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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기획 제중원


    한국 근대의학의 뿌리를 비추다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자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제중원을 통해 일제의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근대 의학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드라마 제중원이 제작되고 있다.
 의료원과 김종학 프로덕션이 손을 잡고 구한말 병원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제중원’을 36부작으로 만들어 내년 1월 4일 첫 방송을 내보낸다.

 드라마는 실제 제중원 첫 졸업생이자 독립투사로 활동한 박서양 선생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알렌 박사를 통해 서양의학을 접하게 된 백정의 아들 황정(박용우 역)이 제중원에 들어가 인술을 펼치는 의사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황정과 라이벌을 이루는 인물로 성균관 유생인 도양(연정훈 역)이 등장하며, 이 둘이 후에 제중원과 한성병원을 대표해 라이벌 구도를 계속 형성한다.
 이 둘은 의사로서 뿐 아니라 석란(한혜진 역)이라는 여자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를 형성하면서 드라마는 전개된다.
 기존 사극의 틀은 보통‘왕조 중심의 정치사’ 또는 ‘영웅의 인물사’로 재현되어 왔으나 드라마 ‘제중원’은 구한말 일제의 주권 침탈이라는 정치적 서사 과정을 고종을 중심으로 하는 왕권과 정치세력의 몰락 과정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닌 근대의학사를 통해 구한말을 조명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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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중원’이라는 무대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 재편과정’이라 할 수 있는 구한말 역사를 구축해 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시대적 구조물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착안해 기획됐다.
드라마는 일제의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근대 의학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이를 통해 제중원이 설립된 이래 로 계속되어 온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획득,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드라마‘제중원’은 제중원의 후신은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며, 진료기관으로서만이 아닌 현대의학 교육 및 연구기관으로 한국 의학계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온 제중원의 이야기를 전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0/01/26 09:30 2010/01/26 09:30

세브란스 병원은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발상지로서 … 우리나라에 전해온 근세의학의 역사 중에 가장 광채 있는 페이지를 차지한 것도 세브란스 병원이거니와 우리 의학의 발전적 과정에 있어서 민족적 고난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된 것도 세브란스 병원이다.” (김두종, 『한국의학사』, 486쪽)



광혜원, 제중원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7세기 무렵이었다. 실학자들은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학 관련 책들을 읽고 서양의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글을 통해 이를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서양의학의 수용은 1876년 조선이 개항되면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개항과 함께 서양문물의 도입에 대한 필요성이 커져가고 있을 무렵인 1884년 12월, 최초의 선교의사로 한국에 온 알렌은 갑신정변에서 심하게 부상을 당한 당시의 실력자 민영익을 살려내었고, 이것을 계기로 서양의학의 효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결과, 1885년 4월 10일 알렌의 건의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서울 재동(현재 헌법재판소 자리)에 세워졌다. 이후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꾼 후 왕실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1887년에는 구리개(현재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부근)로 이전, 병원의 규모를 확대했다. 초기의 제중원은 조선정부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공동으로 운영하였다. 조선정부는 건물과 재정을 지원하고, 선교부는 의사와 간호사의 파견하여 진료하면서 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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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중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알렌은 한국 내 의료진 양성을 위해 의학교육을 추진하였고 고종은 제중원 북쪽에 위치한 가옥을 구입해 학교 교사로 사용하게 했다. 1886년 3월 29일 선발된 1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의학교육이 실시되었지만 병원 운영이 부실해지면서 의학교육도 지속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893년 7월, 새로 부임한 에비슨은 제중원의 정상화를 위해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북장로교 선교부로 넘길 것을 요구하였고 갑오개혁 때 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이로부터 제중원은 정부와 관련을 끊고 완전한 선교의료기관으로 재편되었다. 에비슨은 보다 나은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의 설립을 위해 노력한 결과 1900년 미국에서 만난 세브란스(L.H. Severance) 씨로부터 병원 설립 기금 45,000달러를 기부받아 1904년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 서울역 맞은 편 세브란스 빌딩 자리)에 병원을 세웠다. 이때부터 병원의 이름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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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의학교육도 체계적으로 실시되어 1908년 제1회 졸업생 7명을 배출했는데 이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의사면허를 부여받았다. 1913년에는 서울에 있던 각 선교 교파가 공동으로 세브란스를 지원하게 되면서 학교 이름을 세브란스연합의학교로 바꾸었고, 1917년에 전문학교 규칙에 따라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로 인가되었다. 당시 일제에 의해 운영되던 관립 의료기관이나 학교와는 달리 세브란스는 유일하게 조선인을 위한 병원이자 의학교육기관이었다. 일제 말기에 학교의 이름이 아사히 의학전문학교로 바뀌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해방과 함께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재탄생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전시 교육령에 따라 전시연합대학에 편입되었으며, 전쟁 기간 중에는 거제도, 원주, 청도에 구호병원을 개설하여 의료활동을 전개하였다. 전쟁이 종결된 후, 파괴된 건물 및 시설물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캠퍼스 구상이 이루어졌고 이것을 계기로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의 합동이 이루어지면서 연세대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세브란스 병원과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을 아우르는 의료원 체제를 갖추고 한국 의료를 이끄는 선도적 기관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05년 제중원 설립 120주년을 맞아 새 병원을 개원하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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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료원 역사 자세히 보기
- 역사FAQ - 서양의학의 도입
- 새로짓는 제중원(세브란스씨 기념병원) 정초식 초청장
- 2008년 - 한국 최초 면허의사 100주년
- 세브란스 이야기(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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