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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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2018/03/12 11:47 by 의료원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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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탄생
대한민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노년은 ‘65세 이후’로 규정된다.
은퇴를 하고, 대중교통 보조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
그러나 실제로 그러할까. 모두 65세가 되면 선을 넘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지듯, 노년이 되고 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사회적 나이를 다시 생각하다
채 2년도 흐르지 않았는데, 케이블 채널 드라마 중 꽤나 주변을 들썩이게 만든 작품이 있다. 노희경이라는 일급 작가가 쓴 <디어 마이 프렌즈>다. 적어도 드라마가 히트하려면 당대의 청춘 스타가 주연급으로 캐스팅되고 장안에 회자될 만한 러브 신이 발명품처럼 따라붙어야 하지만, 이 드라마엔 그런 요소라곤 일절 없었다.
기억의 화로를 덥히기 위해 등장인물 몇 명을 소개하면, ‘4차원 독거 소녀’를 선언하는 72세 김혜자, 속물 같은 남편 탓에 허망해진 인생을 탓하는 동갑내기 나문희, 즐겁게 살자는 인생 모토의 소유자인 63세 고두심, 앞서가는 연애관과 말솜씨로 먹물깨나 먹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65세 윤여정 등이다. 기타 등등에는 86세 오쌍분 할머니를 연기하는 김영옥 선생, 75세 김석균 할아버지를 연기하는 신구 선생도 포진해 있다. 그뿐이다.
흔한 말로 구닥다리 올드우먼 스토리로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드라마에 사로잡힌 영혼들이 쏟아내는 감동 섞인 리뷰는 한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핵심은 이것. 이 드라마가 ‘여성의 혹은 노인의 다양한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는 ‘노년’이라는 세대를 한 묶음으로 거칠게 버무려 생각하기 일쑤다. 거기엔 ‘노년’이라는 세대를 향한 새로울 것 없는 생각과 편견이 꽤나 많이 들어있다.
과문한 탓에 장담은 못하겠지만, 한국 사회만큼 나이에 대해 꼬장꼬장한 사회가 있을까 싶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새해가 되면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으며 한 살을 챙기고, 얼마 뒤 음력 설에 떡국을 챙기며 한 살을 또 챙기고, 생일이 되면 케이크 위에 초를 꽂으며 한 살을 챙긴다. 한 번 더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선수끼리 다툼이 벌어지면 중계 화면 댓글에 누가 선배인지부터 따지고 웬만한 잘못은 후배가 뒤집어 쓰는 것도 우리만의 상황 아닌가 싶다. 『예기(禮記)』라는 책의 ‘곡례편(曲禮篇)’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10년이면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20세를 약(弱)이라 하며 비로소 갓을 쓴다. 30세를 장(壯)이라 하고 집(家:妻)을 가진다. 40세를 일컬어 강(强)이라 하며 벼슬을 하는 나이다. 50세를 애(艾)라 하며 관정(官政)을 맡는다.
60세를 기(耆)라 하고 남을 지시하고 부린다. 70세를 노(老)라 하는데 이쯤 되면 자식 또는 후진에게 전한다.”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걸까.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 각자의 삶에도 항공 마일리지처럼 ‘사회적 구간 나이’가 적용된다.
대학갈 나이, 결혼할 나이, 취업할 나이, 출산할 나이 등이 적령기라는 엄격한 기준 아래 운용된다. 야금야금 희석되곤 있지만, 이 구간 구간을 모범적으로 옮겨 다니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이 자주 펼쳐진다.
