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Diary_환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세브란스 사람들의 생생 스토리

서로의 마음에 따듯한 흔적을 남기며


“미술치료 선생님, 오늘 이소영(가명) 환자 입원하면 한 번 만나주세요. 좀… 젊은 분이에요.” 몇 시간 후 만난 그녀는 너무 앳된 얼굴의 암환자였다. 얼마 전 겨우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넘긴.

스물넷에 암을 진단받은 이소영 환자는 어려운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지만, 계속된 전이로 더 이상 쓸 수 있는 항암제도 없어서 적극적인 암 치료를 하지 않은지 6개월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날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했고, 컨디션이 허락할 때마다 캘리그라피, 자수, 베이킹 등을 배워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의 힘을 가진 그녀에게 나는 그녀만의 기록을 담아 사진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날마다 병실에 들러 차근차근 그녀의 삶을 기록해나갔다. 작업 중반이 지날 무렵, 그녀는 직접 쓴 시 한편을 보여주었다. 수줍게 내민 그 시에는 푸르렀다가 붉게 물들어 떨어진 낙엽과도 같은 자신을 여전히 아끼고 사랑해주는 이들을 향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정리한 기록들은 2주간의 입원 치료가 끝나갈 즈음, 얇은 사진책으로 완성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일주일 만에 다시 입원하고 말았다. 지독한 암세포의 공격으로 결국 하반신이 마비되어 배변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면서, 그녀의 일상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날마다 병실에 들러 이소영 환자와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을 환하고 예쁘게 꾸며주었다. 그리고 항상 곁에서 그녀를 지키는 예수님의 이미지를 그려 침대 옆에 붙여놓았다.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겨가기 전 마지막 만남에서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투병 기간 내내 눈물을 흘린 적이 거의 없다는 그녀의 말이 무색하리만치… 그리고 한 달쯤 지나 뜻밖의 선물 하나가 도착했다. 곱게 말린 족자를 펼쳐보니 그녀의 익숙한 시가 적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간 시는 (그대 고맙다네)라는 제목을 달고, 마지막 네 줄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었다.

설움과 후회만 가득하다면
다가올 겨울의 눈발보다 시리겠지만
따듯한 그대의 손길이 녹여주리라 믿으며
또한 그대 늘 행복하길 빌며…

언젠가 내 머릿속 기억 저장소가 꽉 차는 날이 오면 세브란스에서 만난 수많은 환자들의 얼굴과 이름은 희미해지겠지만, 마음에 새겨진 따듯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내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임을 알고 있다. 작은 사진첩을 만들고 대화를 나누며 이소영 환자가 나의 공감에 스스로의 힘을 믿게 되었고, 나 역시 그녀의 삶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완화의료센터 병동 한구석에 자리한 그녀의 시가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위로를 전해주는 것 처럼.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따듯한 흔적을 남기며 치유됨을 경험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_ 글 박지솔(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2019/03/11 13:44 2019/03/11 13:44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1  ... 30 31 32 33 34 35 36 37 38  ... 2491 

카테고리

전체 (2491)
세브란스 Top (120)
수현일기 (12)
치치(治齒)의 행복 (22)
Smile (44)
Body Age (24)
HOT (17)
A letter from Dr.Park (37)
A letter from Dr.Chung (23)
The Scene (66)
세브란스 인물열전 (37)
지난호 보기 (2)
곁길동화 (12)
People (66)
세브란스 탐구생활 (46)
WORDS (61)
Issue (57)
S Story (78)
Special report (221)
Gallery (105)
우문명답 (34)
Ranking (20)
성산로 250 (59)
the first & the best (29)
Information (18)
you. the excellent (18)
치료에 좋은 밥상 (35)
Photo Essay (36)
선교지에서 온 편지 (12)
Quiz (12)
길 위의 기적 (36)
5 Checks (12)
제중원·세브란스 이야기 (49)
암, 완치의 꿈 (36)
암환자를 위한 닥터푸드 (36)
검사실 돋보기 (12)
Dr. MAH’S POEM (12)
따뜻한 창문 (3)
응급상식 119 (12)
FOCUS (48)
FACE & FAITH BOOK (10)
THE ROAD (39)
모르면 독, 알면 약 (39)
Special (218)
국가대표 암병원, 세브란스 (113)
초짜농부 생명일기 (8)
EVENT (1)
special interview (2)
A Letter from Dr.Yoon (23)
Only ONE (1)
The Love (44)
The Faith (27)
행복 (12)
My Hero (27)
Yes or No (12)
치과 솔루션 (12)
The Hope (4)
ZOOM IN (8)
Love Nepal (3)
플러스 + (2)
국가대표, 세브란스 병원 (5)
Severance Times (66)
건강한 밥상 (15)
Good Doctor Says (15)
부산발 희망편지 (24)
A Letter from Dr. Lee (3)
특별기고 (1)
HOT SPOT (8)
풍경 (16)
Miracle (26)
HISTORY (25)
HAPPY SOLUTION (8)
WISDOM (9)
NOW (10)
책갈피 (7)
HAPPY NEW YEAR (1)
집중탐구 (17)
치과 TALK TALK (11)
지금여기 (1)
S diary (9)
S NEWS (11)
식탁 (5)
공감 (1)
Heart (5)
Wow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