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장 고상한 것

성경: 빌립보서 3:1-9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몇 년 전부터 이상기후를 말하면서 “봄이 없어졌다”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봄은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봄 없이 여름으로 곧장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 때 쯤이면 산으로 들로 꽃구경도 다니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는 참 어려운 절기입니다. 지금, 교회력으로 ‘사순절’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을 시작하여 40일 전부터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며 모든 생활을 절제하며 지내는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2014년 부활절은 4월 20일이니까 지금 우리는 ‘사순절’기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됩니다. 오늘, 바울 사도의 고백을 들으며 하늘 바람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스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회학자들이 ‘인간의 성장과정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를 이렇게 분류해놓고 있습니다. 먼저는 유아기인데, 이때는 어머니이면 그만이랍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서 입으로는 젖을 빨고 손으로는 다른 한쪽의 젖무덤을 만지고 있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는 시기랍니다. 그리고 유년기로 접어들면서는 장난감이 최고랍니다. 어머니가 불러도 장난감 가지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답니다. “일찍 일어나라,” “세수해라,” “머리 빗어라,” 연신 잔소리를 합니다마는 여학생 한 명만 나타나면, 게임 끝입니다. 좋아하는 남학생 한명만 나타면 더 이상 잔소리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청년기가 되면 지식에 목말라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려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려 합니다. 동시에 이 목마름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답니다. 40대가 되면 사업을 원한답니다. 꼭 사업뿐만이 아니라 온 생애를 걸고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욕망이 커진다는 거지요. 그러나 이 또한 채울 수 없는 공허와 후회로 끝나고 만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답니다. 50대로 접어들면 명예를 소중히 여기게 되는데, 그래서 무슨 의원이다, 위원이다 하는 사람들보면 50대의 사람들이 많답니다. 이들은 일을 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의 명예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예를 얻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60대가 되면 여러모로 한계를 느낀답니다. 힘도 부딪치고, 기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이제는 오로지 먹는 일에만 관심이 갑니다. 내 입을 즐겁게 하는 것만을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회학자들이 바라본 ‘인간성장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때는 가장 소중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다른 것 필요 없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모두가 상대적인 것들 이었습니다. 변하는 것,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절대적인 것처럼, 이것이 전부인양 착각했었습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좀 건방진 표현 하나 할까요? 사실, 인생이 그런겁니다. 내 인생이 그렇습니다. 딴에는 이거야말로 우아한 것이며 품위 있는 것이라고, 이거야 말로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큰 소리쳐 왔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질없었다 싶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피곤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이렇게 피곤하고, 왜 이렇게 허무한 것입니까? 그래,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혹, 말입니다. 지탱할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까? 내가 기댈 수 있는, 나를 지지해 주며 나를 품어 줄 수 있는, 내 인생을 걸만한 절대적 가치의 그 무엇을 찾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아니, 더 정직히 말해서 가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과 체면과 위신 때문에 스스로를 가면화시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가면 속에 감추어진 내 얼굴을 나는 알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이 왜 그렇게 피곤해하며 허무해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성경이 말씀하시는 한 마디는 이런 겁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싶은 절대적 가치를 발견하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기분 가져본 적 없으신가요? “나, 이대로 죽어 좋다. 아니,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극치는 없다.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싶은 감정의 극치, 희열, 정점을 경험해 본 적 없으십니까? 죄송하지만 없었다면 참 재미없는 인생 사신거구요, 있었다면 그 시간에 그대로 죽었어야 돼요. 이거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웃기는 이야기만은 아니거든요.


마태복음 13:44에 보시면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주인도 알지 못하는 노다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사람,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고, 마침내 그 보화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맙니다. 또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마침내 가장 훌륭한, 절대적 가치의 진주를 발견하고, 그 진주를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모아온 자기의 진주들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절대적 가치, 변하지 않는 절대적 가치의 것을 ‘가장 고상한 것’ ‘excellency’, ‘the best’입니다. 가장 귀한 것, 탁월한 것,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함입니다. 이 고상한 것, 가장 고상한 것을 알고 나니 전에 좋아하던 것, 유익하게 여기던 것이 다 시시해져서 그만 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빼앗긴 것이 아니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상실한 것도 아닙니다. 내 스스로 잘라버렸고, 내 스스로 내던져버렸습니다. 내 결단이었습니다. 너무도 좋은 것을 얻었기에, 절대적 가치를 발견하였기에 전에 좋아하던 모든 것을 다 버렸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너무도 소중한 것을 얻고 나서 그 동안 애지중지하던 것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고 다 남 주고 맙니다. 배설물로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로 여겼다고 합니다.

내 가문이나 명예들로 인해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내 못된 습성이나 버릇으로 인해 내가 거룩해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내 지식과 경험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겸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버리고 있습니다. 진리를 얻기 위해, 진실하기 위해, 겸손하기 위해서 배설물처럼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깨끗이 버렸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거듭나고 나서 자기가 그토록 아꼈던 다이아반지, 목걸이, 팔찌 등을 내 놓으면서 “좋은 일에 써 달라”합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이것들이 돌멩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구석에 쳐 박아 두었는데, 그런데 이게 가끔씩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일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순간부터 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자유로울까’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내가 발견되어 지려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진 나! 십자가 안에서 발견되어 진 나, ‘이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자랑이요, 그리스도만이 나의 기쁨이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만이 나의 행복이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가는 것, 이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에서 매사에 흑자냐 적자냐를 따지고 살아갑니다. 손해냐 이익이냐를 따지면서 살아갑니다마는, 어떠한 손해를 지불해서라도 예수님을 얻었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어떠한 적자를 지불해서라도 더 큰 흑자를 얻었으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닙니다. 좀 손해를 보았더라도 그리스도의 정신을 얻었고, 십자가의 정신을 이어가는 선택이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좀 더 큰 것, 좀 더 귀한 것, 좀 더 영원한 가치의 것을 얻었기에 그밖에 것을 미련 없이 버립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여기에 진리가 살고,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여기에 ‘잘 했다’ ‘옳은 선택을 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못에 사는 물고들에게는 그 연못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려다보기에 그 연못은 참 보잘 것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내가 경험하는 이것이 전부인줄 압니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개구리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끊임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합니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성서를 읽으십시오. 사건 하나하나를 통하여 내 삶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힘을 경험하십시오. 무엇보다 소중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나를 발견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고 결단하게 하시는 하늘 바람이 예배하는 교직원 여러분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그리고 우리 강남세브란스병원 골목마다, 구석마다 스며들어서 사건 사건마다 가장 고상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심과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2014/04/04 14:05 2014/04/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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