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_송춘근과 춘천 지역의 독립운동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만세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송춘근은 1919년 서울과 춘천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으며,
상하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도왔다.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후에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기독교 사회운동을 통해 젊은이들을 교화시키며 배후에서 나라의 독립을 지지했다.

 김영수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에서 학업에 임했던 학생이나 근무했던 교수, 간호사, 직원 등 모든 세브란스인들은 합심해서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국권 피탈의 개탄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끈 의료기관 세브란스와 각 분야에서 활약한 세브란스인들을 집중 조명하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송춘근(宋春根)
(1887~1971)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세브란스에서 공부
송춘근은 1887년 경기도 양주에서 송명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명은 봉해(鳳海)였다. 그는 15세에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해 다니다가 황성기독 교청년회(YMCA의 전신)가 설립한 청년학관(황성 기독교청년학관)으로 옮겨 보통과를 졸업했다. 기독교계 교육기관인 경신학교와 청년학관에서 수학한 송춘근은 영어에도 능통했다.
그는 1913년부터 서울을 떠나 춘천에 거주했는데, 선교사들과의 인연으로 춘천 지역의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송춘근은 미국인 선교사 오크바의 조선어 교사로 일했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16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연희전문학교를 오래 다니지는 않았고, 이듬해에 남감리교 의료선교사 앤더슨 (Earl Willis Anderson, 1879-1960)의 추천으로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이하 세브란스의전)에 다시 입학했다. 선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는 남감리교 춘천 교구의 미국인 선교사 힐을 통해 전도 본부로부터 매월 학비를 지급받아 세브란스의전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1919년 세브란스의전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송춘근은 연희전문학교 학생 김원벽, 보성전문학교 학생 강기덕 등의 연락을 받고 만세시위를 위한 학생 동원 책임을 맡았다. 그는 3월 1일 정오까지 태극기와 붉은 리본을 가지고 탑골공원에 집합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고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세브란스의전 스코필드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일제의 한국인 학살 만행이 담긴 사진을 미국선교회와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조선 독립의 염원을 전파하다
그의 독립운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19년 6월, 그는 세브란스의전 조선어 교사인 이일선으로 부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송춘근은 춘천의 남감리교 전도사인 김조길로부터 상하이 에서 발행되는 <국민신문>, <독립신문> 등을 받아 춘천에 거주하는 기독교도와 유력자들에게 배포 하고 자금 모집 활동을 시작했다. 신문 배포를 통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춘천 지역에 알려지며 지역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이렇게 모인 자금은 이일선에게 무사히 전달되었다.
이후 춘천에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또다시 독립 운동이 계획되었는데, 송춘근은 이 과정에도 관여했다. 그해 11월 27일 미국 남감리교 전도특파원의 춘천 방문을 기회로 삼아 춘천교구의 남감리교도가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단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선언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및 축하가(祝賀歌), 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 등의 인쇄물을 만들어 비밀리에 춘천을 중심으로 화천, 양구, 인제, 홍천 등 강원도 지역과 경기도 가평의 유력자에게 배포하고 독립운동의 열기를 고조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준비 과정에서 일제에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송춘근은 일제의 신문조서를 통해 인쇄물 배포뿐만 아니라 인쇄물 작성 단계부터 관여했음이 밝혀졌고, 1920년 10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죄처벌령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기독교 사회운동으로
조국 독립에 강한 신념을 가진 송춘근은 “조선의 독립은 국제연맹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며, 독립 운동을 지속하는 것은 조선 지식인 모두의 희망” 이라고 강조했다. 일제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송춘근이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에 대해 전혀 발설하지 않은 강직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옥고를 치른 후 그는 세브란스의전에 복학했으며, 1923년 졸업한 후에는 병원에 남아 수련과 연구를 지속했다. 이 시기에는 독립운동가로서 특별한 활동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정치범으로 복역한 그를 일제가 철저히 감시했기 때문이다.

졸업 후 그의 행보는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당시 송춘근은 조선기독교청년 회연합회 위원후보, 조선그리스도교 남감리회연합회 회원으로서 기독교 사회운동에 초점을 맞춰 활동했다. 정치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사회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아마도 사회운동이 독립에 대한 그의 간절한 염원을 표출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결집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던 그는 일제의 감시망에서 다소 자유로운 지방으로 내려가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다. 마침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의료선교사 앤더슨이 원산 구세병원에 전임되면서 송춘근 에게 같이 일하자고 요청했고, 그는 이것을 기회로 1924년 원산으로 이주했다.
이듬해에 그는 원산 기독교청년회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이 단체의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28년에는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연합해 설립한 항일단체인 신간회의 원산 지부 설치에도 힘을 보탰다. 이 외에도 1929년 원산 협동소비조합 창립에 참여했으며, 이후 기독교청년회 회장, 원산한인의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원산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한 지역활동에 참여하면서 지역민과의 교류를 통해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이후 일제의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그는 1931년 활동 근거지를 전라남도 해남으로 옮겨 고려의원(高麗醫院)을 개원해 의업을 지속하면서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참여했다. 해방 후 송춘근은 송봉해로 개명했으며, 대한독립 촉성국민회 소속으로 해남 지역에서 출마해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와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을 인정 받아 1999년 정부로부터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I 지금 여기 I
자선가게 세·움



세상에서 제일 착한 가게, 여기서는 기부도 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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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4층 정형외과 옆에 자리한 자선가게 세·움. 옷이나 스카프 같은 생필품부터 인형, 책, 장난감, 예술품까지 웬만한건 다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백화점이다. 이곳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누군가의 소중한 기부로 물품을 마련하고 판매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암 환자 지원에 사용하기 때문. 암 완치자는 더 이상 쓸 일 없는 가발을 기증하며 완치의 기쁨을 나누고, 암 환자는 꼭 필요한 가발을 저렴하게 구입해 완치의 희망을 품는다.
너무 아까워서 한쪽에 모셔두기만 했던 물건을 기증해도 좋고, 어쩌다 남는 시간에 쇼핑 한 번 하는 것도 좋다. 자선가게 세·움에선 이 모든 일이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기부가 되니까.


_에디터 박준숙 /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9/07/17 11:25 2019/07/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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