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Diary

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세브란스 사람들의 생생 스토리


천 원의 공감으로 행복해진 2년 후 어느날

박현주 (흉터성형레이저센터)


바쁜 오전 진료가 끝나고 간호 스테이션에서 겨우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 한 분이 구부정한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들어오셨다.
“여기 박◯◯ 선생님이라고 있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어서 할머니께 잘못 찾아오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할머니는 피부과에서 여기로 안내해줬다며 재차 그 사람을 찾으셨다. 할머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듣기 쉽지 않았지만,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여기에 있다고 안내받으셨어요? 여기 근무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데요. 혹시 찾는 분 성함이 정확히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쳐 보이셨다. 외래진료 안내문 귀퉁이를 손으로 대충 찢은 듯한 작은 종이에는 ‘피부과 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다른 필체로 “암병원 5층 흉터센터 박현주”라는 메모가 덧붙여 있었다.

그 순간 기억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2년 전, 병동에서 피부과 외래로 막 발령받았을 때였다. 낯선 업무에 허둥거리며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치료실 입구에서 연세 지긋한 한 분이 갑자기 나를 붙잡으셨다. “혹시 천 원 있어요? 내가 버스비를 안 가져왔네.”
꽤나 난감해 보이는 할머니 모습에 얼른 직원 탈의실로 뛰어가 지갑에서 천 원을 가져와 건넸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며 나중에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셨다.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다른 환자의 목소리에 그 일은 곧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2년 후, 바로 그 할머니가 잊지 않고 찾아오신 것이다. 아마도 그날 병원에서 나눠줬던 진료안내문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어놓은 메모를 잘 간직해두었다가 다시 병원에 오는 날 일부러 챙겨 피부과를 찾아가신 모양이었다. 당시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내 이름을 적어주었지만,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글씨를 잘못 읽으시고는 다른 이름으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신 듯했다.
“어머! 기억났어요. 제가 그 간호사 맞아요.”
그러자 할머니는 환히 웃으며 주머니에서 천 원을 꺼내 건네셨다. “맞네, 이렇게 보니 그때 그 얼굴이네.” 그러고는 극구 사양하는 내 손에 기어이 천 원을 꼭 쥐어주셨다. “그동안 그 돈 못 갚아서 마음이 영 불편했는데 이젠 마음 편히 지내도 되겠네.” 개운한 얼굴을 한 할머니는 배웅하려는 나를 뿌리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셨다.


한참 동안 그 할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한 작은 행동일 뿐인데, 할머니는 이렇게 오랫동안 잊지 앉고 고마워하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찡했다. 그때 나는 그 돈을 되돌려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큰돈도 아니었고, 바쁜 외래진료 중에 정신없이 스친 작은 일이라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이해하고도 와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2년 동안 잊지 않으셨던거다.

상대방을 이해해주는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인상적인 일로 남을 수 있다.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작은 공감들이 만들어내는 큰 울림 속에 행복해지는가 보다.



2019/05/08 15:05 2019/05/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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