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소아내분비 질환의 뿌리를 캐는 최고의 명의, 김호성 교수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는 마스터키,
성실과 진심

의사의 삶이라는 게 보람뿐일 수는 없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지라 곳곳이 지뢰밭이고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돌이키지 못할 상황에 빠지기 일쑤다. 김호성 교수는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성공하는 비결이 성실과 진심이라고 믿는다. 성실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진실해야 실수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인 동시에 후학들에게 물려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이정민



“임상의사, 교육자, 의학자, 관리자, 행정가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전부 잘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단은 임상과 연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문화를 즐기고 교양을 쌓는 데도 관심을 두려고 하죠.
의사와 인간,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어서요.”


 마포구 공덕동에 <춘사의원>이란 병원이 있었다. 세브란스의전 출신의 김영한 원장이 운영하는 조그만 병원이었지만, 일년 내내 환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병을 잘 고치기도 하려니와 환자를 꼼꼼하게 보살피고 인격적으로 대접한다는 입소문이 난 덕분이었다. 사실, 김 원장은 ‘환자지상주의자’였다. 퇴직할 때까지 줄곧 병원에 잠자리를 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밤중이든 새벽이든, 한두 번씩은 일어나 환자를 살폈다. 집안의 내력을 두루 꿸 만큼 환자에 정통했다. 자연히 인정과 존경이 따라왔다. 시장에라도 나갈라치면 인사를 받기에 바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춘사의원> 집 막내아들이 의사가 된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소아내분비 질환의 명의, 김호성’이란 이름의 이면에는 아버지 ‘김영한’ 원장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드리워 있다.

 “대학병원이 아니었는데도 알음알음으로 멀리서 환자들이 찾아오곤 했어요. 공중보건의로 전남 곡성에 가서 근무하게 됐는데, 거기에도 아버님한테 진료 받았던 환자가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셨으니까요.”


성공 스토리? 트루 스토리!
 서두가 이쯤 되면 2대에 걸친 성공 스토리가 이어지길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의사의 길에 들어선 이후 김호성 교수의 삶은 승승장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주로 위험 부담이 따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쪽을 선택해온 성향 탓이다. 곧은 길 버리고 에둘러가기는 대학에 남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식구들은, 아니 김 교수 자신마저도 당연히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을 줄 알았다. 큰형 역시 의사였지만 애초부터 거부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해왔으니 누가 봐도 아버지의 후임은 김호성 교수였다. 순탄할 것만 같던 릴레이에 뜻밖의 변수가 끼어들었다.

 “레지던트를 마칠 때쯤 돼서, 김덕희 교수님이 따로 불러 공부를 계속해보는 게 어떠냐는 거예요. 힘을 모아서 내분비 분야를 좀 키워보자는 말씀이었죠. 결론적으로 선생님의 간곡한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제가 뒤를 이어 병원을 이끌어가길 기대하셨던 아버님은 실망이 크셨어요. 많이 놀라고 서운하셨을 겁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아내분비학은 전문가를 찾기 어려웠고 학회마저 구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 상황을 ‘척박함’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보았다.

 초창기라지만 환자가 적지는 않았다. 세브란스병원의 김덕희 교수가 이 분야에서 선발주자에 속했던 까닭에 환자가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연구하고 진료하는 삶이 끝없이 되풀이됐다.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뒤를 돌아다보며 후회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할수록 재미와 보람이 있었고 미래가 밝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2년 반에 걸친 펠로우 생활을 마칠 무렵, 김 교수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모교를 떠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연연하지는 않았다. 공부에 재미를 붙인 터라 자리에 신경 쓸 여유가 없기도 했다. 미국에 1년 반 정도 연수를 다녀왔지만 연구에 대한 갈증은 쉬 가시지 않았다. 병원으로서는 더 이상 선처해줄 형편이 아니어서, 결국 사표를 냈다. 교수 자리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2003년, 함께 일하자는 김덕희 교수의 연락을 받고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자리를 잡기까지 그렇게 5년 가까운 세월을 공부에만 매달렸다.

