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Diary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세브란스 사람들의 생생 스토리


희망의 문 열어주는 공감과 위로

  최수영(어린이병원 외래간호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한 달 만에 병원을 다시 찾은 우진이 (가명). 엄마 아빠는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출생 한 달 동안 아이의 체중은 고작 0.34kg이 늘었고, 수유량은 평균치의 절반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었다. 걱정하는 부모맘을 알기나 하는지, 아이는 8시간 넘게 수유 하지 않아도 배고프다고 보채는 법이 없었고 30분 넘게 젖병을 물려도 겨우 30-40cc를 먹는다고 했다. 주변에선 그저 크면서 좋아진다는 말만 할 뿐 부모의 걱정을 진심으로 헤아려주지 못했고, 그나마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며 우진 엄마는 시름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나도 유독 잘 먹지 못했던 아이들 때문에 맘고생이 많았었다. 특히 초보 엄마였던 첫째 때는 육아휴직 2년 동안 수유 문제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우진 엄마의 수유 수첩을 보는 순간, 저절로 그려지는 힘들었을 시간들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진 엄마는 끝없이 자책하며 아픔의 눈물을 흘렸다

진찰 결과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우진이는 수유 시간에 비해 먹는 양이 유독 적었다. 우진 엄마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일부러 엄마 젖꼭지와 가장 비슷한 촉감의 제품을 사용했지만, 빠는 힘이 약한 아이에겐 그 제품이 맞지 않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간호사였기에 알 수 있고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이 있었지만, 우진이 엄마 아빠는 어디서도 실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신생아실까지 뛰어올라가 우진이에게 적합한 젖병과 젖꼭지를 가져다가 샘플로 보여줬고, 내 경험에 비춰 여러 조언을 들려주었다.

다행히 일주일 후 다시 만난 우진이는 체중이 0.3kg이나 늘어 있었다. 우진이 엄마는 젖병과 젖꼭지를 바꿨더니 수유 시간도 줄고 한 번에 먹는 양도 늘었다며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웃었다.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나는 꼭 안아주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예약 리스트에 낯익은 이름이 있었다. 우진이었다. 상담이라는 메모가 있었지만,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진료실에 나타난 우진이의 코에는 gavage tube(입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할 때 위에 직접 유동식을 공급해주는 관)가 끼워져 있었다. 지방으로 내려간 후 더 이상 늘지 않는 수유량과 체중 때문에 결국 입원해 검사를 받았지만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나마 내 경험담이 떠올라 gavage tube를 끼워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교수님과 상담을 마친 우진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나를 너무 만나고 싶었다며, 다른 병원의 유명한 소화기영양과 전문의의 예약까지 잡아놨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퇴근 시간이 훌쩍 넘도록 그녀의 손을 잡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우진이의 엄마 아빠는 내 얘기를 더 듣고 위로받고 싶었다는 속내를 고백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로서 진심을 담은 내 위로와 공감이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며칠 뒤 다른 과 진료를 보러 온 우진이의 엄마 아빠는 일부러 나를 찾아와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서울까지 올라온 목적이었던 타 병원 진료는 결국 받지 못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보였다. 아마 그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진심을 담은 공감과 위로였으리라. 오늘도 아픈 아이와 함께 내원하는 그들의 아픈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2019/08/13 15:45 2019/08/1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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