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조울증, 약물치료로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 있습니다”

“어려서는 고고학이나 인류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곡절 끝에 의대에 진학하고 나서도 마음 한 자락은 여전히 인문학에 걸쳐 있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택했습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누비며 감춰진 비밀을 캔다는 점에서 고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거죠. 그렇게 들어선 길을 벌써 수십 년째 걷고 있습니다. 어쩌다 접어든 탐험의 길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젠 환자들한테 동료의식까지 느낍니다. 그이들을 통해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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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넘어 사소한 몸짓까지 놓치지 않는 정신세계의 탐험가, 조현상 교수>

조울증. 요즘 매스컴에, 그것도 의학·과학 코너가 아니라 사회면에 심심찮게 얼굴을 보이는 병이다. 기사는 납량특집 못지않게 섬뜩하다. 20대 청년이 흉기를 휘둘러 가족을 해치고, 중 년여성이 이유 없이 할머니를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팩트’ 뒤엔 조울증을 앓아 약을 먹고 있었 다는 코멘트가 따라붙는다. 조울증과 폭력을 직선으로 연결해놔서 웬만하면 그 근처에 가지 않는 게 상책이란 분위기마저 풍긴다. 정말 그럴 까? 오랫동안 이 병을 치료하고 연구해온 조울증 전문가, 조현상 교수(정신건강의학과)의 확실한 한마디가 궁금해진다.

조울증과 폭력적인 행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친척지간인가요?
조울증은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고조되는 조증과 낮게 가라앉는 우울증이 엇갈려가며 되풀이 되는 질환을 가리킬 뿐입니다. 폭력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반드시 조울증이 있다거나 조울증 환자는 당연히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리라고 생각 하는건 명확한 편견입니다. 물론, 조증이 심하면 더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대단하다는 기분에 취해서 카드로 돈을 빌려다가 흥청망청 써버리는 수준이지 폭력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럼 병이라기보다 유난히 감정기복이 심한 정도 아닐까요?
두말할 필요 없이 치료가 따라야 하는 질병입니다. 전문가들은 조울증과 우울증을 뭉뚱그려 기 분장애로 분류합니다. 같은 스펙트럼 아래 일어 나는 질환으로 여기는 거죠. 그중에서도 조울증은 심리적인 요인보다 유전적이고 생물학적인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이온채널이 활성화되는 정도에 따라 신경세포의 흥분 여부가 갈리는데, 조울증 환자들은 그 신경채널에 유전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신경이 흥분되면 기분이 유난히 고양되거나 우울해졌다가, 흥분이 가라앉으면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요즘 들어 조울증 환자가 부쩍 늘었단 느낌이 듭니다. 그저 ‘느낌’일 뿐인가요?
느낌을 넘어 사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조울증은 신경흥분도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일조량을 비롯한 계절성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햇살이 풍부해지는 늦은 봄에서 한여름까지는 조증 환자가, 겨울에는 우울 환자가 늘어나는 식이죠. 인간에게는 일중리듬, 다시 말해 해가 뜨고 지는 데 따라 반응하는 일종의 생체시계가 있 습니다. 그런데 차츰 밤낮의 구분이 옅어져가는 터라 생체시계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정상인과 다른 조울증 환자들에게는 발병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단이 빨라지기도 했겠지만,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생활습관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조울증이 늘어났을 겁니다.


조울증 약은 정신을 피폐하게 하지 않습니다. 평생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합니다"


유전적인 소인이 크다니까 웬만해선 고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약들이 나와 있어서 제대로 복용하기만 하면 드라마틱하게 회복됩니 다. 가족들로서는 조현병이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중한 환자도 입원해서 치료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태가 나아집니다. 이렇게 조울증이나 우울증은 약물치료가 핵심이지만, 심리 사회적인 치료도 중요합니다. 약을 복용하는 가운데도 인간관계의 갈등이나 일과 관련된 부담을 비롯해 온갖 스트레스 상황에 부닥치게 마련 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상의해 정신치료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쓰는 약은 독해서 얼치기가 되기 십상이란 얘기도 있더군요.
기억력이 떨어진다든지 치매가 빨리 온다든지 하는 소문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죠. 환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을 간추리면, 넋이 거지반 나가는게 아니냐, 없는 병이 생기지 않느냐, 평생 못 끊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전문가로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조울증 약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고, 평생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상황 에 따라 얼마든지 조절이 가능합니다. 입원해서 는 복용량을 최대한 끌어올렸다가 퇴원 무렵까지 차츰 줄여가고, 외래에서는 극도로 낮춰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면 90% 정도는 재발 없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오해가 남아 있는 한, 환자와 보호자 들로서는 치료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환자는 생소한 경험에 두려워하고 가족들 역시 사랑하는 이가 더 망가지는 건 아닌지, 병원에 갇혀 폐인이 되다시피 하는게 아닌지 걱정합니다. 세브란스에서는 그런 불안감을 씻어주기 위해 폐쇄 병동 안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도록 배려합니다. 환자는 안정감을 찾을 수 있고 보호자들은 치료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흥분이 심해져서 주사제를 처방해도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치료의 동반자가 되는 셈인데, 지금까지는 반응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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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젊은 시절엔 의사가 환자에게 무언가를 베푼다고 착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환자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깨닫는 것이 의사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환자가 진료를 받고 나가면 저절로 ‘감사합니다!’란 인사가 나옵니다"

자살 위험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들었습니다. 의료진도 가족도, 무척 걱정스럽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환자가 있습니다. 정신 질환을 일으켜 입원한 20대 여성 환자였는데, 상담을 잘 마치고 나서도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이 워낙 많은 전임강사 시절이었던 데다 주말까지 끼어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환자분이 병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한 번만 확인했더라면 하는 회한에 가슴을 쳤습니다. 자살 위험도가 높은 환자에게는 누군가의 한마디가 김을 빼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타이어에 바람구멍을 여는 셈이죠.

초년병 시절의 일을 여태 말씀하시는 걸 보면 몹시 충격적인 경험이었나 봅니다.
제게는 일종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뒤부터는 조금이라도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으면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환자가 낯선 의사에게 속내를 다 털어놓지 않을 수도 있으니 들리는 소리에만 정신을 팔지 말고 눈에 보이는 신호들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 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이젠 아예 몸에 배다시피 했습니다. 후배와 후학들에게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말은 왜곡의 여지가 있지만 표정이나 몸짓은 정직하므로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에 더 집중하라 고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는 잘 듣는 것만 큼이나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해석하는 능력이 소중하니까요.

조울증에도 어떤 조짐 같은 게 있으면 서 둘러 손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울증의 절반은 우울증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20대 이전에 우울증이 발병했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생이 우울 증세를 보인다면 조울증으로 갈 공산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산후우울증이 심하다든지, 가족력이 있다든지, 애초에 감정기복이 심한편 인데 우울증이 찾아왔다면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한지 일주일 만에 증상이 가시는 식으로 반응이 빠른 경우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울증은 그렇게 빨리 좋아지는 질환이 아니거든요. 결국 핵심은 가족의 관심입니 다. 조울증도 일찍 치료를 시작할수록 성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8/09/27 11:25 2018/09/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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