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의사는 전략 설계자, 치료는 전문가와 환자의 합동 작전


“뇌졸중 재활의 관건은 결국 환자 맞춤형 전략입니다. 환자의 뇌 상태가 어떠한지 판단하고 어떤 경로를 밟게 될지 예후를 정확하게 예측한 뒤에는 정밀한 전략이 나와야 합니다. 환자마다, 단계마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필요를 적절히 채워주어야 호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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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재활치료의 명장, 김덕용 교수(재활의학과)>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의사.’ 재활치료를 받는 뇌졸중 환자와 보호자들은 김덕용 교수를 그렇게 부른다. 옴짝달싹 못 하는 환자를 마법처럼 벌떡 일으켜서가 아니다. 걸핏하면 환자를 세우고, 움직이거나 걸어보게 하는 까닭이다. 자리에서 일어날 만한지, 다리에 힘이 좀 붙었는지, 몇 걸음 이나 걸을 수 있는지 묻고 답을 들으면 그만일 텐데, 가뜩이나 분주한 회진시간을 쪼개서 앉거나 서있는 자세를 살피고 일어서라, 걸어라 환자를 번거롭게 하는 속뜻은 무엇일까?

‘환자가 편안히 누운 꼴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는 아니실 텐데요.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전략을 결정 하는 게 재활의학과 의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회복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이 들면 기능을 대체할 수단을 찾아드려야 합니다. 보행이 불가능하면 빨리 휠체어에 익숙해지 도록 돕는 식이죠. 반면에 회복 가능성이 조금이 라도 보이면 환자 맞춤형 전략을 짜서 적용해야 합니다. 얼마쯤 환자의 변화를 관찰한 뒤에는 다시 평가해서 방향을 수정해야 하죠.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게 재활치료의 줄거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환자를 일으켜 세우는 건 일종의 평가 과정인 셈이군요.
뇌졸중 재활치료는 초기의 판단과 반응이 무척 중요합니다. 수술 후에도 한동안은 병이 진행돼 상태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는 때가 있습니다. 흔히 “신경학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말하는 기간 입니다. 이때는 합병증을 막는 데 치료의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 시기를 잘 넘기면 최대한 빨리 집중 재활치료로 회복 수준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민감하고 결정적인 시기에 환자의 말만 듣고 상황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환자는 걸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오래 걷는지, 어떤 방식으로 걷는지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니까요. 아무래도 동작을 시켜보고 두 눈으로 확인한 뒤에 판단을 내리는 게 정확하겠죠.

뇌는 일단 망가지면 영영 구실을 못한다던 데, 어떻게 재활이라는게 가능하죠?
뇌졸중으로 손상을 입었더라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까요. 쇼크를 받아 작동을 멈췄던 주위 조직이 차츰 부기가 빠지고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기능을 하기도 하고, 손상 부위가 하던 기능과 역할을 다른 뇌 부위가 대신 떠맡기도 합니다. 1980 년대에는 뇌 일부가 망가져도 다른 뇌 부위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뇌 가소성이라는 개념인데, 뇌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으므로 재활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회복될 여지가 충분함이 분명해진 거죠. 다만 뇌 가소성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므로 그 시기를 허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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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계획을 세우고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치료사, 재활간호사, 사회사업사에서 원목실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이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치료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을 ‘포괄적 재활’이라고 부르는데, 세브란스가 처음으로 적용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두뇌의 비밀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재활의 전략도 자연히 다양해지겠군요.
뇌졸중 재활치료에는 여러 전략이 있습니다. 기능을 대체할 수단을 마련해주는 경우는 흔히 보셨을 겁니다. 근육이 약한 환자에게 보조기를 만들 어주는 방식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연적 회복을 방해하는 2차 장애가 생기지 않도록 합병증을 예방하고 조기에 치료 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전략은 신경학적 회복을 가능한 한 빨리, 많이 일어나도록 유도 하는 것입니다. 반복적 경두개자기자극술을 비롯해 뇌의 일정 부위를 활성화 또는 억제해 회복을 돕는 방법, 뇌에 전기 자극을 줘서 그 영역이 지배하는 부분들을 조절하는 방법, 훈련 로봇을 활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움직이지 않는 손에 전기 자극기를 장착 해서 근육을 움직여 손기능을 대신하게 하기도 하고, 걷지 못하는 환자에게 로봇을 장착시켜 보행이 가능하도록 하기도 하고요.

