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에게 신약성경 빌립보서 중에서 한 구절만 외워 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빌립보서 4:13절을 외우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특별히 이 말씀은 김형중 병원장님께서 2016년 우리 병원이 이 말씀을 중심으로 마음을 합했으면 좋겠다 하시며 정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왜 이 구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 대답이 한결 같습니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느낌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적극주의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 같아서 좋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씀은 적극주의자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소위 불가능이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일을 만나든, 어떤 사건을 만나든, 어떤 환경에 처해진다 할지라도 나는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그분의 능력으로, 능력으로 할 수 있다는 바울 사도의 소중한 간증입니다.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내가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붙드신, 나를 사용하신, 나를 고용하신 그분께서, 나의 힘이 되신 그분께서 나를 통해 하셨고, 또 하실 것입니다. 결국 하늘이 하시는 것이니까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래, 오늘 말씀 11, 12절에 나는 배웠노라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삶에서 배웠다’ ‘깨달았다’ ‘알게 됐다.’ 하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헬라어 원어의 시제로 따지면 하나는 과거로 되어 있고, 하나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나는 과거에도 배웠고, 지금까지도 배우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 그것을 배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간증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나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나를 통해 하늘의 역사가 드러날 수 있도록 나는 내 몸의 힘을 빼는 것, 내 몸의 힘을 빼는 것을 배우고 있노라하는 것입니다. 사건 사건을 통해서 말입니다.

끊임없는 자기 훈련입니다. 신앙적 훈련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하나하나를 통해서 배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결단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위대한 하늘의 역사에 나를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나를 믿고, 나를 충성되게 여기셔서, 맡겨주셨습니다. 일만 맡겨주신 것이 아닙니다. 맡겨주신 하늘의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사람들을 모아 주십니다. 힘을 모으게 하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간섭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내 입으로 간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11)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하는 말씀을 읽으면서 이 두 가지를 서로 조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 두 가지란, ‘미래에 대한 꿈,’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미래와 이 현실을 자족하는 것,’ 나를 통해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응하면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 말입니다. 신앙은, 믿음은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까. 그리고 그 바라는 것들을 지금 실천하면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 자족하는 것입니다. 지금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이니까. 이것이 신앙인의 인격이며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바울 사도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온 땅에 복음이 전해져야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명백한 꿈과 미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이 삶에 대해서, 이 거룩한 사역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자족하면서 미래의 꿈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꿈은 미래요, 자족은 현재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사도가 말하는 자족지금은 내가 힘들어도 내일을 위해서 꾹 참아야지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내일 무지하게 행복하게 해 줄 터이니 오늘은 꾹 참고 견뎌라이것처럼 허무맹랑한 약속이 없습니다. 그런 약속은 하지도 말 것이며 듣지도 마세요. 내일 행복을 당신이 어떻게 장담합니까? 설사, 내일 더 행복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오늘은 오늘대로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자, 오늘은 참자. 먼 훗날의 즐거움과 누릴 영광을 위해서 오늘은 참자.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자.’ 합니다마는 이거 아닙니다. 오늘, 기뻐하십시오. 오늘 감사하십시오. 지금 행복하십시오. 맡겨주신 이 일이, 이대로가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궁핍에 처해도, 잘 되어도, 잘 안 되어도, 이대로 감사하는 것, 현재를 자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은혜를 알고, 은혜를 고백하고,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도 바울의 인생은 참으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 부자였을 때도, 가난했을 때도, 혼자 있을 때도,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고난당할 때도, 풍요의 자리에 들어설 때도 그는 한결같았습니다. 그 비결을 로마서 838-3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놀라운 고백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완벽하게 사랑하시니 나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부등호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것 모든 것을 다 집어넣어도 하나님은 절대 부등호로 크신 분이시기에 그 분 안에 있으면 이런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게 된다는 겁니다.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거룩한 사역에 불러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사람도 붙여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충성되게 여기셔서 맡겨주신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몸의 힘을 빼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기도의 시간이며 예배의 시간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강남세브란스병원을 통해 마음껏 역사하시기를, 내 몸에 힘을 빼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을 감사합시다. 만족하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오늘 말입니다. 지금 말입니다. 이 자족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따라 해 보십시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제는 함께 외워 보십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제는 함께 외쳐보십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2016/02/19 14:24 2016/02/19 14:24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열 살 난 아이가 얼마나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를 연구해 보았더니 약 6천 단어 이더랍니다. 그런데 그 6천 단어 중에 부모가 가장 기뻐하는 단어는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약 25천 단어를 구사하게 되는데, 25천 단어 중에 자신을 기쁘게 하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는 말, 그것도 감사합니다.”하는 말이더랍니다. 나도 기쁘고 너도 기쁜, 우리를 기쁘게 하는 한 마디,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랍니다.

