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_에스토니아

노트에 가둔 탈린의 오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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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습관을 좇아, 첫날은 왕궁, 성당, 박물관, 번듯한 가게들로 이어지는 일정을 잡습니다. 뭐, 개론이라고 해도 좋고, 훑어보기라고 해도 좋습니다. 거리는 여느 유럽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구보다는 낡았고 러시아보다는 단정합니다. 그쪽보다 덜 넉넉하고 저쪽보다 작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땅덩이가 한반도의 1/5쯤 된다니 ‘아기자기’는 당연합니다. 집들은 촘촘히 붙었고, 골목은 좁고 길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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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1

남들처럼 비루문에서 출발합니다. 문이라지만 문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동화에 나옴직한 탑을 나란히 세우고 잇대어 성벽을 쌓은 게 전부입니다. 문밖엔 꽃 파는 가게가 늘어섰습니다. 맘에 드는 ‘한 송이’를 노리는 손님들과 ‘한 푼 더’를 기대하는 장사치들의 흥정이 쉴 새 없이 오갑니다.
아직 이른 시간, 광장은 텅 비었습니다. 목적지는 왼쪽인데 부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이렇게 에둘러도 옛 시가지 구경은 반나절이면 뒤집어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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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 캐더린 골목을 따라 뚱뚱한 마가레트 탑까지 갑니다.
좁다란 골목은 온통 돌 천지입니다. 돌로 벽을 쌓은 집들이 두 줄로 늘어섰습니다.
돌로 만든 아치로 양쪽 벽을 연결했습니다.
벽에는 넓적한 돌 판들을 붙였습니다. 성당에 묻혔던 유력한 재판관이나 성공한 장사치의 묘지석들이랍니다. 바닥에는 반듯하게 잘라낸 주먹돌들이 줄지어 박혔습니다. 새벽에 내린 빗물이 거죽에 남아 번들번들 빛을 냅니다.
그렇게 골목을 되짚어 걸어간 반대편에 톰페아 언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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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도가 자그마치 50미터랍니다.
볼만한 게 다 몰려 있습니다.
여기선 덴마크사람들이 지은 성을 으뜸 볼거리로 칩니다만, 무식한 눈엔 다 그게 그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국회의사당으로 써서 안을 보진 못한답니다.
한쪽에 높이선 탑에 에스토니아 국기가 휘날립니다. 키다리 헤르만 탑이라는데, 이 동네에선 탑마다 참 정겨운 이름을 붙이는구나 싶습니다.
에스토니아가 자랑하는 알렉산더네프스키 성당과 돔 교회를 차례로 둘러봅니다. 군것질이 하고 싶은 걸 보니 좀 지루해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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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덕 아래가 한눈에 들어올 법한 카페 하나를 골라 자리를 잡습니다.
‘둘이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감자튀김’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문구에 짐짓 속아 주기로 합니다. 감자튀김은 사람은커녕 파리새끼 하나도 죽일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맥주를 시킨 일행은 한 모금만 마셔보라고 자꾸 채근을 해대면서 은근슬쩍 이편이 주문한 커피를 마셔댑니다.
그래도 값이 아깝지 않은 건 눈 앞에 펼쳐지는 탈린 시가지와 발트해의 밝은 모습 때문입니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희고, 공기는 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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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트를 꺼내 여정을 적습니다. 잊어버릴까 봐 끼적끼적 삽화도 곁들입니다.
이런 낙서는 사진과 또 다른 맛이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간을 포착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느낌이 들어 돌아봅니다. 노트를 넘겨다보고 있던 웨이트리스가 얼른 눈길을 돌립니다.
한국인은 다 그림을 못그린다는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있으므로, 이편도 얼른 뚜껑을 덮습니다. 그날, 그 화창한 오후의 30분은 그렇게 미완성인 채로 노트에 갇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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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13:56 2018/05/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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