.

세침세포검사결과는 오른쪽은 카데고리 6로 유두암이 확실하고 왼쪽은 초음파영상에서 양성일 가능성이 높아 세침검사를

생략한 상태다. 0.5cm암이니까 지켜 봐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위치가 갑상선피막을 침범한 것 같아 수술을 권유했는데

환자분이 순순히 응해 준 기라.

나이가 45세이상면서 피막침범이 있으면 림프절전이도 잘 되고 재발율도 높아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수술 게획에 대하여 환자에게 말 한다.

"오늘 수술은 오른쪽 반절제술 가능성이 많지만 혹시 림프절 전이가 발견되면 전절제로 돌아 설지 모르겠습니다.

또 반대편 결절이 현재로서는 암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수술중 암이라고 밝혀지면 전절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환자는 그저 그저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표정만 지어 준다.

 

초음파영상으로 오른쪽 결절은 저음영(hypoechoic)에다 키가 크고(taller than wide) 불규칙한 경계(irregular margin)를 보여 암일 가능성이 높지만 왼쪽 결절은 덩치가 커지만 둥그스럼한 것이 양성결절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되어

환자분에게 이건 건드리지 않겠다고 얘기 했었는데, 어라 ?... 수수술실에서 다시 보니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아닌 것

같은 거라.

수술조수에게 물어 본다."저 왼쪽 결절 좀 냄새가 나지 않나?"

"글쎄요"

"위치가 한가운데 있어 고것만 들어내기가 좀어렵겠는데...?  그래도 떼어 내서 조직검사해보는 게 좋겠지?

나중에 암으로 나오면 골치 아파지니까 말이야...."

"그러게요"

 

그래서 오른쪽 반절제와 중앙 경부림프절 청소하고 왼쪽은 결절만 따로 떼어서 긴급조직검사를 보낸 기라.

어라? 검사결과가 빨리 안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면역염색으로 들어갔단다.

"아이쿠, 암일지도 모르겠네...결과를 기다려 보는 수 밖에....."

 

한참을 기다리니까 드디어 결과가 "암아님, 림프절 전이 없음"으로 나온다.

"만세 만만세다"

그래서 수술은 우측 반절제로 끝난기라. 

수술후 갑상선 홀몬검사가 잘 나오면 이 환자는 "에레라 디야~~"가 되는 거다.ㅎㅎ

 

53세 여자환자 :2011년에 왼쪽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별다른 처치 없이 그냥 지내오다가 이번에 세침세포검사에 여포종양이 의심되어 찾아 왔단다.

초음파 영상을 보니 왼쪽 갑상선날개에 2.67cm 크기의 결절이 있다. 둥그스럼하고 예쁘게 보이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암이다 암아니다 할 수는 없는 기라. 이 종양 말고 바로 그 윗쪽에 2~3mm 크기의 결절이 하나 더 있고,

오른 쪽 날개 아랫쪽에도 3mm 크기의 결절이 있다.

왼쪽 날개에 있는 결절이 여포종양으로 나왔으니까 수술을 해서 암인지 아닌지 밝혀 내야 한다.

 

일반적으로 여포종양이라 하면 30%는 여포암이고 70%는 양성인 여포선종이다.

여포선종(follicular adenoma)은 시간이 지나면 여포암(follicular carcinoma)으로 변한다. 따라서 암으로 변하기 전에 수술을 해주면 완치가 되는 것이다.

여포암으로 진단 되려면 종양세포가 종양의 피막이나 혈관을 침범한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근데 이걸 증명한다는 것이 어렵다.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침범한 것이면 진단은 간단하지만, 육안으로는 안 보이고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정도의 침범은 정말로 어렵다. 이것은 수술중에 진단되기는 어렵고 수술후 영구조직표본으로

세밀히 보아야만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이 과정이 1주일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암으로 진단되어도 피막까지만 침범된 것이면 예후가 양성종양 비슷할 정도로 좋으니까 반절제만 해도 되지만

혈관까지 침범한 것이면 남은 갑상선 조직을 다 떼는 수술(completion thyroidectomy)을 하고 방사성요드치료를 추가로 해 주어야 한다.


이 환자는 우선 왼쪽 날개와 오른쪽 아랫쪽에 있는 결절을 떼어서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낸다.

여기까지의 수술은 1시간도 안  걸리게 간단히 끝낸 기라.

근데 왼쪽 날개에 있는 여포종양의 진단이 어려워 면역 염색까지 해야 한단다.

"에휴~, 시간께나 잡아 먹겠다.."


1시간 가까이 되어도 조직검사실로부터 소식이 없는 기라.

"면역 염색이 사람 죽인다. 왜 이래 빨리 안되노?" 

