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2-4, 12)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

여러분, 시험이라는 것이 어찌 오늘만이겠습니까?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 아니든가요? 오죽했으면 인생은 시험이다.” 하는 말이 있겠습니까? 대학을 졸업하면서 학사모 던지면서 시험 끝!’ 한다는 거 아닙니까. 근데 웬걸요, 그 다음에는 취직시험이 떡 버티고 있는 겁니다. 거기 비하면 운전면허 시험은 시험도 아닌 거지요. 어느 대학의 교수님은 며느리를 들일 때 건강검진서는 물론이고, , , , 그리고 상식시험을 보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럴 것 같으면 죽을 때도 시험보고 죽어라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는 영생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하나님도 우리를 시험하신답니다. 이거 어쩌면 좋아요. 하기야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성령에 이끌려 시험받으셨답니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은 시험에 대한 기억이 어떠십니까? 저는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것 밖에는 없어요. 시험을 보게 했으면, 왜 틀렸는지를 알아서 그것을 바로 잡아 주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왜 야단 먼저 쳤는지, 일단 틀린 수대로 때려놓고 봤다는 거예요. 그러니 점수만 잘 받으면 되겠다 싶어 커닝도 하고 그랬지요. 기회주의, 눈치, 불로소득의 짜릿한 맛을 시험을 통해 배웠다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제가 한때 중학교 선생을 잠시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 ‘나는 시험 본 다음에 절대로 때리지 않겠다.’ 결심을 했는데, 그런데 어느 날 제 손에 회초리가 들려 있더라고요. “, 내가 분명히 나온다고 그랬지. 밑줄까지 쳐 주었잖아. 그런데 왜 틀려.” 그러면서 손바닥을 때리고 있더란 말입니다. 

, 어쨌든 제게는 시험이라는 것은 아주 부정적인 경험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 시험 안 보고, 시험 문제 내는 사람이 되어보자 해서 선생이 되었었는데, 그런데 선생이 되어보니까 그 교육안에도 이건 아니다싶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종교로 귀의 해보자 해서 목사가 되었더니, 글쎄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 그러잖아요. 이제는 더 도망 갈 때도 없어서 매일, 순간순간을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치르며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주 말씀하세요. “, 송 목사, 내가 이 문제 나온다고 분명 그랬지? 빨간색으로 밑줄까지 쳐 주었잖아. 근데 또 틀렸냐? 도대체 너 뭘 생각하며 사는 놈이냐? 너 목사 맞냐?” 하시며 회초리를 드십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시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라조라고 하는데, 이 말은 두 가지로 번역이 됩니다. 하나는 시험(試驗. temptation)’이고 하나는 시련(試鍊. trial)’입니다. 훈련, 단련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험하면 뭔가 넘어뜨리려고 하는 심판적 의도가 있는 것 같은 부정적 의미를 가져요. 그런데 시련이라고 하면 훈련’ ‘단련’ ‘연단등의 의미로 더 높은 곳을 향한 출발,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시험은, 시험이 아니라 시련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한 출발, 시작을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훈련이며 과정이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시험은 몇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느 회사에서 사원모집을 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다섯 명을 뽑으려고 하는데 열 명이 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시험을 통해서 다섯 명을 떨어뜨려야겠습니다.’ 하는 것과, ‘우리 회사는 이 정도의 실력자를 찾습니다. , 컴퓨터 문서작성은 이 정도로 해야겠고, 실무경력은 이 정도는 되어야겠고, 외국어 실력은 이 정도는 되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겠습니까? ‘우리 대학에서는 최소한 이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수업을 따라 올 수 있습니다하는 것과 백 명 뽑는데 이백 명이 응시를 했으니 부득이 백 명을 떨어뜨려야겠습니다.’ 해서 치르는 것, 어느 쪽이 시험의 본래의 뜻이겠느냔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십시오. 시험의 본래 뜻에는 시험을 통해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찾는 것이지, 몇 사람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장에 붙어 있는 현수막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한 번 낙방 두 번 낙방, 늘어나는 운전실력.” 이겁니다. 원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찾고,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십니다. 더하기 빼기를 할 줄 알아야 곱하기 나누기로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곱하기 나누기를 할 수 있어야 인수분해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하십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그런고로 시험은 심판이 아닙니다. 더 성숙하게 하시고 업그레이드 하십니다. 이것이 시험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시험은 언제나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 거예요. 죽은 자는 마귀도 건드리지 않아요. 이미 끝난 인생은 시험할 필요도 가치도 없어요. 살아 있는 사람, 능력이 있으니까 시험하는 거예요. 아직도 뭔가 하려고 하니까, 여기에 시험이 있는 거예요. 그런고로 시험이다 생각되면 , 내가 살아있구나. 아직 움직이고 있구나.’ 하시면 틀림없습니다. ! 이렇게 본다면 시시한 시험이 오거든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문제는 시험을 당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그 자세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 시험이라고 하는 사건 속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어요. 하나님은 이 시험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보다 더 순수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을 버리게 하시고 끊지 못하는 것을 끊게 하십니다. 그게 시험이에요. 마치 쇠를 풀무 불속에서 달구어서 자꾸 때리는 것과 같아요. 쇠 속에 있는 불순물, 찌꺼기가 다 밖으로 나가게 해서 더 단단한 쇳덩어리로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연단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나를 만들어 가십니다. 다듬어 가십니다. 오늘 내가 이 만큼이라도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그 사건, 그 시험, 그 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는 알지 못해 불평하고 원망했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그 모든 사건이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나를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가고 계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시험 없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지 시험 없게 해 주세요이것은 잘못된 기도란 말입니다. 그래 주기도문에도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그랬잖아요. 우리 자녀들을 위한 기도도 그래요. 그저 무사하고 편안하고 무엇이든지 잘되게만 해달라고 그러면 못쓰게 됩니다. 문제는 시험을 이기게 해야지요. 가난도 이기고, 굴욕도 이기고, 어려움도 이기고, 다 이겨나가는 거예요. 악을 이기는 힘이 생겨야지요. 그게 중요한 것이지 아무 일도 없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 이렇게 시험을 믿음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사람됨의 교과과정으로 받아들여 이 시험을 잘 이겨내는 자들에게 주시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112절입니다. “이 시련을 견디어 낸 자들에게는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여러분, 예수 믿는 궁극적 목적이 뭡니까? 생명의 면류관 아닙니까? 이렇게 보면 지금 내가 경험하는 이 시험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의 위장된 축복, 이것이 곧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2014/11/12 13:56 2014/11/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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