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

 

지난 주말, 대학졸업 25주년 재상봉 행사가 있었다. 우리 대학은 전통적으로 졸업 25주년행사를 크게 하는데, 이와 함께 50주년 되시는 동문 선배들도 함께 재상봉 행사를 가진다. 과거에는 50주년까지 생존해 계시는 분들도 드물고 대부분 너무 노쇠하셔서 잘 참석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25주년을 기념하는 것이 주행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는 50주년 선배님들의 건강이나 활력이 우리들 못지 않아서, 과연 저분들이 우리보다 한 세대 앞의 분들이 맞나 하고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분들의 내공에 우리는 적잖이 주눅이 들었고, 거의 기가 다 빨려 나가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우리 동기들의 느낌이었다. 그분들은 연배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치도 있으며, 선배님들의 삶의 무게에서 오는 카리스마는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25년전 졸업 당시로 다 돌아가서, 서로의 늙어 가는 얼굴을 보면서도 졸업 당시의 팽팽하던 젊은이의 그것으로 착각을 하고, 역시 젊었던 기백을 (그게 치기일 수도 물론 있겠으나…) 되찾은 느낌으로 마취가 되었기에, 선배님들이 더 높아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의대를 방문한 사람들이 예전에 이곳에서 생활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다 한가지쯤은 추억을 말하고 수다를 떠는 통에 의대의 좁은 공간은 왁자지껄 북새통이 벌어졌다. 우리를 보는 의대 재학생들은 저 어른신들 혹은 노친네들이 왜 저렇게 철이 없고 소란스러울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현실과 거리를 둔 채 한동안 참 행복했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친구들은 요즘 한국의 세월이 마음에 걸리고 주저하던 준비 과정과는 달리 아주 행복한 시간을 가졌고, SNS에 넘쳐나는 글로 알 수 있듯이 마냥 즐거운 청춘으로 스스로를 포장 했었다. 학생때는 입지도 않던 과티나 과잠바를 걸치고 제주를 누비고 돌아다니질 않나, 나이 생각을 잊고 밤새워 술을 푸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아무튼 그들은 정말 한 순간을 알차고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나는 비록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안 봐도 비디오다.

 

나는 쓰잘데기 없어 보이는 일들에 연루되어 그들이 한껏 고조된 분위기를 들고 온 사은회 저녁 식사 시간에야 겨우 참석할 수 있었지만, 서로 마주한 순간에, 그리고 알코올이 적절한 촉매 역할을 하면서 바로 그들과 융합되었다. 달리 동기라 하겠는가? 그리고, 내가 어렸던 시절, 그 어설픔을 다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은사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며 한껏 떠들며, 웃으며우리는 마지막 만났던 25년 전의 어느 날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 긴 세월이 마치 어제 일이나 되는 양 시간을 만끽했다. 25년의 세월이 다 압축되어 바로 오늘에 되살아 났고, 기억이 낡은 공책 모서리 마냥 헤어지고, 허술했으며,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모두 말을 맞추어가며 옛 퍼즐을 완성했다.

 

내가 학생 때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한가지가 청송대에서 22명의 대규모 사다리 미팅을 주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본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때 그 사건을 언급을 하는 것을 보니. 그리고 내가 그날 맺어준(?) 그 인연으로 결혼을 한 증인이 바로 떠억하니 나타났으니 말이다.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추억과 그리고 아련한 젊음의 향기는 이렇게 우리 모두를 그 옛날 푸르던 오월의 신촌으로 인도했고, 피말리던 중압감의 학업과, 젊은 날의 고뇌하던 그 시간을 일깨웠다.

 

 

이렇게 밤이 지나고 재상봉 행사의 절정인 토요일, 우리는 교정에 다시 모여 학교 다닐 때는 가보지도 못했던 총장공관에서 식사를 하고 지금은 공사판이 다 된 백양로를 걸어 노천극장으로 향했다. 오전 행사 중에 둘러 본 낡은 기숙사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허물어지고 그 자리엔 현대식 기숙사를 새로이 세운다고 했다. 그 옛날, 로비에 있는 소파에 널브러져 주말 야구중계를 보며 세탁기에 아무렇게나 처박은 빨래가 다 되길 기다리던 시간, 야밤에 날티 나는 하얀색 롱코트의 주윤발들이 영웅본색을 찍으러 나이트클럽으로 향하는 것을 눈으로 배웅하며 부러워하던 시간들, 그리고 옥상에 하릴없는 청춘들이 모여 기숙사 바로 앞 구멍가게, 총각상회에서 사온 새우깡과 술잔을 기울이던 그 시간들이 다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내가 그 곳에서 의과대학 생활의 거의 대부분이라 할 그런 세월을 지냈는데, 이젠그 모든 것이 다 없어질 것이고 기어이 전설이 되고 만다는 것에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아려옴을 느꼈다.  

 

어디 기숙사 뿐이랴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또 다른 25년이 지나야 그날 자리를 함께한 선배님들 같은 모습이 되어 다시 여기에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중 몇 명은 평생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눈 앞에서 무너질 것은 기숙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과 추억일 수 있는 것이다.

한참 동안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우리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사그러져가는 모닥불처럼 힘겨워 지는 것은 우리 모두 이런 일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한동안 우리의 단조로운 삶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마치 젊었던 그날처럼 달뜨게 했던 파티와 재상봉의 기대감, 그리고 25년의 단절에서 오는 묘한 설레임그러나 그 뒤엔 기다림의 시간만큼이나 길고도 무거운 단절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동기회 밴드에서는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고, 소그룹으로 만나자는 제안과 그를 실행하는 약속이 난무하지만, 역시 우리는 이렇게 헤어지고 한세월을 지난 다음에야 다시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겨우 맞추어 놓은 우리의 이야기가 다시 허술해지고 아귀가 맞지 않게 되는 그 시간까지 세월은 우리를 이끌 것이다. 나이 들고 쇠약해진 후에도 오늘과 같을 수 있을까? 25년을 단숨에 뛰어 넘던 우리의 감미로운 퇴행이 다시 우리를 지금 이 시간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이런 행사를 치르고 반가움과 아쉬움, 그리고 표현하기 어려운 아린 심정을 느끼고 나서, 왜 하필이면 25주년에 재상봉을 하는지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당한 나이가 된 것이리라. 적당히 나이 들어 과거가 그리워지고, 아울러 되돌아 볼 용기도 좀 생기는 그런 나이란 거지. 그리고 이쯤이 되면, 어렵사리 만났다 다시 헤어지고도 그 후를 추스를 마음도 좀 쉬울 것이니 말이다.

하루 해가 지고 나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늘 그 자리로... 25주년이 안배했던 그 깊은 인연의 날들은 마음 깊이 갈무리하고서.

 

 

세월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대하처럼 그렇게 무겁고도 깊게우리가 다시 볼 수 없을지라도 그 흐름을 멈추지 않은 채 세월은 그 무게로 흐를 것이다.

2014/05/23 10:15 2014/05/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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