 

2015년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년 말이 되면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연예대상’ ‘가요대상이런 제목의 프로그램들을 하잖아요. 저는 늘 버릇처럼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은혜 간증 대상이런 거 좀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한 해를 회상하면서 내가 받은 은혜가 참 많다, 지금 생각하니까 다 은혜다, 가족의 사랑이 있었고, 동료들의 지지가 있었다, 직장이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이 있어서 감사하고, 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받은 은혜가 참 많다.’ 하는,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 은혜 간증 대상식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참 잘했노라, 참 수고했노라 칭찬하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주고받는 덕담과 선물을 나누는 것도 좋겠지만, 나를 위한 덕담, 나를 위한 선물 하나 준비하는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수고 많았다. 그리고 참 감사하다고요.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감사를 받는 마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감사로 시작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요. 감사하지 못해서 행복하지 못한 거지, 행복하지 못해서 감사가 없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감사는 깨달음으로 시작돼요. 여러분, 감사는 깨달음과 연결됩니다. 모든 것을 당연지사로 생각해버리면 당연히 감사가 없지 않겠어요? 부모가 자식 낳아서 키우는 것을 두고, 그거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해 버리면 자식으로서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니냐고 당연시해 버리면, 거기에 무슨 고마움과 감사가 있겠습니까? 뭐든지 당연하게 여겨버리는 여기에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시편 49:20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했습니다. 좀 거친 표현으로 들립니다마는 그래요, 깨닫지 못하면 짐승과 같은 것이지요. 여러분,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면,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은혜를 모르면, 만족함도 감사도 없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감사에는 물질적 차원이 있습니다. 주고받으면서 감사하는 건데요, 이거 오래가지 못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있을 때는 감사하지만 없을 때는 감사하지 못하는, 이런 상대적 감사는 진실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철학적 감사도 있습니다. 헬라의 어느 철학자가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팔을 들면서 ! 신이여 감사하나이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대체 무엇이 감사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콧구멍이 밑으로 뚫렸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더랍니다.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하나 부러진 것이 둘 부러진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다리가 둘 부러졌더라도 목 부러진 것보다야 낫지 않습니까? 생각 속에서 철학적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감사는 은총적 감사입니다. 은혜를 생각합니다. 나의 나 됨에 대한 감사입니다. 존재에 대한 감사입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습니까? 여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십시오. 남자로 태어났습니까? 그대로 감사하십시오. 남의 아내가 되었으면 아내가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남편이 되었으면 남편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자식이 되었으면 자식 된 그 존재를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은총으로 받고 은혜 안에 있음을 알고 감사하는 것, 이것이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빌립보서에만 기쁨이라는 말이 16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말씀의 3, 4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을 보십시오. 무엇을 생각하든지 생각만 하면 감사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생각해도, 가정을 생각해도, 자녀를 생각해도, 직장을 생각해도, 모든 일에서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다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불평이고 원망입니다. 이것은 이래서 불평이요, 저것은 저래서 원망입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은혜 안에 있는 자,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 속에서, 은총 속에 있다고 고백하는 자의 특징을 보십시오. “생각할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이것은 구체적인 고백입니다.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이것을 생각해도 저것을 생각해도 다 은혜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고백하며 간증하는 자가 그리스도인 입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습니까?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십시오. 행복한 인생을 만들고 싶습니까? 감사하다고 말하십시오. 감사하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이 올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주고받는 그 시간이 행복의 극치입니다.

모름지기 감사가 습관이 되어야 하고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일까지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해할 때 찬송하고,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기도하는 그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감사함으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2015, 얼마 남지 않은 메모리 카드의 마지막 부분에 감사의 사진이 많이 담겨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날, 내 메모리 카드를 정리할 때, 삭제하고 싶은 장면 남겨 놓고 싶은 장면들을 가릴 때, 감사의 장면들이 많이 남겨지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간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얻으시는 영광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2015/12/14 10:09 2015/12/14 10:09

카테고리

전체 (352)
대장암 이야기 (142)
교수님들의 소식 (22)
대장암 센터 소식 (17)
무엇을 먹을까요 (52)
소화기관 질환 (14)
마음이 쉬어가는 곳 (26)
믿음의 말씀 (31)

공지사항

달력

«   2019/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tatistics Graph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