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_일본

천하에 꽃 잔치, 물가에서 절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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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러 왔는데 바람이 먼저 마중을 나왔습니다. 히미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달려듭니다. 피해 들어간 골목이 하필이면 항구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방파제를 넘어온 해풍이 모자를 날려버립니다.
옷깃이 펄럭이며 뺨을 드럼처럼 두드려댑니다. 카메라 끈이 요동칩니다. 제철 방어를 가득 실은 어선을 보고 싶었는데,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두 블록 건너 시내로 들어섭니다. 꽃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피한 줄 알았던 바람 한 갈래가 좁은 골목으로 새어듭니다. 비로소 꽃이 보입니다.
벚나무 가지가 흔들 리며 꽃비가 내립니다. 꽃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어디에나 있어서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꽃놀이 훼방꾼인 줄 알았던 바람이 꽃구경의 거간꾼 노릇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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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미

#1

시내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따라 걷습니다.
며칠째 내린 꽃비로 사방이 벚꽃에 젖었습니다. 물에 내려앉은 꽃잎들이 수없이 맴돌다 떠내려갑니다.
흐름이 멈춘 다리 기둥 어간은 아예 수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개울가에 늘어선 벚나무들에는 아직도 비행을 준비하는 꽃잎들이 넉넉히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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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낮고 두터운 구름과 날선 봄바람 탓인지 시내는 조용합니다.
동네 사람인 것처럼, 살살 뒷골목을 누빕니다. 시골동네인데도 집집마다 문간에 꽃을 내다 놓았습니다. 튤립도 있고 장미도 보입니다.
아직 꽃대가 오르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도 있습니다.
한적한 뒷길의 난데없는 꽃 잔치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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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점심은 제법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동네 식당에서 먹기로 합니다.
여염집과 다름없이 생겨 발 들여놓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방 안에 앉아 상을 받습니다. 무식한 눈에도 생선이 싱싱해 보입니다.
밥상을 물리고 나선 습관처럼 커피를 찾습니다. 대도시에선 한 집 걸러 하나씩 보이다시피 하던 커피숍이 보이지 않습니다. 간신히 찾아낸 찻집엔 간판조차 없습니다. ‘평화가배(平和咖啡)’란 네 자가 전부입니다.
커피 맛은 그저 그랬지만, 자리를 차지한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꽃은 화려하기만 합니다.
2-3분 간격으로 요란한 웃음이터집니다. 그이들의 여유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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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야마 공원


#4

여기도 신사며 절이며 볼거리가 없진 않겠지만, 굳이 찾아챙기지 않기로 합니다.
대신 커피숍 뒤편 언덕을 올라 공원을 구경하기로 합니다. 그냥 공원입니다.
무사의 동상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물이 찬 분수에는 꽃잎이 그득합니다.
울타리 삼아 심은 동백나무에도 꽃이 활짝 피어 벚꽃과 한바탕 색깔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싶은 전망대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봅니다.
날이 조금씩 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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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삐그덕 소리에 눈이 따라갑니다.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계집애 둘이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시골 애들이어서 그런지. 공부나 성적 따위에 찌든 기색이 없습니다.
그네는 수평이 될 만큼 솟구쳤다가 시계추처럼 반대편으로 물러납니다.
정점에서 내려올 때마다 환한 웃음이 하나비 불꽃처럼 폭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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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마게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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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뜻밖의 행렬과 마주합니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꽃을 든 화동을 앞세우고줄 맞춰 계단을 오릅니다. 커피숍 아주머니가 일러준 마루마게 축제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소원했던 게이샤들이 단 한 번뿐인 휴일에 절에 올라 멋진 신랑감을 만나길 기도했던 데서 비롯된 의식이랍니다.
마루마게는 유부녀의 머리모양을 가리키는말입니다.
다들 꽃처럼 예쁜 차림에, 예쁜 꽃을 들고, 예쁜미소를 띤 채 걸어 올라옵니다.
속마저 곱다면 천하의 돌부처라도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겠다 싶습니다.



2018/04/10 15:00 2018/04/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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