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미국에서 출간된 <The Martyred (순교자)>라고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사람 Richard Kim. 김은국 이라는 사람이 쓴 작품입니다. 김은국은 이 소설로 한국계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많은 화제를 낳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내용은 이렇습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직전에 평양에 있는 목사님 열네 명이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열두 명은 처형을 당하고 두 명은 살아남았습니다. 인민군이 후퇴하고 국군이 다시 평양에 들어 간 다음에 그 처형당한 열두 명은 순교자라는 칭송을 얻고, 사람들이 그들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교회마다 이 열두 분의 순교자를 높이 추앙하였습니다. 우리도 그분들의 믿음을 따라 바른 길을 가야 하겠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두 명은 계속 추궁을 당하고 비방을 당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음으로 순교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너희들은 배신자다, 배교자다!” 하지만 두 목사님은 아무런 대꾸가 없습니다. 그 당시가 어떠했는지 설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 열두 명을 처형한 인민군 정 소좌라는 사람이 국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정 소좌에 의해 비로소 그 때의 상황과, 진상이 시원하게 밝혀집니다. 공산당은 저들을 잡아 놓고 협박을 하고 위협을 하고 모진 고문을 가했답니다. 그 때에 열두 명의 목사는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빌면서, 비굴하게 서로 음해했다고 합니다. 그래 너무도 비겁해서 그들을 죽여 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 중 한 사람은 고문에 못 견뎌서 미쳐 버렸습니다. 미쳐 버린 사람을 죽일 것까지야 없었다는 거지요. 그러나 단 한 사람, 신 목사라는 사람만은 유일하게 끝까지 기독교 복음으로 당당하게 맞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자기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신 목사의 신앙과 죽음을 이겨내는 용기에 감복되어 그 사람만을 살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미쳐버린 사람을 포함해서 두 명만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미쳤던 사람은 자기정신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신 목사님만 모든 비밀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있습니다. 죽은 열두 사람은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높이높이 존경을 받지만, 살아남은 이 두 사람은 배신자요 배교자라고 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도 신 목사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죄인의 처지로 교회에 사표를 내고 다른 교회로, 또 다른 교회로 옮겨 다니면서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그는 힘 있게 복음을 증거 합니다. 왜일까? 배신자의 설교가 왜 그렇게 힘이 있을까? 왜일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서는 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 계신다. 이것이 그가 살아남은 이유요 그가 비밀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 소설은 이렇게 끝납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 새번역 성서는 아주 간결하고 단호하게 표현합니다. “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알려져서 환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러분, ‘숨은 것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숨겨지는 것숨기는 것입니다.

 

숨겨지는일이 있습니다.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 뜻도 악의도 없습니다. 그러나 숨기는일은 고의적인 것입니다. 물론, 잠깐 동안 임시로 숨기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애기 낳는 일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아예 숨겨 버리는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증거인멸이요, 완전범죄를 하고자 하는 의도적 행위입니다. 완전히, 완벽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요, 이것이 문제요, 이것이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숨김으로써 무마될 수 있다고 하는 것, 숨김으로써 내가 이익을 얻고, 숨김으로서 내가 행복하고, 숨김으로 내가 권세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숨겨지는 일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외형적이고 형식적일 뿐이며, 잠시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자기 자신은 숨길 수 없고, 하나님께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장차 모든 것이 다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모 잡지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화려하게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특실에서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간호사들과 의사들에게 팁을 주는 등 굉장한 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유난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흑인 아이였답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비밀이 숨겨지리라 생각했습니까?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여러분, 이 시점에서 이거 하나 분명하게 집고 넘어갑시다. 나 스스로가 드러내면 회개요, 다른 사람이 드러내면 비판입니다. 나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면 참회요, 하나님께서 내 잘못을 비판하시면 심판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잘 안 나왔을 때, 그 성적표 숨기느라 얼마나 애태웠습니까. 도장 몰래 찍어갔다가 들켜서 회초리도 맞았고요. 그런데 성적이 좀 괜찮다 싶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싶어서 성적표 휘날리며뛰어옵니다. 좋은 성적이면 누가 알아 줬으면 좋겠다.’ 싶고요, 부끄러운 일이면 어떻게든 단 하루라도 더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사는 것, 하나님 앞에 다 노출된 모습으로 사는 것, 이것이 신앙이며, 이것이 용기입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움도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환하게 드러날 것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아름다운 일을 심어 놓고, 응당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니, 조만간에 열매가 맺힐 것을 은근히, 흐뭇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 여기에 쾌감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전부를 아신다, 이 보다 더 당당하고 용기를 주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구차한 변명 하지 맙시다. 알아 달라고도 하지 맙시다. 일체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아시니까요.

  그런고로 아름답고 은혜로운 일들을 심어 가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추수의 날을 조용히 기다릴 것입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의 위로와 능력과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드러내게 하시는 그 날의 위로와 기쁨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신앙이 내 삶으로 증명되는 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015/08/19 09:30 2015/08/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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