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Diary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세브란스 사람들의 생생 스토리


작은 실천으로 전하는 큰 사랑

 문한나(산부인과)


1년 전쯤, 신경외과 인턴으로 당직을 서고있을 때였다. 유독 다른 파트의 호출이 잦았던 어느 날 밤, 뇌종양 환자에게 비위관을 삽입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병실에 가보니 중년의 여성 환자 곁을 20대 초반의 아들이 지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보호자에게 비위관 삽입의 필요성과 시술 방법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으려고 했지만, 당황스럽게도 보호자는 시술을 거절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전공의 선생님에게 전달받은 대로 흡인성 폐렴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설명했지만, 보호자의 태도는 완강했다.
여유를 갖고 대화를 나눠보니, 이전에 다른 인턴이 비위관 삽입을 시도했지만 시술에 실패하면서 코피까지 났던 모양이었다. 비위관이 콧구멍을 통해 들어가기 때문에 코피는 예상 가능한 경미한 합병증이라고 설명했으나, 보호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잠시 후, 끈질긴 설득에 마음이 풀렸는지 그는 곧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머니의 머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꼭 붙잡고 술기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아픈 엄마 곁에서 난생처음 보호자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20대의 아들이 느꼈을 부담감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는 보호자에게 시술 과정을 지켜보기 괴롭다면 병실 밖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서 천천히 시술을 하겠다고 여러번 설명하고 믿음을 주었다. 그제야 보호자는 마음을 바꿔 시술에 동의했다.
보호자 대신 간호 스테이션을 지키던 간호사 선생님에게 잠시 환자를 잡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보호자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평소 보다 더 긴장됐지만, 관에 젤을 충분히 묻히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관을 돌려가 면서 삽입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단 한 번에 관이 쑥 들어갔다. 예전에 시술하면서 느꼈던 약간의 저항감조차 없었다. 청진을 통해 관이 위까지 올바르게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술을 마무리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끝나자 보호자는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간단한 술기로 너무 큰 인사를 받는 것 같아 좀 민망했다. 내가 시술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시간이 좀 더 충분했기 때문이지 특별한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의료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평범한 시술이 병원 생활로 지쳐가는 환자와 보호자에겐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으로 느껴졌으리라. 큰 아픔에 연민을 가지는 것도 의료진이 가져야 할 공감의 태도지만, 바쁜 일과 가운데 조금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환자들을 돌보는 것 또한 큰 배려와 공감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우리 모두 큰 업적을 세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작은 일들을 큰 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말처럼, 오늘 하루도 작은 실천으로 큰 사랑을 전해야겠다.




2019/07/15 16:51 2019/07/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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