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틱과 투렛병 환우들이 기댈 최후의 언덕, 송동호 교수
지치고 낙담한 어린 환자들에게
희망을 돌려드립니다

“좋은 의사의 조건이요? 당연히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요. 거기에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따라야 하고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는 질병도 잘 치료해야 하지만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한 과제입니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서봉섭




정기적으로 진료실을 찾던 환자가 발길을 끊는 건, 병원에 올 필요가 없을 만큼 호전됐거나 아니면 그럴 수 없을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인이다. 지영(가명)이는 후자였다. 초등학교 6학년, 딱 그 나이답게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상담할 때마다 갖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가 사주지 않는다는 불평, 숙제하기 싫다는 하소연, 학원에 안 다니면 좋겠다는 투정을 늘어놓곤 했다. 병이 치료되기를 고대하던 부모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꾸준히 공을 들여온 의료진도 긴 세월 계속되는 질병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모진 소리에 시달리던 지영이의 마지막 선택을 막지 못했다. 아이는 아파트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짧은 삶을 마감했다는 연락이 왔다.


남의 얘기도, 무작정 겁먹을 괴담도 아닌
아이를 괴롭힌 건 투렛병이었다.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증상을 틱이라고 하고, 그 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투렛병이라고 부른다. 생각보다 훨씬 흔해서 어린이 평균 넷 중 하나는 틱을 경험하며 특히 사내아이들의 경우는 그보다 흔해서 1/3 이상이 한번쯤은 틱을 경험한다.

하지만 ‘틱 증상’이란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지영이처럼 극단적인 경우를 떠올리며 한숨짓는 건 시쳇말로 ‘오버’다. 대부분은 일 년 안에 거의 가라앉으며, 1-2년 안에 다시 틱 증상이 생겨도 치료에 대한 반응이 좋아 생활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어릴 때 잠시 틱을 보였던 발병율이 1/100로 감소하므로 어른이 되어도 치료가 필요한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소아정신과의 명의로 꼽히는 송동호 교수는 그런 점에서 지레 겁을 집어 먹는 자세 또한 무관심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틱도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도 잘못 부풀려져 알려진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방송 매체들이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례들을 앞세웠던게 치명적이었습니다.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사례처럼 심해지는 경우는 10만 명에 한 명 정도거든요. 최근에 좋은 치료 약물까지 개발되어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꾸준히 치료하면 부작용 없이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의사를 믿으라는 겁니다.
의사와 함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모든 병이 다 나을 수는 없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에도 쉬 가라앉지 않고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틱은 일반적으로 7-8세 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5-6학년 때 악화된 후 한동안 지속되다가 서서히 진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 사이에 어린 환자가 겪는 불편과 괴로움은 적지 않다.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다든지, 눈 깜박임이 잦아서 책을 보거나 TV 시청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고(운동틱), 수업이나 공부하는 도중에 거슬리는 소리를 계속 내는(음성틱) 바람에 눈총을 받거나 원성을 사기도 한다. 한참 예민한 청소년기에 극성을 부리는 까닭에 ‘왕따’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정모르고 꾸짖거나 호통을 치는 건 사태를 악화시킬 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상책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한정 없이 지체되기 일쑤여서 송 교수의 속을 썩인다.

“정신과라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고 차일피일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가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의지하거나 매달리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심리적인 치료에만 매달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증상의 원인과 특성을 찾아 적절한 조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운명, 교사를 꿈꾸던 소년의 길을 바꾸다
틱은 정신질환이기 이전에 뇌기능의 체질적인 특성에서 생기는 증상이다. 틱 증상에 대한 취약성을 가지고 있던 환자가 스트레스를 비롯해 부적절한 환경에 노출되면 증상을 보이게 된다. 발병 당시의 상황도 의미가 있지만 잠재적인 여러 요인들이 오랜 기간을 두고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송동호 교수는 그 기전을 밝히는 다국적 연구를 시작했다. 유전자의 특성을 찾아내고 같은 조건을 가졌더라도 병으로 발전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갈리는 이유를 파악하는 게 목표다. 아직까진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아 손꼽히는 전문가인 송 교수조차 ‘운명 같은’ 무언가가 있다고 표현하는 수준이다. 과학자에게서 듣는 초월적인 단어의 어감이 낯설지만, 어쩌면 운명이란 두 글자는 틱의 비밀을 찾는 일뿐만 아니라 송 교수가 의사의 길에 들어서고 일가를 이루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도 가장 적합한 단어인지 모른다.

