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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소통하고, 위로하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과거의 음식 프로그램이 ‘요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 어떻게 그 음식을 ‘먹는지’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하리만치 높아진, 맛을 향한 탐닉 아래 감춰진 비밀들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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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배가 고파온다
갑자기 세상에 먹을 게 넘쳐난다.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늘어나는가 하면 요리사들은 엄연한 스타의 자리를 꿰찼다. 작가들도 앞다투어 좋아하는 맛에 대해 시시콜콜히 이야기를 써낸다.
동네마다 개성 넘치는 음식점이 생겨나 사람들은 길게 줄서기를 마다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이제 여행의 목적은 아예 ‘맛집 탐방’이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하는 질문이 케케묵게 느껴질 정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우리는 이토록 맹렬히 먹고 싶어 하는가?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제멋대로가 되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시작될 때마다 흐르는 이 내레이션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 보여준다. 평범한 아저씨가 퇴근길에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전부인 이 드라마는 혼밥러, 즉 혼자서 밥 먹기를 즐기는 이들에게 성전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무려 시즌 7까지 이어져온 높은 인기를 혼밥러만의 열광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주인공인 이노가시라 고로가 식당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 순간, 화면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이와 혼연일체가 된다. 나오는 음식의 첫인상을 평가하고, 고로가 젓가락을 입으로 바삐 가져가며 맛을 묘사할 때마다 상상에 빠지고, 기쁜 얼굴로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보며 함께 만족감을 느낀다. 음식에 대한 애정은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이기 때문일 테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는 밥상을 차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은 우리 곁에 있어준다.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런 마음을 잘 안다는 듯 음식 콘텐츠는 늘어만 간다.
사람들은 점점 더 특이하고 이국적이며 맛있는 것을 찾는터라 웬만해서는 주목을 끌 수조차 없다. 지난 4월 방송됐던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미식 방랑기-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식도락에 대한 보편적 기대치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걸어 다니는 식문화 사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백종원 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일본, 중국, 태국, 하와이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리를 맛본다.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지만 맛은 보장되는 길거리 음식들을 폭넓은 지식으로 설명해주면서. 현지의 풍광과 더불어 늘 ‘더 먹고 싶어’ 하는 백 씨를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안방에서 이토록 쉽게 온 세상의 맛을 섭렵할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눈높이가 높아질 만도 하다.
그러나 정작 지금 우리의 식생활은 어떤가? 아침은 시간에 쫓겨 거르는 일이 다반사, 점심 역시 허겁지겁 우겨 넣고 저녁은 즉석조리제품이나 배달음식에 기대기 일쑤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조류독감, 방사능 노출 어류, 성장호르몬 우유 같은 식품 안전 이슈 탓에 집밥마저 찜찜하다. 넘쳐나는 영양 관련 정보들 중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모자란 부분은 점점 늘어나는 영양제가 채워주리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자극적인 맛만은 풍요를 누리는 시대이다 보니 시간이 날 때마다 홈쇼핑 갈비도 주문해보고 SNS에서 뜬다는 맛집도 순례하며 혀를 즐겁게 하려 애쓴다. 그래도 어쩐 일인지 속은 늘 허하니 이상한 일이다. 먹어도 먹어도 뭔가 이게 아닌, 그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무엇을 먹어야 행복한지 떠올려보자. 어머니가 어렸을 적 해주시던 간장계란밥이 가장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영양적 가치로만 따지면 별 의미 없는 분홍 소시지 부침이 최고의 반찬일 수도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우스갯소리 뒤에는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깃든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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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위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니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말이다.
그러나 배고픔의 이유가 너무도 다양하다는 사실은 놓치고 있다. 단순히 끼니를 걸러 위가 비었을 수도 있고, 위는 찼지만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서 계속 입맛이 당길 수도 있고, 잘못된 다이어트로 인한 집착이 음식을 부르기도 한다. 그중 무엇보다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로 감정 상태다. 식욕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시상하부가 기분도 조절하기 때문이다. 영양 부족이 치명적 수준인데도 식사를 거부하는 거식증, 위가 파열될 정도로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폭식증 등 섭식장애 환자들이 그 극단적인 예다.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이 지금 무얼 바라고 있는지 잘 알아야만 오롯이 나만을 위한 밥상과 마주할 수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은 자연이 자신에게 준 선물들 덕분에 허기의 근원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 각각 존재하는 음식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잔잔히 묘사하고 있다. 도시에서는 비닐에 싸인 상품에 불과했던 시들시들한 식재료들이 고향에서는 자연 속에서 생기를 뿜는다. 이를 직접 기르고 조리해 먹는 주인공 혜원은 조금씩 빛을 찾아간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규격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옥죄던 삶에서 벗어나 음식을 통해 세상과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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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것의 소중함    
가만히 생각해보면 맛을 향한 탐닉은 두 가지 길로 뉘어져 있다. 하나는 순간적으로 혀끝을 즐겁게 하는 쾌락 추구, 다른 하나는 심신 모두에 힘을 불어넣어줄 ‘진짜’ 음식을 찾는 여정이다. 그리고 모든 소중한 가치들이 그렇듯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무엇을 먹어야 행복한지 떠올려보자. 어머니가 어렸을 적해주시던 간장계란밥이 가장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영양적 가치로만 따지면 별 의미 없는 분홍 소시지부침이 최고의 반찬일 수도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우스갯소리 뒤에는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깃든 음식을 먹고 싶다’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 채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기회는 참으로 드물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두들 파랑새를 찾듯이 혀와 심신을 감싸줄 한 그릇을 찾아 헤매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되는 드문 그 무엇, 하루 세끼는 우리에게 그런 의미다. 밥벌이로서의 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면서 열심히 움직이는 힘도 거기서 나오지 않는가. 진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그렇다, 먹기 위해 산다. 그것도 아주 잘 먹기 위해서.



윤나래(칼럼니스트)



2018/08/29 10:13 2018/08/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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