재촉하고 재촉한 끝에 결과가 컴푸터보고란에 뜬다.
-왼쪽 큰 결절은 여포선종임, 바로 윗쪽에 600umm 유두암도 있음, 오른쪽 결절은 선종양 증식증임"

"뭐야 여포선종이 확실한 거야? 전화 다시 해서 확인해 봐"

"더 확실한 것은 영구조직검사를 봐야 한다는 데요. 지금으로서는 피막이나 혈관 침범이 안 보인다는 데요"

"그럼 할 수 없지. 일단 수술 종결하고 일주일 기다려 보는 도리 밖에 없지......"

600um크기의 유두암은 암이라고 이름은 붙어 있지만 무시해도 되는 암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여포종양 진단은 이렇게 어려운 거라. 환자측에서 보면 불만이 있을 수 밖에....

더우기 일주일후에 재수술하자고 하면 기가 막힐 것이다.

"그래도 우짜노 현실이 이런 걸.... "


저녁 회진시간에 환자와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다 알고 있다는 듯 쉽게 이해 준다.

"오늘 암인지 아닌지 진단이 안된 환자는 1주일 후에 암으로 밝혀진다해도 아주 작게 퍼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것입니다. 물론 암으로 변하지 않은 단계라면 더 좋구요"

환자도 모든 가족도 기분좋게 웃는 얼굴을 필자에게 보내 준다. ㅎㅎ

2014/07/07 14:42 2014/07/07 14:42

아버지의 처방

 

내 아버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과 같이 외과의사다.

그는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계기로 의사가 되었고, 역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스승을 만나 호된 수련을 쌓아 소위 3D인 외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가장 혹독한 수련을 쌓고 있을 때 태어나 역시 어렵게 살림살이를 꾸려나갈 당시 천둥벌거숭이 마냥 자랐었다. 내게 아버지는 늘 어렵고 먼 대상이었으며, 정말 어쩌다 한번 집에 오시면 다들 숨도 쉬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탓에 아버지 얼굴을 보는 것도 두려운 정도가 되었다. 물론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을 하시는 지 아느냐, 너희가 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편하게 해드려야 한다 했지만, 우리는 아버지란 존재는 가족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머나먼 저 하늘 언저리쯤 어딘가에 있는 그런 분이라 생각했었다.

아무튼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리 두텁지 못하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야 겨우 한마디쯤 말을 주고 받아 보았을까? 그리고 대학 3-4학년 정도 되어서야 소위 대화라 할 수 있는 그런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었을 정도다. 그러나 그렇게 대화가 가능해진 때에도 어린 시절처럼 그분은 여전히 하늘 언저리에서 내려오실 줄 몰랐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는 말이다.

 

아버지께서 멀리 계셨던 것처럼, 나 역시 아주 멀리 멀리 달아나 있었던 것 같다.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말이 섞일 기회를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 역시 땅 언저리 어디에선가 숨어 지내는 대척점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는데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는 늘 갈증을 느끼는 가련한 아들인 것으로 포장했었고 스스로 피해자 아닌 피해자인양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에서야 인정하지만아주 필수적인 대화 외에 다른 것을 시도했던 건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단 한번도 흔들림이 없었던 내 미래 희망이 잠시 위기를 맞았었다. 본과 4학년이나 되어서 난데 없이 방사선과(요즘은 영상의학이라 불린다.)가 내 눈 앞에 나타났었다. X-ray film 을 보며 병을 진단해 내고 병의 원인을 유추하고 치료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 방사선과가 내게 보여준 매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내 인상으로는 Smart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한 그런 분야였던 것이다. 마치 영상을 보고 길을 알려주는 예언자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이 부분은 동료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고민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 도토리 키 재기지아는 게 다 고만 고만 한 녀석들끼리 모여서 이야기 해 보았자 결국 도토리, 상수리 등등 그런 나부랭이 아니겠는가? -  아버지께 의견을 여쭈어 보았었다.

그러자 우리 부친역시 무뚝뚝에서는 일가를 이루신 분이시라 단 한마디로 일도양단(一刀兩斷), 가을철 김장 무 자르듯 하셨었다.

엑스레이가 의사냐?”

예나 지금이나 외과의사들은 다른 과를 알기를 뭐의 뭣처럼 (차마 그대로 옮기기 힘든 점을 살펴 주시라…) 하는 데 아버지는 그들 중에서도 극상(極上)의 레벨! 과연 외과의 극우(極右)에 해당한다 하겠다.  어쨌든 그 결과 나는 가던 길을 멈추지 않고 외과의 품으로 다시 돌아 와 지금도 이 길에 있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후 우여곡절 끝에 군대를 가기로 결정 했을 때, 내가 그 지경을 당하게 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정말 실망했지만, 그리고 부모님들이나 가족에게 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내 배경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를 적잖이 원망하기도 했었다. 실력으로 이기고도 밀려나는 심정은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사실, 당시가 내게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추스르기도 힘들었고 엄동설한에 군대 훈련을 받을 생각도, 그리고 당장 하고 싶은 일들과 계획이 많았는데 그걸 다 접어야 한다는 것도 다 내겐 고난이자 형극이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나라가 부른다는데.