원래 꿈은 선생님이었다.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주위에선 전문직을 갖길 원했다. 공부한 내용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현장으론 의사가 제격이었다. 대단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삶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의학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 셈이다. 의학 공부를 즐기지는 못했다. 법, 행정, 경영학 등 사회과학을 좋아하는 성향에 많은 부분 암기가 요구되는 의학의 공부 패턴이 맞을 리 없었다. 해부학을 제외하곤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분위기가 바뀐 건 임상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환자를 만나고 보살피면서 비로소 재미와 보람을 찾기 시작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적을 두게 된 연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 아이들을 보살피는 게 기질에 맞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딱히 이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의지는 없었다. 친구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정신과학 주임교수를 만나면서 저울추가 급격히 기울었다. 개인적인 사정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나눈 교감에 마음이 끌렸다. 인간과 사회지향적인 송 교수의 바탕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개를 디밀었다.

“수련받는 동안 처음에는 되게 실망했어요. 환자가 통 낫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치료약물도 다양하지 않아서 어느 걸 쓰든지 별 차이가 없어 보였고요. 소아정신과에 대한 진로도 불투명했습니다. 전국을 통틀어 소아정신의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중진과 신진, 각 한 분뿐이고, 젊은 개업의 몇 분이 활동하고 있는 게 고작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맛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프로이드 정신 분석을 위시해 심리학이 득세하던 시절이라, 어린이 때 잘 치료하면 건겅한 어른이 될 거라고 여겼죠. 지금 생각하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기였어요.”

전공을 선택하는 데 말리는 이들도 많았다. 환자가 별로 없을 거라면서.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 사이에 세상도 변했다. 진료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쪽을 전공해보겠다는 후학들도 줄을 잇는다. 심지어 ‘수익성’이 좋겠다는 판단만으로 기웃거리는 지원자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좋은 후배’를 길러내는 일에 더 신경이 쓰인다.


“정신건강의 범주가 넓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어요.
환자가 아니라고 해서 건강하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특히 아이가 행복한지 살피세요.
그렇지 못하다면 어느 부분에서, 왜 행복하지 않은지 살펴야죠.
그럼 할 일이 보일 겁니다.
애써도 안 되면 전문가를 찾아오세요.”


아파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의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동호 교수는 아직도 지영이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 1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아이엄마가 적어준 전화번호 쪽지를 버리지 못할 만큼 잃어버린 환자의 기억은 예리한 흔적을 남겼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꼭 살펴야 할 환자는 절대로 미뤄두지 않는 그만의 원칙도 그때 생겼다. 진료시간이 턱없이 늘어지고, 대기환자들이 불평하고, 간호사가 안달을 해도 중요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나 그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여도 혼자 모든 환자를 감당할 수 없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 분야에서 좋은 후배를 길러내는 일은 그 점에서도 시급하다.

“좋은 의사의 조건이요? 당연히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요. 아픈 아이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도와주려는 뜻을 품는 게 기본이니까요. 물론 거기에 열정과 꾸준한 노력이 따라야 하지요. 소아정신과 의사는 질병도 잘 치료해야 하지만 건강한 발달과 성장을 위해 삶의 질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이 보다 중요합니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희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진료와 연구, 교육, 행정 등 다방면에 일거리가 쏟아지지만, 그 어느 것도 환자를 돌보고 훌륭한 임상의사와 연구자를 길러내는 일보다 앞세우지 않겠다는 게 송 교수의 각오다. 그러고도 숨돌릴 여유가 있다면, 관련된 자원들을 연결해 새로운 틀을 짜는 일을 해보려 한다.

사실, 문제아동을 조기에 발견해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쪽으로 국가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강한 마음을 가진 성인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부모와 의료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관계자들을 연결해서 그 역할을 감당할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돕고 싶다는 것이다.

포부가 크거나 생각이 많은 이들에게서 곧잘 나는 ‘야심의 냄새’가 송 교수에게선 풍기지 않는다. 수많은 환자들을 하나하나 성의껏 봐야 한다는 의지는 확실한데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는 아니다. 뭘까, 이 이상한 조합은? 송동호 교수가 내민 열쇠는 ‘즐거움’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스트레스를 받죠. 저는 뭐든 즐기는 편이거든요.”


| 송동호 교수 |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에 재직중이다.
전문진료 분야는 틱 투렛병, 강박 및 불안증, 성인 및 아동의 ADHD, 소아청소년 스트레스질환 등이다.
2012/09/03 16:57 2012/09/0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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