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고위험 임산부들을 살리는 손, 산부인과 박용원 교수

위태로운 엄마와 아기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수술을 앞두고 그는 절대자 앞에 머리를 숙인다. 30여 년간 많은 산모와 아기를 대하면서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과 의술 너머 신비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을 수없이 절감했기 때문이다.


 

걱정한 것만큼 말수가 적지는 않았다. 박용원 교수는 과묵하다기보다 할 말을 정확하게 가려하는 쪽에 가까웠다. 높낮이의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로운 음성과 기름기 빠진 소박한 어휘로 차근차근 일과 삶을 설명했다. 텔레비전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온 탓일까? 박 교수의 담담한 이야기는 귀를 거치지 않고 마음으로 곧장 들어왔다.
 
Q. 웬만한 산모들은 교수님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 그런 얘기가 있다면 제가 무슨 대단한 의사여서가 아니라 세브란스병원이 3차 진료기관이기 때문일 겁니다. 제대로 관리만 해주면 정상적인 분만이 가능한 예비엄마들은 1, 2차 기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으니까 굳이 저를 볼 필요가 없는 거죠.

우리 병원 산부인과를 찾는 임부들 가운데는 고위험군 산모가 많고, 주로 제가 만나는 환자들이 그런 경우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고위험군이라… 말만 들어도 위태로운 느낌이 듭니다.
나이가 많거나 내과적인 질환을 가진 산모들입니다. 예전에는 35세 임산부라고 하면 노산이라고 했는데 이젠 명함도 못 내밉니다. 45세 산모도 수두룩하거든요.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당뇨나 심장병을 가진 임산부들의 출산도 가능해졌고요. 이런 분들은 한층 전문적이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임신 초기 단계부터 신뢰를 구축해온 산모라면 그나마 괜찮은데, 응급실을 통해 곧바로 들어온 환자라면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Q.
그런 살얼음판 같은 상황을 긴 세월 탈 없이 헤쳐 오셨습니다. 무슨 비장의 무기나 감춰진 비결이 있습니까?
팀워크가 무기이자 비결입니다. 고위험군 산모를 돌보는 일은 산부인과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심장이나 신생아 치료 등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함께 현장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돌발 사태가 벌어져도 즉각 손을 바꿔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병원의 사명이라면 세브란스는 그 기반이 잘 닦여져 있습니다. 최상의 팀워크를 이룰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Q. 30년 넘게 한 길을 걸으셨고 이제 이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계신데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물론이죠.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산후 출혈로 삽시간에 쇼크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지 않으면 산모나 아기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처럼 돌발적인 사태 앞에서는 누구라도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여기에 관록 따위가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의사가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울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절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부지기수입니다.

Q. 신체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압박이 대단하겠습니다.
모체태아의학 분야는 스트레스가 특히 심한 편입니다. 24시간 대기상태로 살아야 하니 콜 보이가 따로 없습니다. 오밤중이나 새벽에도 병원에서 부르면 즉시 달려나가야 합니다. 멀리 여행을 가는 건 진즉에 포기했습니다. 재미없겠다고요? 그래도 새 생명을 받는 건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위험군 산모와 아기가 인사하고 돌아갈 때 느끼는 감동, 그걸로 보상을 삼고 견디는 거죠. 산부인과 의사들은 아마 다 그럴 거예요.

Q. 산부인과의 풍경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전과 지금, 어떤 점에서 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하십니까?
딸을 더 좋아하는 현상이 3-4년 전부터 부쩍 두드러지더군요. 단순히 기형을 가졌다는 이유로 출산을 포기하는 성향이 많이 줄어든 것도 눈에 띄고요. 다소 불리한 조건을 가졌더라도 낳아서 잘 키워보겠다는 거죠. 자신감이랄까요?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면서 그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한편으론 자녀들을 작품으로 만들려는 욕심도 무척 커졌어요. 뱃속에서부터 아이를 명품으로 빚어내려는 거죠. 하지만 ‘자연스럽게’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편한 법입니다. 산모와 아기는 한 몸이거든요.

Q.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의사는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궁금합니다. 평생 ‘콜’에 묶여 사셨으니 마음껏 여행을 해보고 싶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글쎄요, ‘열정’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열정을 잃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남들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아직 세워놓지 않았지만 차츰 분명해지겠죠. S

 


박용원 교수(산부인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 분야는 주산기의학 또는 모체태아의학,고위험 임산부 전문이다. 전임강사 시절부터 초음파 기기를 진단에 활용했으며 미국 캔자스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등에서 초음파 진단, 태아치료, 고위험 임신을 공부해서 그 분야의 ‘명의’로 인정받고 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2009년부터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DITOR 최종훈
PHOTOGRAPHER 최재인

2010/03/05 17:36 2010/03/0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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