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채플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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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어린이의 달을 기념하여
현 어린이병원장이신 한상원 교수님께서 교직원 채플에서 설교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동영상은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으며, 설교문은 이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교직원 채플 말씀이긴 하지만
함께 은혜 나누길 바랍니다.


바늘귀와 어린이 그리고 세브란스인


저는 교회 집사가 아닙니다. 장로는 더더욱 아닙니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학창시절 내내 미션스쿨을 다니기는 했습니다.
미션스쿨이라 하면 아마도 기독교 학교를 연상 하시겠으나 그건 아닙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불교학교를 다녔습니다.
불교교육을 상당히 짜임새 있고 강도 높게 받았기에 10대 때에는 불교철학에 매료되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10대가 무슨 철학이냐 하시겠으나, 나름대로 ‘무아, 무욕의 깨달음’에 심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불교는 종교이긴 하지만 신앙이라기 보다는 철학에 가깝습니다.


당시는 고교평준화 이전이었기에 고등학교에 가려면 입학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1차에 불합격하고 2차로 대광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재수하기 싫고 성적에 맞추어 그 학교에 간 것이지, 예수 믿으려고 그 학교에 간 것은 아니었는데, 아시는 분도 계시겠으나 대광의 기독교교육은 대단히 철저합니다.
사정이 그러니 초, 중학교 9년 내내 불교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충격이 컸습니다.
한술 더 떠서 1973년에 고등학교를 입학한 그 첫 해에 당시 영락교회 담임목사셨던 고 한경직 목사께서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을 초청하시어 여의도 5.16광장에서 부흥회를 여셨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도 그곳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것도 여의도에서 수많은 신도들과 함께…….
침례교 김장환 목사님이 열정적으로 통역하는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의 부흥 설교를 들으면서 기독교가 이런 것이구나 처음 접했습니다.
학교 내에서도 해마다 2번씩 부흥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설교 중 눈을 감으라고 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겠다고 하면 일어나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 때마다 일어났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하고 또 새로 영접하는 것이 우스운 행동이지만, 그만큼 어리석기도 하였고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지금 세간에 이슈가 되는 구원파를 조사 하시던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종교연구가 탁명환 선생’께서 저희 학교에 오셔서 자주 사이비종교 감별 교육을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종교의 탈을 쓰고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구나 알게 되고, 맹신적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하여 배우고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후 군대 3년 빼놓고 40년 가까이 신촌에 있었지만 대학생과 직장시절에는 제게 종교적 감화를 주는 일은 기억해내기 어렵습니다.
매주 수요일 8시에 시작하는 의료원의 교직원 수요예배는 저처럼 수요일 7시에 회진 돌고 8시에 수술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석할래야 할 수 없으니 그들만의 예배였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학창시절 종교와 철학에 쉽게 심취하고 또 변화를 쉽게 받아들인 것은 저도 어린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수하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화지와 같고 어른들이 준비해 준 세상에서 그들의 꿈을 꿉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눈은 한 없이 너그러워야 하고 어른의 말과 행동은 어린이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가슴이 아리고 일반인 승객보다 단원고 학생들의 사망에 대하여 더욱더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어린 미성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인 마태복음 18장 1절에서 3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느 종교의 경전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자격을 이처럼 명확히 한 구절은 찾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아이란 무엇일까요?
영어로 Child의 어원은 Cild라고 하는데 여성의 자궁에서 나온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말의 어린이라는 말의 어원은 어리석을 愚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리석은 사람, 즉 아직 철이 없는 연령의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동서양 모두 어린이란 肉적 개념이고 미숙하고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어린이는 교육과 훈육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동서양의 공통적인 사회적 사고입니다.


고대 서양의 사상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서도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관점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근대에 와서야 사상가 ‘루소’가 어린이 교육의 방법에 대하여 주목하는 정도입니다.


동양에서는 고대와 중세 근대를 통털어 맹자 정도가 어린이의 선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람은 선함이 악함을 이기도록 태어났고 이를 근본으로 하여 성선설과 仁義論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을 사회나 국가 구성원 중 하나로 보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정치학적 관점일 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어린이 속에서 인간의 참됨을 찾으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에 이르러 방정환 선생이 민족을 부활시키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수적임을 강조했습니다.
‘어린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에야 우리나라 사회는 어린이의 소중함을 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는 우리의 과거임과 동시에 미래입니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지금의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면, 노인이 된 우리 세대를 먹여 살려야 합니다.
즉, 우리 성인 세대에게 예의염치가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어린이를 최선을 다하여 돌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소아비뇨기과 의사로서 어린이를 치료하는데 갓난아기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여 성인까지 쭉 추적하며 진료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갓난 아기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치료대 위에 눕혔을 때, 옆에 있는 아기가 고통스럽게 울면 따라서 웁니다.
보호자가 웃거나 울면 아기는 함께 따라 웃거나 웁니다.
아기들은 주변에 쉽게 동화됩니다. 주변에서 슬프면 자신도 슬프고 주변이 기쁘면 자신도 기쁩니다.


