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_세브란스와 독립운동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세브란스


제중원이 한국 최초로 서양식 근대의학을 도입해 세브란스로 이어지는 구한말의 한국은 일제가 본격적으로 국권을 침탈해나가는 시기였다.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으로서 세브란스는 구한말 한국이 겪은 정치적, 외교적 어려움을 목도하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성장해나갔다.

 김영수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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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일제의 구한국군 강제 해산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했던 군인들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김건배 작품, 2017년).>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 당시 세브란스에서 학업에 임했던 학생이나 근무했던 교수, 간호사, 직원 등 모든 세브란스인들은 합심해서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국권 피탈의 개탄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끈 의료기관 세브란스와 각 분야에서 활약한 세브란스인들을 집중 조명하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서양 의학교육과 의사의 지위 변화  
1885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이자 세브란스의 전신인 제중원이 설립되었다. 제중원을 필두로 한국에 서양식 근대의학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갔고, 그와 함께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가 확보되었다. 1886년 3월 제중원의학당을 설치하고 총 16명을 선발해 의학교육을 실시하면서 한국의 본격적인 근대 의학교육이 시작되었다.
제중원을 설립하고 초보적인 단계로나마 의학교 육을 시행한 결과, 1908년 6월 세브란스병원의학교 명의로 첫 졸업생을 배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 최초로 의술개업 인허장이라는 의사면허를 취득했고, 국가의 보증하에 의업에 종사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나갔다.

의학교육과 의사면허 발급에 따른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경제적인 자립은 그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안겨주었다. 즉 국가 공인 의사제도가 실시되면서 면허의사는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망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평안하고 윤 택한 삶을 포기하고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가 세브란스 출신이었다.

처참한 조국의 현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
세브란스가 첫 졸업생을 배출한 1908년부터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졸업생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매 기수마다 독립운동가가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브란스에서 수학한 의사들 가운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유독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은 일본의 보호국화 과정에서 국가의 권리를 빼앗기는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면서 조국의 현실을 보다 깊이 이해했다. 세브란스의 졸업생들은 구한국군 강제 해산과 국권 피탈 과정을 바라 보면서 한 사회의 엘리트로서,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1907년 통감부는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 시켰고, 이는 구한국군이 일제에 항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의 군대해산은 무장투쟁으로 이어졌고, 이때 부상당한 대한제국 군인들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부상병들을 치료하며 세브란스는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에 더욱 깊이 공감했고, 이는 세브란스와 세브란스 구성원들이 독립운동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 부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김필순, 박서양, 신창희, 주현측, 신현창 등 세브란스병원의학교의 초기 졸업생들은 모두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고자 정치적 망명이나 해외로 이주 하면서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들은 의사로서 지역사회에서 명망과 신뢰를 쌓았고, 그들의 병원은 각 지역에서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동시에 병원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세브란스, 3·1만세운동의 거점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을 3대 정신으로 삼아 거국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200만 명이 1,500회에 달하는 만세시위에 동참했으며, 그 과정에서 7,500여 명이 살해당하고 5만 여명이 체포, 투옥되었다.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3·1운동은 분명히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에 세브란스가 있었다.
세브란스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에서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세브란 스가 3·1운동에 등장한 것은 우선 세브란스가 기독교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깊다.
3·1운동에 앞서 일어난 2·8 독립선언 이후, 조선 내부에서는 기독교 신자들과 기독교 학교의 학생을 동원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모의 했다. 1919년 2월 11일 천도교계 인사 송진우(宋 鎭禹, 1890-1945)는 기독교계 인사 이승훈(李昇 薰, 1864-1930)에게 독립운동을 추진하자는 제의를 건넸다. 이승훈은 이 제의를 받고 세브란스 병원 구내에 있던 남대문교회에 들러 이갑성(李 甲成, 1886-1981)과 함태영(咸台永, 1873-1964) 을 만나 참여 의사를 논의했다. 당시 이갑성은 세브란스병원의 제약주임으로, 함태영은 남대문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구내에 위치했던 그들의 사택은 독립운동 추진을 위한 주요 거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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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종로 보신각 앞에 운집한 시민들과 일본 경찰.>

이갑성은 독립선언서의 기독교계 대표로도 참여했다. 또 학생들이 스스로 독립 선언서를 만들어 독립선언을 할 계획이 있음을 알고, 손병희 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 계획에 참가하게 함으로써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여러 초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독립선언서는 세브란스를 매개로 곳곳으로 전파되어 전국 각지에서 3·1만세운동을 벌이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전국 각지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에는 특별히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재학생들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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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식민지 조선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음을 보고하는 문서.
영어로 번역한 독립선언문도 포함되어 있다(독립기념관 사료).>

세브란스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 연결고리는 3·1운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는 데 일조했다. 3·1운동의 중심에서 여러 역할을 담당했던 만큼 상당히 많은 세브란스인들이 체포, 투옥되었다. 아울러 교직원, 간호부, 학생 등 세브란스의 구성원 전체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세브란스의 독립운동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 여기
우리라운지 알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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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의 시작, 알렌을 만나보실래요?

세브란스병원의 모태가 된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 설립을 제안한 알렌. 이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는 대체 왜 낯선 조선 땅에 들어와 병원을 세웠을까?
제중원을 세우기까지 알렌의 수고와 마음이 궁금한 이들은 모두 우리라운지 ‘알렌기념관’으로 오시라.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할지 고민인 분도 대환영!
알렌이 조선에 들어와 벌였던 다양한 활동과 제중원 설립 배경은 물론, 고종이 알렌에게 하사한 의복, 알렌의 진료도구함과 검안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의학 진단서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알렌기념관에서 세브란스 역사의 소중한 첫 페이지를 만나보자!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9/01/17 14:10 2019/01/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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