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기적


급성심장질환과 맞서 싸우는 심혈관중재술의 선구자, 장양수 교수
예방과 치료와 재활,
심장을 지키는 세 겹 울타리

병원에 도착해 90분 이내에 혈관을 뚫는 시술을 해내는 능력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이가장 뛰어난데도, 퇴원 후 사망률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생기는 것은 병원에 늦게 오기 때문입니다. 병원치료를 마친 뒤에 투약과 재활을 소홀히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퇴원이 곧 완치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김지훈




피떡(혈전)은 무자비한 저격수다. 심장으로 통하는 세 가닥 길목에 숨어 오래도록 기회를 엿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한 방을 날린다. 피떡의 공격으로 혈관이 단단히 틀어막히는 순간부터 심장에는 괴사가 시작된다. 이른바 급성심근경색이다. 피해 규모가 40%에 이르면 심부전이 일어나고 혈액공급에 심각한 장애가 생겨 절반쯤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요행히 심부전을 피했다손 치더라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1년 안에 재공격을 받을 공산이 40-50%나 된다. 일단 습격을 받았다면 한시바삐 전문가에게 달려가는 게 최선이다. 평생 이 악질적인 스나이퍼와 싸워온 장양수 교수는 수많은 전문가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명장이다.


흉통이 급성심근경색의 주요한 증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가슴통증도 가지가지인데 어떤 종류의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일찍이 느껴본 적이 없는 통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통증이라고들 표현하는데, 날카로운 물건에 베거나 찔린다든지 인대가 늘어날 때 겪는 아픔과는 종류와 정도가 다릅니다. 난생 처음 당하는 터라 고통과 함께 의구심과 두려움이 밀려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남녀차가 조금 있습니다. 여성들은 이가 좀 아프거나 식도가 이상하다는 식의 통상적인 통증에 가깝습니다.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탓에 급성심근경색으로 목숨을 잃는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정도 높습니다.


발작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통증은 고마운 경고입니다. 빨리 손을 쓰라는 신호인 셈이죠. 안정을 취했는데도 낯설고 강렬한 통증이 3분 이상 지속되면 빨리 응급실을 찾는 게 바람직합니다. 협심증을앓고 있는 분이라면 니트로글리세린 설하제를 넣고 1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병원을 찾는 게 좋겠습니다. 병원에 오는 도중 통증이 사라져도 일단 전문가를 만나는 게안전합니다. 되돌아가는 길에 재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속하게 병원에 달려가면 치료는 잘되는 편입니까?
2010년까지는 OECD 국가들보다 급성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았지만 2011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줄어서 지금은 30일 이내에 사망하는 비율이 6.7% 정도로 선진국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세브란스는 기술과 성과에 있어서 단연 선도적인 역할을해왔지요. 관상동맥조영술과 심초음파를 비롯해 갖가지 국내 최초 기록을 보유한 역사와 관록을 발판으로 새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수술실까지만들어서 2-3주씩 걸리던 입원기간을 3일 정도로 대폭 줄였습니다. 절개 부위를 최소화한 채 스텐트와 수술을 같이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써서 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의 부담을 줄인 겁니다.


하지만 퇴원 후 사망률은 8.1%로 아직 뒤쳐진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90분 이내에 혈관을 뚫는 시술 능력은 우리나라 의료기관이 가장 뛰어납니다. 이처럼 실력과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도 격차가 생기는 것은병원에 늦게 오기 때문입니다. 적잖은 환자들이 119에 전화를 거는 대신 우황청심환을 먼저 찾거나 자녀들에게 연락을 하는 게 현실입니다. 치료 후에 약을 잘 챙겨먹지않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퇴원이 곧 완치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장 기능에는 항상 여유분이 있습니다. 심박출량이 정상의 45%만 돼도 숨이 차지 않습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고 방치하면 경색 부위가 늘어나서 심부전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환자들은 투약을 게을리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퇴원 후 사망률이 높아질 밖에요.


심장질환도 치료보다 재활이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예방과 치료, 재활에 같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얘깁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회복 후에 필수적인 지침을 잘 따르지 않는 환자가 급성기에 생사를 오가는 환자만큼이나 까다롭습니다. 특히 저 같은 의사나 교사, 법조인, 성직자 같은 분들 가운데는 스텐트를 넣고 난 뒤에 취해야 할 조처들을 소홀히 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또는 학생이나 교인들을 돕느라 가능한 선까지만 어찌어찌해보고 나머지는 나중에 하겠다고 미뤄두는 겁니다. 탈수가 되면 피가 끈끈해져서 쉬 피로를 느끼고 심장에 부담이 커지는데도 물을 많이 마시라는 간단한 주문마저 신경 써 지키는 이들이 흔치 않습니다.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군요. 실질적인 대안도 필요할 성 싶습니다.
심뇌혈관질환자특별법 같은 걸 만들어서 지역 주민센터에 마련된 재활공간에 전문가를 배치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응급체계를 개선하는 작업에도 신경을 쓰고 있고요. 지금은 병원이 지척에 있어도 행정구역이 다르면 구급차가 그 경계를 넘지 못합니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정보를 최대한 확보해서 신속하게 병원에 전송하는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들 사이의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이동 중에 심전도를 찍어 보낼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갖추고도 쓰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심혈관센터를 중심으로 소방당국과 병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호환하는 틀도 잡혀야 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 틈에서 수십 년을 사셨습니다. 이제는 환자의 상태만 봐도질환의 추이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10년 전쯤, 50세 된 남자 환자가 들어왔어요. 처음 봤을 때는 조만간 세상을 떠나겠구나 싶었습니다. 심박출량이 20%밖에 안됐으니까요. 중환자실에서 만났는데 자기가 곧 죽느냐고 묻더군요. 생사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럴 확률은 높은 상태라고 했더니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열심히 할 테니 의료진도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때마침 근육을 떼다가 심근에 주사해 넣는 치료법이 미국에서 도입된 직후라 그쪽으로 접근했어요. 다행히 성공해서 안정을 찾고 재활과 생활습관 개선에도 성공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많아서 지금은 아예 폐기된 치료 기법인데 그때는 기적적으로 들어맞았던 거죠.


치료뿐 아니라 연구 쪽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바이오디그레이더블 스텐트(biodegradable stent)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말로 풀자면 생분해성 고분자스텐트쯤 될 겁니다. 이 스텐트는 6개월 정도 혈관을 벌려서 제 몫을 다하고 나면 저절로 녹아버리는 그물망입니다. 유럽에서는 보험에 포함되어 이미 많이 사용되고 있고 국내에도 곧 들어올 예정인데 가격이 너무 비싼 게 흠입니다. 15mm에 2천만 원 정도 하니까요. 그래서 단가를 낮춰서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국산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도 진행 중이고요. 심근유래 줄기세포는 골수유래 줄기세포에 비해 재생능력이 2-3배 정도 뛰어나 심부전에 의한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시는 교수님은 어떻게 건강을 지키십니까?
운동이죠. 5년 전쯤에 망막박리가 왔어요. 눈을 돌릴 때마다 컴퓨터가 보였다 말았다 하는 바람에 우리 병원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았어요. 명색이 의사인데도 나중으로 미루려다가 하루만 지나도 실명할 수 있다는 말에 놀라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한테는 그게 경고였던 셈이죠. 그때부터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틈 날 때마다 한번에 20-30분씩 빠르게 걷듯이 달리고 있습니다. 짬짬이 클래식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스트레스를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2013/09/04 13:40 2013/09/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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