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명가의 조건 : 탁월한 솜씨를 뒷받침하는 단단한 팀워크

“환자를 위한다는 점에서 세브란스는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심장내과만 해도 ‘우리는 이런 의사’라는 자부심의 전통이 있거든요. 심장혈관병원이 독립된 단위병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큰 장점입니다. 심장에 전문화된 기관에서 함께 일하는 터라, 가치를 공유하기가 한결 쉽습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만 해도 그렇습니다. 심장내과는 물론 외과 선생님들도 필요를 인정하고 거부감 없이 받아줬기에 TAVI 시술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될 수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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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아닌 중재술로 심장판막시술의 새 지평 열어가는 홍명기 교수>

수술실 앞, 홍명기 교수(심장내과)는 4번이나 손을 박박 씻었다. 손톱 밑과 손바닥, 팔등과 팔 안쪽까지 거칠게 닦아냈다. 저러다 다 문드러 지지 싶었다. 수술복을 다 갖춰 입은 홍 교수는 뜻밖에 수술대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걸 보면 기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듯했다. 그 새에도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92세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폐에 물이 가득했다. 이윽고 TAVI(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 시술이 시작됐다. 완벽한 팀워크, 탁월한 솜씨, 그리고 특별한 은총을 구하는 홍 교수의 간구가 어우러 져 열매를 맺어가고 있었다.   

환자의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요?
TAVI는 좁아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대동맥판막을 수술 대신 내과적인 중재술을 써서 인공판 막으로 대체하는 시술입니다. 세브란스는 2011 년부터 이 시술을 시작해 최근에 200례를 넘겼습니다. 그동안 어느 하나 쉬운 케이스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 시술의 위험도를 판단하는 수치가 있는데 4점 미만이면 저위험군, 4-8점이면 중등도, 8점 이상은 고위험군으로 봅니다. TAVI는 보통 70대 중반의 저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삼는 데 반해, 세브란스의 평균 치는 위험도가 7점 정도고 나이는 80대 초반에 이릅니다. 고령의 고위험군 환자들을 주로 치료하는 거죠.

위험한 환자를 특별히 좋아하실리는 없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TAVI가 새로 도입된 기술이라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때까진 외과에서 가슴을 열고 수술을 하는게 보편적이었거든요. 세브란스는 다른 병원에서 마다하는 환자도 수술해 살릴 만큼 탁월한 성적을 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접근법을 도입하려면 수술을 대체할 만큼 완전히 확립된 기술인지, 환자를 위험에 빠트리진 않을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던 거죠. 수술로 쉽게 고칠 수 있는 환자라면 굳이 아직 확실치 않은 새 기술을 적용할 이유가 없으니까 요. 자연히 나이가 많거나 수술할 여건이 안되 는 환자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환자들로만 200례를 이루다니,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장이 아닌 수치입니다.
필요한 검사들을 해서 결과가 나오면 심장내과, 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치열한 검토에 들어갑니다. 거기서 TAVI가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야 시술을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어느 누구도 200례를 이룬 기쁨을 혼자 독차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세브란스라는 팀이 고도의 팀워크를 발휘해 이룬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개’ 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잘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예상치 못한 환자가 응급으로 들어와도 다들 달려와 힘을 모아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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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외과적 수술과 TAVI 시술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니까 응급상황에도 빠르고 정확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팀 미팅을 통해 이미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외과 전문가가 곧장 달려와 도울 수 있으니까요. 극한에 가까운 환자들을 시술할 수 있는 건 이런 장점 덕분입니다"


팀에 대한 믿음이 남달라 보이십니다.
TAVI 팀 미팅은 그야말로 난상토론입니다. 어 느 한쪽의 입장만 반영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이 논의되고, 결국 전반적인 동의가 이뤄 집니다. 그렇게 오래 일한 덕에 이제는 서로 자연스럽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해가는 단계가 됐습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도 자랑 거리입니다. 심장외과적 수술과 TAVI 시술이 같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니까 응급상황에도 빠르고 정확한 대처가 가능합니다. 팀 미팅을 통해 이미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외과 전문 가가 곧장 달려와 도울 수 있으니까요. 극한에 가까운 환자들을 시술할 수 있는 건 이런 장점 덕분입니다.

아무리 팀을 내세워도 관상동맥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교수님께 시술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요?
우리 팀에는 중재시술에 관여하는 8명의 심장 내과 전문의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내내 관상동맥 스텐트 시술을 해서 1년에 약 1,500 명의 환자를 치료합니다. 병원 단위로 볼 때 대 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지요. 환자 하나하나의 사진을 함께 보면서 이러 저러하게 접근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시술에 들어갑니다. 도중에라도 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이 생기면 저도 같이 들어가 돕습니다. 말하자면, 경험을 공유하는 겁니다. 저와 막내 스태프 사이에는 나이와 경력의 차이가 제법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지만, 시술의 질만큼은 똑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로는 똑같을지 몰라도 세브란스의 TAVI 200례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군요.
그렇습니다. 각각의 사례가 험하고 모두 새로워서 그때마다 차이점과 해법을 찾아 심장학회지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사전 논의 과정을 거치 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기 일쑤고, 일단 일이 터지면 즉석에서 해결해야 하는 터라 늘 검객과 같은 심정으로 삽니다.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그 칼에 당한다는 긴박감이죠. 하지만 험한 환자들을 본 덕분에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중재술의 발전을 이끄는 요인은 의사가 아니라 철저하게 환자의 필요입니다. 지금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환자들의 요구가 커지면 연구와 개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남들보다 앞선다고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도리가 없는 환자를 살리려면 새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으니 결국 앞서가게 되는 거지요. 예를 들어 심장 환자를 살리는 시술을 하려면 조영제를 써서 영상으로 시시각각 환자의 혈관 상태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콩팥이 나쁜 분들에게는 조영제가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사용한 조영제 양에 비례해서 환자의 콩팥 기능이 악화되고, 특히 노년의 일부 환자는 종국에 악화된 콩팥 기능 때문에 생전에 지속 적으로 혈액 투석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우리 팀은 다각적인 검사로 가능성을 확인한 뒤에, 조영제를 전혀 쓰지 않고 시술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상과 마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혈관조영을 할 수 없다는 건 시술자의 눈을 가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 초음파를 비롯한 각종 장비로 환자를 살피는 분들의 이야기에 기댈 수밖에 없거든요. 말 그대로 지독히 힘들었지만, 결국 성공했습니다. 작년에는 심장학회 때 라이브로 시술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세브란스 심장중재술의 수준과 격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죠.

실패하면 원망이 돌아올 게 뻔한 시술을 위험을 무릅써가며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 인가요?
외국 의사한테서 중재술을 몇 건쯤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답을 듣더니 백만장자가 되고도 남았을 텐데, 왜 아직 월급쟁이냐며 놀라워했습니다. 그이에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이건 자부심으로 하는 일입니다. 건강해진 환자를 보며 내 손으로 치료해드렸다는 보람을 느끼고 거기에 기대어 삽니다. 레지던트 시절부터 선생님들에게 혹독하게 혼나면서 배운 세브란스 특유의 사명감도 버팀목이 됩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꼴은 절대 못 보는 분위기에 젖어 지내다 보니, 부담스러운 상황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달려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8/10/29 10:54 2018/10/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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