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겨자씨와 새 소리 (1)

성경 : 마태복음 13:31-32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비유는 천국에 대한 설명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상대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천국은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시작하시면서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것으로 자라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큰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가장 작은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이 땅 속에서 썩어지면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잎이 생기고 가지가 뻗어나면서 큰 나무가 된다하는 말씀입니다.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커다란 숲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지요.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기독교는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마는 결국에는 온 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갈릴리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로마로, 그리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그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우리 교직원예배에까지도 그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가정으로, 온 마을로, 온 민족으로, 온 세계에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놀라운 발전상은 기독교 세계사에 불가사의라고 말을 합니다마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가장 작은 것,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역사는 굉장한 무엇이 있거나 요란하게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신통치 않은 제자 열두 명을 앉혀 놓고 이야기하는 것부터가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신통치 않았던, 보잘것없었던 겨자씨로 말미암아 역사는 바뀌었습니다. 어느새 무성한 숲을 형성해서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쉼을 주고, 그리고 온갖 새들을 불러 모아서 아름다운 새 소리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게 되었단 말입니다.

 

여러분, 이 겨자씨의 힘, 겨자씨의 신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이렇게 큰 나무와 숲을 만들게 된 그 신비, 그 능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는 생명입니다. 가장 작은 겨자씨라 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한 줌의 콩과 하나의 금시계가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사람이 살지 않는 외딴 섬, 무인도라고 합시다, 그 때도 역시 한 줌의 콩과 하나의 금시계가 앞에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교환 가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금시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명적 차원에서 본다면 한 줌의 콩이 더 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야사에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지혜롭다고 소문이 난 아이에게 어른들이 내기를 겁니다. “저기 언덕위에 큰 바위가 있지 않느냐? 저 바위에 손을 대지 않고 굴릴 수 있겠느냐?” 철없는 아이는 네 할 수 있습니다.”하고서는 자기 집 부엌으로 뛰어가 콩을 한 줌 가져와서는 바위 밑에 흙을 파고 심습니다. 그리고 물을 줍니다. 한참 후에 콩에서 싹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흙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위가 굴렀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생명체라고 하는 것은 무궁무진한 신비가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능력, 생명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진리가 이 겨자씨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생명이 있으면 그것은 가장 큰 것입니다. 문제는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지요. 이 생명의 역사는 어느 조그만 골방에서 성경을 읽고 있어도, 어느 이름 없는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어도 생명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현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질의 문제도 아닙니다. 크다 작다의 문제도 아닙니다. 양의 문제는 더욱 아닙니다. 오직 하나! 생명의 문제입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생명이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생명의 신비는 아무리 죽어있는 것 같아도 다시 일어납니다.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사실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과 속에 있는 씨는 바보도 헤아릴 수 있지만 씨 속에 있는 사과가 몇 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생명을 낳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희미하게, 자신 없게 볼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습니다. “씨앗 하나를 손에 들고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심으면 싹이 날 것이고, 자라면 온갖 새들이 깃들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힘입니다. 씨앗 하나를 손에 들고 새 소리를 듣는 사람,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요, 신앙의 사람이요, 내일의 사람입니다. 가장 작은 것에 가장 큰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환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제 생명의 신비를 깨닫는 사람은 다시 한 번 주님의 말씀을 믿게 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들어서 저기로 옮겨져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냥 한 번 해본 말씀이라 생각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향해서, 답답해서 한 번 해 본 말씀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답답함의 표현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믿음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 해 본 말씀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믿습니다. 생명의 신비를 깨달은 사람은 분명히 믿을 수 있습니다. 생명의 능력을 깨닫고 생명의 위대함을 믿는 이들은 여기 이 산을 들어서 저기로 옮겨져라 하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를 믿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기적을 낳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힘입니다. 생명은 위대한 힘입니다. 위대한 능력입니다.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가장 큰 것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힘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미미한 것 같습니다. 보잘 것 없는 것 같습니다. 곧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는 내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지 맙시다. 문제는 내가 가진 이 작은 겨자씨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이런 것이다. 겨자씨가 숲을 만들고 새들이 날아들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속삼임을 듣는 것. 여기, 여기 있는 나로부터 그 생명의 역사를 심어 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 환상을 보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생명의 바람을 불러일으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13/08/07 11:25 2013/08/07 11:25

제목 : 겨자씨와 새소리(2)

