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ORY

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의 토대를 닦은 찰스 맥라렌


올해는 세브란스의 정신건강의학을 주도했던 의료선교사 찰스 맥라렌의 서거 60주기가 되는 해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찰스 맥라렌은 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환자중심 시각에서 정신건강의학을 개척했다.

에디터 신규환 교수(연세의대 의사학과)  그림 동은의학박물관
 



의료선교의 소망을 품다
찰스 맥라렌(Charles Inglis McLaren, 한국 명 馬羅連)은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 사무엘 맥라렌의 둘째 아들로, 일본 동경에서 태어났 다. 전형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교육자 부모님 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찰스 맥라렌은 선교의 소명을 품고 1902년 멜버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1910년 신경정신과학으로 박사 학 위를 받았다.
같은 해 10월 한국 진주에 병원 건 축과 의료선교를 계획한 호주선교회는 맥라렌 을 적임자로 지목했고, 맥라렌은 1911년 제시 리브(Jessie Reeve, 1883-1968)와 결혼하고 곧바로 한국행 배에 올랐다.
이후 그는 휴 커를 과 함께 진주 지역의 의료선교를 주도했으며, 제2대 배돈병원장(1915-1923)에 재임했다. 세브란스병원의학교가 1913년 세브란스연합 의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각 교파로부터 교 육 지원을 받으면서, 맥라렌은 호주장로교를 대표해 세브란스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그리 고 에비슨의 요청으로 1923년부터 세브란스의 학전문학교의 신경정신과를 이끌었다.


인도주의적 정신과학을 주장하다
일제강점기 정신의학계는 독일식 의학에 기초 한 과학주의가 지배했다. 그에 따라 중증 정신 질환뿐만 아니라 신경쇠약이나 우울증 등 경 미한 정신질환 병력까지도 사회생활에 치명적 인 결격 사유로 작용했다.
정신의학자들은 약 물치료로 정신질환자들이 일부 호전될 수는 있지만, 환자들의 완전한 회복이나 사회 복귀 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맥라렌은 정신질환도 회복된다는 낙관론을 가지고 환자 에게 희망을 주며 환자중심 시각에서 진료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번은 신경쇠약으로 몇 달간 정신병원에 입원 했던 의학생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자,
맥라
렌은 이 학생이 복학해서 사회에 복귀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정신병력을 지 닌 학생의 복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맥라렌 은 그와 같은 숙명론적 과학주의는 과학적 의 학과 기독교 신앙을 모두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학주의가 팽배했던 일제강점기 대 학사회에서 맥라렌의 주장은 수용되기 어려웠 지만, 맥라렌이 이끄는 세브란스 신경정신과는 이와 같은 인도주의적 입장을 줄곧 견지했다.


맥라렌은 정신질환도 회복된다는 낙관론을 가지고 환자에게 희망을 주며 환자중심 시각에서 진료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숙명론적 과학주의를 비판하며 기독교 신앙과 인도주의적 정신과학에 기초해 정신질환자의 온전한 회복과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지속적으로 강요하자, 1935 년을 기점으로 기독교계 내에서도 신사참배 수 용론과 반대론으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 황에서 맥라렌은 신사참배가 천황 숭배와 군국 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이를 적극 거 부했다. 심지어 “일본은 곧 망할 것이다. 조선인 들이 일본에 협조해선 안 된다. 조선은 곧 독립할 것이다”라는 등 정치적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폐교를 마다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가 학교를 위기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했던 학교 당국은 맥라렌 등 소수 신사참배 반대파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38년 10월, 맥 라렌은 교수직을 사임하고 세브란스를 떠나 진주 배돈병원으로 돌아갔다.

그후에도 맥라렌은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멈추 지 않았다. 결국 맥라렌은 70일 동안 투옥되었으 나, 모진 고문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천황 숭 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그때의 기 억을 <일본 감옥에서의 70일(Eleven Weeks in a Japanese Police Cell)>이라는 저서로 남겼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제의 방침에 따 라 맥라렌 또한 전쟁 포로로 간주되었고, 결국 이듬해 11월 포로 교환 형식으로 자국으로 추 방되었다. 이후 그는 해외 선교 지원과 저술, 강연 활동에 전념하다 1957년 10월 멜버른 근 교 자택에서 7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경험을 쓴
<일본 감옥에서의 70일> 표지.

 

 




2017/11/23 15:09 2017/11/23 15:0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1  ... 3 4 5 6 7 8 9 10 11  ... 2227 

카테고리

전체 (2227)
세브란스 Top (102)
수현일기 (12)
치치(治齒)의 행복 (22)
Smile (44)
Body Age (24)
HOT (16)
A letter from Dr.Park (37)
A letter from Dr.Chung (23)
The Scene (66)
세브란스 인물열전 (37)
지난호 보기 (2)
곁길동화 (12)
People (48)
세브란스 탐구생활 (46)
WORDS (52)
Issue (55)
S Story (59)
Special report (221)
Gallery (92)
우문명답 (34)
Ranking (20)
성산로 250 (59)
the first & the best (29)
Information (18)
you. the excellent (18)
치료에 좋은 밥상 (35)
Photo Essay (36)
선교지에서 온 편지 (12)
Quiz (12)
길 위의 기적 (36)
5 Checks (12)
제중원·세브란스 이야기 (49)
암, 완치의 꿈 (36)
암환자를 위한 닥터푸드 (36)
검사실 돋보기 (12)
Dr. MAH’S POEM (12)
따뜻한 창문 (3)
응급상식 119 (12)
FOCUS (47)
FACE & FAITH BOOK (10)
THE ROAD (39)
모르면 독, 알면 약 (39)
Special (170)
국가대표 암병원, 세브란스 (113)
초짜농부 생명일기 (8)
EVENT (1)
special interview (2)
A Letter from Dr.Yoon (23)
Only ONE (1)
The Love (34)
The Faith (27)
행복 (12)
My Hero (27)
Yes or No (12)
치과 솔루션 (12)
The Hope (4)
ZOOM IN (5)
Love Nepal (3)
플러스 + (2)
국가대표, 세브란스 병원 (5)
Severance Times (66)
건강한 밥상 (15)
Good Doctor Says (15)
부산발 희망편지 (23)
A Letter from Dr. Lee (3)
특별기고 (1)
HOT SPOT (8)
풍경 (8)
Miracle (8)
HISTORY (7)
HAPPY SOLUTION (7)
WISDOM (8)
NOW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