그나마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륜에 위배되고 삼강오륜에 비추어도 천인공로 할 짓이란 것을 조기교육으로 깊이 세뇌된 장남인 나는, 표면적으로는 적어도 장남으로서 할 도리는 하고 있느라 애썼다.

 

비록 인턴 때도 집에서 떨어져 있기는 매 한가지였지만 군대 입대를 앞두고 인턴 마지막 근무가 진주에 있는 병원 파견이었던 까닭에 주말에 가끔 집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뭐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마지막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시기엔 그래도 아버지와 대화를 자주 나눌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의사가 되고 나서 좀 담대해졌고, 아버지 역시 내가 군대를 가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술도 대작하고 가끔 함께 노래도 부르고 아마 이때처럼 부자간 사이가 돈독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아버지로부터 과거 당신이 겪으셨던 이야기들, 외과의사로서의 어려움과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끝까지 드높은 자존심에 대해서도 잘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외과의사 그 자체였다고 기억한다. 참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그냥 외과 그 자체.

게다가 스승 장기려 박사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무한정한사명감까지.

그때서야 나는 내 아버지가 왜 그렇게 어려웠었나 깨닫게 되었다. 정말 하늘 언저리에 계셨던 것이다! 높은 이상에 매여 계시니 발이 땅에 닿지 않고 현실의 티끌을 경원(敬遠)하니 늘 청빈’ (요새 이런 말은 별로 좋은 말이 아님을 잘 안다. 허나 과거에도 가족에겐 그리 좋은 말이 아니었던 것도 분명하다.) 하시니 힘도 없고, 아들을 돕기도 힘든 것이었지.

 

하지만 나는 그 때부터 정말 아버지를 존경하기 시작했다. 숨도 크게 쉬지 말라는 어머니의 강요라거나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진정 동료이자 선배로서, 그리고 외과의 스승으로 존경하게 된 것이다.

요즘 내 동생들이 진저리를 치는 것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 인용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오빠! 요새 정말 아버지랑 똑 같은 것 알지?!”

그렇다. 나는 외과의사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을 닮는 것이 뭐 나쁘단 말인가?

 

그리고 그 시절에 의사로 수련 병원이 아닌 외부로 첫발을 내디딜 초짜 의사인 아들을 보며 못내 불안하신 심경을 감추지 못했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 서류더미를 정리하다 바로 그것을 발견했다.

내 기억으로는 나를 옆에 앉혀두고 병원에서 쓰는 의무기록지에 아버지의 휘갈긴 듯 날라가는 달필로(아버지는 나와 달리 달필이시다. 내 부모님들은 내가 졸필인 것을 보고 지금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계시다. 누굴 닮아 그러냔 것이다.) 감기약 처방, 소화불량, 등등으로부터 농약중독에는 뭘 써야 하고하는 내용들을 다 세세히 써서 주신 것이 있었는데, 그걸 다시 찾은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감기약이나 소화제 같은 기본적인 처방은 이 아버지의 처방대로 쓰고 있다.

사실 내가 처방하는 감기약은 참 잘 듣는다고 꽤 소문이 나있다. 환자들이 다 타가고 싶어하는 약이다. 그런 이 약이 바로 내 아버지의 처방인 것이다.

 

나는 내일 작년에 갔던 몽골을 다시 방문한다.

작년과 동일하게 난치성 갑상선 암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하나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평생 아버지와 함께 수술을 진행해 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몽골 방문에서는 가장 어려운 증례 한 건을 지금 나와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내 동생(장호진)과 부친과 함께 수술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처방전을 받고 집을 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참을 걸어온 것처럼, 아버지의 길 역시 한참 된 세월이 존재한다. 내가 이 처방전을 다시 찾은 것처럼 아버지의 길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내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그날의 그 감격처럼, 이제부터 그리 길지 않은 1주일이란 일정에 내일을 살아갈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기를.

그리하여 내 마음을, 그리고 모두의 마음을 치유할 새 처방전을 갖게 되기를.

 

2014/07/04 15:51 2014/07/04 15:51

진료일지 (38) 6월 18일 



76세 남자 환자 : 오른쪽 갑상선 날개의 2.0cm 크기 유두암으로 오늘 수술대에 오른 분이다. 초음파 영상에 보이는 암덩어리의 모양이 험악하기 짝이 없다.  또깨비 뿔 달린 것처럼 암의 표면이 삐쭉삐쭉 튀어 나와 보인다.