이런 아이들이 3-5세 정도 되면 엄마/아빠와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것만 참으면 피자 사줄께, 로봇 사줄께 하고 타협합니다. 덧셈, 뺄셈을 하기 시작하고 이익과 손해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속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갓난 아기 때보다는 조금 사리 분별이 생기지만 순수하고 공정합니다.
엄마들은 간혹 진료실에서 아이를 내보내고 제게 묻습니다.
‘얘가 혹시 일부러 꾀를 내서 그러는 것 아닐까요?’
저는 단호히 대답합니다.‘어린아이에게는 거짓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면 아이들이 보호자와 타협하지 않고 의사나 간호사와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이번에는 이것을 참아 볼테니 치료횟수를 줄여주세요’라고 타협을 시도하기도 하고, ‘교수님이 좀 잘해서 한번에 끝낼 수는 없으세요?’라고 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굴하지는 않고 정정당당합니다.


사춘기가 되어도 반항적이 될지 언 정 떳떳함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성인이 되면 여러가지 상념에 젖어 들고 세상의 때가 묻습니다.
여러가지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기에 도덕교육과 법에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어른이라고 합니다.
옳고 그른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려는 것 자체가 편견입니다.
어른이 천국에 가기에 어려운 것은 자아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소아 환자의 부모는 일종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아기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치료를 위하여 검사가 필요한데 그 검사가 좀 아픈 검사이거나, 결국 수술을 해야만 할 때 주저하거나 거절하는 부모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이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결정을 부모에게 위임한 셈입니다. 당신의 아이가 결정할 능력과 권한이 있고 이에 따라 말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사의 권고를 거절하겠습니까?’
그러면 대부분의 부모는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의사인 저의 말을 따릅니다.
어린이는 보호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나 보호자의 부속물이나 소유물은 아닙니다.
어린이는 몸이 작을 뿐이고, 판단 기준과 표현 방법이 어른과 다를 뿐이지 그들의 영혼은 어른보다 청명합니다.
그러기에 어린이는 존중 받아야 합니다.
교직원여러분,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은 내년에 개원 10주년이 됩니다. 약 400명의 교직원이 거기에서 근무합니다.


약 150여명의 어린이가 입원하고 있고 하루 800명의 외래 환아가 내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한해에 약 40만명의 어린이가 새로 생기는데 세브란스어린이병원 한해 신환이 2만명 정도 됩니다. 거칠게 계산하여 한해 40만명의 어린이가 새로 생기고 그 중 1/20이 우리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그건 아닙니다. 여러가지 상수와 변수를 계산해보니 우리나라 어린이의 약 1-2%가 우리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의 고객입니다. 얼마 안되는 듯 보여도 3차병원까지 올 필요가 없는 건강한 어린이를 제외한다면 많은 비율입니다.
이들이 우리 세브란스를 고향으로 생각하도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게다가 어린이가 혼자 옵니까? 엄마 아빠는 기본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외삼촌 등등. 어린이병원의 외래를 도떼기시장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우리의 잠재 고객입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우리 어린이병원은 입원, 외래시설 모두 좀 열악합니다.
감염파트 의료진들은 보호되지 않은 환기시설에서 그대로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병원은 간호사들의 기피부서입니다.
어린이병원 간호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리 힘들어 하면서 왜 여기에서 근무하느냐고?
‘아이들이 좋아서요.’ 명쾌한 답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성경구절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3절, 24절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여기서 부자라고 함은 탐욕스럽기만 한 부자를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근면하고, 노력하며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돈을 벌고, 봉사와 기부를 하며, 노블리스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좋은 부자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어린이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정도 됩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환자를 도와달라고 하는 환자후원금 중 어린이 환자 치료에 써달라고 하는 후원금은 후원금 총액의 반이 넘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다행히도 어린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다른 어린이병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쟁병원인 가장 큰 국립병원은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최고의 시설을 그들의 어린이병원에 해놓았습니다.
강남 쪽의 가장 큰 기업병원 또한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감염으로부터 격리된 좋은 공간에 어린이병원을 배치하고 있고, (지금은 나아졌지만) 적자의 온상이던 신생아중환자실을 국내 최대규모로 갖추고 있었습니다.


세브란스어린이병원은 이들 병원과 같이 적자병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고 어린이병원의 교직원들은 설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의료원에서는 최근 많은 시설 투자와 인력 투자를 하여 재정적 사정이 어려운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어린이병원 교직원들은 소아 환자들을 위하여 묵묵히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절약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릴 것입니다.

여기 위대한 하나님의 기관에서, 여러분 세브란스인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으로 어린이병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당신이 뜻으로 세워진 이 기관에, 의생명연구를 선도할 ABMRC와 고통 받는 암환자를 최신 의술과 사랑으로 치료하기 위한 연세암병원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연세의료원의 모든 역량을 모아 ABMRC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할 연구성과를 쏟아내고, 연세암병원이 목표한대로 많은 환자를 암의 공포로부터 완치와 예방의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저희에게 단합의 정신과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소서.
저희의 바램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크게 이루어져서 비로서 저희에게 주변을 돌아보는 여력이 생기고, 서로 배려하는 여유가 생겨서 그 동안 소외되었던 분야에 예수님의 나눔의 정신이 넘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어린이를 사랑하는 세브란스, 존경 받는 세브란스, 바늘귀가 크게 보이는 세브란스인이 되도록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4/06/25 15:23 2014/06/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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