성경 : 마가복음 4:30-32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내용을 생활화하도록, 너희도 꼭 이렇게 살아라, 하는 강력한 의도로 직접 실천하시며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이다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는 생명과 사랑의 조화입니다. ‘생명과 사랑’, 생명과 사랑은 서로 상응하면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네가 살아 있으니 사랑하는 것이고, 네가 사랑하니 살아있는 것이다하는 것이에요. 이 둘은 갈라질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에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소개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설명도 힘들고 실천은 더 힘들어요. 보세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이 세상, 눈에 보이는 세계와 사물에 대해서 설명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장애가 있고 오해가 있냐고요. 하물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래, 이것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고민하시는 장면이 역력해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보세요. ‘우리가하십니다. 제자들의 의견까지 물으시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때, 예수님의 눈앞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쏙 들어 옵니다. 나무가 보인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님은 그 나무의 크고 웅장한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그 밑 둥 깊은 곳에 있는 근원의 세계까지 보시는 겁니다. 인간의 외면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보시는 주님께서 나무 한그루를 보시면서도 그 겉모습뿐만 아니라 꿰뚫어서 그 속까지, 그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십니다. 그리고서는 그 나무의 가장 근원적인 것, 씨를 보시는 겁니다. 아니, 씨뿐만 아니라 그 씨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생명의 세계까지 들여다보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가장 작은 씨앗이로되 이것이 땅에 심겨지기만 하면, 땅 속에서 섞어지기만 하면, 여기서 싹이 나오고 가지가 나오고 잎이 나오면서 큰 나무를 만들어 낸다는 것 아닙니까. 그 씨는 가장 작지만 그 나무는 가장 크다. 그래서 그 가지에 새들이 깃들어 노래하고 그 아래 그늘에는 큰 평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쉬기도 하고 새 힘을 얻기도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니라.

 

어느 심리학자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씨를 심는 것보다 나무를 옮겨 심는 것을 더 좋아하고 편안해 한답니다. 왜냐하면 땅은 어두운 세계,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미래의 세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에요. 썩어야 하는 세계, 죽어야 하는 세계, 어둠만이 존재하는 세계, 밑으로 밑으로만 내려가야 하는 세계, 내가 왜 거기 들어가? 왜 내가? 왜 나만? 그래서 사람들은 뿌리가 있는 나무를 옮겨심기를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사회학자들은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에만 치중하는 사회의 단편이라고 지적을 합니다. 우리는 결과만을 보려고 합니다. 땅 밑의 세계보다는 땅 위의 세계, 무성한 잎과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가지와 밝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려 하는 보이는 세계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무를 옮겨심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곧 열매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수고와 땀방울, 함께 키워가는 그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과위주, 업적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2006,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미국의 창설 이래로 가장 존경받고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00인을 뽑았습니다. 그 첫 번째, 1위가 아브라함 링컨이에요.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빌 게이츠, 54위예요.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아인슈타인 등이 뽑혔어요. 여러분, 보세요. 왜 우리나라는 그런 인물을 못 낼까? 왜 우리에게는 그런 인물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정직하게 생각해보세요. 정말 우리나라에 그런 인물이 없는 것이냐고요?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정말 없는 건가요? 아니요. 얼마든지 있어요. 저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물들이 얼마든지 있어요. 문제는 우리가 만들지를 못하고 인정하기가 싫은 것이지요. 아브라함 링컨 보다 훨씬 더 훌륭한 대통령이 정말 없는 겁니까? 이승만 대통령도 있잖아요. 다르게 해석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우리의 독립을 위해서 젊음을 온전히 헌신한 대통령임에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엘리스 프레슬 리가 없습니까? ‘돌아가는 삼각지의 배호가 있는데, 배호도 32살에 죽었어요. 조영남, 조용필이도 있는데 왜 그래요. 우리나라에 빌 게이츠가 없어요? 정주영씨가 있잖아요. 소 한 마리 몰래 팔아서 도망쳐 나온 그가 후에 성공해서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가는 그 장면, 대단한 역사 아닙니까? 민간인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휴전에 길을 만든 사람아닙니까? 우리나라 재벌들, 노동자들의 피를 빨고 등꼴을 도려내고... 어째 그렇게만 생각을 하십니까? 왜 칭찬하고 존경해야 할 부분들을 정직하게 볼 줄을 모릅니까? 우리나라에 정말 아인슈타인이 없습니까? 우장충 박사가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슈바이처가 없기는 왜 없어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연세의 오긍선 박사, 그리고 장기려 박사가 계신데요. 우리나라에 빌리 그레함 같은 목사가 없다고요? 천만에.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송우용 목사가 있는데요. 우리나라에 세계를 움직이는 CEO가 없다고요? 천만에요. 섬김과 헌신, 감사와 나눔의 세브란스의 정신을 도도하게 이어가고 있는 이병석 병원장님이 계신데요.