같은 유두암이라도 표면이 부드럽게 생긴 놈과 비교하면 삐쭉 삐쭉이가 예후가 더 나쁜 것으로 되어 있다.

암 표면에서  더 빨리 자라고 퍼진 부위가 삐쭉삐쭉 하게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이 환자분은 이 삐쭉삐쭉 자라 나온 부위가 갑상선 피막의 앞쪽을 침범하고 있다.

초음파 영상에서 왼쪽 갑상선 날개에는  암은 없으나 만성 갑상선염의 소견이 심하다.

 

이 분은 항상 온화한 미소를 보내주어 상대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어제 저녁에 수술전 설명을 하러 병실로 갔더니 온 가족이 다 모여 있다. 근데 모든 가족의 표정이 이 분과 비슷하다.

보통은 긴장한 얼굴로 이것 저것 질문이 많은데 이분들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76세 고령이라 걱정들이 많을 텐데 그냥 무한의 신뢰를 보내주는 기라.

오히려 긴장하는쪽은 우리 의료진이다.

"심장 문제만 없다면 갑상선 수술자체는 위험한 수술이 아닙니다. 잘 될 것입니다"

"아주 건겅하세요, 베드민턴도 잘 치시고요..."

"아마 내일 수술은 반절제보다 전절제를 할 가능성 더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반절제하면 아무래도 재발율이 좀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수술대에서 반절제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반절제도 고려는 하겠습니다"

"아이구, 교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요"

 

근데 얘기가 오가던 중에 알게 된 것이 환자분이 목사님이시란다.(그러면 그렇지....어쩐지.....)

"그럼 지금도 목회일을 ?" 

"아니요, 은퇴하셨지요..."

목회일을 하신다면 설교하실 때 목이 쉽게 피로해 질 것이라고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심장 문제 때문에 아스피린을 복용해왔던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뭐 잘 되겠지 하는 믿음이 생긴다.

 

수술은 전절제를 한다. 암이 피막 침범을 한 것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이기 때문이다.

근데 수술중 갑상선을 만지는 느낌이 딱딱한 돌덩이를 만지는 것 같은 기라. 만성갑상선염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갑상선은 수술조작이 어렵다. 또 수술후 부갑상선으로 가는 혈액순환이 나빠져 저칼슘혈증이 오기 쉬운 기라.

조심조심 부갑상선들을 제자리에  모셔 두긴 했는데..... 글쎄, ,,결과는 나중에 혈액검사를 해봐야 알겠지.......

괜찮겠지.뭐........ㅎㅎ

 

저녁 회진으로 병실에 가니 여전히 그 온화한 미소를 보내주는 기라.

수술후 목소리. 부갑상선 홀몬 수치, 칼슘수치 모두 정상이다. 무탈하게 회복 될 것이라 예측되는 기라.

 

 

 

 오늘은 터키에서 온 Makay교수 일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 새벽 비행기로 이스탄불로 간단다.

그동안 많이 배워서 너무 고맙단다. 터키 자기병원을 꼭 방문해 달라고 한다.

오늘은 Makay 교수가 터키에서 경험한 갑상선암 환자의 사진을 보며 설명을 듣는 짧은 시간을 가진 거라.

물론 심한 환자 증례를 담아온 것이겠지만 대체로 우리나라 환자들 보다 많이 퍼진 환자들이 많다.

식도, 기도, 근육, 혈관 침범 등등 끔직한 환자들이 많다.
"아니 니네 나라들은 왜 심한 환자들이 많냐?"

"한국처럼 건강진단을 해서 발견되어 오는 환자수는 적고 대부분 암이 진행되어 증세가 심해져야 병원을 찾아 오기 때문이다.

터키는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 같다"

"1cm 미만 암은 적겠다. 니네도  작은 암은 반절제를 하냐? "

"우리는 대부분 전절제를 한다. 미국 갑상선학회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우리 병원에 체류하면서 느낀점은?"

"많다, 다 열거하기 어렵지만 시스템이 참 잘되어 있다. 그래서 많은 환자수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돌아가서 우리도 갑상선 암센터를 만들고 싶다"

"고맙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라"

필자는 Makay교수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터키의 엘리트 교수라는 것을 그동안의 주고 받은 많은 얘기를 통하여 알겠는 기라.

앞으로  활발한 교류를 하면 서로가 많은 것을 배울 것 같다.

맨날 똑 같은 일을 해오다 터키 교수 일행으로 부터 새로운 활력소를 받은 것 같은 기라.



