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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장암센터 ::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만약에 제가 연극을 하게 된다면 성경인물 중에서 꼭 해보고 싶은 역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가롯 유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베드로이며 제가 가롯 유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처럼 성질도 급하고, 타협할 줄도 모릅니다. 시쳇말로 밀당도 못합니다. 매사에 이것아니면 저것이어야합니다. 혼자 의로운 것처럼 외치다가도 내가 살아야 하는, 피해야 하는 막다른 순간이 되면 치사한 방법으로 내 살길을 찾아내는 그런 비겁함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베드로처럼 성질이 급해서 실수도 많고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줍니다. 베드로가 다혈질이었거든요. 아마도 베드로를 앉혀놓고 성경 읽고 5분간 묵상합시다.” 하면 예수 믿는 거 힘들어서 못하겠다.”하면서 뛰쳐나갈 사람입니다. 그래 저는 묵상기도를 잘 못해요. 그리고 기도 길게 하는 것도 못 견뎌하는 팔삭둥이 목사입니다. 목사로서 참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부끄러운 고백은 가롯 유다처럼 재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계산이 너무 많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찬송하면서도 어느 사이 내 이름을 앞세우며 나 좀 알아주었으면하는 유혹에 스스로 휘말려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찬송하면서도 영광된 자리만 탐하고 있고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면서도 높은 자리, 알아주는 자리 찾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한 때는 예수에게 미쳐서 그 하나로 만족하며 살겠노라 결심하고 결단도 했는데, 그런데 오늘 내 모습은 예수 이름 팔아서 밥 먹고 살고 있습니다. 친구 목사들이 모이면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돈 받아가며 예수 믿는 사람은 목사밖에 없다.” 정말, 예수 팔아서 밥 먹고 사는 삯군 목사로 전락해 버린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것과 마음이 다릅니다. 배반, 배신, 배교의 연속입니다. 늘 가면을 쓰고 다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거룩으로 위장한 목사의 모습을 보고 계신 겁니다. 가롯 유다와 다름없습니다. 그래, 때로 내가 목사가 맞나?”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내 스스로도 그런데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오죽할까 싶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가롯 유다 역을 잘 할 수 있을 같습니다.

 

베드로, 열 두 제자 이야기 어디를 보아도 베드로는 수장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챙기기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드로는 으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엄청난 말씀도 하십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16:17)’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는 고백 하나로 베드로가 됩니다. 베드로의 뜻은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의 이 고백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이 고백위에 세운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실로 엄청난 권세요, 대단한 축복입니다. 하늘 문의 열쇠를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겟세마네 동산에까지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날 겟세마네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니 베드로 먼저 나섭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여기 있는 이 사람들, 여기 열 한명 모두가 당신을 버리고 떠날지라도 나는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입니다.

 

이 고백, 이 믿음, 이 신앙으로 예수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데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빌라도 앞에 서 있는 저 무능력한 예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그 새벽에, 베드로는 그동안 숨겨왔던 본심이 드러나고 맙니다. “나는 그를 모른다.” 마태복음(26:74)에서는 저주하며 맹세했답니다. 나는 그를 모른다고. 그리고 누가복음(22:61)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순간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땠을까? 그 순간, 베드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제, 오늘 본문, 요한복음 21장은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새로운 무대입니다. 일명, 베드로의 면접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배반당하시고, 그렇게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보세요, 여러분,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요한의아들 시몬아하십니다. 베드로가 없습니다. 왜요? 고백이 죽었잖아요. 그 고백이 부인 당했잖아요. 그 고백이 사라졌잖아요. 그 고백을 스스로 거두어들였으니 이제 베드로는 없습니다. 시몬만 있을 뿐입니다. 그 고백이 베드로를 만들었고, 그 고백이 베드로였습니다. 이제는 시몬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시몬만 남아있는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십니다. 15, 16, 17절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들을 자세히 보시면 첫 번째 질문, 15절에는 1617절에는 없는 내용이 하나있습니다. “이 사람들보다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누구지요? 제자들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호언장담했던 말 기억나시나요?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이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했던 그 사람들, 베드로가 깡그리 무시했던 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아가페(γαπς)로 물었거든요. 그러니까 헬라어 원문대로 해석한다면 그래, 네가 깡그리 무시했던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고? , 나를 목숨 바쳐 사랑한다며? 그런데, 너 정말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거 맞어?” 이겁니다. 그랬더니 베드로의 대답을 보세요. 원문에는 베드로가 필리아(φιλ)로 대답을 해요. “내가 주님을 아가페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아로, 우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하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서도 예수님은 아가페로 묻고, 베드로는 필리아로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질문, 17절 물음이 심오합니다. 첫 번째 두 번째에서는 아가페로 물었는데, 세 번째에서는 필리아로 묻습니다. “, 나를 친구라도 사랑하느냐? , 계속해서 나를 친구로 사랑한다는데 정말, 친구로라도 나를 사랑하는 거 맞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대답이 매우 특이합니다. 베드로가 갑자기 근심합니다. “주께서 나를 아가페, 아가페 물으시다가 갑자기 필리아, 우정으로라도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 제가 주님을 필리아로, 우정으로밖에는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 날, 겟세마네에서 했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내 목숨을 바쳐 당신을 따르겠다고 했던 그 말이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부활하셔서 내 앞에 계신 당신을 보면서 , 제가 주님을 아가페합니다. 죽도록 사랑합니다. 다시는 부인하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죽음으로서 당신을 따르겠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대답 안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죽도록 따르겠다고 대답하고서는 또다시 당신을 배반하고 부인하게 될 것을 나도 알고 당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을 필리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당신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양을 치라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면접시험의 시간이 새벽시간이라는 점, 이 점 또한 심오합니다. 베드로가 새벽에 나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주님은 그 새벽 시간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불을 쬐고 있을 때 여종 앞에서 나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지금 주님은 불을 피워놓고 그 불 앞에서 , 나를 사랑하느냐고 확인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는데요. 베드로가 이 상황을 못 느꼈겠습니까? 얼마나 치밀하고 얼마나 심오한 면접시험입니까?

 

베드로는 여기서 깨닫습니다. 신앙은 감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의지만으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 깨닫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는 그 고백은 성령께서 도우신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지금도 호언장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목숨 바쳐 사랑할 수 있다고 지금도 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내가 또 주님을 배반하고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이제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주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저는 베드로의 이 면접시험을 보면서 나는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그렇거든요. 내가 주를 사랑한다고 떠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압니다. 이 시간 끝마치고 저 문을 나서면서 또 한 번 주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그리고 주님도 아십니다. 나는 또 무너질 것입니다. 또 쓰러질 것입니다. 돌아서서 또 내 가슴을 치는 일이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나를, 그래도 쓰시겠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 사랑 속에 지금껏 내가 살아 왔으니까요. 여러분,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내 형편과 처지와, 연약함과 죄 된 모습을 알고 계십니다. 또 다시 부인할 것을 알고계십니다. 그래도 우리를, 당신을 사용하시겠답니다.

그런데 이런 만신창이가 된 시몬이 오늘, 우리들에게 베드로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말입니다. 아멘.


2015/09/16 10:48 2015/09/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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