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14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여러분,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여러분이 감옥엘 가 있다면, 거기서 어떤 책을 읽고 싶으십니까? 영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국회의원과 의사, 교수 등 사회지도급 인사들에게 당신이 만약에 부득이 3년 동안 감옥에 가 있어야 된다면 그 동안에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가? 하고 앙케이트를 내 보내었답니다. 그랬더니 98%성경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쌀 없으면 고기 사 먹지라는 시대에 안 통할 이야기입니다마는, 먹지 못해서 굶어 죽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어른께 인사하는 내용이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면 어른들은 오냐, 너는 밥 먹었느냐?” 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이 배고픈 것이 얼마나 절절했든지 지금까지도 먹는 것과 연결된 표현들이 참 많습니다. 나이를 물을 때에도 너 몇 살 먹었니?”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도 애를 먹었다합니다. 기억이 없다는 말도 잊어먹었다”, 욕을 할 때도 빌어먹을 놈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공금 횡령한 사람을 가리켜 뭐라고 합니까? “다 해쳐먹었다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두고도 안 먹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어떤 보고서에 보니 아가씨들의 40%가 골다공증에 걸렸다고 하네요. 안 먹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못 먹든 시절이 아니고 안 먹는 시절이라는 거지요.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매일 급식을 하는데 그 중의 3040%가 그냥 남아서 쓰레기가 된답니다. 이거 벌 받을 얘기입니다. 한편에서는 못 먹어서 생기는 후유증으로 1년에 3천만 명이 죽어 간다는데, 그런데 멀쩡한 음식을 쓰레기로 버리다니요. , 이러고도 복을 달라 할 것입니까? 이러고도 복 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못 먹던 시절에 생긴 표어 하나가 있습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입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몸이 나온다는 겁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오늘의 말씀이 이것을 강조합니다. 건강한 영혼이 있고야 건강한 정신이 있고,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이성이 나오고, 건강한 이성에서 건강한 철학이 나오며, 건강한 철학에서 건강한 인격과 건강한 인생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주 강하게 말씀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사십일 금식기도 하신 후에, 심히 두렵고, 배고팠습니다. 그 절박한 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영이 바로 살 지 못하는 데 어찌 내 정신이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데 어찌 내 인격과 사회생활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건강에 대한 정의를 말할 때, ‘육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그리고 영적인 건강을 정의 내린 것은 지극히 옳은 판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시지요? WHO에서 내린 건강에 대한 정의가 수십 년간 수정 보완되어 왔다는 것을요. 육체적 건강만을 강조했더니,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신적 건강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는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나타나는 겁니다. 그래서 부득이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사회적 역할을 정의 내렸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정신이 다시 문제가 된 겁니다. 이 정신을 바로 잡아 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정신을 바로 잡아 주지 못하니까 육체가 건강해도 사회적으로 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급기야는 이것들을 조정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과 사회적 기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아니 중심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영적인 것이더라는 것이지요. 그 중심에 영적인 건강이 자리를 잡아야 하겠더란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정신이 서게 된다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근본이 되고 중심이 되는 건강한 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건강한 영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겁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하시는 이 원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는 것, 이 말씀이 없는 것을 가리켜 기근이요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굶주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기근이 아니라, 마실 물이 없어서 기갈이 아닙니다. 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아프리카 등지의 어려운 나라들을 많이 봅니다. 그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입니다마는 저들이 왜 저렇게 못사는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해 보면 결국, 종교 문제 때문입니다. 종교가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종교에 시달리면 인간성, 지식, 경제, 문화, 가릴 것 없이 다 무너지고 맙니다. 오래전입니다. 아프리카에 한발(旱魃)이 심해서 식량이 없다고 해서 우리 기독교 대표자들이 가 보았습니다. 정말 물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땅을 파 보니까 몰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 단체에서 우물 파주기 운동을 해서 여러 마을에 우물을 파 주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우물 하나 팔 생각도 못했다니,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그저 우상 앞에서 물 달라고 빌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주는 재앙이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죽자하는 생각입니다. 마치 시험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기도만 하고 있다가, 시험지 마주 앉아 믿습니다.”하고 3번에 동그라미를 쳤는데, 그런데 틀렸습니다. 그러면 , 틀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이러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이렇듯 종교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더란 말입니다.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잘못된 종교, 잘못된 믿음에서 일어난 엄청난 피해를 지금 우리가 혹독하게 겪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씀이 끊어지면 지금 있는 부귀영화, 지금 있는 그 자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씀이 침묵하는 순간, 그 건설이나 번영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말씀이 들려지지 않을 때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교회에 나와서까지, 이 예배에 참석해서까지 말씀을 못 듣는 사람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자기를 향한 말씀으로 듣지를 않습니다. 전부가 다른 사람을 향한 말씀으로만 들려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시어머니가 들어야겠는데’ ‘이 말씀은 며느리가 들어야겠는데’ ‘이 말씀은 내 남편이 들어야겠는데’ ‘이 말씀은 그 인간이 좀 들어야겠는데 하필 오늘 안 나올게 뭐람하는 겁니다. 이거 병중에서도 참 큰 병입니다. 이것처럼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이 사람에게서는 말씀이 떠난 것입니다. 말씀의 역사가 떠났습니다. 말씀이 침묵하고 맙니다. 듣기는 들어도 들려지지가 않습니다.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 등 선지서를 보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서 전하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그리하여 선지자가 이 땅에 있음을 알려라,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라. 사무엘상 715절에서는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은 평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떠나면 끝난 것입니다. 구약성서 맨 마지막 말라기서가 끝나고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그 사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말씀이 끊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무서운 암흑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없다하더라도 어디엔가는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떠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25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는 줄은 알게 될지니라.”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읽고 싶으신가요? 성경 한 번 읽고 싶지 않으십니까? 세계 역사적으로 말입니다, 이 성경 한 권을 없애보려고 얼마나 많은 끔찍한 사건들이 있었던가요? 그런데 성경은 여전히 베스트셀러 1위입니다. 여기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의 나 됨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즘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강의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죄송하지만 성서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인문학, 기독교적 인간학(Theological Anthropology)을 다루지 못하는 인문학은 별 의미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인문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의학적으로만 봐 버리는데, 여기 무슨 인문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간혹, 인문학을 강의하면서 성서를 인용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는 합니다마는, 그것은 당신의 학설에 성서를 인용하는 것뿐이지, 성서에서 말하는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러분, 성서를 읽으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들으십시오. 여기서 성서를 읽으시라는 것은 성경전체를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읽노라면 내게 부딪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 붙들고 몇 시간, 혹은 몇 달, 몇 년을 고민하고 씨름해야 할 말씀들이 부딪힙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내 영은 정화되고, 내 인생은 새롭게 재정비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여러분, 우리의 마음의 초점을 말씀에 맞출 때 비로소 우리의 영이 윤택해지고, 우리의 미래가 보이고, 오늘도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14/12/10 12:20 2014/12/10 12:20

카테고리

전체 (352)
대장암 이야기 (142)
교수님들의 소식 (22)
대장암 센터 소식 (17)
무엇을 먹을까요 (52)
소화기관 질환 (14)
마음이 쉬어가는 곳 (26)
믿음의 말씀 (31)

공지사항

달력

«   2019/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tatistics Graph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