2014/07/04 10:12 2014/07/04 10:12

 진료일지 (38) 6월 17일

 

 33세 남자환자 :  지난6월2일 왼쪽 갑상선 날개에 생긴 2.0cm 유두암으로 갑상선 전절제술과 중앙 경부 림프절 청소술을 받고 6월5일퇴원후 오늘 처음 방문한 환자다. 수술후 목소리, 혈청 칼슘치 등 모든 것 모든 것이 문제 없다.

암수치를 나타내는 혈청 타이로글로부린(Tg, thyroglobulin도) 0.2 ng 으로 최저 수치다.

"햐~~, Tg항체 증가없이 Tg가 0.2ng 이하라면 이거 뭐 방사성 요드치료를 꼭 안해도 되잖아..... 나이도 33세로

젊고........ 이거 Tg 수치가 좋은데요" 하면서 환자의 병리 조직검사 결과를 본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전형적인 유두암이 아니라고?

뭐?   저분화암(poorly differentiated carcinoma) 이라고?

아니 환자의 나이가 이렇게 젊은데 저분화암이라고?

저분화암이라면 미분화암의 전단계가 아닌가?

말도 안돼.......말도 안돼............

갑상선 유두암이나 여포암을 치료하지 않고 오래동안 방치하였을 때 암세포의 성질이 더 악질로 변질(transformation)되어 저분화암이 되고 저분화암이 미분화암으로 변하는 것인데.......

그래서 보통은 60대, 70대 고령환자에서 볼 수있는 암이 아닌가....

 

근데 이 환자는 이제 30대 초반이 아닌가?

이런 종류의 저분화암은 고령의 환자에서 보는 것과는 진행과정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암일 것이다.

무슨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빨리 온 것일 거다.

 

Tg수치가 0.2ng으로 낮은 수치를 보인 것은 잘 분화된 유두암과는 달리 저분화암이었기 때문에 Tg생산이

잘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Tg 생산이 잘 안된다는 것은 분화가 나빠 방사성 요드를 투여해도 이를 흡착하는 능력이 없거나 적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방사성요드치료는 이 환자에게는 아무런 효과를 못볼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할 수 없이 차선책인 외부방사선치료(또는 토모 테라피)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신지로이드 복용으로 갑상자극홀몬 억제치료(TSH 억제치료)를 병행해야 하고...

 

근데 아무래도 전형적인 갑상선유두암보다는 예후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갑자기 환자의 가족 상황이 궁금해서 물어 본다.

"장가 갔소?"

"예, 쪼끄만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구만, 열심히 치료해서 딸아이 시집도 보내야지...."

"예................."

아니 심각한 환자 앞에서 뭐 이런 말이 위로가 된다고 이거 원............

참 이상도 하지......왜 요즘에 이렇게 휘귀하고 이상한 환자들이 늘어가지......

 

근데 전이가 잘 된다는 저분화암인데도 불구하고 중앙림프절에 전이 림프절이 한개도 없다는 것이 그래도 고무적이라

생각 되는 기라.

그래, 희망을 가지고 이놈의 암과 전투를 치루어 보자구. 

 

사족: 8인의 의사연대 주장대로라면 이 환자는 진단도 치료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14/07/04 10:12 2014/07/04 10:12
진료일지 (37) 6월 16일

 

 66세 여자환자 : 5년전인가 6년전인가 환자가 잘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전에 갑상선에 결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암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냥 지나 왔다고 한다. 근데 2 년 전부터 이 혹이 갑자기 커기 시작하여 이제는

누가 봐도 왼쪽이 불룩하게 보일 정도로 커져 버렸단다.

초진 전에 타병원에서 한 세침검사결과는 암은 아니고 양성결절인 선종양증식성 결절(adenomatous hyperplasia)이란다.

가지고 온 초음파영상을 보니 5.3cm크기의 커다란 결절이 왼쪽 갑상선 날개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고, 결절의 한 가운데는 물혹으로 변해 있다.

의사라면 누가 봐도 "이건 양성이다"라고 생각되는 결절인기라.

그래도 결절의 크기가 4.0cm보다 훨씬 커져 있기 때문에 수술을 권유헀는 기라.

"4.0cm 넘는 결절은 절대로 저절로 작아지지 않는다, 점점 커지면 기도와 식도를 압박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술전에 세침검사에는 암이 아니라고 했지만 실지로 수술해 보면 암으로 나오는 경우가 20% 넘는다...."등등의 이유로

수술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설득하니 고맙게도 수술을 받겠다고 한 것이라.

 

수술실에서 터키에서 온 교수(A.Makay)에게 묻는다.

"너는  이 환자, 양성이라고 생각 하냐? 아니면 암이라고 생각하냐?"