 

여러분, 겨자씨 한 알. 겨자씨 한 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 있어 겨자씨 한 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의 꿈이요 마음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아브라함의 기도요, 모세의 이상이요, 다윗의 열정이요,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복음의 씨인 것입니다. 겨자씨는 우리의 꿈이며 이상이며 소원이며 소망이에요. 겨자씨 한 알을 통해 역사되어지는 큰 나무를 꿈꾸는 거예요. 가장 작은 겨자씨 하나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면서, 다만 땅에 심기어져서 뿌리를 내리면 이게 자란다. 이게 하나님의 나라이다. 어느 나무보다 크게 자란다. , 이것이 예수님의 꿈이기 때문에. 이것이 나의 이상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들의 믿음의 씨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우리 손으로 뽑은 우수직원들의 얼굴을 봅니다. 우리 병원의 얼굴들입니다. 이분들에게는 개인의 영광이면서 작게로는 우리 부서의 영광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자랑입니다. 퍼즐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그림이 완성되듯이, 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씨앗이 있어서 강남세브란스병원의 큰 숲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 부서 부서마다 묵묵히 한 알의 씨앗으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들로 인해 강남의 큰 숲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씨앗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살아있습니다. 오늘도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반드시 싹을 내고 가지를 내어서 결국에는 큰 숲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며 이상이며 소원이며 소망입니다. 겨자씨 한 알을 통해 역사되어지는 큰 나무를 꿈꾸는 거예요. 겨자씨 한 알 손에 들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내일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이며 신앙의 사람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허락하신 오늘이라는 이 땅에 겨자씨 한 알이 되어 심기워지고 썩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내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큰 나무를 만들어가는 수고와 인내와 땀 흘림으로 우리의 꿈과 이상과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겨자씨 한 알이 되시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013/08/07 10:50 2013/08/07 10:50

제목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성경 : 마태복음 4:1-1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동물의 왕국 내용 중에 얼룩말이 사자 앞에서 아무 방어 자세도 없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해설이 이렇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식사시간 외에는 절대로 사냥을 안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은 어떻습니까? 배불러도 더 먹고, 더 먹고서는 이제는 빼겠다고 야단입니다. 가지고도 더 가지고, 또 다음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준비하느라고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저 놈이 사람보다 낫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윈이 이 동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생존경쟁이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거다, 그러다보니까 양육강식이더라는 것입니다.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고, 작은 놈은 더 작은 놈을 잡아먹고, 이렇게 약육강식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이것이 동물의 세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꼭 강한 놈만이 이기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약한 놈이 이기더라는 겁니다. 이것을 적자생존의 원리라고 합니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의해서 약한 것 같으나 더 많이 번식하고, 강한 것 같으나 오히려 그 개체가 더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윈은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을 보게 됩니다. 적자생존의 원리는 진화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를 변화시키는 자, 변화하는 자는 살아남고 변화할 줄 모르면 죽는다 하는 원리를 내 놓게 됩니다. 그래서 이 눈으로, 동물을 보던 이 눈으로 세상을 보았더니 똑 같더라하는 무서운 이론을 펼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소위 변증법적 유물론이 나오고, 공산주의가 나오고, 여기서 인간의 가치는 동물과 같거나, 동물이하로 떨어지고 말더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으로 삽니까? 여러분은 무엇으로 삽니까?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 겁니까? 하버드 대학교 조지 베일런트 교수가 재미있는 조사를 했답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나, 어떻게 살아왔나하는 것에 대해서 수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겁니다. 그리고 나서 쓴 책이 성공적 삶의 심리학이라는 책입니다. 이 사람들이 성공을 말할 때 돈도 아니고, 경제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더라, 마지막에 남는 것이 건강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재미있는 것은 건강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데, 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는 것은 15%도 안 되더랍니다. 건강은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럼 건강의 비결이 뭐냐 할 때, ‘open mind’, 마음을 여는 것이더랍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면 자기 인생을 살 수 없을뿐더러 제 명대로 사는 사람도 없더랍니다. ‘양심을 따라서, 진리를 향해서, 이웃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어야, 그런 사람이 건강하게 행복한 인생을 살더라하는 것입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여러분, 마음을 열 때, 마음을 열 때 들려지는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열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바가 있습니다. 오늘, 마음을 열고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만 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서 큰 역사를 앞두고 스스로를 결단하고 결심하고 각오를 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오직 기도만 하십니다. 인간의 한계, 생명의 한계에 부딪칩니다. 세상적인 욕망, 세상적인 능력, 다 버리는 시간입니다. 40일을 금식한, 절절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받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경제적 시험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뛰어 내려라.’ 그러면 천사들이 너를 수종 들것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되면 너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아 오르며 사람들이 너를 찾아오게 될 것 아니냐. 그렇게 되면 힘들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에게 엎드려 절하라.’ 그러면 천하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부귀영화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이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답은 한결같습니다. “기록되었으되입니다. 40일을 굶은 그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말씀으로 산다, 나는 말씀에 의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995년 일본의 고베 지진을 기억하시지요? 그 지진 후에 200여명이 자살을 했답니다. 2011년 동북부 쓰나미가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있다는 선교보고를 듣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견디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이 질병이요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절망입니다. 그 속에 말씀이 없어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모스 8:11의 말씀입니다.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서 기갈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순간순간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서 마음을 열기만 하며 들려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건마다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마라, 그래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추자, 그리고 궤도 수정을 하자, 주님의 음성이 들려집니다. 이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어제 들은 말씀이 아닙니다. 어제 내가 외우고 있었던 말씀이 아닙니다. 남에게서 들었던 말씀도 아닙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내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매일 매일 들려와야 합니다. 사건 사건마다 들려와야합니다. 들려옵니다. 내가 마음을 열면, 마음의 귀를 열면 들려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내 계획대로 되어 진 일들이 많습니까? 아니면 내 계획과 상관없이 되어 진 일들이 많습니까? 지금 내가 여기, 이 시점에 서 있는 것이 내 계획대로 되어 진 것입니까? 아니면 내 계획과는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이끌려진 것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이제라도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길에 편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길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가 말씀하시는 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건 사건마다, 순간순간마다 들려주십니다. 마음을 열면 들립니다. 이 문은 결코 좁은 문도 아니요 좁은 길도 아닙니다. 마음을 열면 들리는 문이요, 진리와 이웃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고개를 들기만 하면 열려지고 보여 지고 깨닫게 되는 신비로운 문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멘.

