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세브란스의
네 번째 도전,
의료로 통일의 길
닦는다

통일보건의료 전문가 양성하는 통일보건의료센터


세브란스의 역사는 도전의 역사다.
그것도 아주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에 대한 도전의 역사다. 그 도전이 오늘의 세브란스를 만들었고, 세브란스의 정신과 전통을 만들었다. 이제 세브란스는 통일을 위해 또 한 번 과감한 도전에 나선다.


 전우택 교수(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 포토그래퍼 최재인 스타일링 신수민


통일보건의료센터는 다양한 통일 관련 연구들을 수행하고, 매달 원내 세미나를 실시해 통일보건의료 관련 다양한 학술 논의를 진행해왔다. 또한 통일보건의료센터 산하에 의보건학 기획단, 치의학 기획단, 간호학 기획단, 약학 기획단을 설치해 각 단과대학별로 통일 관련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조선을 변화시키는 선봉에 선 세브란스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처음 세브
란스가 만들어지던 1880-1890년대, 전국에 콜레라가 창궐해 수십만 명이 죽어나갔다. 그때 조선 정부가 행한 조치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 그렇게 하면 하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사회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제중원 원장이었던 에비슨 박사는 고종의 명을 받아 전국의 콜레라 치료와 예방 사업을 총지휘해 수많은 생명을 살렸다. 조선 백성들이 처음 만난 서양 의학의 힘이었다. 또한 당시 조선은 기독교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했다.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과 무속신앙에 완전히 묶여 있었던 조선 사람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소개하는 기독교는 너무도 낯설고 불쾌한 종교였다. 그러나 조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전혀 없는 예배와 치료, 사람으로 취급조차 안 하던 여자들에게도 제공된 교육, 에비슨 박사의 제안에 따라 고종이 백정에 대한 차별을 없앤 일,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에게 베이스 캠프가 되어준 일 등 세브란스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통해 기독교 복음은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어두운 시절, 세브란스는 조선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서양 문물과 기독교에 대한 무지와 반감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결국 조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이 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일제 식민지 통치에 도전하다
제중원이 시작되었던 1885년, 외세의 간섭과 내부의 부패로 조선의 국운은 이미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결국 1905년 을사늑약 체결과 1910년 일제에 의한 한국 병합을 거쳐 35년간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게 된다. 이 엄혹한 격동의 시절, 세브란스는 조선인들의 질병을 치료해 목숨을 구해주고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의학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세브란스는 일제식민 지배를 넘어서서 조선의 독립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시도했다. 1908년 세브란스는 최초의 졸업생 7명을 배출한다. 우리나라 의사면허 1번부터 7번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양 의사가 전무했던 조선 땅에서 이들이 가진 서양 의술과 의사면허증은 의사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세브란스의 교육은 이들을 다른 인생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독립운동을 하는 등 조선을 위해 헌신했다. 그중 5명은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게 죽임을 당했고, 훗날 독립유공자로 추서된다. 나머지 2명 중 한 명은 불행히도졸업 후 얼마 안 돼 일찍 죽었고, 나머지 한 명은 시골 낙후된 곳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첫 졸업생들이 걸어간 그 길은 세브란스가 어떤 성격의 기관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1919년 3·1운동 때도 세브란스는 독립선언문 인쇄가 이루어진 장소 중 하나로 시대적 역할을 감당했으며, 당시 세브란스의전 교수 스코필드는 3·1운동과 일제의 잔혹한 학살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생 대표 이용설을 중심으로 <독립신문>을 만들어 배포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학생들을 선발해 의학교육을 시키고, 기독교 선교활동을 통해 사회변혁의 동력을 제공한 세브란스는 일제와 극도의 긴장관계를 겪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브란스는 그 정신을 잃은 적이 없었다. 세브란스의 두 번째 도전은 마침내 우리나라의 독립을 끝으로 그 위대한 여정을 당당히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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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통일보건의료센터가 주최한 통일토크콘서트 “북한을 묻다, 북한을 말하다”. 전우택 통일보건의료센터장(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통일토크콘서트는 세브란스인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모아진 뜻깊은 시간이었다