"초음파영상으로는 양성이 틀림없는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종진단은 결절을 포함한 왼쪽 갑상선을 떼어서 조직검사결과를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속으로는 "이거야말로 양성이 틀림없을거야" 하고 왼쪽 갑상선날개를 떼어서 긴급조직검사실로 보낸 기라.

 

근데 이상하다. 양성이 확실하다면 금방 답이 올텐데 소식이 없다. 알아 보니까  면역염색이 들어 갔단다. 그렇다면 뭐가 이상한 것이다.  혹시 암?

에이 설마...... 그래도 결과를 기다려봐야지.....암으로 나오면 남은 오른쪽 갑상선 날개도 완전 떼어 주어야 하니까

(completion thyroidectomy).

 

면역 염색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40분인가 50분후에 결과가 컴퓨터에 뜨는데... 어이구야...암이란다.

뭐? 유두암의 여포변종(Macrofollicular variant of papillary carcinoma)라고?  그리고 바로 옆에 0.5cm 크기의

전형적인 유두암이 하나 더있다고?

히유~~~~~~~.

터키 Macay 교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놀랍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다"

 

암으로 나왔고 1.0cm보다 훨씬 큰 거대암이고 또 하나의 유두암이 있기 때문에 오른쪽 남은 갑상선도 반드시 떼 주어야 한다. 그리고 방사성요드치료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수술창을 열고 남은 오른쪽 갑상선 날개까지 완전히 제거해 준기라.

"근데 환자는 반절제를 기대하고 있었을텐데........뭐라고 위로해 주지?....요즘 이런 류의 환자가 늘어가고 있단 말이야... 참 이상하다....이상한 환자만 나한테 와서 그런가?"

저녁 회진 때 환자와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니까 의외로 크게 놀라지 않고 잘 수긍해 주는 기라.

역시 4cm 이상 결절은 수술을 권유하는 것이 정답인 기라.

 

 

47세 여자환자 : 오른쪽 갑상선 날개에 1.3cm 와 0.9cm 크기의 결절로 내원한 환자다.

타병원의 세침검사 결과는 "휘틀 세포종양 의심(suspicious Hurthle cell neoplasm)"이다.

이럴 때는 진단적 우측 갑상선 절제술을 해서 정밀 조직검사를 해봐야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세침세포검사로는 도저히 구분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종양은 수술중 긴급 동결조직검사로도 진단이 안되는 수도 많다. 종양세포가 종양의 피막을 침멈했나 혈관까지 침범했느냐를 보고 암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환자의 오른쪽 갑상선 날개를 떼어서 긴급병리조직 검사를 보낸다.

틀림없이 면역염색을 할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온 음악이나 듣지 뭐....

마침 "바흐의 아리오소"가 나온다. 이곡은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그저 그만이다.
Makay교수에게 묻늗다. "너 음악 듣기 좋아 하냐?'

"좋아 한다"

"이곡은 어떠냐?"

"바흐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곡인 것 같다"

"수술할 때 수술이 잘 안풀려 불안하거나 흥분될 때 이음악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 진다. 너도 한번 시도 해 봐라"

"그럴 것 같다. 나도 이 음악이 좋다"

 

이윽고 긴급동결절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

--휘틀세포 종양임, 그러나 암인지 아닌지는 영구조직검사 결과를 봐야 됨--

"아이구야~~별 수없지 뭐. 여기서 수술 끝내고 결과에 따라 2차수술 각오해야 되겠네........."

Makay교수가 묻는다. "영구 조직 검사결과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일주일안에는 나온다. 만약 암으로 결론이 나면 1주일 후에 다시 환자와 함께 수술실로 올 예정이다"

"일주일? 그렇게 빨리 결과가 나오나? 우리는 2주쯤 걸린다"

 

Makay교수가 말한다.
"너희는 수술절개선 길이가 우리와 비교해서 짧게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피부봉합을 예쁘게 한다"

"한국사람은 미용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쁘게 안해주면 불평한다"

"터키사람은 수술이 잘되는냐에 신경쓰지 목피부 미용에는 별로 신경 안쓴다"

"수술후에 목소리 톤 낮아지고, 목이 땡기는 것(tightness)에 대헤서 콤프레인 안 하나?"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 걸로 콤프레인 하는 것 보지 못했다"

터키와 한국의 문화의 차이가 많이 있나 보다. 까짓거 때려치우고 터키에 가서 수술하며 여생이나 보낼까?....

안되지.....큰일 나지..... 많은 자식같은 환자들은 우찌하라고....

 

저녁회진때 환자에게 사전에 두번 수술 가능성에 대하여 얘기를 해 주어서 그런지 오늘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더니 역시 잘 이해를 해 준다.

그래도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날려주고 병실을 나온 기라.

"1주일간 열심히 기도해보십시다. 2차수술 안하게요..."

