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여러분, 혹 이 선전 문구를 기억하십니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흔치 않았을 때, 어느 가전회사가 내건 냉장고 선전 문구였습니다. 이 문구 하나로 문구를 만든 사람이나, 그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참 기발하지 않습니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인생에 있어서의 선택은 10년이 아니더라고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가더란 말입니다.’ 세상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이 사람이었겠습니까? 그 선택은 내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가 평생을 지고 가야합니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결과는 책임입니다. 때로 이것은 운명적일 수 있고, 결정적이고, 심판적일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했기에 이제는 원치 않아도 그 결과를 다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고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이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선택이고, 이것이 운명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바빠도 선택은 바로 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물어보고, 또 한 번 확인하고, 거듭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내 선택이 바로 된 것이냐고요.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이냐고요. 이대로 끝나도 되는 것이냐고요.

 

오늘 우리는 선택을 잘못한 한 사람의 운명에 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롯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성경에서 소개되는 처음부터 종속적 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삼촌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고향과 친척을 떠날 때, 삼촌에게 더불어 사는, 얹혀사는 신세로 따라 나섭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어서도 아니고 무엇인가 뜻한바가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삼촌인 아브라함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결정적인 시간이 왔습니다. 살림이 너무 커져서 부득불 나누어 서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지금까지는 삼촌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습니다. 삼촌이 가자하면 가고 서자 하면 섰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롯이 스스로, 자기 스스로가 생각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 것입니다. 여기에 자유가 있고, 스스로의 선택이 있고, 독립이 있습니다. 허락이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갑니다. “!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할 것이고, 네가 동 하면 나는 서 할 것이다.” 네 마음대로 선택하라.

 

롯은 여기서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택의 기준, 이것이 그 사람의 철학이요, 가치관이요, 신앙이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이것을 선택했습니까? 무엇이 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습니까? 아니, 이것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 역시 훌륭한 인물입니다. 얼마든지 자기 것을 주장할 권리가 있었지만 조카에게 양보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기준, 그것은 화목이었습니다. “너나 나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아니, 우리 아랫사람들까지도 다투지 말자, 화평하자, 화목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는 큰 양보를 합니다. 통 큰 양보를 합니다. 손해를 감수합니다. 왜냐하면 화목이 더 중요하니까.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리라.” ‘너 가지고 남는 거 내가 가지마. 내 관심은 오직 하나, 어디서나 하나님 섬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좀 잘 사면 어떻고 못살면 어떠냐. 어디서나 하나님 섬기며 살면 되는 거지. 동이면 어떻고 서면 어떠냐. 산지면 어떻고 평지면 어떠냐. 우리가 부른 찬송가 4383절의 가사 그대로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 한 분이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브라함, 그는 신앙이 더 중요했고 거룩한 생활이 더 중요했더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어디든지 갑니다. 말씀하시니 갑니다. 약속하셨으니 믿고 갑니다. 아브라함의 선택 기준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앙뿐이었습니다. 하나님 예배하기에 좋고, 하나님 섬기기에 좋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롯의 선택 기준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즉,” 보았다는 겁니다. 보면서 화려한 것을 봅니다. 넉넉한 물이 있습니다. 가축들을 먹이기에 충분한 좋은 풀이 있습니다. 천연자원이 풍부합니다. 그리고 화려한 도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롯은 이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였더라.”

롯은 소유를 택했고, 현재를 택했고, 물질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아니, 사람은 보았지만 그 사람의 도덕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못 보았단 말입니다. 롯을 보면서 더 안타까운 것은, “여호와의 동산 같더라.”라는 표현입니다. 마치 그런 눈으로 보니까 그 땅이, 소돔과 고모라가 축복된 땅으로 보여 지더라는 종교적 각색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가다가 잘못 된 길 인줄 알면 돌이키면 될 일인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다가 그만 소돔 가운데 앉아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선택에는 겉을 보는 수가 있고 속을 보는 수가 있습니다. 현재를 보는 수가 있고 미래를 보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기준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보십니까? 선택은 순간적이지만 그 책임은 일생동안 져야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무엇이 보여 지십니까? 인간은 보여지는 대로 가고 보여지는 대로 운명이 결정되어 집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따른 운명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린 그 선택의 결정에 그냥 따라가야 할 뿐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하고 묻습니다. ‘To have or To be.’ 인간은 이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적 고민을 하고 선택적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물어보십시다. 그 선택이 바로 되었냐고요. 또 물어보고, 또 한 번 비판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이대로 가면 되는 겁니까? 이대로 계속 따라가도 되는 겁니까? 이대로 죽어도 되는 겁니까? 이대로 끝내도 되는 겁니까? 그만한 가치에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거듭 거듭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 궤도 수정을 해야 합니까, 궤도 교정을 해야 합니까? 롯은 이 생각을 못하고 그저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향락대로, 소돔과 고모라까지 가 버렸습니다. 무비판! 이것이 문제입니다. 향락에 끌려서, 육체에 끌려서, 감정에 끌려서, 기분에 끌려서 살았습니다.

이 성이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짐짓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일 년만 더, 한 달만 더, 하루만 더, 아니 한 시간만 더, 이렇게 모험 속에서 순간적이고 일시적이고 찰라 적인 행복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의 타락된 성격, 타락한 인간성이 의식 속에, 생활 속에, 도덕 속에 이미 소돔사람이 되어 버린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처럼 원했고 사랑했고 아꼈던 그 물질과 천연자원을 다 잃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그의 아내마저 소금 기둥으로 변해 버립니다. 이제는 그의 두 딸만이 함께 산중에 기거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아름다운 강, 풍요한 들, 누구의 것이었냐고요. 하나님을 떠나고 선택이 잘 못되다보니 다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소유도 꿈도 다 잃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는 선택,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성령을 선택해서 끝 날에 가서는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노라, 잘했노라, 유감이 없노라고 하는 그런 선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


2014/05/19 13:01 2014/05/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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