2013/07/24 10:53 2013/07/24 10:53

제목 : 좁은 문의 신비

성경 : 마태복음 7:13, 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들을 좁은 문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아주 좁은 문입니다. 두꺼운 외투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많이 힘들고 많이 울어야 들어 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나 닫힌 문은 아닙니다. 못 들어가는 문이 아닙니다. 다만, 좁을 뿐입니다. 좁을 뿐이지 들어 갈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문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쉽지는 않으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이 문은 아주 좁습니다. 다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가지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9:23, 24)’ 는 말씀은 부자들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문은 좁아서 무엇을 많이 가지고는 못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오직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이것저것 복잡한 생각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만의 생각, 생명만 생각하여야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생명 최우선의 문입니다. 생명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문입니다. 생명으로만 인도하는 문입니다. 생명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거부합니다. 생명 하나만을 생각하는, 생명으로만 인도하는 문입니다.

다른 거추장스러운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들어가고는 싶은데 다른 것들을 가지고 들어가려 하니까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 밖에서 맴돌기만 할뿐, 들어가 보지를 못한단 말입니다. 우물가에서 서성거리기만 할 뿐, 시원한 생수 한 바가지의 맛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도 버리고 자존심도 버리고 교만도 버리고 이기심도 떼어버리고 지위와 권세도 다 떼어버려야 들어갈 수 있는 문,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을 찾는 이가 적다고 합니다. 14절 말씀에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 아닙니다.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많습니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결심은 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 문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이 좁기 때문입니다. 좁아서 버려야 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부정해야 될 것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거추장스러운 것 가지고는 못 들어가는 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누구나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들어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부정해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욕망과 교만과 이기심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귀담아 들으십시오. 이 문은 신비로운 문입니다. 대단히 신비로운 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문은 분명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영생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은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에 일단 들어서기만 하면 자유 한 문입니다. 끊을 것은 다 끊어 버리고, 잊어버릴 것은 다 잊어버리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단순합니다. 자유 한 문입니다.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문입니다. 이 문은 고독한 문입니다. 그러나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께서 동행하십니다. 고독한 문이로되 결코 고독하지 않은 문입니다. 이 문은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문입니다. 양심을 회복하고 진실을 되찾아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것 다 벗어버리고 진실로 돌아가면 그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진귀한 진주를 찾는 사람이 정말 진귀한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진주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자기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화를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산 사람처럼 자기를 부정하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문은 선택(choice)’이 아닙니다. 많은 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그런 문이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의 결단(decision)’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결단은 포기를 위한 포기가 아닙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닙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값진 진주를 발견하였기에,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잠깐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귀한 진리가 여기 있기에, 이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잠깐 포기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일시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을 이 좁은 문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자신 있게 초대합니다. 한 번 들어와 보십시오. 전혀 새로운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초대합니다. 결코 불행한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자유 하는 길이요, 행복한 길이요, 영생을 보증 받은 길입니다. 좁은 문, 이 문은 생명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이 문은 선택(choice)’이 아닙니다. 많은 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그런 문이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의 결단(decision)’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생명의 문입니다. 아멘.

2013/07/18 16:39 2013/07/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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