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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웹진 :: 독립운동에서 사회운동, 여성운동으로 [2019년 10월]

HISTORY_정종명의 독립운동



독립운동에서 사회운동, 여성운동으로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여성 정종명.
그녀는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간호부양성소에서 공부하는 동안
세브란스병원 3·1운동의 핵심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인습에서 여성을 해방시키고 교육하는 데 앞장섰다.

 김영수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에서 학업에 임했던 학생이나 근무했던 교수, 간호사, 직원 등 모든 세브란스인들은 합심해서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국권 피탈의 개탄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끈 의료기관 세브란스와 각 분야에서 활약한 세브란스인들을 집중 조명하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정종명(鄭鍾鳴)
(1896 ~ ?)


서양 근대교육의 영향, 독립된 자아를 갖다
정종명은 1896년 3월 5일 서울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11세에 감리교 계통의 여성 교육기관인 배화학 당에 입학한 그녀는 4년 동안 당시 조선 여성으로는 드물게 서양식 근대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가정의 경제적 사정으로 배화학당을 졸업하지는 못했고, 이후 그녀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집안의 결정에 따라 그녀는 17세에 대한의원의 통역이었던 박 아무개와 결혼했다. 그러나 스스로 ‘인형 노릇’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본인의 의지에 반하는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정종명은 관습대로 결정된 결혼에 반기를 들고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당시 사회 통념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3년 남짓으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사망하면서, 그녀는 불행한 결혼 생활에 불만을 제기할 틈도 없이 생계를 걱정해야만 했다.
정종명은 당시 사회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성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뚜렷이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간호교육을 받아 직업을 갖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계 유지를 위해 1917년 사립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간호 부양성소(이하 간호부양성소)에 입학했다.


불의에 적극 항거한 리더
정종명은 “교육을 받은 조선 여자를 모집해 재덕을 겸비한 그리스도인 간호부를 양성한다”는 간호부 양성소의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그녀 역시 간호부양성소에서 요구하는 자질과 학문을 익히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녀는 1920년 <신여자> 라는 여성지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부하고 일한 경험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글에는 간호부양성 소의 체계적인 간호교육과 병원 환경, 간호사 교육을 받고 있는 자신과 동료들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 있다. 반면 동시에 간호사는 정신적으로, 육체적 으로 노동하는 쉽지 않은 직업인데 여기에 빡빡한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녀는 간호사로서의 자부심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처우 개선 문제를 두고 간호부양성소와 대립하기도 했다. 학생 20여명을 이끌고 동맹 휴학을 일으켜 학교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정종명은 여성과 교육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쳐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간호사로 독립운동의 가교 역할
1919년 3월 5일 오전, 남대문 정거장 앞 광장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간호부양성소 견습생들은 붕대를 들고 곧바로 시위 현장으로 달려나가 시위 군중속에 섞여 부상자들을 돌보다가 체포되었다. 간호부양성소 학생이었던 정종명은 병원 안에서 3·1운동 주도자들을 도왔다. 1919년 2월 당시 전문학교 학생단 대표로 3·1운동 시위 참여에 대한 연락 책임을 맡아 학생들을 규합하던 강기덕이 일제의 눈길을 피해 잠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환자와 간호사 관계를 활용해 정종명은 강기덕이 외부의 독립운동 참여자들과 연락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또 그녀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세브란스의 직원이었던 이갑성으로부터 받은 중대 서류를 맡아두었다는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이후 정종명은 애국부인회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애국부인회에 가입했다가 체포당하기도 했지만, 애국부인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않아 기소되지는 않았다. 반면 그녀의 모친 박정선은 항일 독립운동단체인 대동단에 가입해 1919년 11월 28일 서울 안국동 광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3·1운동의 물결을 온몸으로 경험하면서 정종명은 민족의 운명에 더욱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녀의 저항의식은 더욱 커져갔다.


여성문제를 고발하고 여성교육에 앞장서다
1920년 간호부양성소를 졸업한 정종명은 산파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원 산파강습소에 입학했다. 그녀가 생각한 경제적 자립과 생활의 자유로움이라는 측면에서 산파가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다. 산파강습소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산파 면허를 취득한 그녀는 안국동에 조산원을 개원했다. 산파 활동을 통해 얻은 경제적 자립 덕분에 그녀는 사회활동에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여성교육을 받고 여성 엘리트로 성장 한 그녀는 조산원 운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자 여성단체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시작은 ‘여자고학생상조회’였다. 이 단체는 원래 1920년 서울에서 남자 고학생들이 운영하던 상조단체인 갈돕회의 하부 조직이었는데, 정종명이 별도의 독립된 여성단체로 만든 것이다. 이 단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그녀는 1924년 1월 조선간호부협회를 창립하고, 대중들과의 접촉을 통해 간호사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고자 했다.

같은 해 5월에는 ‘부인의 해방’을 기치로 사회주의 여성운동을 지도하는 사상단체인 여성동우회의 설립에도 관여했다. 또 1920년대 후반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가들이 주도해 조직한 근우회의 상무집행위원과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산파로서 그녀는 여러 사회운동단체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중강 연도 실시했다. 이 대중강연은 대부분 여성문제를 고발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던 그녀는 이러한 활발한 사회활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한 사실로 체포 당했고,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해방 이후 이북 지역에서 부인운동을 펼치고 북조선민주여성동맹 간부로 활약한 정종명은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I 지금 여기 I
세브란스의 참 스승들


세브란스 135년 역사를 만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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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 본관 입구를 향해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본관 앞 정원의 동상들. 주인공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탄생한 제중원이 오늘의 글로벌 세브란스병원으로 성장하기까지 뚜벅뚜벅 헌신의 길을 걸어간 대표적 인물들이다.
제중원을 선교병원으로 전환하고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를 배출하며 한국의 의학교육 개척에 헌신한 에비슨 박사, 세브란스의전 최초의 한국인 교장으로 일제 암흑기에 세브란스를 이끈 오긍선 선생,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브란스를 재건하고 세브란스와 연희를 통합해 연세의료 원의 기틀을 마련한 김명선 선생. 세브란스의 역사가 된 세분의 참 스승들을 바라보며 한 알의 밀알이 이루어낸 헌신의 힘을 되새겨본다.
_에디터 박준숙 /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9/10/10 15:28 2019/10/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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