가난 속 의학 발전을 위한 도전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이념 갈등과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을 겪으며 전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악의 보건의료 수준 속에서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에 죽어가야만 했다. 이 거친 상황에서 세브란스는 그 시대 최고의 의료기관이자 의학 교육기관으로서 역할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악전고투를 벌인다. 한국전쟁 중에는 거제도에 임시병원을 설치하고 피난민들을 치료하는 일에 매진했다. 서울 수복 후엔 서울로 돌아와 연희전문학교와 통합해 연세대학교를 이루었고, 우리나라의 의료와 의학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가난하고 낙후된 당시 현실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부나 기업들의 지원도 없이, 세브란스는 의료선교사들에게 물려받은 정신과 전통만을 가지고 스스로 이 일에 도전했다. 적당히 환자를 진료하고 벌어들이는 수익에 단 한 번도 안주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도전으로 세브란스는 우리나라의 의료와 의학교육 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북한의 핵개발과 호전적 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주변 열강들의 국제환경은의료라는 ‘소프트’한 방식으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세브란스는 믿는다. 이 땅에 세브란스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이끄신 하나님이 세브란스를 통일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임을.


새로운 도전, 한반도의 통일을 향해
단순히 의료 행위와 의학교육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차원을 넘어, 그 시대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과제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는 일에 도전해온 세브란스는 이제 역사적인 네 번째 도전 앞에 서있다. 바로 21세기 민족 최대의 과제, 통일이 그것이다.분단은 해방 이후 혼란기 미국과 소련의 힘겨루기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우리 민족은 원치 않는 분단을 겪어야 했고, 이는 한국전쟁으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만 했다. 분단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금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단지 막대한 국방비 지출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라는 인식은 세계시장에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만들었고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단은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의심과 증오를 새겨넣어 건강한 의식,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장 심각한 이 문제는 북한에는 인류 최악의 인권국가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남한에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하나다. 바로 통일. 그리고 세브란스는 이제 그 통일을 향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제는 통일보건의료 전문가 양성
2014년 3월, 세브란스는 연세의료원 산하 통일보건의료센터를 신설했다. 의대, 치대, 간호대, 약대의 교수들과 직원, 학생들로 구성된 이 센터는 통일을 준비하는 연구 및 교육,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와 지원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미 세브란스는 인요한 교수의 북한 결핵 퇴치 사업인 유진벨재단 활동이나 의대 교수들의 탈북자 지원, 북한 연구 등을 통해 통일보건의료 영역에서 선도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통일보건의료센터 개설을 통해 연세의료원 안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통일보건의료센터는 다양한 통일 관련 연구들을 수행하고, 매달 1회 원내 세미나를 실시해 통일과 통일보건의료 관련 다양한 학술 논의를 진행해왔다. 또한 통일보건의료센터 산하에 의보건학 기획단, 치의학 기획단, 간호학 기획단, 약학 기획단을 설치해 각 단과대학별로 그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또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통일 관련 활동들이 가능하도록 해당 대학 학생들의 모임인 ‘숨’을 구성했다. 이에 더해 2015년부터 매해 10월 ‘세브란스 통일의 밤’을 열고 일반 교직원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의대는 전체 학생대상의 필수과목에 통일을 주제로 교육시간을 편성하고 시행해왔으며, 2017년부터는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 통일 관련 독립 선택과목을 개설하고 좀 더 체계적인 통일보건의료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세브란스의 네 번째 도전은 이미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세브란스가 통일의 도구 되기를 세브란스는 어떤 도전이든 항상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세브란스가 해왔던 도전들은 당시에는 모두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브란스는 서양 의학을 우리나라에 정착시켰고, 기독교가 한국 대표 종교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한 일제에 맞서 조선의 정신을 지켜냈고, 가난과 낙후된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의 의료 및 의학교육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해냈다.이제 마주하고 있는 네 번째 도전 역시 어쩌면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이다. 북한의 핵개발과 호전적 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주변 열강들의 국제환경은 의료라는 ‘소프트’ 한 방식으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브란스는 과거 세번의 도전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그 원칙은 네 번째 도전에도 다시 적용된다. 이유는 하나다. 세브란스를 한반도에 세워 지금까지 이끄시는 분, 세브란스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 믿어왔고, 지금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통일의 도구로 세브란스를 사용하시기를 우리는 겸손히 바란다.







2017/08/09 11:51 2017/08/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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