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_세브란스와 독립운동

신창희와 상하이 임시정부 독립운동
민족의 고통에 독립운동과 의료선교로 답하다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 신창희는 의사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교통부 요원과 군의,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등을 맡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동몽골로 이주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의료선교에 매진했다.
신규환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사진 동은의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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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희
申昌熙 (1877~1926)

독립운동 위해 압록강 건너 안둥으로
1908년 6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된 7명의 의사들은 학교에 남아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신창희 역시 세브란스 간호부 양성소 교수로 세균학과 기초과학 등을 가르치며 후진 양성과 의학교육에 전념했다.
2년 후 6월, 평양 제중원의학교를 졸업한 최용화가 의주에서 구세병원을 새로 개원하고 의학강습소를 세우면서 임상과 교육을 담당할 인재를 찾고 있었다.
최용화의 제안을 받은 신창희는 졸업 동기인 홍종은과 함께 의주에서 새로운 삶을 펼쳐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의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제에 의해 강제 한국병합이 이뤄지고 홍종은마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신창희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바로 독립운동이었다. 신창희는 1904년 제중원의학교에서 결혼했는데, 이후 그의 처제와 백범 김구의 결혼으로 신창희는 김구와 동서지간이 되었다. 김구는 1907년 신민회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1910년 안악사건과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는 등 독립운동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신창희는 자연스럽게 김구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1917년, 신창희는 압록강 건너 안둥(현재의 단둥) 지역에 평산의원(平山醫院)을 개원했다. 중국 영토인 안둥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독립운동을 지원할 수 있었다.

이듬해 8월, 상하이에서 여운형, 김규식, 김철 등의 주도로 신한청년당이 조직되자, 그는 손아래 동서인 김구와 더불어 신한청년당에 가입했다. 이즈음 신창희는 의주와 안둥, 상하이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적극참여했으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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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희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다. 맨 뒷줄의 가장 오른쪽 인물이 신창희.

2018년은 세브란스병원의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 배출된 지 110년 되는 해이자, 삼일운동 99주년이 되는 해다. 세브란스는 국권피탈의 중심에서 국난을 맞았으며, 세브란스와 졸업생들은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중심인물로 한 시대를 이끌었다. 이 역사를 기리며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던 세브란스의 인물과 활동을 조명한다. 
겸 선박대리점이다.
안둥의 이륭양행은 일본 영사관의 경찰권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쇼는 이륭양행 2층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교통부 안둥 지부(1919년 10월 임시 안둥교통사무국으로 개칭)를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덕분에 임시정부는 교통부 안둥 지부를 통해 자금 모집과 비밀 통신, 정보수집, 무기 반입 등의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임시정부 교통부 요원으로서 신창희는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중에는 김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침내 1919년 4월, 김구를 비롯한 15명의 독립운동가들은 이륭양행의 선박 계림환을 타고 상하이에 도착했다. 그러나 1920년 7월, 일제는 이륭양행의 쇼를 체포하고 쇼와 임시정부 각료들을 내란죄로 기소했다. 이에 따라 임시 안둥교통사무국의 업무가 정지되고 일제의 압박이 한층 강화되었으며, 결국 신창희도 일본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로 이주했다. 그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군의,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등을 지내면서 김구를 도와 임시정부의 개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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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신창희와 가족관계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생의 마지막까지 의료선교사로 헌신
1920년대 중반, 신창희는 돌연 상하이를 떠나 동몽골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료활동과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동몽골로 의료선교를 떠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년간의 해외생활과 무리한 진료활동으로 피로가 누적된 신창희는 폐렴에 걸렸고, 애석하게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몽골교회 신자들은 교회장을 거행했고, 그의 유해는 고비사막에 매장되었다. 그의 나이 50세, 1926년 2월 말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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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이 설치되었던 이륭양행 건물.
이곳에서 신창희는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상하이 이동을 도왔다
.



지금 여기
본관 앞 벚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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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본관 앞, 4월이면 펼쳐지는 벚꽃 천국.

“열흘 꽃 천국, 눈부시다”
4월이 되면 세브란스 본관 앞은 벚꽃 천지.
누구라도 폰을 꺼내들고 찰칵, 찰칵^^
꽃보다 아름답다고 굳게 믿으며 꽃 앞에 선 나는 주인공.
노래도 술술~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비가 내리면 꽃비가 되고,
바람이 불면 꽃눈이 되는 여기는 세브란스 꽃 천국.
꽃그늘 아래서 눈 감고 상상해봐요.
곧 이렇게 눈부신 날들이 올 거예요^^
열흘 가는 꽃 없다지만, 열흘이라도 좋아.
잠깐만 잊어요, 아픈 건.
지금은 짧은 봄, 여기는 눈부신 꽃 천국이니까.

에디터 이나경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8/04/10 13:55 2018/04/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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