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너 명만 모여도 20년 전 생활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한 드라마가 종종 화제가 된다. 거리로 나서면 1980년대 유행가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복고 열풍’이 더 확산되는 듯한 분위기다.

노인정신건강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추억을 짚어 보는 이런 복고 열풍은 반길 만하다. 갈수록 고령화하는 이 사회에서 어르신들과, 이들의 무거운 짐을 넘겨받은 중년층 모두의 정신건강에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1979년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렌 랭어 교수는 ‘시계 거꾸로 되돌리기 연구’라는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70, 80대 노인들을 모집해 20년 전 과거를 그대로 모방한 외딴 시골에서 일주일간 생활하도록 했다. 노인들은 1959년 당시의 신문, 잡지, TV, 음악, 라디오 등을 들으며 자신들이 마치 1959년에 사는 것처럼 믿고 생활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에 참가한 노인들의 지능과 신체 상태가 50대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노인들의 치매 예방 및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과거 기억, 즉 추억에 대한 회상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이를 훌륭한 한 편의 드라마로 재구성하도록 돕는 것을 ‘회상치료’라고 한다.

회상치료는 대개 집단으로 진행된다. 평소 말 한마디 안 하시던 치매 어르신들조차 이때만큼은 6·25전쟁의 역경을 극복해내고 이후 산업화를 이끌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다른 이들은 아낌없이 존경을 표하는 청중이 되어 이야기꽃을 이어 나간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의료진 또한 그들을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한 시대를 짊어지셨던 어버이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어르신들은 스스로 자존감과 생기를 회복한다.

필자는 복고 열풍이 단지 과거시대의 추억 되새김질을 통한 마케팅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상업적 목적을 넘어 ‘잊혀진 노병’들을 지금 여기로 다시 불러내 현재 시대와 연결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복고 열풍은 고령화 사회에서 단절된 세대 간에 새로운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신세대에게는 윗세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윗세대에게는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순기능이 더 많다. 어르신들이 망설이다 풀어내는 빛바랜 흑백영상의 그 ‘꺼리’들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다음 시대를 맞설 용기를 주는 효과도 있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 먼지 앉은 사진첩을 꼭 함께 꺼내 봐야겠다. 그리고 자식 키우시느라 정신없어 가슴에만 묻어두셨던 ‘삶의 영웅담’들을 들어 봐야겠다.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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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09:16 2014/01/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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