그런 와중에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때가 바로 65세, 즉 ‘노년’으로 불리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다른 ‘구간 나이’들이 좋든 나쁘든 살아있는 세포처럼 수시로 호명되는 것과 비교하면 ‘노년’을 상징하는 65세라는 나이 이후는 음소거 모드라도 되는 양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비로소 늙는가
“65세가 다가올 때쯤 몸의 심폐 능력은 30세에서 40% 정도 떨어진 상태다. 심장 벽이 두꺼워지고, 심혈관 질환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 65세면 원래 1.35kg 정도인 뇌에서 30mg쯤이 사라진 뒤고, 뇌 세포의 10분의 1이 사라진 뒤다. 65세가 넘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관절에 조금씩 이상을 느끼고, 둘 중 한 명 꼴로 은근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느낀다. 청장년이라면 방광이 반쯤 찼을 때에 요의를 알리는 반사 반응이 일어난다. 65세 이상의 사람들은 방광이 거의 찰 때까지 신호를 받지 못한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실즈가 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에서 끄집어낸 내용들이다. 눈 밝은 이는 알아챘겠지만, 중간중간 공통으로 등장하는 나이가 있다. 65세다. 나이를 먹을수록 늙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사람들은 ‘노화’라는 단어를 ‘노년’과 짝지어 생각하기 일쑤지만, 실제로 노화란 성장이 멈춘 20대부터 시작된다. 그럼에도 65세라는 상징적인 나이에서 ‘노화’를 곱빼기로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회적 구간 나이에서 65세는 ‘은퇴’를 의미한다. 60대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일에서 은퇴하고, 대중교통 보조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기 시작한다. 기초생활 보장법, 국민연금법 등 법과 제도에 묶이는 사회적 나이가 시작되는 셈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희미해지는 동시에 세대의 존재감마저 희미해진다. 앞서 언급한 도매금으로 언급되는 세대라는 얘기다. 이런 기준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1880년대 현재의 독일인 프러시아에서 연금 제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65세 이상에게 이 제도를 적용한 건 당시로선 옳은 판단이었다. 당시만 해도 65세를 넘겨 장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에 빗대면 이 기준은 넌센스라 불릴 수 있다. 생물학적 나이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면서 100세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시그널이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시점에 ‘65세 노년’이라는 표현은 어색한 게 사실이다. 자신의 나이에 0.7을 곱해야 진짜 나이라는 계산법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나라의 정부와 기업은 65세를 노년의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노년의 당사자들에게 일종의 시그널로 작용한다. 사회적, 경제적 쓸모가 다한 나이라는 세상의 기대치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아름답게 늙기’라는 캠페인 문구는 얼마나 허망한가. 많은 전문가가 생물학적 나이, 사회적 나이보다 젊게 살 수 있다고 솔루션을 제시하기도 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자. 달라진 세상을 받아들이자.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 이건 나이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여유가 된다면 나만의 취미에 에너지를 쏟는 것도 좋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악기나 춤을 배운다거나,
국토 대장정이나 오지 여행하기 등. 아직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이런 귀띔도 누군가에겐 유격 훈련에 가까운 난이도로 느껴질 수 있다. 이유는 이렇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노년을 다룬 사회적 콘텐츠가 거의 없다는 사실. 노년이라는 사회적 나이에 대한 배려와 공감과 준비가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맨 앞에 언급한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의 미덕을 지금 언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노년 세대의 내부가 한 묶음이 아닌 얼마나 다양한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절절하게 알려준 것. 그리고 그들 각자의 욕망과 연대감이 빚어내는 장면에서 시대가 변했다는 걸 절감하게 해준 것.  


스스로 결정하는 나의 노년
“최근 제 고모 한 분이 100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여전히 똑똑하고 정정하신 분이죠. 재정도 스스로 관리하고, 정치 뉴스도 챙겨보고, 1984년에 있었던 일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십니다. 하지만 고모는 45년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저는 문득 앞으로 정신이 말짱한 채 45년을 더 살아야 한다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숫자에는 관심이 없고, 카드 게임을 포함한 모든 게임에 소질이 없는 제가 브릿지를 하면서 45년을 보낼 수는 없겠죠. 타자를 치는 것 이상의 운동은 무리인 제가 새삼 스포츠 활동을 할 수도 없을 테고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 은퇴할지, 내가 언제 노인이 될지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90살이 되어서도 머리를 기르고 싶으면 그렇게 할 것이고, 나이가 나의 절반에 불과한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역사와 미술을 공부하고, 내 눈에는 여전히 고등학교 2학년 같은 남편과 춤을 배울 것입니다. 통장 잔고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예술 영화와 연극을 보고, 여행을 다닐 것입니다. 손자 손녀들을 박물관에 데려가고,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투표일에는 꼭 투표를 할 것입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의 한 대목이다. 역사상 인간이 가장 긴 수명을 사는 시대, 즉 100세 시대의 65세 노년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나이이자 세대다.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아하게 나이 드는 것, 그리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구체적이고 자잘한 솔루션은 지속적으로 생겨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먼저 취해야 할 것은 지금 소개한 칼럼의 한 문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 은퇴할지, 내가 언제 노인이 될지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라는 태도 혹은 마음 상태 아닐까.  

문일완(남성패션지 <루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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