 “교수를 하다가 사직하고 공부를 하러 간다는 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었겠죠. 말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매사에 때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마찬가지죠.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는 편이라 무작정 떠났습니다.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고 앞날을 보장 받지도 못했지만 바른 결정이었다고 믿습니다. 다만, 남다른 결정을 내릴 때마다 이끌어주고 키워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늘 냉철해야 하지만 환자에게 꼭 위로가 필요하면 보듬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진심으로 다가서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진료실에 들어오는 어린 환자들에게
자주 말을 붙이는 편입니다. ‘요즘 어때? 잘 지내니?’라고요.”


의술에 진심과 성실을 보탤 줄 알아야 참 의사
 요즘 김호성 교수가 가장 자주 만나는 이들은 성조숙증과 저신장증, 소아당뇨병 환자들이다. 성조숙증은 어린 나이에 사춘기 현상이 나타나는 걸 가리킨다. 여자아이의 경우 8세 전에 가슴이, 남자아이의 경우 9세 전 고환의 크기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성에 관심이 높아지고, 머리에서 유난히 냄새가 나고, 또래보다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소아비만, 성적으로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 내분비 교란물질이 넘쳐나는 환경적 요인들을 원인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콕 집어 이것이라고 할 만큼 연구가 진행된 건 아니다.

 저신장증의 경우, 키와 체중이 정상범위를 벗어나는지 본다. 하위 3% 안에 든다면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1년 동안 4센티미터 이하로 큰다든지, 식구들 가운데서도 유달리 작다면 전문가를 찾아보는 게 좋다. 성조숙증이나 저신장증 모두 치료 시기가 중요한데, 일단 성장판이 닫히면 손써볼 여지가 거의 없으므로 여자는 14-15세 이전, 남자는 15-16세 이전, 가능하면 사춘기 전에 조처를 취해야 한다. 따라서 6개월 단위로 성장 상태를 관찰해서 정상범위 안에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매스컴을 통해 질병의 존재와 치료 절차가 잘 알려져서 늦기 전에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김호성 교수는 환자가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찌감치 예약을 해도 한참을 기다리는 건 필수였다. 그만큼 일이 많다는 뜻이니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김 교수는 그만한 기쁨도 없다는 입장이다.

 “누구나 매듭이 지어질 때마다 보람을 느끼게 마련이잖아요? 학위를 받고,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되고… 이런 게 다 매듭이죠. 제게는 환자가 늘었다는 것 역시 매듭의 일종입니다. 비로소 의사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니까요. 한번은 낯선 부부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군요. 자제가 성장호르몬결핍증 환자였는데 치료를 받고 키가 174센티미터까지 컸다더군요. 외국 학회에 갔다가 제게 치료를 받았다는 환자를 만난 적도 있었어요. 일을 통해서 이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의사의 삶이라는 게 보람뿐일 수는 없다.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지라 곳곳이 지뢰밭이고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돌이키지 못할 상황에 빠지기 일쑤다. 김호성 교수는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성공하는 비결이 성실과 진심이라고 믿는다. 성실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진실해야 실수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인 동시에 후학들에게 물려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에게는 남다른 무언가가 조금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되려면 환자의 형편까지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늘 냉철해야 하지만 환자에게 꼭 위로가 필요하면 보듬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상대가 누구든 진심으로 다가서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진료실에 들어오는 어린 환자들에게 자주 말을 붙이는 편입니다. ‘요즘 어때? 잘 지내니?’라고요.”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을 하고 싶다
 굽이굽이(그의 표현으로는 차근차근) 꼭대기에 선 김호성 교수의 다음 목표는 소아내분비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연구실을 꾸리는 일이다. 스스로 열매를 거둘 수 없을지라도 후배들이 딛고 뛸 도약대를 만들어주는 게 선배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두 명의 연구원이 인슐린양성장인자 결합단백질이 성장, 암 발생, 노화 등의 현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피는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질병들과 관련된 임상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키와 체중의 표준은 정해져 있지만, 성장 속도의 기준은 잡혀 있지 않은 상황인데, ‘조숙’의 판단이 정확해지려면 그걸 확정하는 게 급선무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확보된 연구비는 적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그의 손에는 성실과 진심이라는 마스터키가 들려 있기 때문이다.




| 김호성 교수 |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연세의대 소아과학교실에 재직중이다.
전문 진료분야는 저신장, 소아당뇨, 성조숙증, 갑상선질환, 비만 등이다.
현재 소아내분비클리닉 홈페이지(www.yonseipedi.com)를 운영하고 있다.






2012/06/29 16:26 2012/06/2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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