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발 희망편지

떠밀리는 삶에 대한 저항

 
이규현(부산 수영로교회 담임목사)


멈춤은 정체(停滯)가 아니다.
도리어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삶이 정체다.
일시적 멈춤은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멈추는 순간, 내가 달려온 길을
점검할 수 있다. 정신없이 사는
동안에는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는 삶은 종잡을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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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편리해졌다. 도로망은 신경조직처럼 미세하게 퍼져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다. 공간개념이 좁아지고 시간도 단축되었지만, 삶의 질은 떨어졌다. 스피드의 편리함에 밀려 시골 간이역이 주는 느긋함이나 멋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어디론가 오고 간다. 새로운 길은 계속 생겨나지만 늘어나는 차량들을 감당하지 못한다. 도로는 차량들로 항상 가득 차 있다. 아침은 물론이고, 주말 오후 사무실 창가를 통해 보이는 광안대교는 다리가 휘어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차량의 긴 행렬들이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져 있다.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위험한 레이싱에 끌려가는 삶
C현대사회의 특징은 활동성이다. 과잉 활동성의 시대다.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도록 강요당하고, 사회는 피곤에 절어 있다. 과다하게 만들어 내는 생산성에 오히려 소비가 따라가지 못한다. 생산성이 강조되는 곳은 욕망이 자라나는 서식지다. 욕망이 강할수록 불안은 커진다. 과잉 공급으로는 욕망을 채울 수 없다. 숨 돌릴 겨를이 없이 달리다 보면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속도전이다. 가끔 일어나는 추락사는 속도전에서 방향을 놓친 결과다. 빠를수록 좋다는 것은 거짓 환상이다. 활동의 대열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위험한 레이싱은 시작된다. 경주가 시작되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내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지 않을 수 없어 달리게 된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마모(摩耗)되어간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삶이 엉키면, 피곤에 절은 삶을 살게 된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한 사람에게는 금속음에서 느끼는 잔인함 같은 것이 풍겨난다. 그래서 종종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쉼표가 필요하다
멈춤은 정체(停滯)가 아니다. 도리어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삶이 정체다. 쉼표와 마침표는 다르다. 일시적 멈춤은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이다. 정신없이 사는 동안에는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는 삶은 종잡을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시간의 여백을 만들어내야 질문이 생긴다. 종종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멈추는 순간, 내가 달려온 길을 점검할 수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만으로는 자랑이 될 수 없다. 위험한 열심도 얼마든지 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투쟁적으로 살다 보면 잃어버린 것들이 파편처럼 널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생산을 위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면 ‘나’라는 존재는 없어진다. 얻은 것은 있으나 놓친 것이 더 많은 삶은 미로에 빠진 삶이다. 무엇인가에 쫓겨 떠밀려간다면 이미 패색 짙은 삶이라 할 수 있다. G. K. 체스터턴은 “시체는 물결에 떠내려가고 생명체만 역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멈춤은 정신없이 떠밀리는 삶에 대한 저항이다. 멈춤은 일종의 안식과 자유를 위한 숨 고르기다. 거래로만 촘촘히 연결된 인간관계는 행복과 거리가 멀다. 편리한 도로망보다 편안한 관계망이 절실하다.

멈춤, 나답게 살기 위한 저항
멈추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관조(觀照)가 필요하다. 시간의 탕진은 생각 없이 부지런한 삶이다. 활동에만 치우친 존재의 내면은 부실하다. 생각이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집착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생각의 여행을 즐겨야 한다.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 활동에만 치우친 삶은 생각을 빼앗아간다. 분주한 삶에는 의미 있는 것에 대한 숙고가 없다. 작은 사물 하나에도 깃들어 있는 경이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일상은 궁색하고 무미건조해질 것이다.
삶은 선물이다.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은 위험하다. 무모한 질주와 피상적 활동을 그치고 하루 하루 순간의 시간 속에서 깊은 맛과 향이 우러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은총의 삶이 아닐까?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인생의 바람이 불 때>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 <영권 회복>등의 책을 썼다.





2017/05/15 14:09 2017/05/1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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