전략 수립부터 실행, 평가까지 교수님 혼자 다 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습니다.
혼자는 못 합니다. 팀을 짜서 함께 봐야죠. 의사가 계획을 짜고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 료사, 심리치료사, 재활간호사, 사회사업사에서 원목실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 들이 환자 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고민하며 치료 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을 ‘포괄적 재활’이라고 부르는데, 1987년 세브란스가 국내 최초의 재활병원을 세우고 적용하기 시작한 개념입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중한다면, 환자 들로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겠군요.
세브란스는 국내 최초로 뇌졸중 임상치료 프로그 램의 국제 인증을 받은 의료기관답게 재활의학과 와 신경과, 신경외과의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습 니다. 뇌졸중 환자가 들어오면 3일 이내에 재활의 학과 의사가 가서 확인하고 계획을 짭니다. 평가 후에는 일단 합병증에 초점을 맞춰 치료하다가 환자의 안정이 확인되면 곧바로 재활의학과가 집중적 조기재활에 나섭니다. 그다음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경미한 경우는 3개월 안에 더 해줄 게 없는 상태에 이르지만, 심한 환자는 1년을 넘겨야 변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집중적인 조기재활'이라면 종일 강훈련을 받는다는 뜻인가요?
재활치료에서 ‘집중’이란 하루에 3시간 이상 시행 되는 치료를 가리킵니다. 그래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거든요. 보통은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기본으로 그 밖에 필요한 치료를 더하면 3시간은 금방 찹니다. 하지만 치료와 훈련 시간이 길수록 기대 효과는 더 높아지는 편입니다. 그래서 병상에서도 환자 스스로 해낼 만한 숙제를 곧잘 내줍니다. 손 기능 훈련, 보행 훈련, 삼킴 기능 훈련 등을 몇 번 되풀이하라든지, 기억훈련을 위해 일기를 쓰라든지 하는 것들이죠. 재활의학과 의사로서는 환자와 보호자의 협력을 끌어내는 일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어르고, 달래고, 엄하게 타이르기도 해서 반복이 필수인 치료 과정에 환자를 끌어들여야 하거든요.

의료진은 물론이고 환자와 보호자까지, 의사소통해야 할 대상이 무척 광범위하네요.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전체 환자의 앞뒤 10%는 재활치료가 필요 없습니다. 상태가 워낙 좋아 따로 도울 필요가 없거나 너무 극심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80%가 치료 대상인 셈이죠. 이분 들이 재활에 성공하도록 지원하려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이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프로그램에 적극 따르는게 필수입니다. 그래서 환자 평가가 끝나면 보호자들을 모셔다가 어떤 손상을 입었으며, 어떤 장애가 생겼고, 어떤 치료를 하고, 향후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자원과 에너지를 적절히 배분하도록 조언하죠.

외람되지만, 재활의학을 하기에 맞춤한 인상을 가지셨습니다. 차분하고, 자상하고.
본래는 그렇지 않은데 세브란스 재활병원의 전통에 공감하고 따라가다 보니 얼마쯤 달라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의 초반에는 마음고생깨나 했습니다. 인체기관이나 시스템 위주의 의과대학 공부를 하다 기관 위주가 아닌 기능을 중시하는 재활의학 개념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죠.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들을 하나하나 따지려니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순간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러다 눈을 깜박이고 보호자를 알아보는 따위의 지극히 작은 변화에 환자와 보호자가 얼마나 감동하는지 알고, 환자가 기능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차츰 보람을 찾게 됐습니다. 지금은 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선 한 점 후회가 없어요. 경력이 쌓일수록 환자를 도와드릴 것들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환자들이 잘 따르고, 잘 따르는 만큼 다시 효과가 나타나니까 얼마나 보람이 큰지 모릅니다.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8/12/18 10:54 2018/12/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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