사족: 이 분은 영구조직검사결과가 휘틀세포선종으로 최종 진단되었다. 암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완치다.

  "에헤라 디야"

 

2014/07/04 10:11 2014/07/04 10:11

박정수 교수님 칼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를 기억하시나요?

2014년 4월 28일에 올린 박정수 교수님 컬럼입니다.


헬스미디어 오피니언 칼럼 주간 인기글 1위에 오르기도 했었어요.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바로가기~~~click~!!!!!


이 기사를 현대 그린푸드에서 보고 조리원님을 찾아서 포상을 하였다고 해요.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놀란 조리원님은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박정수 교수님의 글이 이렇게 다른 분께 큰 기쁨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리원님의 좌우명은 "남에게 뒤쳐지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 이라고 합니다.

10여년 전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현대백화점 그룹 6월 사보에 실린 내용 올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4/07/03 13:46 2014/07/03 13:46

 진료일지 (36) 6월 13일

 

 

44세 남자 환자 : 건강검진에서  왼쪽 갑상선 날개에 결절이 발견되어 세침세포 결과 갑상선 유두암이 진단되어 온 환자다.

수술전 암이 어디까지 퍼졌나 알아 보기 위해 정밀 초음파 스테이징(ultrasonographic staging)검사와 CT스캔을 했더니

0.67cm 크기의 암덩어리가  왼쪽 날개 안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고, 오른쪽은 깨끗하게 보인다.

잘 하면 왼쪽 반절제 해도 되겠네 하면서 면밀히 들여다 보니 왼쪽 중앙 경부와 왼쪽 옆목에 약간 커진 림프절이 보이는 기라.

"에구...저놈들이 암때문에 커진 것이면 수술이 커지겠는데........."

 

그래서 오늘 아침 영상의학과에서 초음파 가이드하에 커진 림프절에 X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기라.

수술중에 요놈을 먼저 떼어서 긴급조직검사를 해서 전이된 것으로 판명되면 무조건 갑상선전절제술, 중앙 경부림프절 청소술, 왼쪽 옆목 림프절 청소술로 수술이 확대 될 것이다.

만약 이 림프절이 암전이로 커진 것이 아니면 옆목 림프절 청소술은 생략해도 될 것이다.

근데 옆목 림프절 청소술은 안 하더라도  커져 있는 왼쪽 중앙경부림프절이 암전이 때문에 커진 것이라면 중앙 림프절 청소술과  함께 갑상선 전절제술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커진 림프절들이 암전이 때문이 아닌 걸로 밝혀져 왼쪽 갑상선 반절제술만 해도 되는 것인데

글쎄 바라는 대로 될지...................

 

마침 터키 친구 (A. Makay 교수)가 있어 필자의 계획을 얘기하고 물어 본다.

"네 환자라면 어떻게 하겠나?"

"나는 전적으로 교수님이 하시는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만약 수술중 암이 피막 침범을 한 것이 발견되면 어떻게 하겠나?"

"그때는 전절제술을 고려해 보겠다"

"나는 수술중 육안으로 보일정도로 피막침범(Macroscopic capsular invasion)이 있으면 전절제술을 하겠지만

현미경으로 봐야 피막침범(Microscopic invasion)이 있는 정도는 반절제술안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현미경적 피막침범은 예후에 크게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논문들이 많이 나온다"

 

 수술중 긴급동결 조직검사한 결과는 옆목림프절은 암전이 때문에 커진 것이 아니고 왼쪽 중앙 림프절만

암전이 때문에 커진 것이란다.  

결국 갑상선전절제와 중앙경부 림프절 청소술까지만 하고 수술을 종결시켰는 기라.

 

 

32세 여자 환자 : 역시 왼쪽 갑상선 날개의 0.7cm크기 유두암으로 수술 받게 된 환자다.

초음파영상에 암의 위치가 갑상선피막에 인접하고 있으나 피막을 뚫고 나간 것으로 보이지 않고 커진 림프절도 없어

잘하면 반절제술만해도 되겠다 싶은 환자인 기라.

제발 림프절 전이만 없어라.......그러면 반절제만 하지......

환자에게 반절제 가능성이 좀 더 있겠다는 말을 하고 수술을 시작 했는 기라.

어?  그런데 중앙 림프절이 좀 커져 있다.

"아니  초음파에는 깨끗이 보였는데........."

다시 초음파 영상을 봐도 커진 림프절은 안 보인다.

 

일단 커진 림프절을 떼어서 긴급 동결조직검사실로 보낸 기라.

그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왼쪽 갑상선 날개를 절제해 주고......

커지긴 해도 암전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  하고 일단 수술창을 닫기 시작하는데

컴퓨터 보고란에 "림프절 전이 있음. 0.5cm 임" 이라고 뜬다.

