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조차도 내겐 이렇게 아름다운데 암 재발 통보받은
그의 심정은 어떨지… 지금은 낙담하겠지만 내년 가을에는 행복할 것

요즘 출근길이 아주 즐겁습니다. 서울 혜화동 집에서 광화문사거리 근처에 있는 회사까지 40~50분 정도 걸으면서 늦가을 정취를 제대로 맛보고 있습니다. 샛노란 은행잎이 눈처럼 쌓인 보도를 걸으며 흘러간 유행가를 불러봅니다.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 흐르는 세월 따라 잊혀질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 다시 떠오르나~.' 30여년 전의 유행가 '가을비 우산 속에'(최헌) 노랫말이 쏙쏙 가슴에 와 닿고 정겹게 느껴집니다. 은행잎을 한 움큼 집어 허공에 뿌리면서 큰 소리로 웃어 보기도 합니다.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아침 출근길엔 행인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조계사 경내에서 국화 전시회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노랑·빨강·보라·주황 등 10여가지 색깔의 수만 송이 국화가 내뿜는 향기 덕분에 오감(五感)이 행복했고 마음이 풍요로웠습니다

중략

어제 아침 잎사귀가 거의 다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쳐다보며 "아~ 참 좋다" 하고 탄성을 터뜨리다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얼굴은 본 적이 없고 이메일로만 안부를 주고받는 30대의 암환우(患友)입니다. 흉선암으로 투병 중인 그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은 지 7개월 만에 재발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 알려왔습니다. 제 칼럼을 읽으며 힘을 얻고 있다던 그의 재발 소식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다시 치료를 시작한 그의 각오는 이랬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씩 재발하는데 나라고 용빼는 재주 있겠나 싶습니다. 지나고 보니 할 만하기도 했고, 외려 행복했던 기억도 많았고, 다시 한번 힘내서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닥친 시련을 담담하게 헤쳐나가려는 그를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하면서도 3년 전의 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가을을 예찬해도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좌절과 절망의 계절이기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를 위해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입니다. 3년 전 투병 중 가장 힘들었을 때 고교 동창이 휴대전화 문자로 찍어 보내준 문구입니다. 친구는 "매일 날씨가 좋으면 사막이 된다. 비바람은 거세고 귀찮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새싹이 돋는다"며 제게 힘을 줬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유대인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의 '다윗왕의 반지'에 나옵니다. 다윗왕이 어느 날 보석 세공인을 불러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게 하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명했습니다. 세공인은 반지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때 솔로몬 왕자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새기라고 알려줬다고 합니다.

2011년 가을이 그에게는 절망의 계절이겠지만 결국엔 지나가겠지요. 그리고 내년 이맘때 쯤이면 그는 행복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년 전 저와 지금의 제가 다른 것처럼요. 그런 믿음과 희망을 품고 있다면 이번 가을은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의 쓸쓸함을 외면하지 말고 그냥 감정 그대로 받아들여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울고 싶다면 실컷 울어도 괜찮을 듯싶네요. 가을에는 이별과 슬픔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은 걸 보면 슬퍼해야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명상 전문가는 "때론 눈물도 흘려야 웃음의 효과가 더욱 커진다"면서 눈물과 웃음의 건강학을 강조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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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4 08:48 2011/11/1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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