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물처럼, 밀어내는 대신 에둘러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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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급한 물이 바윗돌이 늘어선 계곡을 빠르게, 시원하게 달려 내려갑니다.


장맛비가 지나간 치악산 계곡엔 물풍년이 들었습니다. 흐름은 빨라져서 거품을 내뿜으며 아래로, 아래로 재빨리 흘러갑니다. 곳곳에 버틴 바위를 오른편 왼편으로 잘도 피해갑니다. 굵직한 돌덩이가 늘어선 데선 지그재그로 몸을 꺾습니다. 밀어내는 대신 에둘러 돌아가지만 갈 길 다 가고 할 일 다 합니다. 치악산 구룡사 계곡을 따라 걷는 내내 세상을 사는 길과 물이 흐르는 길을 견줘봅니다. 큰물이 어쩐지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서 속없이 웃습니다.

글, 사진 나벽수(여행가)




터키의 에페소스 유적을 종일 돌아보고 나오는 길.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가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숙소가 있는 셀주크로 가는 교통편은 택시뿐, 기사가 ‘갑’, 손님이 ‘을’입니다. 이편이 줄 수 있는 값을 부릅니다. 코웃음이 돌아옵니다. 금액을 올려가며 합의점을 찾는 게 일반적이지만 흥정 대신 “아님 말고”를 중얼거리며 돌아섭니다. 애초에 최대치를 불렀으니 더 올려줄 여력이 없습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다리로 뙤약볕을 받으며 한 시간 반 넘게 걷습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온 뒤에 다시 티베트로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주 가까이 5,500m 지점까지 올라갔다 돌아온 뒤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지치기도 했고 날씨도 궂었습니다. 비용부터 일정까지 어렵게 나선 길이지만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돌아섭니다. ‘의지의 한국인’이란 명성에 먹칠을 하는 만행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고행을 만드느니 손해를 보더라도 여행을 포기하는 게 낫습니다.

프리랜서로 남의 일을 하다 보니 값을 불러야 할 일이 많습니다. 견적을 조금 부풀려 넣었다가 상대방의 반응을 보아가며 선심 쓰는 척 빼주는 게 요령이건만, 손해가 나지 않을만큼 적어 넣고 처분을 기다립니다. 맡기는 쪽에선 당연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터, 퇴짜 맞기 십상이지만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몫이 될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라는 따위의 말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후배가 눈물을 보이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위해서 했던 말인데 마음을 다쳤나 봅니다. 좀처럼 없던 일이라 당황스럽고 이편의 뜻을 몰라주는 게 야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명을 미루고 문자를 보냅니다. “미안. 기도가 필요한 시점에 말이 많았어. 얼른 잊고 편히 자.” 관계는 쉬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동안 서먹합니다. 회복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안되면 말아야지 사람 마음을 어쩌겠습니까? 여태, 그리고 매사에 그런 식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의심합니다. ‘이게 옳은 걸까? 이렇게 살아도 될까?’

장맛비가 지나간 치악산 계곡엔
물풍년이 들었습니다. 폭포는 줄기가 굵어졌고 계곡은 폭이 넓어졌습니다. 흐름은 빨라져서 거품을 내뿜으며 아래로, 아래로 재빨리 흘러갑니다. 반반한 돌길에까지 여울이 생겼습니다. 발로 둑을 만들면 찰랑찰랑 발등을 넘어갑니다. 본류의 거센 물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곳곳에 버틴 바위를 오른편 왼편으로 잘도 피해갑니다. 야트막한 반석은 미끄러지듯 타고 지나갑니다. 굵직한 돌덩이가 늘어선 데선 지그재그로 몸을 꺾습니다. 밀어내는 대신 에둘러 돌아가지만 갈 길 다 가고 할 일 다 합니다. 치악산 구룡사 계곡을 따라 걷는 내내 세상을 사는 길과 물이 흐르는 길을 견줘봅니다. 큰물이 어쩐지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아서 속없이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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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시내와 나란히 이어지는 매끄러운 길을 걷노라면 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원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3, 4, 5, 6 금강송이 곳곳에 버티고 선 계곡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기운이 돕니다.




치악산 구룡사 계곡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새말 출구로 빠져나오면 구룡사까지 20분 만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주로 이동하는 경우, 시내 한일주유소 정류장과 원주역 정류장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구룡사 종점에 내리면 바로 계곡으로 이어진다. 일단 계곡 길에 들어서면 무장애길 세렴폭포까지 이어지므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초입부터 세렴폭포까지는 2.5km.








2017/08/08 16:14 2017/08/0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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