"아이쿠야,  이건 정말 예측 못 했는데........."

할 수 없이 닫고 있던 수술창을 다시 뜯고 남은 우측 갑상선 날개 까지 절제해 준 기라.

(환자가 몹시 실망 하겠는데.......)

 역시 수술전에 반절제를 할 수 있겠다고 환자에게 너무 희망적인 말을 하면 안 되겠는 기라.

 

저녁 병실 회진을 가니 환자의 가족들이 다 모여 있다.

할 수 없이 전절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니까 환자와 가족들이 이해를 해 주기는 한다.

근데 환자가 이제 신혼 2개월 째란다. 환자 어머니가 묻는다.

"그 뭐 동위원소 치룐가 뭔가 하나요?  애기를 빨리 가져야 하니까..."

아뿔사 그렇게 되었구나...

"아~, 이거 미안 하구만... 그래도 동위원소 치료는 해야 하는데....출산 후로 미룰 수도 있지만....

그냥 한번만에 치료하고 임신하도록 하지요"

"얼마 있다가 임신하면 됩니까?"

"빠르면 6개월 후부터 임신가능합니다"

환자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실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아~~, 하필이면  이때 암이 걸릴게 뭐람......

그래도 우짜노, 훗날을 위해 확실히 치료해 주어야지.......에휴......"

2014/07/03 13:41 2014/07/03 13:41
진료일지 (35) 6월 12일

 

 

  65세 남자 환자 :  

 

" 어이구, 교수님은 여전히 바쁘시군요"

"예,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지요?"

"네, 덕택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교수님한테 수술 받은지 벌써 32년 되었습니다. 그때 2살베기 아들이 지금은 미국에서 변호사가 되었어요. 참 세월 빠르지요..허허.."

그렇다. 이분도 이제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노인이 되었다.

32년 전이라면 이 환자도 팔팔한 30대 초 연배고 필자도 미국에서 연수를 마치고 막 돌아온 때다.

젊었을 때라 한창 겁없이 일할 때였지.........

 

32년 전  이분은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전전긍긍하다 마침 미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막 귀국한 필자를 찾아 냈는 거라.

어느 정도 심했는가 하면  갑상선에는 정상조직이 없을 정도로 암덩어리가 점령하고 있었고, 중앙경부와 양쪽 옆목 림프절은 감자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하게 전이가 되어 있었던 거라. 또 희한하게도 두피까지 전이가 되어 있었고....

패기만만 했던 필자는 이 거대한 강적을 두고 전투를 벌일 생각을 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거의 12시간이 넘게 셀 수없이 많은 암덩어리들과 전투를 했는 기라.

엄청 큰 수술었지만 환자도 젊고 집도의사도 패기 만만하고 해서 대전투에서 승리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거라.

근데 옥의 티는 부갑상선 4개를 모두 살릴 수가 없었던 거라.  도대체 전이 림프절들속에 부갑상선들이 파묻혀서

도저히 찾아 낼 수가 있어야 말이지............

덕택에  이 환자는 평생동안 비타민-D와 칼슘을 복용해야 했던 것이다.

수술후 여러차레의 고용량 방사성 요드치료를 했던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고....

 

"어떠세요. 요새는 손발에 쥐가 안 나던가요?"

"괜찮은데요.  칼슘 복용을 가끔 빠뜨리기도 했는데 괜찮던 데요"

"저칼슘혈증이 있어도 몸이 적응해서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귀찮지만 제가 드린 비타민D와 칼슘은 꼭 드셔야 합니다"

"예, 예, 까짓거 약 먹는 거야 이제 이력이 나서 별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검사에도 재발이 없습니까?"

"네, 네, 좋습니다. 안심하고  사십시요. 이제 2년마다 보면 되겠는데요"

"아이구, 1년후에 오겠습니다. 박사님 얼굴 뵈려 와야지요...허허...."

"예, 그럼 1년 후에 뵙지요"

 

이 환자와 필자는 평생을 함께 하고 있다.

이제 친구같이 가깝게 느껴지는 거라.

아마도 내년에도 이 환자는 그 보기 좋은 웃는 얼굴을 필자에게 보여 줄 것이다.

비록 목에는 길고 긴  갑상선암과의 전투 흔적이 흐미하게 남아 있어도 말이지...........

 

2014/07/03 13:41 2014/07/03 13:41
1  ... 4 5 6 7 8 9 10 11 12  ... 56 

카테고리

전체 (560)
갑상선암센터 소개 (4)
갑상선암센터 예약하기 (2)
교수님 이야기 (339)
갑상선암센터 자료실 (131)
갑상선암센터 이모저모~ (80)

공지사항

달력

«   201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