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몇 해 전의 일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한 아버지의 몰상식한 추태가 방영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우등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들 앞에서 그 담임 선생님에게 큰 소리로 추태를 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신 이러면 안 돼! 이게 뭐야! , 지금 교장 만날 거야. 각오해!” 그 여선생님은 끝내는 아이들과 학부형들 앞에서 창문을 향해 돌아서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유럽의 어린이들에게 너는 커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되겠답니다. 가령 밤에 정전이 되었을 때 제일 빨리 불이 들어오게 하는 전기 기술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면 대통령, 과학자, 사장…….” 얼핏 들으면 얼마나 스케일이 크고 좋으냐고 할런지 모르지만 사실은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남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생각보다는 남을 지배하려는 생각이 어린이들 마음속까지 깃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수준이며 교육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무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등이 되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는 어느 광고문구가 있습니다. “1등이 아니면 기억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1등만을 추구합니다.” 저는 1등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 너무 비약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겁니까? 1등이 못되면 정말 살아남지 못하는 겁니까?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나마 우리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다른 광고도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하는 어느 통신 회사의 광고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1등이라는 게 혼자서는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2등이 있어 1등이 있는 거고, 조연이 있어 주연이 있는 것이지요. 어차피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같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거지요. 그래야 살맛이 나는 거구요, 그래야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한 경쟁이라는 것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한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거든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몰락이 그 예입니다. 평등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부득불 경쟁이라는 것은 있어야 되겠는데, ‘1이라는 것과 다함께라는 공생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The First. The Best”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묻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방법론과, ‘무엇을 위해 사느냐?’ 하는 목적론에 대해 질문하며 삽니다. 이 질문의 답이 그 사람의 인생관이요 생활관이며 가치관이며 나아가서는 신앙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확인해 보는 겁니다.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가? 나에게 있어 제 일이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가치관 중에 하나는 역시 권력 지향의 요소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정력과 시간을 투자합니다. 우리의 신앙까지도 권력과 물질에 포박당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과학주의 또한 현대인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과학주의가 무엇입니까? 능률주의요 실용주의가 아닙니까? 그 사람의 인격보다는 그 사람의 능률성과 실용성을 찾으려고 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에는 성공했을지라도 도덕성에는 실패했습니다. 높은 지위와 권력은 얻었는데 사람을 잃었습니다. 기술에는 성공했는데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잊어 버렸습니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없습니다. 실로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최고의 권위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삶의 가치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며, 오셔서 어떤 방법으로 사셨는가? 오늘 말씀이 그 해답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이것 외에는 다른 가치관이 없었습니다. 목적은 섬김이었고 방법도 섬김이었습니다. 섬기려 오셨고 섬기며 사셨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하는 문제로 옥신각신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하십니다.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먼저 섬겨라. 많은 것을 누리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먼저 섬겨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입니다. 

! 그러면 섬김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섬김입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인간이 되셨고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오직 하나, 섬기기 위하여, 인간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내어놓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고,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셨고, 아버지가 아들 되셨고, 의인이 죄인 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발을 씻겨 주십니다. 죄인의 발을 씻겨주십니다(13:4). 스스로, 자원하여, 자발적인 행동으로,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봉사를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섬김과 봉사의 정의는 자기의 할 바를 다하고 자발적으로 더하는 이타적이며 창조적 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일맥상통하는 행위입니다.

이연호라는 사람이 쓴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고 동유럽도 엉망이고 일본도 저렇게 시들어 가고 있는데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저렇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가, 이것을 좀 알아야겠다, 해서 연구한 결과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게 맺습니다. “미국은 발렌티어(volunteer)정신, 봉사 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미국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교회 게시판에 라인업을 해 놓고, 어디에 가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고, 또 어디에 가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고, 그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고 비용은 얼마나 들고…… 하는 내용들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원봉사에 대한 훈련을 받습니다. 자기의 할 일을 다 하고, 자기의 돈을 들여서, 배웁니다. 그 봉사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섬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 병원에도 봉사하시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참 존경스럽습니다. 스스로, 자원하여,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해 가는 분들입니다. 인생의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가는 분들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섬김과 봉사의 삶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해 갑니다. 섬김과 봉사의 삶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해 간다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십니까? 이것은 신비입니다.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신비입니다. 섬김을 통하여 나의 삶이 충만해진다는 것, 봉사하는 삶을 통하여 내 인생이 넉넉해진다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명언하나 남길까요? “섬김이 없는 물질은 타락의 징조요, 봉사가 없는 지식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결국 교만입니다.  

여러분, 섬김과 봉사가 없는 인생, 섬김과 봉사가 없는 공동체가 얼마나 메마른 것인지 아십니까? 불평과 원망과 아우성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인생은 섬김의 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장 비참한 집단은 섬김의 정신이 없는 단체입니다. 섬김과 봉사의 정신이 없는 공동체와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를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섬기려는 자가 결핍된 직장, 봉사의 정신이 사라진 사회, 그 사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작은 일에서 큰일에 이르기까지 섬김과 봉사를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단체나 사회에 풍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대는 종적 사회가 아닙니다. 횡적인 사회입니다. 다 함께 가야 합니다. 직책이 다를 뿐 주종관계가 없는 사회입니다. 누가 섬김을 받고 누가 섬기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피차 섬기는 사회입니다. 누가 다스리는 자이며, 누가 지배를 받는 자입니까? 서로 돌보아 주고 서로 섬기며, 서로 봉사하는 자발적인 정신과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섬김의 가치관, 섬김의 논리, 섬김의 윤리, 섬김의 정치, 섬김의 학문, 섬김의 신앙원리가 우리의 인격을 완성할 수 있고 보다 밝은 책임적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섬겨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고, 그분의 정신을 실현하고자하는 기관입니다. 섬기는 자! 그가 위대한 인물이요, 그가 다스리는 자요,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섬김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2014/06/30 08:59 2014/06/3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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